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6.25 | 생명의 삶 | 문영재 목사
안녕하세요.
홍콩 온누리교회를 섬기는 문영재 목사입니다.
악한 사람이 잘 되는 것처럼 보이고, 이러한 부조리를 바라볼 때 우리는 이런 생각을 하곤 합니다.
하나님은 왜 저들을 내버려 두시는 것일까? 하나님은 정말 살아 계십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는 원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심판은 생각하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붙들고 싶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공의는 외면하고자 합니다.
그런 우리에게 나훔서는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지만, 반드시 죄를 심판하신다.
한때 회개했던 니느웨가 다시 죄 가운데 돌아갔을 때, 하나님은 더 이상 침묵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진노의 날이 임할 때, 나는 어디에 서 있을 것인가?
나는 여전히 내 삶을 붙들고 있을 것인가? 하나님을 나의 피난처로 삼고 있을 것인가?
오늘 말씀을 통해 진노하시는 하나님과 피난처 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우리 삶의 자리를 점검하는 시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생명의 말씀, 나훔 1장 1절에서 8절 말씀입니다.

진노의 날에 피난처 되신 하나님
나훔 1:1~8 말씀입니다.
| 1 니느웨에 대한 경고 곧 엘고스 사람 나훔의 묵시의 글이라 2 여호와는 질투하시며 보복하시는 하나님이시니라 여호와는 보복하시며 진노하시되 자기를 거스르는 자에게 보복하시며 자기를 대적하는 자에게 진노를 품으시며 3 여호와는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권능이 크시며 벌 받을 자를 결코 내버려두지 아니하시느니라 여호와의 길은 회오리바람과 광풍에 있고 구름은 그의 발의 티끌이로다 4 그가 바다를 꾸짖어 그것을 말리시며 모든 강을 말리시나니 바산과 갈멜이 쇠하며 레바논의 꽃이 시드는도다 5 그로 말미암아 산들이 진동하며 작은 산들이 녹고 그 앞에서는 땅 곧 세계와 그 가운데에 있는 모든 것들이 솟아오르는도다 6 누가 능히 그의 분노 앞에 서며 누가 능히 그의 진노를 감당하랴 그의 진노가 불처럼 쏟아지니 그로 말미암아 바위들이 깨지는도다 7 여호와는 선하시며 환난 날에 산성이시라 그는 자기에게 피하는 자들을 아시느니라 8 그가 범람하는 물로 그 곳을 진멸하시고 자기 대적들을 흑암으로 쫓아내시리라 |
나훔서는 니느웨의 멸망에 대한 말씀입니다. 니느웨는 요나의 경고를 듣고 한때 회개하며 하나님의 심판을 면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약 100년이 지난 이후, 그들은 다시 죄악 가운데 돌아갔고 하나님의 경고를 다시 듣게 됩니다.
요나서와는 달리 나훔서는 회개의 기회보다 그 임박한 심판을 강조합니다.
나훔이라는 이름은 '위로'라는 뜻을 가지고 있지만, 이 위로는 악이 심판받는 것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에게 주어지는 위로입니다.
본문 1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1 니느웨에 대한 경고 곧 엘고스 사람 나훔의 묵시의 글이라
이 말씀은 단순한 예언이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로운 판결 선언입니다.
2절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2 여호와는 질투하시며 보복하시는 하나님이시니라 여호와는 보복하시며 진노하시되 자기를 거스르는 자에게 보복하시며 자기를 대적하는 자에게 진노를 품으시며
여기서 '질투'는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언약을 지키시는 그 열심을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죄와 타협하지 않으십니다. 또한 '보복하신다'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죄를 반드시 물으신다는 뜻입니다.
이어지는 3절은 하나님의 성품의 균형을 보여주십니다.
3 여호와는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권능이 크시며 벌 받을 자를 결코 내버려두지 아니하시느니라 여호와의 길은 회오리바람과 광풍에 있고 구름은 그의 발의 티끌이로다
하나님은 오래 참으시지만 결코 죄를 그냥 넘기지 않으십니다.
나훔 선지자는 질투하시며 보복하시는 하나님과, 노하기를 더디 하시는 하나님을 함께 선포합니다.
이어서 4절에서 6절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권능을 보여주십니다.
바다가 마르고 강이 줄어들며, 산이 흔들리고 땅이 무너집니다.
이 표현은 하나님이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절대 주권자이심을 드러냅니다.
그리고 6절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6 누가 능히 그의 분노 앞에 서며 누가 능히 그의 진노를 감당하랴 그의 진노가 불처럼 쏟아지니 그로 말미암아 바위들이 깨지는도다
이 질문 앞에서 우리는 분명히 인정해야 하겠습니다. 그 누구도 하나님의 진노 앞에 설 수 없습니다.
이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을 생각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이 지금 당장 심판하지 않으신다고 해서 괜찮은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심판이 없는 것이 아니라 유예된 은혜인 것입니다.
