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6.28 | 생명의 삶 | 김주환 목사
안녕하세요. 김주환 목사입니다.
오늘 여러분 모두에게 하나님의 기쁨이 넘치는 주일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뉴스를 보다가 마음이 답답해질 때가 있죠. 나쁜 일이 일어났다는 것도 마음 아프지만, 더 힘든 것은 나쁜 일을 한 사람이 오히려 괜찮고 또 잘 되는 것처럼 보일 때입니다.
거짓말한 사람이 성공하고, 약한 사람을 이용한 사람이 더 큰 힘을 얻고, 또 누군가의 눈물 위에 자기 영광을 쌓은 사람이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갈 때, 우리 마음에 이런 질문이 자연스럽게 생기게 되죠.
하나님, 이 상황을 보고 계세요? 정의는 정말 있는 건가요? 악한 사람이 끝까지 이기는 것 아닌가요?
오늘 나훔 2장은 바로 이 질문 앞에서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니느웨는 앗수르 제국의 수도였어요. 크고 화려하고 강한 도시였죠. 그런데 그 힘은 선한 힘이 아니었어요. 약한 나라들을 짓밟고 빼앗고 무너뜨리는 폭력의 힘이었죠.
그런 니느웨를 향해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세요. "내가 네 대적이 되어..." 이 말씀은 참 두렵게 들립니다.
그런데 가만히 묵상해 보면, 이 말씀은 동시에 큰 위로가 되기도 합니다. 하나님이 불의를 대적하지 않으신다면, 억울한 사람에게는 소망이 없기 때문이죠.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생명의 말씀 나훔 2장 8절에서 13절 말씀입니다.

불의한 자를 대적하시는 하나님
나훔 2:8~13 말씀입니다.
| 8 니느웨는 예로부터 물이 모인 못 같더니 이제 모두 도망하니 서라 서라 하나 돌아보는 자가 없도다 9 은을 노략하라 금을 노략하라 그 저축한 것이 무한하고 아름다운 기구가 풍부함이니라 10 니느웨가 공허하였고 황폐하였도다 주민이 낙담하여 그 무릎이 서로 부딪히며 모든 허리가 아프게 되며 모든 낯이 빛을 잃도다 11 이제 사자의 굴이 어디냐 젊은 사자가 먹을 곳이 어디냐 전에는 수사자 암사자가 그 새끼 사자와 함께 거기서 다니되 그것들을 두렵게 할 자가 없었으며 12 수사자가 그 새끼를 위하여 먹이를 충분히 찢고 그의 암사자들을 위하여 움켜 사냥한 것으로 그 굴을 채웠고 찢은 것으로 그 구멍을 채웠었도다 13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에 보라 내가 네 대적이 되어 네 병거들을 불살라 연기가 되게 하고 네 젊은 사자들을 칼로 멸할 것이며 내가 또 네 노략한 것을 땅에서 끊으리니 네 파견자의 목소리가 다시는 들리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
8절부터 10절을 보면 니느웨가 무너지는 장면이 아주 생생하게 그려지는데요.
니느웨는 원래 물이 모인 못 같았다고 말씀합니다. 물이 가득 고여 있는 못처럼, 모든 것이 풍성하고 안정적으로 보였다는 뜻이죠.
사람도 모이고, 재물도 모이고, 권력도 모이고, 군사력도 다 모였습니다. 겉으로 보면 참 든든해 보이는 도시였죠. 아무도 쉽게 흔들 수 없을 것 같았어요.
그런데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자, 이 모든 것이 순식간에 흩어지기 시작합니다.
사람들은 도망하죠. "서라, 서라" 아무리 외쳐도 돌아보지 않습니다. 은과 금은 약탈당하고, 그렇게 화려했던 도시는 텅 비게 되죠.
여기서 하나님은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생각을 조용히 뒤집으세요. 우리는 자주 이렇게 생각하잖아요. 힘이 있으면 안전하다, 돈이 많으면 든든하다, 사람들이 알아주면 괜찮다.
