2026.01.26 | 생명의 삶 | 임채영목사
오늘도 말씀으로 여러분과 함께 할 수 있어서 아주 기쁜 하루입니다.
저는 아현동에 있는 서부교회를 섬기는 임채영 목사입니다.
인간은 미래를 상상할 수 있는 존재죠.
이 능력 덕분에 우리는 계획을 세우고 준비하고 그리고 사실은 문명을 만들어 온 겁니다.
그런데 같은 능력이 우리를 불안하게도 만들죠.
아직 오지 않는 내일을 미리 끌어와서 우리의 마음 위에 얹어 놓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염려는 미래를 앞당겨 사는 인간의 특징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성경도 염려하는 마음 자체를 정죄하지는 않습니다.
그 대신에 염려가 우리 삶의 질서를 어떻게 흔드는지를 보여주십니다.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은 너희를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현실을 모르는 위로가 아닙니다.
현실의 한 복판에서 흔들리는 마음의 중심을 다시 세우라고 하는 주님의 격려입니다.
오늘 이 말씀 앞에서 우리는 염려를 내려놓고 한 가지를 점검해야 됩니다.
지금 내 마음의 주인은 누구인지 무엇이 내 시선을 붙들고 있는지 이 질문을 품고 오늘 말씀을 함께 보겠습니다.
오늘 말씀은 마태복음 6장 25절부터 34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생존을 넘어 사명의 자리로
마태복음 6장 25절에서 34절 말씀입니다.
| 25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26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27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 28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29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30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31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32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34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염려는 단순한 고민이 아닙니다.
언어의 뉘앙스를 보면 마음이 갈라지고 분열된 상태를 말하죠.
그러니까 한쪽 마음은 하나님을 믿는다 이렇게 말하는데 다른 한쪽은 그래도 현실이 무섭다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믿음과 현실 사이에서 마음이 둘로 찢어지는 거죠.
그리고 그 틈으로 불안이 자라납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구분을 하나 해야 됩니다.
미래를 준비하는 것은 지혜인 거예요. 그런데 염려는 준비가 아닙니다.
준비는 오늘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고, 염려는 오늘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을 붙들고 마음을 소모하는 거죠.
그래서 우리 예수님이 그 차이를 한 문장으로 정리하세요. 27절입니다.
27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
염려는 뭔가를 하는 것처럼 보이게 만듭니다.
걱정하면 책임감이 있는 것 같고 불안해하면 준비하는 사람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무르시는 거예요.
염려함으로 키가 한 자라도 더 크게 할 수 있느냐?
키는 걱정으로 자라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염려는 현실을 바꾸지 못하고 마음만 지치게 하는 거죠.
그래서 이 질문은 우리를 책망하는 게 아니라 쉬게 하려는 말씀입니다.
바꿀 수 없는 것은 내려놓고, 오늘 할 수 있는 것만 하라는 주님의 격려입니다.
염려로 키우지 말고 믿음으로 오늘 살아가라고 하시는 거죠.
그런데 그럼에도 우리는 왜 계속 그렇게 염려할까요? 예수님은 25절에서 그 뿌리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25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여기서 우리 예수님은 이 우리 삶의 필요를 부정하지 않으십니다.
다만 순서를 바로 잡으신 거예요. 목숨이 음식보다 크고 몸이 의복보다 중요하거든요.
그런데 우리들은 어느 순간 살기 위해 먹고 입는 수준을 넘어서 먹고 입는 것으로 내 존재를 증명하려고 합니다.
그러면 음식과 옷이 생존의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 되는 거죠.
그러면 그때부터 우리 인생은 불안해집니다.
물질과 성취가 목적이 되면 그것이 흔들릴 때에 우리의 존재 전체도 흔들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러한 우리의 삶을 바꾸어 주십니다. 26절 보세요.
26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여러분 이 말씀을 오해하지 마세요.
예수님이 아무것도 하지 말라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 아닙니다.
새를 보세요. 새도 먹이를 찾습니다. 다만 새는 세상을 책임져야 된다는 생각으로 살지 않습니다.
