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1.25 | 생명의 삶 | 임채영목사
모두들 평안하시지요?
저는 아현동에 있는 서북교회를 섬기고 있는 임채영 목사입니다.
우리는 모두 주인 있는 삶을 살고 있죠. 그런데 문제는 누가 주인이냐? 하는 겁니다.
겉으로는 내가 선택하고 내가 결정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조금만 더 깊게 들여다보면 사실은 우리의 선택을 끌어가는 힘이 있죠.
마음을 재촉하는 목소리가 있고 발걸음을 끌고 가는 방향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결정하는 사람이라기보다는 끌려가는 사람처럼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을 선택한다고 하지만 사실은 이 선택을 안 하면 뒤처질 것 같아서, 아 이거 놓치면 불안해서 선택할 때가 있죠.
또 어떤 사람은 사람의 시선이 주인이 되어서 인정받아야 하니까 결정할 때도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겉으로는 내가 선택하고 내가 결정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조금만 더 깊이 들여다보면 우리의 마음과 발걸음을 끌고 가는 힘이 있습니다.
그 주인에 따라 우리의 삶이 달라집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주인을 확인해야 됩니다.
지금 내 삶의 주인은 누구인가?
오늘 우리가 함께 할 마태복음 6장 16절부터 24절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 함께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향한 금식, 신앙인의 재물관
마태복음 6장 16절에서 24절 말씀입니다.
| 16 금식할 때에 너희는 외식하는 자들과 같이 슬픈 기색을 보이지 말라 그들은 금식하는 것을 사람에게 보이려고 얼굴을 흉하게 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17 너는 금식할 때에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으라 18 이는 금식하는 자로 사람에게 보이지 않고 오직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보이게 하려 함이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19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느니라 20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 21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22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23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둠이 얼마나 더하겠느냐 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
먼저 16절부터 보시면 어 금식에 관한 말씀이 나옵니다.
16 금식할 때에 너희는 외식하는 자들과 같이 슬픈 기색을 보이지 말라 그들은 금식하는 것을 사람에게 보이려고 얼굴을 흉하게 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예수님은 금식을 금지하지 않으십니다.
다만 예수님이 지금 문제 삼으시는 것은 금식이 연기가 되는 순간입니다.
예수님 당시에 바리새인들 금식이 거룩에 표지처럼 보이기를 원했고 그래서 얼굴을 일부러 초췌하게 만들곤 했거든요.
그 이유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금식이 하나님 앞에서의 진실이 아니라 사람 앞에서의 인정이 되어 버린 거죠.
사실 이거는 몸의 허기라기 보다는 마음의 허기입니다.
인정받고 싶은 허기, 비교해서 이기고 싶은 허기, 혹시 내 존재가 사라질까?
그래서 사람들은 종종 그 허기를 보여줌으로 채우려고 합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외식이라고 부르십니다.
그래서 17절부터 18절에서 이렇게 처방하세요.
17 너는 금식할 때에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으라
18 이는 금식하는 자로 사람에게 보이지 않고 오직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보이게 하려 함이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그러니까 신앙은 보이는 나를 꾸미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에 나를 하나님 앞에 다시 세우는 일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금식은 꼭 음식만이 아닐 수 있습니다.
인정의 과식을 멈추는 금식, 비교의 중독을 끊는 금식, 말의 과잉을 줄이는 금식
이 모든 금식은 결국 하나님 앞에서 진짜 나의 모습으로 서는 훈련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 금식의 보상을 이렇게 정의하십니다.
은밀한 중에 보시는 내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우리는 종종 인정과 박수를 바라지만, 예수님은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를 바라보라고 하십니다.
드러나지 않는 선함 그리고 조용한 기도 아무도 모르는 인내와 정직함은 결코 사라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그 모든 것을 정확하게 보고 계십니다.
그리고 눈에 보이는 보상만이 아니라 은밀한 자리에서 쌓여가는 믿음을 평안으로 인격으로 결국 삶의 열매로 돌려주십니다.

