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6.24 | 생명의 삶 | 문영재 목사
안녕하세요. 홍콩 온누리교회를 섬기는 문영재 목사입니다.
오늘 우리는 요나서의 마지막 장 앞에서 피할 수 없는 질문과 마주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마음과 나의 마음은 과연 얼마나 닮아 있는가?
요나는 니느웨의 회개를 통해 역사적인 부흥을 눈으로 직접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 부흥의 현장에서 기뻐하기는커녕 오히려 분노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졌는데도 기뻐하지 못하는 신앙, 그 안에는 무엇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일까요?
그 이유를 들여다보는 가운데, 내 안에 숨겨져 있던 신앙의 편협함과 마주하게 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요나의 편협함과 하나님의 긍휼을 살펴보며, 지금 우리의 신앙이 어디에 서 있는지를 정확하게 돌아보고자 합니다.
말씀을 깨달을 때 마음까지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생명의 말씀, 요나 4장 1절에서 11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요나의 편협함과 하나님의 긍휼
요나 4:1~11 말씀입니다.
| 1 요나가 매우 싫어하고 성내며 2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내가 고국에 있을 때에 이러하겠다고 말씀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므로 내가 빨리 다시스로 도망하였사오니 주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내가 알았음이니이다 3 여호와여 원하건대 이제 내 생명을 거두어 가소서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음이니이다 하니 4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성내는 것이 옳으냐 하시니라 5 요나가 성읍에서 나가서 그 성읍 동쪽에 앉되 거기서 자기를 위하여 초막을 짓고 그 그늘 아래에 앉아서 성읍이 어떻게 되는가를 보려 하니라 6 하나님 여호와께서 박넝쿨을 예비하사 요나를 가리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머리를 위하여 그늘이 지게 하며 그의 괴로움을 면하게 하려 하심이었더라 요나가 박넝쿨로 말미암아 크게 기뻐하였더니 7 하나님이 벌레를 예비하사 이튿날 새벽에 그 박넝쿨을 갉아먹게 하시매 시드니라 8 해가 뜰 때에 하나님이 뜨거운 동풍을 예비하셨고 해는 요나의 머리에 쪼이매 요나가 혼미하여 스스로 죽기를 구하여 이르되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으니이다 하니라 9 하나님이 요나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 박넝쿨로 말미암아 성내는 것이 어찌 옳으냐 하시니 그가 대답하되 내가 성내어 죽기까지 할지라도 옳으니이다 하니라 10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재배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말라 버린 이 박넝쿨을 네가 아꼈거든 11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 |
요나는 이방 민족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알지 못합니다.
본문 1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1 요나가 매우 싫어하고 성내며
여기서 '매우 싫어하고'라는 표현은, 니느웨 백성의 회개에 대한 요나의 반응이 기쁨이 아니라 미움과 분노였음을 보여 줍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성품을 모르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너무 잘 알고 있었습니다. 2절에서 요나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주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이 고백은 출애굽기 34장에 나타난 하나님의 성품을 그대로 인용한 것입니다.
요나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무엇이 문제였습니까? 그 하나님의 은혜가 내가 원하지 않는 사람에게 흘러갈 때, 요나는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입니다.
니느웨는 이스라엘의 원수였습니다. 폭력적이고 잔인한 민족이었습니다.
요나는 이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니느웨는 심판받아 마땅하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니느웨를 용서하신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서 우리 자신에게 물어야 할 질문이 있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은혜를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적용하는가?, 아니면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에게만 제한하고 있는가?
우리 역시 요나와 같은 모습일 때가 있습니다. 나를 힘들게 한 사람은 용서받지 않기를 바랍니다.
악한 사람은 반드시 벌을 받아야 한다고만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내 기준과 다르게 일하실 때 마음이 불편해집니다.
이것이 바로 신앙의 편협함입니다.
요나는 결국 이렇게까지 말합니다.
'여호와여, 차라리 나를 죽여 주십시오.'
내가 옳다고 여기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살아갈 이유조차 없다는 것입니다.
요나는 극단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신앙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 줍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이렇게 물으십니다.
'네가 성내는 것이 옳으냐?'
이 질문은 단순한 책망이 아니라, 요나로 하여금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도록 이끌어 주시는 하나님의 초청의 말씀입니다.
지금 요나의 마음은 망가져 있습니다. 선지자로서 말씀을 전했고 니느웨는 회개했지만, 요나는 그들이 변화되는 모습을 기뻐하지 못했습니다.
요나의 분노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요? 요나는 끝까지 자신의 생각을 붙들고 있습니다.
말씀을 묵상하며 나를 돌아봅니다. 내가 내려놓지 못하는 편협함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뜻보다 나의 감정과 기준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면,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경험한 사람일지라도 여전히 마음이 좁아질 수 있음을 봅니다.
신앙의 연륜이 쌓일수록 우리는 더욱 조심해야 하겠습니다.
'나는 옳다'는 확신을 가질 때, 어느 순간 나의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을 가릴 수 있습니다.
우리 자신을 돌아보며 점검하는 시간이 필요하겠습니다.
하나님, 나의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보다 앞서 있지는 않습니까?
내 판단이 하나님의 긍휼을 가로막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넓히셔서, 하나님의 시선과 마음으로 나아가기를 소망합니다.