혹시 우리가 반복적으로 짓는 죄, 알면서도 내려놓지 못하는 습관, 하나님 앞에서 합리화하고 있는 영역이 있다면, 오늘 이 말씀 앞에서 정직하게 돌아봐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세상의 불의를 보며 악이 잘 되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습니다.
정직하게 사는 사람이 손해 보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나훔서는 분명하게 선언해 주십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일하신다.
하나님의 공의는 늦어 보일 뿐 결코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낙심하거나 분노하기보다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나아갑니다. 신앙이 익숙해질수록 하나님을 가볍게 여기기 쉽습니다.
그러나 말씀은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지만 동시에 심판의 하나님이시다.
우리가 이러한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존재라는 사실, 이 사실이 우리의 삶을 다시 깨어 있게 만들어 줍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단순한 교리가 아니라 우리가 마주하게 될 현실입니다.
그 날에는 어떤 변명도 통하지 않고, 어떤 의로움도 우리를 지켜주지 못합니다.
우리는 분명히 결단해야 하겠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나는 죄를 미루지 않겠습니다. 죄에서 돌이키겠습니다. 하나님의 공의를 가볍게 여기지 않겠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삶이 되기를 원합니다.
지금이 바로 은혜의 때입니다. 지금이 바로 돌이킬 시간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다리실 때 우리는 돌아가야 하겠습니다.
결국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심판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우리의 삶을 바로 세우고, 숨기고 있는 죄를 내려놓으며, 하나님께 순종하는 모습으로 그 자리로 돌아가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공의의 하나님께서 불처럼 진노를 쏟으시면, 견고한 바위조차 하나님의 위엄 앞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집니다.
니느웨가 의지하던 군사력과 성벽, 그들이 붙들었던 모든 우상들은 하나님 앞에 아무런 힘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두려운 심판 한가운데에서 전혀 다른 말씀이 선포됩니다.
나훔 1장 7절 말씀입니다.
7 여호와는 선하시며 환난 날에 산성이시라 그는 자기에게 피하는 자들을 아시느니라
하나님은 심판하십니다. 하지만 동시에 피할 피난처가 되십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는 자에게 환난 날의 산성이 되어 주십니다.
그러나 이어지는 8절은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8 그가 범람하는 물로 그 곳을 진멸하시고 자기 대적들을 흑암으로 쫓아내시리라
하나님께 피하는 자에게는 보호와 구원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에게는 심판과 멸망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것입니다. 누가 그 피난처 안으로 들어가는가?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하나님께로 도망하는 사람이 피난처 안으로 들어갑니다.
하나님께로 피하는 사람을 하나님은 보호하시며 구원하십니다.
이 말씀은 결국 예수님 안에서 완전히 드러나게 됩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사라진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반드시 쏟아집니다.
2000년 전 갈보리 언덕에서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물과 피를 쏟으시며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죄의 허물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었던 나에게 쏟아질 하나님의 진노가, 나에게 쏟아진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 쏟아지게 됩니다.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갈라디아서 3장 13절 말씀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십자가는 하나님의 진노가 쏟아진 자리이며, 동시에 나에게는 피난처가 열린 자리입니다.
내가 받을 심판을 예수님께서 대신 받으셨고, 내가 누릴 모든 은혜를 허락하여 주셨습니다.
예수님 안에 있는 자는 더 이상 진노의 대상이 아니라 은혜 안에 있는 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로마서 8장 1절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여 주십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예수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습니다.
나에게 질문합니다.
나는 어디로 피하고 있는가? 나는 나 자신을 붙들고 있지 않은가? 예수님을 나의 피난처로 삼고 있는가?
나는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나는 십자가의 은혜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면서도 그 은혜를 흘려보내지 못하고 있지는 않은지 내 삶을 돌아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 진노를 대신 받으셨습니다.
우리는 선택해야 하겠습니다. 정죄의 자리에 머물 것인가, 은혜의 자리로 나아갈 것인가? 두려움 가운데 설 것인가, 피난처 되신 주님 안으로 들어갈 것인가?
하나님의 뜻을 알면서도 하나님께로 나아가지 못하는 나의 모습을 말씀을 통해 돌아봅니다.
진노의 날은 반드시 옵니다. 그날에 우리를 지켜줄 피난처가 있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나는 예수님의 피 묻은 십자가 앞으로 나아가겠습니다.
우리를 향해 베푸신 그 은혜와 사랑을 나는 붙잡겠습니다.
나는 날마다 예수님의 은혜로 살아가길 원합니다.
진노의 날에 피난처 되신 예수님 안에서 담대함과 감사로 살아가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날마다 은혜로 새롭게 되지 않으면 하나님의 진노 앞에 설 수밖에 없는 인생임을 고백합니다.
죄를 반드시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잃지 않게 하시고, 동시에 환난 가운데 피난처 되시는 하나님만 더 깊이 의지하게 하옵소서.
제 삶의 모든 자리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배우게 하시고, 날마다 말씀 안에 거하며 주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게 하옵소서.
다시 오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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