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성령 안에서 이루는 온전한 사랑(요한일서 4:13~21)(20260107)

반응형

2026.01.07 | 생명의 삶 | 도육환목사

 

 

 

 

할렐루야

온누리교회 도육한 목사입니다.

새해를 맞은 지 한 주간이 지났습니다.

새해에는 빠지지 않고 QT 하겠다는 결심 잘 이어가고 계시지요?

우리의 매일매일의 짧은 묵상이 영성의 강을 이루고 은혜의 바다로 우리를 이끌고 갈 것입니다.

포기하지 말고 계속해서 묵상의 걸음을 이어갈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저께 본문이 8부 능선 깔딱 곡이었다면, 오늘 본문은 드디어 요한 일서의 꼭대기에 선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오늘 말씀 묵상을 통해 사랑의 본질이 되신 하나님을 깊이 만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본문은 요한일서 4장 13절에서 21절 말씀입니다.

 

 

성령 안에서 이루는 온전한 사랑
성령 안에서 이루는 온전한 사랑

 

 

성령 안에서 이루는 온전한 사랑

 

 

요한일서 4장 13절에서 21절 말씀입니다.

더보기
13 그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므로 우리가 그 안에 거하고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아느니라
14 아버지가 아들을 세상의 구주로 보내신 것을 우리가 보았고 또 증언하노니
15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하나님이 그의 안에 거하시고 그도 하나님 안에 거하느니라
16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니라
17 이로써 사랑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루어진 것은 우리로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 함이니 주께서 그러하심과 같이 우리도 이 세상에서 그러하니라
18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19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20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21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

 

 

 

어제 묵상했던 12절을 다시 돌아보지요.

하나님 사랑과 형제 사랑은 하나입니다(요한일서 4:1~12)(20260106)

 

지금까지 아무도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지만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의 사랑을 이룰 수 있다고 말씀하셨죠

그렇다면 그 사랑이 우리 안에 이루어진 것을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요?

13절 오늘 본문이 답해주고 있습니다. 같이 읽어봅니다.

13 그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므로 우리가 그 안에 거하고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아느니라

 

아멘.

 

성령님은 보혜사 곧 우리를 도우시는 형이고 또 우리가 사랑할 수 있는 힘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 성령님이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 안에 있고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계시는 이 신비한 연합을 가능하게 하고 또 알게 해 주십니다.

뿐만 아니라 진리의 성령님은 우리를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께로 이끌어 가 주십니다.

사도 요한이 하나님께서 그의 독생자를 온 세상에 구주로 보내셨다는 것을 어떻게 알게 되었습니까?

진리의 영이 보게 하셨고 깨닫게 하셨고 또 증언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고 영접하면 하나님이 그 사람 안에 거하시고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아들을 믿는 사람도 하나님 안에 거하며 하나님의 복과 은혜를 누리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어떻게 우리에게 나타났는지 그 쟁점은 우리를 위해 독생자를 보내신 것입니다. 16절 말씀을 같이 읽어보죠.

16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니라

 

아멘.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얼마나 사랑하셨는지 아십니까?

자신의 아들을 내어 주시기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사랑받을 아무런 자격도 없던 그때 하나님의 사랑이 시작되었다는 겁니다.

구원받기에 합당하지 않은 존재라는 걸 다 아시면서도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셨고 아들을 대속 재물로 내어주셨습니다.

그렇게 불러주신 우리를 너는 내 것이라 하셨고 그분의 친백성 삼으셨습니다.

영원한 나라를 위업으로 주시겠다고 약속해 주신 것입니다.

사랑받을 자격을 묻지 않았습니다. 조건 없는 일방적 사랑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요환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다고 고백합니다.

알고 믿었다 여기서 안다는 말도 믿었다는 말도 체험을 통한 깨달음을 의미합니다.

지식으로 배워 알게 된 것도 아니고 막연한 감성적 사랑으로 배운 것도 아닙니다.

십자가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한 사람들이 드릴 수 있는 고백이죠.

 

통회( 痛悔 )하고 자복( 自服 )하며 자신의 죄성에 대해서 탄식하고 자기 의에 절망해 본 사람들만 이 절대적 하나님의 사랑을 찬양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감격에 찬 마음으로 다시 선언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은 하나님의 속성 중 하나가 아니라 그분 자신이 사랑의 본질이 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교류와 지식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본질 되신 하나님의 속성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지난 2000년 교회 역사 속에 오늘날처럼 성경에 관한 많은 지식과 정보를 가졌던 때가 있었겠습니까?

