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2.21 | 생명의 삶 | 유현목 목사
할렐루야
대전 온누리교회를 섬기는 유현목 목사입니다.
오늘 우리는 지쳤는데도 멈출 수 없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해야 할 일은 쌓이고, 마음은 메말라 가고, 관계는 고갈되고, 삶은 마치 광야처럼 느껴집니다.
주님은 광야에서 우리를 만나주십니다.
오늘 본문은 이방인의 땅 갈릴리 호숫가에서 벌어진 치유와 4천 명을 먹이신 기적 사건입니다.
사람들은 병들어 왔고 배고파서 쓰러질 지경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고치시며 먹이십니다.
군중들은 놀랍게 여겨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이 시간 본문은 주님과 함께 할 때 누리는 그 풍성한 은혜에 대하여 가르쳐 줍니다.
마태복음 15장 29절에서 39절 말씀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주님과 함께하면 풍성한 은혜를 누립니다
마태복음 15장 29절에서 39절 말씀입니다.
| 29 예수께서 거기서 떠나사 갈릴리 호숫가에 이르러 산에 올라가 거기 앉으시니 30 큰 무리가 다리 저는 사람과 장애인과 맹인과 말 못하는 사람과 기타 여럿을 데리고 와서 예수의 발 앞에 앉히매 고쳐 주시니 31 말 못하는 사람이 말하고 장애인이 온전하게 되고 다리 저는 사람이 걸으며 맹인이 보는 것을 무리가 보고 놀랍게 여겨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니라 32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내가 무리를 불쌍히 여기노라 그들이 나와 함께 있은 지 이미 사흘이매 먹을 것이 없도다 길에서 기진할까 하여 굶겨 보내지 못하겠노라 33 제자들이 이르되 광야에 있어 우리가 어디서 이런 무리가 배부를 만큼 떡을 얻으리이까 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떡이 몇 개나 있느냐 이르되 일곱 개와 작은 생선 두어 마리가 있나이다 하거늘 35 예수께서 무리에게 명하사 땅에 앉게 하시고 36 떡 일곱 개와 그 생선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니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매 37 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일곱 광주리에 차게 거두었으며 38 먹은 자는 여자와 어린이 외에 사천 명이었더라 39 예수께서 무리를 흩어 보내시고 배에 오르사 마가단 지경으로 가시니라 |
29절을 보십시오.
29 예수께서 거기서 떠나사 갈릴리 호숫가에 이르러 산에 올라가 거기 앉으시니
'산에 올라가 거기 앉으시니'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갈릴리 호수 남동쪽 이방 지역으로 오셨습니다.
유대 지도자들의 적대감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주님은 일부러 헤롯의 영역을 피하셨고 동시에 복음의 지경을 넓히십니다.
예수님이 산에 올라가 앉으셨다는 말은 산상수은을 떠올리게 합니다.
이때 사람들이 수많은 병자를 데리고 주님 발 앞에 내려놓습니다.
그들은 세상에 소망이 없는 자들입니다.
주님은 그들을 고쳐 주셨고, 무리가 보고 놀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이는 이사야 35장의 성취를 보여줍니다.
소경의 눈이 밝을 것이며 귀모거리의 귀가 열릴 것이고 이방 땅에서 벌어진 치유 사건은 메시아 시대의 성취라는 것입니다.
더 놀라운 사실은 이방 사람들이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는 대목입니다.
유대 지도자들은 예수님의 능력을 보고도 트집을 잡고 모함했는데,
이방 사람들은 그 능력의 근원이 하나님께 있음을 인정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신앙의 핵심은 이것입니다.
은혜를 경험한 사람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치유의 목적은 유명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유대인의 하나님에 머물지 않고 세상 만민의 하나님이시어 우리의 주님이십니다.

32절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32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내가 무리를 불쌍히 여기노라 그들이 나와 함께 있은 지 이미 사흘이매 먹을 것이 없도다 길에서 기진할까 하여 굶겨 보내지 못하겠노라
주님은 영혼만 돌보시는 분이 아닙니다. 몸의 필요도 잘 아십니다.
