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6.27 | 생명의 삶 | 문영재 목사
안녕하세요. 홍콩 온누리교회를 섬기는 문영재 목사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며 질문합니다. 왜 악한 사람은 잘되고, 정직한 사람은 어려울까요?
불의가 강해 보이고, 악이 오래가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반복되는 문제와 끊어지지 않는 죄악, 그리고 환경 속에서 밀려오는 압박감과 두려움이 존재합니다.
'이건 절대 바뀌지 않을 거야'라는 생각이 나의 마음을 짓누를 때가 있습니다.
이때 하나님께 묻곤 하죠.
하나님, 왜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납니까?
하나님, 어디에 계십니까?
오늘 나훔서의 말씀을 보면, 이 질문에 대해 하나님께서 분명하게 말씀해 주십니다.
겉으로 보기에 니느웨는 여전히 강해 보이고, 또 하나님의 백성은 여전히 눌려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분명히 말씀하고 계십니다. 지금 내가 너와 함께하고 있다.
이 시간,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살리시며 회복하실 것을 믿음으로 우리는 나아갑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생명의 말씀, 나훔 2장 1절에서 7절 말씀입니다.

공의의 심판 속 영광의 회복
나훔 2:1~7 말씀입니다.
| 1 파괴하는 자가 너를 치러 올라왔나니 너는 산성을 지키며 길을 파수하며 네 허리를 견고히 묶고 네 힘을 크게 굳게 할지어다 2 여호와께서 야곱의 영광을 회복하시되 이스라엘의 영광 같게 하시나니 이는 약탈자들이 약탈하였고 또 그들의 포도나무 가지를 없이 하였음이라 3 그의 용사들의 방패는 붉고 그의 무사들의 옷도 붉으며 그 항오를 벌이는 날에 병거의 쇠가 번쩍이고 노송나무 창이 요동하는도다 4 그 병거는 미친 듯이 거리를 달리며 대로에서 이리저리 빨리 달리니 그 모양이 횃불 같고 빠르기가 번개 같도다 5 그가 그의 존귀한 자들을 생각해 내니 그들이 엎드러질 듯이 달려서 급히 성에 이르러 막을 것을 준비하도다 6 강들의 수문이 열리고 왕궁이 소멸되며 7 정한 대로 왕후가 벌거벗은 몸으로 끌려가니 그 모든 시녀들이 가슴을 치며 비둘기 같이 슬피 우는도다 |
앗수르는 당대 최강의 제국이었습니다. 그들은 교만하게 하나님을 대적하며 악을 행했습니다.
'더 이상 두려워할 대상이 없다.' 그들은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앗수르를 향해 선언하십니다. 파괴하는 자를 보내시겠다고. 본문 1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1 파괴하는 자가 너를 치러 올라왔나니
여기서 '파괴하는 자'는 단순히 부수는 수준이 아닙니다. 무너뜨리고 흩어 버리고, 결국 하나의 나라와 공동체를 완전히 해체시키는 존재를 가리킵니다.
그동안 앗수르는 북이스라엘을 흩어 버린 나라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들 자신이, 흩어지게 하는 자의 공격을 받습니다.
계속해서 말씀하십니다.
너는 산성을 지키며 길을 파수하며 네 허리를 견고히 묶고 네 힘을 크게 굳게 할지어다
겉으로 보면 니느웨에게 철저히 준비하라 말씀하신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오히려 그들의 무력함을 드러내는 선언입니다.
아무리 대비해도, 아무리 힘을 모아도 하나님의 심판을 막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분명한 진리를 봅니다.
세상의 권세가 아무리 강해도 하나님 앞에 결코 절대적일 수 없습니다.
우리를 두렵게 하는 문제들, 우리를 압도하는 상황들, 무너질 것 같지 않은 현실조차 하나님이 일하시면 단번에 무너집니다.
2절은 심판의 이유를 분명하게 밝혀 주십니다.
2 여호와께서 야곱의 영광을 회복하시되 이스라엘의 영광 같게 하시나니 이는 약탈자들이 약탈하였고 또 그들의 포도나무 가지를 없이 하였음이라
'포도나무 가지를 없이 하였음이라.' 이 한 구절이 오늘 본문의 핵심입니다.
하나님께서 앗수르를 심판하시는 그 이유는 단순히 그들의 악 때문만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의 영광을 회복하시기 위함입니다.
여기서 영광은 단순한 번영이나 형통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언약 백성으로서의 정체성, 그리고 예배의 회복을 우리 가운데 말씀하여 주십니다.
그동안 유다는 앗수르의 악행 속에 짓눌려 있었습니다.
마치 포도나무가 짓밟히듯 삶이 무너지고 영광을 빼앗긴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말씀하시죠. '내가 다시 회복시키겠다.'
이것이 하나님의 일하심입니다. 하나님은 단지 악을 벌하시는 분이 아니라, 그 심판을 통해 자기 백성을 회복시키십니다.
우리는 두 가지를 붙들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악을 심판하신다. 그리고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회복하신다.