우리 각자가 지금 이 자리에 있을 수 있음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임을 기억하며, 하나님의 뜻을 따라 온전히 나아가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요나는 니느웨가 어떻게 되는지 보려고 성읍 동쪽에 나가 앉았습니다.
혹시라도 하나님께서 니느웨를 다시 심판하시기를 기대한 것입니다.
요나는 여전히 하나님의 구원보다 심판을 더 바라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뜻과는 다른 방향을 품는 완고함을 봅니다.
하나님은 이제 요나를 다루기 시작하십니다. 요나의 마음을 어루만지시며 그의 마음을 만져 주십니다.
그 방법이 매우 인상적인데요. 하나님은 세 가지 피조물을 통해 요나의 편협함을 깨우치십니다.
먼저 하나님은 박넝쿨을 준비하십니다. 6절을 봅니다.
6 하나님 여호와께서 박넝쿨을 예비하사 요나를 가리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머리를 위하여 그늘이 지게 하며 그의 괴로움을 면하게 하려 하심이었더라 요나가 박넝쿨로 말미암아 크게 기뻐하였더니
요나가 박넝쿨로 말미암아 크게 기뻐하였다고 말씀합니다.
성경에서 요나가 처음으로 기뻐하는 장면입니다.
요나가 무엇 때문에 기뻐합니까? 니느웨의 구원이 아닙니다.
자기 머리를 가려 주는 이 작은 그늘 때문에 기뻐합니다.
이 장면은 우리에게 질문합니다. 나는 무엇 때문에 기뻐하는가?
하나님의 구원 때문에 기뻐하는가, 아니면 나의 편안함 때문에 기뻐하는가?
하나님은 그 박넝쿨을 벌레를 통해 갉아먹게 하시고, 뜨거운 동풍을 보내십니다.
요나는 다시 괴로워합니다. 그리고 죽기를 구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물으십니다.
9 하나님이 요나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 박넝쿨로 말미암아 성내는 것이 어찌 옳으냐 하시니 그가 대답하되 내가 성내어 죽기까지 할지라도 옳으니이다 하니라
말씀을 읽으며 요나의 상태가 분명하게 보입니다. 자신의 감정과 판단이 절대 기준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결정적인 말씀을 하십니다.
10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재배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말라 버린 이 박넝쿨을 네가 아꼈거든
11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
여기서 하나님의 마음이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하나님은 한 영혼이라도 구원받기를 원하십니다. 악한 자도 포기하지 않으시고, 회개하는 자는 받아 주십니다.
요나는 의로운 분노를 주장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긍휼의 사랑을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옳고 그름을 가리는 데 있지 않습니다. 살리시고 회복시키시는 데 있습니다.
이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 묻습니다.
나는 요나처럼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가? 나는 하나님의 은혜를 내 기준으로 제한하고 있지 않은가?
우리는 선택해야 하겠습니다. 내 기준을 붙들 것인가, 하나님의 긍휼을 따라 살아갈 것인가?
여러분, 십자가를 바라보십시오. 하나님은 가장 악한 인간까지도 구원하시기 위해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가운데 보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용서하기 어려운 사람을 위해 기도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긍휼에 참여하게 하십니다.
나의 편안함보다 하나님의 뜻을 기뻐하게 하십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하나님의 마음을 구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 제 마음을 넓혀 주십시오.
하나님은 지금도 니느웨를 찾고 계십니다. 그리고 동시에 우리의 마음을 변화시키기 원하십니다.
요나서는 질문으로 끝납니다.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왜 질문으로 끝날까요?
그 질문의 답을 이제 각자가 하나님께 드려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예수님을 내어 주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원수 되었을 때에도 예수님은 우리를 향해 긍휼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우리는 누군가를 향해 '저 사람은 안 됩니다'라고 말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우리가 바로 은혜로 살아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에스겔 36장 26절은 우리에게 말씀하여 주십니다.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하나님께서 새 영을 주실 때 우리에게 부드러운 마음을 주십니다.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임하실 때, 우리는 이 말씀대로 살아가게 됩니다.
말씀이 깨달아지도록 지혜를 주시는 성령님을 통해, 예수님을 온전히 바라보며 예수님과 함께하시기를 소망합니다.
여러분, 끝까지 십자가를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십자가 앞에서 우리의 좁아진 마음을 내려놓으십시오.
주님이 우리를 품으신 것처럼, 이제 우리도 하나님의 마음으로 영혼을 품는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요나의 완고함까지 사랑으로 품으시는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불순종했던 요나를 십이만 명을 회복시키는 선지자로 사용하셨습니다.
나의 편협함을 무너뜨리고 십자가의 긍휼로 다시 살아가는, 말씀으로 승리하며 나아가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제가 자기중심적인 편협함으로 하나님의 뜻에 맞서고 있지는 않은지 두렵습니다.
지치지 않는 긍휼로 저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시고 구원하신 주님의 은혜를 기억하게 하시고, 그 은혜 앞에 늘 겸손하게 하옵소서.
하나님, 이제는 제 마음이 아니라 주님의 마음을 품기 원합니다.
한 영혼을 향해 뜨겁게 사랑하게 하시고, 그 영혼의 구원을 진심으로 기뻐하며 간절히 품는 마음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다시 오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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