우리는 종종 신앙을 영혼의 문제로만 축소하곤 합니다.
예수님은 굶주린 배와 기진한 발걸음까지도 돌보십니다.
주님의 사랑은 언제나 전인격적 입니다.
33절에서 제자들은 말합니다.
33 제자들이 이르되 광야에 있어 우리가 어디서 이런 무리가 배부를 만큼 떡을 얻으리이까
광야에 있어 우리가 어디서 이런 무리가 배부를 만큼 떡을 얻으리까?
이상한 노릇입니다. 얼마 전 5000 명 급식을 경험했던 제자들입니다. 지금 같은 질문을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은혜를 경험했어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현실의 광야 앞에서 어디서를 묻습니다.
믿음은 단번에 완성되지 않습니다. 신앙은 반복되는 광야에서 다시 배우는 기억의 훈련입니다.
34절에서 예수님이 물으십니다.
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떡이 몇 개나 있느냐 이르되 일곱 개와 작은 생선 두어 마리가 있나이다 하거늘
주님은 없는 것부터 묻지 않으십니다. 있는 것을 보게 하십니다. 떡 7개와 작은 생선 두어 마리 보잘것없어 보입니다.
작고 적고 초라합니다.
주님은 그것을 손에 드시고 감사 기도를 드리신 후 떼어 제자의 손으로 제자의 손에서 다시 무리에게로 나누어 주십니다.
주님은 하늘에서 떡을 떨어뜨리지 않으시고, 제자들을 은혜의 통로로 세우십니다.
이를 통해 제자들은 내 손에 쥔 것이 적어도 주님 손에 들리면 충분하다는 진리를 또 배웁니다.
37절을 보십시오.
37 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일곱 광주리에 차게 거두었으며
배부름은 조금 채우는 정도가 아닙니다. 배불리 먹고도 남습니다. 모두가 만족합니다. 주님의 공급은 언제나 풍성합니다.
여기서 광주리는 이방인이 쓰던 큰 광주리입니다.
마테는 이 디테일로 말합니다. 지금 천국 잔치는 이방인에게도 활짝 열렸다.
오늘 본문 마지막은 예수님께서 무리를 흩어 보내시는 장면으로 마칩니다.
주님은 무리를 붙잡아 팬덤으로 만들지 않으십니다. 광야에 남겨 정치적 열광으로 흐르지 않게 하십니다.
은혜는 사람을 예수님 곁에 묶어두는 도구가 아니라 삶의 자리로 돌려보내는 능력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배부르게 하시고 다시 세상으로 파송하십니다.
그곳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여러분의 광야는 어디입니까?
지쳐 쓰러질 것 같은 자리에, 내가 가진 것은 7개의 떡과 두 마리의 작은 생선뿐인 자리, 주님은 그곳에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를 불쌍히 여기노라. 주님은 고치시고, 먹이시고, 살리시고, 우리를 은혜의 통로로 세우십니다.
오늘도 주님의 손에 내 작은 것을 올려드리십시오.
주님이 감사 기도를 드리신 후 떼시고 나누실 때 우리의 광야가 메시아의 잔치로 변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자비로우신 하나님
광야와 같은 인생길에서 우리를 외면하지 않으시고 불쌍히 여기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병든 자를 고치시고, 지친 자를 일으키시며, 굶진 자를 먹이시는 예수님의 자비를 오늘 우리에게도 베풀어 주옵소서.
작은 떡과 작은 생선을 주님 손에 올려 드립니다.
주님께서 감사 기도를 드리신 후 떼어 나눠주실 때
부족함이 풍성함으로 바뀌게 하시고, 우리의 삶이 은혜의 통로가 되게 하옵소서.
우리의 필요가 채워지는 곳에서 멈추지 않고
우리의 삶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이 돌려지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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