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5.28 | 생명의 삶 | 권준 목사
안녕하세요.
시애틀 형제교회를 섬기는 권준 목사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살도록 부름을 받았지 세상과 단절된 삶을 살도록 부름 받은 것은 아닙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과의 관계 속으로 들어가 소통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들의 형편과 처지에 맞출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성, 육신의 핵심 원리인 것이죠.
사람의 모양으로 사람에게 오셔서 사람과 하나가 되고, 그래서 복음을 설명함으로 구원받게 하는 역사
그래서 중요한 것이 Flexibility , 유연성입니다.
유연함으로 복음을 모르는 분들에게 다가가 겸손함으로 복음을 전하여 구원받게 하는 역사 그 기쁨을 누리며 살아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 함께 나눌 말씀은 고린도전서 9장 19절에서 27절 말씀입니다.

주님의 길을 따르는 복음의 종
고린도전서 9장 19절에서 27절 말씀입니다.
| 19 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20 유대인들에게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나 율법 아래에 있는 자 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21 율법 없는 자에게는 내가 하나님께는 율법 없는 자가 아니요 도리어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에 있는 자이나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된 것은 율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 22 약한 자들에게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내가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함이니 23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여하고자 함이라 24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25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26 그러므로 나는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며 27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
사도 바울이 가진 삶의 원칙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담는 거였습니다.
예수님을 담고 싶었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이 구원을 얻게 되기를 원하시는 예수 그리스도, 그것이 자신을 통해 일어나기를 소망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통해서 그 일을 이루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종이 되어 그 일을 이루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유인이었지만 복음을 위해 스스로 종이 됩니다.
여기에 참된 자유와 기쁨이 있습니다. 19절 말씀입니다.
19 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사도바울은 복음 안에서 자유인이었지만 자신의 권리를 포기합니다.
종이 되기를 자처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할 수만 있다면 그래서 어떻게 합니까? 22절, 23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22 약한 자들에게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내가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함이니
23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여하고자 함이라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됩니다.
사도바울은 자유의 권리와 힘이 있지만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되었다고 고백을 합니다.
그래서 율법 안에 있는 유대인을 얻기 위해 유대인과 같이 율법을 지키는 자가 됩니다.
유대인들 앞에서는 철저하게 율법을 지키는 유대인이 되고 율법이 없는 이방인을 얻기 위해서는 그들의 문화를 수용하는 삶을 삽니다.
그는 유대인 출신이오 율법에 대해서는 가말리엘 문화생입니다.
로마 시민권을 가진 자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깁니다.
민족적 정체성까지도 포기합니다.
자신의 당연한 권리를 포기합니다.
연약한 자들을 얻기 위해 연약한 자처럼 살아갑니다.
그들과 자신을 동일시 합니다.
몇 사람이라도 더 얻고자 그래서 카멜레온과 같이 변화무쌍한 모습으로 변하기를 자처합니다.
사도 바울이 오해받을 만한 이야기를 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 사람 주때 없는 사람 아닌가 간에 붙었다 쓸게 붙었다 하는 기회주의자인가?
그런데 여러분 바울은 그 정도 수준이 아닙니다. 복음의 유연성이 아니라 방법의 유연성입니다.
복음의 본질에 굳게 서서 만나는 사람 상대하는 사람의 형편과 처지에 따라 자기 자신을 융통성 있게 변화하여
그들과 하나가 되고 그래서 복음을 증거함으로 구원받게 하는 역사
그래서 유대인도 얻고 이방인도 얻고 약한 자 부한 자도 모두 얻는 구원의 역사
이 바울의 유연성
그 유연성을 닮아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의 길로 인도하고 싶습니다.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할 수만 있다면.
그래서 사도바울은 자기 삶을 달리기 선수와 격투기 선수에 빗대어 설명을 합니다. 24절 25절 말씀입니다.
24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25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자기 자신을 경주자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바로 복음 전도자의 삶도 이와 동일하다는 것이죠.
목표를 분명히 하고 무슨 목표입니까? 상을 목표로 합니다.
어떤 상입니까? 이 땅에 없어지는 면류관이 아니라 썩지 않는 영원한 면류관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핵심은 무엇입니까? 바로 절제인 것이죠. 운동선수의 핵심은 바로 절제입니다.
욕심의 절제 쾌락의 절제 말의 절제 관계의 절제
더 큰 기쁨을 바라보며 자기 자신을 절제하면서 자기 자신을 훈련시키면서 예수님이 주실 영원한 상을 바라보며 열심히 최선을 다해 나아가는 것입니다.
26절 말씀을 봅니다.
26 그러므로 나는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며
목표 없이 뛰지 말라는 것이죠. 허공을 향해 공허한 주먹을 날리지 말라는 것이죠.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어떻게 하면 이 영원한 면류관을 얻는 올바른 경주를 할 수 있을까요?
27절에 사도바울은 이렇게 우리에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27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몸을 쳐 복종하라는 것입니다. 나의 당연한 권리를 포기하고 섬김의 삶을 실천하라는 것이죠.
하나님이 예비하신 이 영원한 멸류관을 상으로 얻고자 자기의 권리를 포기하고 종으로서 섬김의 삶을 실천하는 삶
그렇지 않으면 복음을 전한다 해도 버려질 것이다라고 경고를 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복음을 위해, 공동체를 위해 절제하고 끝까지 달리는 자가 됩시다.
복음의 사람은 자유를 자기 권리에 쓰지 않습니다.
복음을 위해 자신을 낮추며 절제와 훈련으로 끝까지 달립니다.
자유를 사랑의 섬김으로 사용합니다.
그러므로 디모데후서 4장 7절과 8절에 바울은 자신의 인생을 이렇게 고백을 합니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에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 도니라
저 또한 이 바울과 같은 이러한 고백을 남길 수 있는 그러한 내가 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믿음의 여정 우리 완주합시다.
영광의 면류관을 받는 그날까지 우리 주님과 함께 동행합시다.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으로 죄에서 해방된 자유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종으로 살아갑니다.
복음을 위해 기꺼이 낮아진 삶을 삽니다. 왜 그렇습니까?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함을 얻게 하기 위해서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복음을 위해 최선을 다합시다.
이 목적을 향해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하나님
예수님을 닮은 바울을 담고 싶습니다.
자유인이지만 종이 되어 살겠노라는 바울의 고백이 나의 고백이 되게 하옵소서.
오늘도 영혼 구원을 위해 기도하고 그리고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하나님 새 힘주옵소서.
주님이 주실 영원한 상을 바라보며 오늘도 그 목적 항을 향해 달리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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