그런데 말씀은 다르게 말합니다. 하나님 없이 쌓은 힘은 결국 나를 지키지 못한다는 거예요.
니느웨가 강해서 오래 버틴 게 아니었죠. 하나님이 오래 참으셨기 때문에 아직 서 있었던 것입니다.

11절과 12절에서 니느웨는 사자의 굴로 묘사가 됩니다. 사자는 힘의 상징이죠. 니느웨는 자신을 사자처럼 생각했어요.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사냥하고, 제국이 작은 나라들을 삼키고, 그것을 당연한 권리처럼 여겼던 거예요.
이것이 바로 세상의 논리 아닌가요? 먹히지 않으려면 먼저 삼켜라, 무시당하지 않으려면 더 강해져라, 결국 힘 있는 사람이 이긴다.
그런데 복음의 논리는 전혀 다릅니다. 사자가 되는 것이 구원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하는 것이 구원입니다.
하나님은 약자를 삼키는 힘을 그냥 두지 않으세요. 하나님은 폭력과 거짓과 착취 앞에서 중립에 서 계시는 분이 아니세요.
그래서 하나님은 니느웨를 향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3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에 보라 내가 네 대적이 되어 네 병거들을 불살라 연기가 되게 하고 네 젊은 사자들을 칼로 멸할 것이며 내가 또 네 노략한 것을 땅에서 끊으리니 네 파견자의 목소리가 다시는 들리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내가 네 대적이 되어" 이 말씀은 니느웨에게는 심판이지만, 억눌린 사람에게는 큰 위로가 됩니다.
내가 보았다, 내가 다 알고 있다, 내가 그냥 두지 않겠다.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시는 겁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말씀을 묵상하다 보면 마음이 조금 불편해지지 않나요? 왜냐하면 우리는 늘 니느웨의 피해자이기만 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에요.
우리 안에도 작은 니느웨가 있을 수 있죠. 내가 조금 더 힘이 있다는 이유로 누군가를 함부로 대할 때, 내 이익을 위해 약한 사람의 아픔을 외면할 때, 내가 손해 보지 않으려고 진실을 살짝 덮을 때, 우리 마음에도 작은 니느웨가 자라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불의를 대적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 안에도 작은 니느웨가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사자처럼 약한 자를 삼키지 않으셨어요. 오히려 어린 양처럼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우리가 받아야 할 하나님의 대적하심을, 예수님이 대신 받으신 거예요.
그러므로 복음은 우리를 이렇게 바꿉니다. 내 안의 불의 앞에서는 회개하게 하고, 세상의 불의 앞에서는 낙심하지 않게 합니다.
예수님이 심판을 대신 받으셨으니, 이제 우리는 힘이 아니라 은혜로 살아가는 거예요. 더 강한 사람이 되려고 애쓰는 것이 아니라, 더 은혜받은 사람답게 살아가는 것이 바로 우리의 삶입니다.
오늘 하루 우리가 기억할 말씀은 13절입니다.
내 안의 불의 앞에서는 회개하십시오. 세상의 악 앞에서는 낙심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불의를 그냥 두지 않으세요. 그리고 십자가에서 이미 그 불의를 이기셨습니다.
오늘 하루, 힘으로 나를 지키려 하지 말고, 나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은혜 안에 머물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악이 이기는 것처럼 보이는 세상 속에서도 하나님이 보고 계시고, 알고 계시고, 공의로 다스리신다는 것을 믿게 해 주옵소서.
주님, 우리 안의 교만과 불의를 봅니다. 힘으로 나를 지키려 했고, 때로는 약한 사람의 아픔을 외면했던 마음을 회개합니다.
예수님, 우리가 받아야 할 심판을 십자가에서 대신 받으시고,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도 힘이 아니라 은혜로 살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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