우리의 염려가 커지는 이유를 보면 내가 모든 것을 통제해야 된다고 하는 착각 때문일 때가 많죠.
그래서 예수님은 핵심 질문을 던지십니다.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니냐?
불안을 이기는 힘은 상황이 완벽히 안전해져서가 아니라 내 존재의 가치가 확정될 때 오는 겁니다.
오늘 여기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신다라는 이 말은 우리가 우연히 어쩌다가 생겨난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돌보심 안에 있는 존재라는 선언이고요. 이것이 오늘 우리에게는 큰 위안이 되는 거죠.

그러고 예수님은 이어서 들의 백합화를 예로 드십니다. 백합화는 스스로 증명하려고 애쓰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입히시죠.
그리고 나서 예수님은 30절에서 더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30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믿음이 작은 자 들아
우리가 느끼는 불안은 종종 이런 생각에서 시작합니다.
'내 필요를 아무도 모를지도 몰라 결국은 다 내가 책임져야 돼'
이렇게 우리가 먹고사는 문제 건강 관계 우리의 미래 이 모든 일을 우리가 혼자 떠안으려고 하다가 염려 걱정으로 우리의 마음이 무너지는 거죠. 그런데 예수님은 32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죠.
32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그러니 하나님은 멀리서 구경하는 분이 아니십니다. 우리의 필요를 아시는 아버지이신 거예요.
그래서 예수님은 단순한 위로가 아니라 삶의 중심을 바꾸는 해결책을 주십니다. 33절입니다.
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여기서 먼저는 시간 순서만을 의미하는 게 아닙니다.
가치의 순서입니다. 삶의 제일 위에 무엇을 둘 것인가의 문제예요.
우리들은 가장 높은 가치를 중심으로 모든 것을 배열하지요.
그 예수님은 그 가치 중심을 바꾸라고 하는 겁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나라와 의는 추상적인 종교어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 이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이 왕이 되는 질서 곧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삶의 방향입니다.
그러니까 먼저 하나님이 다스리게 하라 이 이 말씀이죠.
나의 현실을 하나님의 통치 아래 다시 놓으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34절 이것이 오늘 말씀의 결론이에요.
34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날로 족하니라
예수님은 내 일을 부정하시지 않았습니다.
뭐 계획하지 말라고도 준비하지 말라고도 하시지 않습니다.
다만 분명히 말씀하세요. 내일의 짐을 오늘로 끌어오지 말아라.
염려는 미래를 앞당겨 현재를 짓누르고 결국 오늘 우리의 살 에너지를 빼앗아 갑니다.
그래서 오늘의 힘으로 내일까지 살려고 하면 우리는 반드시 지치고 무너질 수밖에 없어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내일 몫의 은혜까지 미리 주시지 않습니다.
다만 일용한 양식을 주시는 거죠.
오늘을 살 수 있을 만큼의 은혜, 오늘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힘을 하나님은 주십니다.
그래서 오늘의 은혜는 오늘을 위해 주어지고 내일의 은혜는 내일 하나님이 주실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내일을 걱정하며 통제하려고 애쓰기보다 오늘 주어진 은혜에 감사함으로 응답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러기에 오늘만 사십시오.
오늘 해야 할 순종을 오늘 하고, 오늘 사랑해야 될 사람을 오늘 사랑하십시오.
내일을 맡길 수 있는 믿음으로 오늘을 성실하게 살아내십시오.
그때 내일은 염려의 대상이 아니라 하나님이 책임지시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 마음이 염려로 갈라질 때마다
오늘 말씀으로 다시 위로받게 하옵소서.
공중의 새와 들의 백합화를 보면서 우리가 우연이 아니라 돌봄의 대상임을 믿게 하옵소서.
그래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이것이 우리의 삶의 중심이 되지 않게 하시고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게 하옵소서.
내 일의 짐을 오늘로 당겨와 무너지지 않게 하시고,
한 날의 괴로움은 그날에 족하다는 말씀으로
오늘을 성실하게 충실하게 살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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