이제 금식을 통해 사람에게 보이려는 욕망을 말씀하신 주님은 다음 문제로 넘어가십니다. 19절을 한번 보세요.
19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느니라
여기서 보물은 내가 삶의 의미를 저장해 두는 장소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다 이 저장고를 가지고 있죠.
시간과 에너지와 감정과 관심을 어디에 저장하느냐? 이것이 그 사람의 인생을 결정합니다.
이어지는 20절도 보세요.
20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
땅의 보물은 구조적으로 불안정합니다.
그러니까 그 불안 불안정한 곳에 우리의 삶을 저장하면 인생 전체가 불안정해질 수 있죠.
그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하늘에 쌓아두라라는 것 이 말은 현실 높이가 아닙니다. 오히려 현실을 가장 깊이 붙드는 방식입니다.
내가 붙들 수 없는 것에 마음을 걸지 말고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무너지지 않는 가치에 너의 마음을 걸라는 초대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보물을 얘기를 하신 다음에 갑자기 이제는 눈의 이야기로 바꾸어 가십니다. 22절 보세요
22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몸이 밝을 것이요
이 구절은 단순히 시력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여기서 눈은 시선의 방향 더 깊게는 해석의 렌즈입니다.
우리는 같은 사건을 보아도 무엇을 등불로 삼느냐?에 따라 전혀 다르게 보게 되죠.
어떤 사람의 눈은 늘 결핍을 비춥니다. 어떤 사람의 눈은 늘 위협을 비춥니다. 그리고 때로는 어떤 사람들은 비교를 비춥니다.
그러면 삶은 어둡게 되겠죠. 밝은 일이 일어나도 해석이 어둡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눈이 성하다는 것은 단지 착하게 보라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시는 방식으로 보라는 겁니다.
그때 온몸이 즉 삶 전체가 밝아집니다.
오늘 우리는 시선의 전쟁 속에 살아가고 있죠. 세상은 우리의 눈을 계속 잡아당깁니다.
클릭하게 만들고, 비교하게 만들고, 불안하게 만들고, 더 소비하게 만들고, 그리고 더 과시하게 만듭니다.
여기에 시선을 빼앗기면 결국 우리의 마음이 이동합니다. 마음이 이동하면 보물이 이동합니다. 보물이 이동하면 주인이 바뀝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지금 눈 이야기를 주인 이야기로 이어가시는 거예요. 마지막 24절 보세요.
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여기서 재물은 단지 돈이 아니라 내 삶을 통제한다고 믿는 모든 힘입니다.
재물이 내게 주인 것처럼 말하기 시작하면, 신앙은 어느 순간 종교 생활이 되고, 하나님은 삶의 중심이 아니라 장식이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겸하여 섬기지 못한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인간은 양다리를 거치며 살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섬김은 감정이 아니라 시간과 선택으로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주인이 바뀌면 삶이 바뀝니다.
하나님이 주인이 되시면 우리는 불안해서 완전히 자유롭게 되지는 않지만 최소한 불안이 우리의 주인이 되는 것은 막을 수 있습니다.
오늘 하루 사람의 시선이 아니라 하나님의 시선 앞에서
땅의 저장고가 아니라 하늘의 저장고에
그리고 두 주인이 아니라 한 주인 하나님께
우리의 온 마음을 드리며 걸어가는 삶을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 저희를 은밀한 자리로 부르셔서 감사합니다.
사람에게 보이려는 마음을 내려놓게 하시고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게 서게 하옵소서.
우리 마음이 땅에 저장된 불안정한 보물에 묶이지 않게 하시고, 주님 안에서 무너지지 않는 가치에 마음을 두게 하옵소서.
우리의 눈을 정결하게 하셔서 비교와 두려움이 아니라 하늘나라의 등불로 삼아 주옵소서.
그래서 오늘 하루도 하나님만을 주인으로 섬기게 하시고 선택의 자리마다 주님의 뜻을 따르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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