체계적인 성경 연구나 프로그램이 있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하나님을 사랑했고, 그 본질을 체험했기에 생명을 걸고 복음을 전하고 순교의 자리에까지 기꺼이 걸어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셨습니까? 하나님을 사랑하십니까?

그 사랑이 있는 분 안에는 하나님이 거하십니다.

그 사랑 안에 거하는 분은 하나님 안에 거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고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할 때 온전히 풍성한 생명과 능력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사랑이 저와 여러분에게 운명처럼 받아들여지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생명 그의 성품을 소유하고 더욱더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성도가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내 삶에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방해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내 삶에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방해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반응형
728x90

 

 

17절은 이로서 라는 말씀으로부터 시작됩니다.

17 이로써 사랑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루어진 것은 우리로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 함이니 주께서 그러하심과 같이 우리도 이 세상에서 그러하니라

 

무엇을 가리키는 것일까요? 16절 말씀과 같이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믿어 하나님의 사랑 안에 머무는 삶 그걸 의미하죠.

16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니라

 

이렇게 우리 안에 하나님의 사랑이 온전히 이루어지면 우리는 심판 날에도 아무런 두려움 없이 담대함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됩니다.

그 담대함의 근거는 예수님의 구속이죠.

예수님께서 육체로 계실 때 아버지의 사랑 안에 거하셨고 그 안에서 담대하게 십자가까지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을 하고 하나님 사랑 안에 거하면 무슨 상황, 어떤 일을 만날지라도 담대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 담대함과 확신은 우리가 주님의 심판대 앞에 서는 날까지 우리를 붙들어주게 될 것입니다.

 

18절 말씀을 읽어 보겠습니다.

18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하나님의 사랑 안에 그 하면 두려움이 없다 하십니다.

우리를 위해 아들까지 아끼지 않으신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한다면 두려울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그 사랑을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에 두려워하고 염려 걱정하고 그 두려움이 결국은 형돌로 이어지는 것 아니겠습니까?

여러분은 주께서 강림하실 그날이 기다려집니까? 아니면 그날이 두려워집니까?

예수님의 대속의 은혜를 믿은 사람들에게는 그날이 축제의 날이요. 상급을 받는 날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사랑을 믿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형벌과 두려움의 날이 될 것입니다.

 

온전한 사랑을 믿는 믿음이 두려움을 내쫓습니다.

엄마의 사랑을 확신하는 아이는 혹 잘못하고 실수해도 도망가지 않고 엄마를 찾습니다.

우리 역시 실수하고 넘어지더라도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을 믿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면 됩니다.

저와 여러분 이 심판 날에도 담대할 수 있는 것은 우리에게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우리에게 내어주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면 정죄받거나 버림받을 것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됩니다.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습니다.

하나님의 온전한 사랑을 경험한 사람은 두려움이 없을 뿐만 아니라 그 사랑을 이웃에게 흘려보내게 됩니다.

사랑은 우리의 힘으로는 할 수 없습니다.

마치 달이 태양빛을 받아서 빛을 내는 것처럼 우리가 먼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기에 사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20절 말씀을 읽어볼까요?

20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하나님 사랑과 형제 사랑은 분리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그 형제도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두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사랑에 큰 빚을 진 자이기 때문이오

내가 만나는 그 형제가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귀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나를 위해, 그리스도를 위해 내어 주셨듯이 그 형제를 위해서도 독생자를 내어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눈앞에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않은 채 보지 못하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그 형상대로 지원받은 우리도 사랑이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사랑의 계명이 저와 여러분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성경을 한 번도 읽어보지 않은 세상 사람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할 수 있을까요?

우리의 사랑이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 해주는 것입니다.

 

프랑스 떼제 공동체에서 부르는 짧은 찬양을 들어보신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사랑의 나눔 ~ 있는 곳에 하나님께서 계시도다 ~ 아멘

 

사랑의 나눔이 있는 곳에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우리가 사랑으로 연합하면 하나님의 성품이 드러납니다.

사랑의 계명은 결코 쉽지 않지만 그렇게 어려운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마음, 그분의 충분한 사랑을 경험하고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면 자연스럽게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 안에 사랑이 풍성하기를 기도해 봅니다.

그 사랑으로 살기를 원합니다.

 

 

온전한 사랑에 이르도록 내가 힘써 변화할 모습은 무엇인가요?
온전한 사랑에 이르도록 내가 힘써 변화할 모습은 무엇인가요?

 

 

존귀하신 주님,
우리를 먼저 사랑하셔서 독생자의 사랑을 누리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는 사랑의 사람이 되게 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성령 안에서 이루는 온전한 사랑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