혹시 지금 나의 삶 속에 니느웨처럼 강하게 느껴지는 문제가 있습니까?
이길 수 없고 짓누르는 환경 속에, 끊어지지 않는 삶의 무게가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일한다. 내가 무너뜨린다. 내가 회복한다.'
여러분, 눈에 보이는 현실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붙드십시오.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회복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일하고 계심을 믿으며 담대히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이제 앗수르를 공격하는 바벨론과 메대 연합군의 모습을 봅니다.
그들은 붉은 방패와 붉은 옷을 입고 피의 전쟁을 일으킵니다.
병거는 햇빛에 반사되어 번쩍이고, 빠르고도 두렵게 질주했습니다.
3절은 말씀하십니다.
3 그의 용사들의 방패는 붉고 그의 무사들의 옷도 붉으며
이 붉은 방패와 옷은 피와 심판을 상징합니다.
이 장면은 단순한 전쟁의 묘사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이미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신호였습니다.
4절은 이렇게 말씀하시죠.
4 그 병거는 미친 듯이 거리를 달리며 대로에서 이리저리 빨리 달리니 그 모양이 횃불 같고 빠르기가 번개 같도다
전쟁의 혼란과 급박함을 봅니다.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을 드러냈습니다.
아무리 강한 니느웨도 이제는 무너질 수밖에 없는 자리로 들어갑니다.
5절을 보면 니느웨는 급히 지도자들을 모아 방어하려 합니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무너지고 맙니다.
5 그가 그의 존귀한 자들을 생각해 내니 그들이 엎드러질 듯이 달려서 급히 성에 이르러 막을 것을 준비하도다
그토록 강하고 견고했던 나라가 가장 중요한 순간에 힘을 잃어버리고 맙니다.
왜 그런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이미 심판을 정하셨기 때문입니다.
6절은 이렇게 선언하십니다.
6 강들의 수문이 열리고 왕궁이 소멸되며
니느웨는 티그리스 강을 끼고 있는 견고한 성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이 의지하던 자연 환경까지 사용하셔서 그 성을 무너뜨리십니다.
그들이 안전하다고 믿었던 것이 오히려 무너짐의 통로가 된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7절은 그 마지막 장면을 보여 주십니다.
7 정한 대로 왕후가 벌거벗은 몸으로 끌려가니 그 모든 시녀들이 가슴을 치며 비둘기 같이 슬피 우는도다
왕궁은 무너지고, 왕후는 벌거벗겨져 끌려가는 수치와 치욕을 당하게 됩니다.
더 이상 영광은 없고, 오직 패배와 수치만 남았습니다.
이 모든 장면이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 줍니까? 하나님의 심판은 이미 정해진 일이라는 것입니다.
세상의 어떤 권세도, 견고한 방어도, 치밀한 계획도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 앞에서는 결코 설 수 없습니다.
악은 영원할 수 없음을 깨닫습니다. 하나님께서 때가 되면 반드시 무너뜨리십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굉장히 중요한 사실을 봅니다.
우리 역시 죄 가운데 있었고,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던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그 심판이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이루어졌습니다.
니느웨는 그 죄로 인해 무너졌지만, 우리는 동일한 죄 가운데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가 받아야 할 그 심판을 대신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공의는 이루어졌습니다. 죄의 심판이 우리에게 쏟아진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 쏟아졌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십자가는 심판이 끝난 자리이면서, 동시에 구원이 시작된 자리입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심판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그 심판은 예수님 안에서 완성되었습니다.
2000년 전 갈보리 언덕에 세워진 그 십자가는 나를 살리시는 놀라운 은혜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나에게 새 생명을 허락하여 주셨습니다.
날마다 구원의 감격과 그 은혜가 우리 안에 넘치게 하셨습니다.
세상은 '끝났다'라고 말했던 그 십자가를 통해, 예수님은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셨고, 우리에게 참된 소망을 허락하여 주십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무너질 자가 아니라 구원받은 자가 되었습니다.
두려움 가운데 사는 자가 아니라 자유 가운데 살아가는 자가 되게 하십니다.
우리는 선택해야 하겠습니다. 세상의 두려움에 묶여 살 것인가, 십자가의 은혜를 붙들고 이 땅을 살 것인가?
사랑하는 여러분, 이미 이루어진 승리를 붙드시기를 바랍니다.
십자가로 완성된 구원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날마다 확신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무너뜨리실 것은 반드시 무너뜨리시고, 회복하실 것은 반드시 회복시키십니다.
십자가의 은혜를 붙들고 흔들림 없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악인을 향한 심판 가운데에서도 언약 백성을 회복하시고, 잃어버린 영광을 다시 찾게 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에 감사드립니다.
우리의 모습이 초라하고 비참해 보여도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붙들고 끝까지 인내하게 하옵소서.
눈에 보이는 현실이 아니라 말씀을 따라 믿음으로 살아가게 하시고, 흔들리지 않는 소망을 품게 하옵소서.
하나님 편에 서서 하나님과 함께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을 살아가게 하옵소서.
다시 오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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