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2.18 | 생명의 삶 | 유현목 목사
할렐루야
대전 온누리 교회를 섬기는 유현목 목사입니다.
우리는 종종 은혜의 잔치 뒤에 찾아오는 밤을 경험합니다.
떡이 넘치는 자리에 어느 날 광풍이 불어옵니다. 평온하던 가정의 불치병 소식이 들려옵니다.
안정되었다고 여긴 일상에 균열이 생깁니다.
신앙의 열기는 남아 있는데 마음은 흔들립니다.
그때 질문이 떠오릅니다. 주님, 왜 지금입니까?
오늘 본문은 이 질문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을 평탄한 길로만 이끌지 않으십니다.
바람이 거슬러 바다를 건너게 하십니다. 영혼의 어두운 밤을 통과하게 하신 후 고백에 이르게 하십니다.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 마태복음 14장 22절에서 36절의 말씀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온전한 신뢰가 두려움을 이깁니다
마태복음 14장 22절에서 36절 말씀입니다.
| 22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를 타고 앞서 건너편으로 가게 하시고 23 무리를 보내신 후에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시니라 저물매 거기 혼자 계시더니 24 배가 이미 육지에서 수 리나 떠나서 바람이 거스르므로 물결로 말미암아 고난을 당하더라 25 밤 사경에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시니 26 제자들이 그가 바다 위로 걸어오심을 보고 놀라 유령이라 하며 무서워하여 소리 지르거늘 27 예수께서 즉시 이르시되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28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하니 29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 30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니 31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며 이르시되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고 32 배에 함께 오르매 바람이 그치는지라 33 배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께 절하며 이르되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 하더라 34 그들이 건너가 게네사렛 땅에 이르니 35 그 곳 사람들이 예수이신 줄을 알고 그 근방에 두루 통지하여 모든 병든 자를 예수께 데리고 와서 36 다만 예수의 옷자락에라도 손을 대게 하시기를 간구하니 손을 대는 자는 다 나음을 얻으니라 |
22절을 보십시오.
22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를 타고 앞서 건너편으로 가게 하시고
'재촉한다'라는 말은 강한 표현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을 급히 떠나게 하셨습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오병이어 이후 군중의 열광이 커지고 있었습니다.
열기는 신앙처럼 보였으나 실상은 기대와 욕망이 뒤섞인 상태였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이 그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기를 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자리에서 떠나게 하십니다.
인정받는 위치, 박수가 쏟아지는 순간, 성공의 중심은 신앙을 단단하게 하기보다 자주 흔들리게 만듭니다.
순종은 머무는 선택이 아니라 떠나는 결단으로 드러납니다.
23절은 말합니다.
23 무리를 보내신 후에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시니라 저물매 거기 혼자 계시더니
예수님은 큰 기적을 행하신 후 산으로 가셨습니다.
결과를 붙들지 않고 관계를 부으셨습니다.
사역의 중심을 다시 하나님께 두셨습니다.
기도는 불안을 잠재우는 도구가 아닙니다.
존재의 방향을 다시 정렬하는 자리입니다.
24절을 보십시오.
24 배가 이미 육지에서 수 리나 떠나서 바람이 거스르므로 물결로 말미암아 고난을 당하더라
제자들의 고난은 불순종의 결과가 아니었습니다.
순종의 결과였습니다.
순종은 즉시 안정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익숙한 땅에서 멀어지게 합니다.
바다는 되돌아갈 길이 없는 공간입니다.
기대어 설 바닥이 사라진 자리입니다.
그곳에서 인간은 자기 확신을 내려놓고 존재의 중심을 다시 묻게 됩니다.
제자들은 힘겨운 밤을 지내면서 주님 없이 살 수 없는 자신을 마주하고 있었습니다.

25절을 보십시오.
25 밤 사경에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시니
밤 사경은 가장 지친 시간입니다.
몸도 마음도 한계에 이른 때입니다. 주님은 그때 오십니다.
더 버틸 수 없을 때, 스스로 지탱하던 힘이 무너질 때, 주님은 바다 위를 걸어오십니다.
혼돈 위에 서 계신 분처럼 나타나십니다.
26절을 보면 제자들은 외칩니다.
26 제자들이 그가 바다 위로 걸어오심을 보고 놀라 유령이라 하며 무서워하여 소리 지르거늘
유령이다 두려움은 현실을 왜곡합니다. 익숙한 목소리도 낯설게 들립니다.
구원도 위협처럼 인식됩니다.
그런 제자들에게 27절이 복음입니다.
27 예수께서 즉시 이르시되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하지 마라
'나니'라고 하는 말은 애고 에이 하나님의 자기 계시 곧 여호와의 이름을 떠올리게 합니다.
상황 설명보다 존재 선언이 먼저 주어집니다.
두려움은 환경이 정리될 때 사라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현존을 인식할 때 무너집니다.
베드로가 말합니다.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 이 말은 시험이 아니라 응답입니다.
그는 다시 주님께 향하려 합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오라' 믿음은 늘 안전한 경계를 넘는 행위로 나타납니다.
배 밖으로 나오는 선택입니다.
30절에서 베드로는 바람을 봅니다.
30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니
문제는 바람이 아닙니다. 시선의 흐트러짐입니다.
믿음은 두 중심을 동시에 붙들지 못합니다.
주님에게서 자기 판단으로 이동한 순간 그는 가라앉습니다.
그때 외칩니다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이 기도는 실패의 선언이 아닙니다.
자기 통제의 포기를 고백하는 절규입니다. 은혜는 이 고백 위에서 시작됩니다.
31절에서 예수님은 손을 내미십니다.
31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며 이르시되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고
말씀만으로 충분했을 텐데도 주님은 손으로 붙으십니다.
신앙은 결심으로 지속되지 않습니다.
붙으시는 손이 있어야 우리는 살 수 있습니다.
32절에서 주님이 배에 오르십니다.
32 배에 함께 오르매 바람이 그치는지라
바람이 그칩니다.
해결은 고통의 조건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누구와 동행하느냐입니다.
33절에서 제자들이 고백합니다.
33 배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께 절하며 이르되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 하더라
이 고백은 상황이 좋아져서 나온 말이 아닙니다.
주님의 정체를 다시 인식한 자리에서 나온 고백입니다.
고난의 목적은 생존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예배입니다.
성도 여러분
바람이 불 때 기억하십시오.
주님은 자연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분이십니다.
산에서 기도하시는 주님, 바다 위로 걸어오시는 주님, 손을 내미시는 주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그날의 우리의 입술은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
주님의 은혜가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은혜로우신 주님
풍성한 들판에서도 깊은 밤의 바다에서도 우리를 놓지 않으심을 찬양합니다.
두려움이 마음을 채울 때 주님의 임재를 먼저 인식하게 하옵소서.
주님의 손에 붙들려야 할 순간에 스스로 버티려 하지 않게 하시고,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고백하게 하옵소서.
우리 삶의 배에 주님이 함께 오르셔서
혼돈이 가라앉고 예배의 고백이 삶으로 이어지게 하옵소서.
오늘도 믿음으로 고백하길 원합니다.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 소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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