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6.26 | 생명의 삶 | 문영재 목사
안녕하세요. 홍콩 온누리교회를 섬기는 문영재 목사입니다.
나훔서는 겉으로 보면 심판의 책 같습니다. 니느웨를 향한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이 선포됩니다.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말을 들으면 파괴, 벌, 두려움이 생각납니다.
하지만 반드시 기억할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단순한 파괴가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구원의 또 다른 모습입니다.
하나님은 니느웨를 향해 끝까지 멸하시겠다 선언하십니다. 그러나 유다를 향해서는 약속하십니다. 다시는 너를 괴롭게 하지 않겠다.
여러분, 바로 이것이 핵심입니다. 같은 사건이지만 어떤 이에게는 심판이며 어떤 이에게는 구원이 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심판의 메시지 속에 담긴 하나님의 구원을 함께 묵상하길 원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생명의 말씀 나훔 1:9~15 말씀입니다.

심판의 메시지에 담긴 구원 메시지
나훔 1:9~15 말씀입니다.
| 9 너희는 여호와께 대하여 무엇을 꾀하느냐 그가 온전히 멸하시리니 재난이 다시 일어나지 아니하리라 10 가시덤불 같이 엉크러졌고 술을 마신 것 같이 취한 그들은 마른 지푸라기 같이 모두 탈 것이거늘 11 여호와께 악을 꾀하는 한 사람이 너희 중에서 나와서 사악한 것을 권하는 자라 12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그들이 비록 강하고 많을지라도 반드시 멸절을 당하리니 그가 없어지리라 내가 전에는 너를 괴롭혔으나 다시는 너를 괴롭히지 아니할 것이라 13 이제 네게 지운 그의 멍에를 내가 깨뜨리고 네 결박을 끊으리라 14 나 여호와가 네게 대하여 명령하였나니 네 이름이 다시는 전파되지 않을 것이라 내가 네 신들의 집에서 새긴 우상과 부은 우상을 멸절하며 네 무덤을 준비하리니 이는 네가 쓸모 없게 되었음이라 15 볼지어다 아름다운 소식을 알리고 화평을 전하는 자의 발이 산 위에 있도다 유다야 네 절기를 지키고 네 서원을 갚을지어다 악인이 진멸되었으니 그가 다시는 네 가운데로 통행하지 아니하리로다 그가 온전히 끊어졌도다 |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니느웨 곧 앗수르는 하나님의 백성 유다를 대적하며 해하려는 음모를 꾸밉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악을 그냥 두지 않으십니다. 니느웨를 심판하실 때 유다 백성은 잔혹한 일을 당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위해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9절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9 너희는 여호와께 대하여 무엇을 꾀하느냐 그가 온전히 멸하시리니 재난이 다시 일어나지 아니하리라
여기서 주목할 표현이 있습니다. 바로 '온전히 멸하신다'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완전하십니다. 타협하지 않으시며 멈추지도 않으십니다.
니느웨는 어떤 도시였습니까? 잔인함의 상징이었습니다. 약한 민족을 짓밟고 포로를 학대하며 공포로 세상을 지배했습니다. 그들은 오랫동안 악을 쌓아왔고, 하나님은 이 모든 것을 지켜보고 계셨습니다.
때로 우리는 악이 승리하는 것처럼 느낍니다. 불의한 사람이 형통하고 정직한 사람은 손해 보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선언합니다. 하나님은 악을 그냥 두지 않으신다. 복잡하고 강해 보이는 악이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한순간에 사라집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은 악과 공존할 수 없습니다. 이 말씀은 단지 니느웨에 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늘 나를 향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내 안에 하나님을 대적하는 마음이 있지는 않은가? 나는 작은 죄를 가볍게 여기지는 않는가? 하나님 없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순간은 없었는가?
하나님은 죄를 그냥 지나치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우리를 심판하시는 것은 두려움을 주기 위함이 아닙니다. 회개로 부르시며 은혜로 초청하십니다. 지금 돌아오라, 지금 나오라. 이것이 심판 속에 담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나훔 선지자는 앗수르의 상태를 이렇게 말합니다. 엉크러진 가시덤불 같고, 술에 취한 자와 같으며, 마른 지푸라기와 같다. 겉으로는 강해 보이지만 실상은 무질서하고 연약하며, 하나님의 심판 앞에 사라질 존재임을 말씀하십니다.
세상의 권력과 압제가 강해 보여도 하나님의 백성을 억압하려는 시도는 결코 성공할 수 없습니다. 인간의 지혜와 군사력으로는 하나님을 막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우리의 삶을 억누르는 모든 멍에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끊어질 것입니다.
12절과 13절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2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그들이 비록 강하고 많을지라도 반드시 멸절을 당하리니 그가 없어지리라 내가 전에는 너를 괴롭혔으나 다시는 너를 괴롭히지 아니할 것이라 13 이제 네게 지운 그의 멍에를 내가 깨뜨리고 네 결박을 끊으리라
유다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니느웨에게는 심판이지만 유다에게는 해방이며, 니느웨에게는 멸망이지만 유다에게는 자유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하나님의 구원의 방식입니다.
하나님은 단순히 나를 위로하시는 분이 아니라, 나를 괴롭히는 세력을 끊어내시는 분이십니다.
나의 삶에도 니느웨가 있습니다.
억누르는 문제, 반복되는 죄의 습관, 두려움과 상처, 관계 속의 억압과 무거움.
이 모든 것이 끊어지지 않을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분명하게 말씀해 주십니다.
내가 그 멍에를 꺾겠다, 내가 그 결박을 끊겠다.
오늘 말씀 앞에 나를 돌아보며 나아갑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위해 일하시며 악을 멸하시고 자유케 하십니다.
말씀하신 하나님을 신뢰하며 담대히 살아가는 우리 모든 성도님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니느웨를 향해 회생 불가능한 심판을 선포하십니다.
니느웨가 자랑하던 명성과 번영, 의지하던 모든 종교적 기반까지 완전히 무너뜨리시겠다고 하십니다.
이것은 단순한 징계가 아니라 교만과 잔악함에 대한 하나님의 최종 판결입니다.
그러나 이 심판의 선언은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옵니다.
니느웨에게는 멸망의 소식이지만, 유다에게는 해방의 소식입니다.
15절은 이렇게 선포하십니다.
15 볼지어다 아름다운 소식을 알리고 화평을 전하는 자의 발이 산 위에 있도다 유다야 네 절기를 지키고 네 서원을 갚을지어다 악인이 진멸되었으니 그가 다시는 네 가운데로 통행하지 아니하리로다 그가 온전히 끊어졌도다
여기서 말씀하시는 '아름다운 소식'은 무엇입니까?
심판이 끝났다는 소식이며, 압제가 끝났다는 소식이며, 하나님의 구원이 시작되었다는 소식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멸망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심판을 통해 공의가 세워지고 하나님의 백성에게 참된 평화와 해방이 임했습니다.
유다는 그동안 압제와 두려움 속에서 하나님 앞에 절기와 서원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 절기를 지키고 내 서원을 갚을지어다.
이것은 단순한 종교적 행위의 회복이 아닙니다. 진정한 회복은 무엇입니까? 참된 회복은 예배의 회복으로 나타남을 깨닫습니다.
아름다운 소식은 나훔의 시대에만 머물지 않았습니다. 이사야를 통해 다시 선포되고, 바울에 의해 인용되며, 마침내 예수님 안에서 성취됩니다.
예수님은 죄에 대해 심판을 받으셨고 우리는 죄에 대해 용서를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무너지지 않았고, 하나님은 한 영혼도 포기하지 않으시며 사랑하여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며 우리를 구원하시고,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심으로 심판과 구원이 동시에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두 예수님을 붙들며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세상은 흔들려도 하나님의 구원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상황이 어려워도 하나님의 약속은 변하지 않습니다.
이 말씀을 우리가 붙들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먼저 우리를 회개하게 하십니다.
내 안에 여전히 붙잡고 있는 죄가 있다면 이제 내려놓아야 하겠습니다.
심판 속에서도 하나님은 구원을 준비하십니다. 그 구원은 예수님을 통해 주셨습니다.
이 복음을 붙들고 회개와 믿음으로 살아가며, 자유 가운데 하나님을 예배하는 우리 모든 성도님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세상의 권력이 아무리 강할지라도 택하신 주의 백성을 건지시고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의 능력과 주권을 바라봅니다.
거짓에 속지 않게 하시고 멍에에 눌려 살지 않게 하옵소서.
우리로 하여금 복음을 누리게 하시고 복음을 담대히 전하게 하옵소서.
날마다 은혜 가운데 거하며 참된 예배자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다시 오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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