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님의 만찬, 십자가 사랑으로 하나 되는 자리(고린도전서 11:17~26)(20260602)

반응형

2026.06.02 | 생명의 삶 | 도육환 목사

 

 

 

 

 

안녕하십니까

온누리교회를 섬기는 도 목사입니다.

 

여러분은 혹시 어떤 모임이나 식사 자리에서 마치 투명 인간처럼 느껴졌던 경험이 있으십니까?

분명 같은 공간에 앉아 있는데도 아무도 내 존재를 돌아보지 않는다면 정말 서운하고 마음 상하는 일이 되지요.

그리고 다시는 그 자리에 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게 될 겁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고린도 교회 안에 이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것도 가장 거룩하고 아름다워야 할 성찬의 자리에서 말입니다.

함께 하나 되어야 할 자리에서 누군가는 소외되고 차별을 경험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 문제를 매우 엄중하게 다루며 성찬의 본래 의미를 다시 가르쳐 줍니다.

오늘 본문 말씀 함께 묵상할 말씀은 고린도 전서 11장 17절에서 26절 말씀입니다.

 

 

 

주님의 만찬, 십자가 사랑으로 하나 되는 자리
주님의 만찬, 십자가 사랑으로 하나 되는 자리

 

 

 

주님의 만찬, 십자가 사랑으로 하나 되는 자리

 

 

고린도 전서 11장 17절에서 26절 말씀입니다.

더보기
17 내가 명하는 이 일에 너희를 칭찬하지 아니하나니 이는 너희의 모임이 유익이 못되고 도리어 해로움이라
18 먼저 너희가 교회에 모일 때에 너희 중에 분쟁이 있다 함을 듣고 어느 정도 믿거니와
19 너희 중에 파당이 있어야 너희 중에 옳다 인정함을 받은 자들이 나타나게 되리라
20 그런즉 너희가 함께 모여서 주의 만찬을 먹을 수 없으니
21 이는 먹을 때에 각각 자기의 만찬을 먼저 갖다 먹으므로 어떤 사람은 시장하고 어떤 사람은 취함이라
22 너희가 먹고 마실 집이 없느냐 너희가 하나님의 교회를 업신여기고 빈궁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무슨 말을 하랴 너희를 칭찬하랴 이것으로 칭찬하지 않노라
23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24 축사하시고 떼어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25 식후에 또한 그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26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문제 많고 갈등도 많았던 고린도 교회는 또 하나의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바로 성찬 때문에 생긴 갈등이었습니다. 17절 말씀은 굉장히 충격으로 시작됩니다.

17 내가 명하는 이 일에 너희를 칭찬하지 아니하나니 이는 너희의 모임이 유익이 못되고 도리어 해로움이라

 

성도들이 예배로 모였습니다.

성찬 하기 위해서 모였는데 그 모임이 유익이 아니라 오히려 해롭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의 이름으로 모였다면 은혜가 있어야 하고 서로에게 힘이 되어야 하는데 오히려 상처와 문제가 더 커지고 있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이겠습니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20절과 21절에 그 이유가 나옵니다.

20 그런즉 너희가 함께 모여서 주의 만찬을 먹을 수 없으니
21 이는 먹을 때에 각각 자기의 만찬을 먼저 갖다 먹으므로 어떤 사람은 시장하고 어떤 사람은 취함이라

 

초대교회 성도들은 모일 때마다 함께 음식을 나누며 교제했습니다.

 

떡을 떼고 식사를 함께 하며 주님의 은혜를 기억했던 것입니다.

이는 장차 천국에서 누리게 될 어린양의 혼인 잔치를 미리 맛보는 기쁨의 시간이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 아름다워야 할 식탁이 어느새 차별과 갈등의 자리가 되어 버렸습니다.

당시에는 오늘날처럼 교회에서 음식을 준비해 주는 주방 봉사자, 주방팀 따로 없었습니다.

각자 음식을 여유 있게 가져와서 나누어 먹는 방식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시절에는 애찬과 성찬이 지금처럼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았던 때입니다.

주님께서 6월절 식사 중에 성 만찬을 재정하신 것처럼 함께 식사하며 그 가운데 주님의 몸과 피를 기념했던 것입니다.

 

문제는 여기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생활에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먼저 와서 자신이 가져온 음식을 먹으며 교제했습니다.

충분히 먹고 마시다 보니 어떤 사람들은 배부르고 심지어 술에 취하기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늦게까지 일하다가 겨우 예배 시간에 맞춰 달려온 가난한 성도들은 상황이 달랐습니다.

음식조차 준비하지 못한 채 지친 몸으로 왔는데 이미 음식은 거의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배불러 있고 어떤 사람은 굶주린 채 예배를 드려야 했던 것입니다.

바울은 이것을 매우 엄하게 책망합니다.

예배와 성찬의 본질은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하나 되는 것이었는데, 가장 중요한 그 정신을 잃어버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만일 배불리 먹고 마시는 것이 목적이라면 자기 집에서 먹으면 될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주님의 이름으로 모인 자리에서 연약한 사람들을 기다려주지 않고 배려하지도 않은 채 자기 배만 채우는 것은 하나님의 교회를 업신여기는 일이며, 가난한 성도들을 부끄럽게 만드는 일이라고 책망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도 교회 안에서 얼마든지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좋은 마음으로 시작한 모임인데도 누군가에게는 소외감과 박탈감을 안겨줄 수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는 정말 다양한 형편의 사람들이 함께 있습니다.

 

비교적 여유 있는 분도 있고, 하루하루 생계를 위해 힘겹게 살아가는 분도 있습니다.

자유롭게 시간을 내어 봉사할 수 있는 분들도 있지만, 어떤 분은 주일 예배 한 번 참석하는 것 자체가 큰 희생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공동체 안에서 더 세심하게 서로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내가 가진 것을 보며 누군가는 위축될 수 있고, 내가 편해서 만든 작은 모임이 누군가에게는 소외감으로 다가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공동체는 서로의 마음을 세심하게 살피는 곳이어야 합니다.

그래야 교회가 건강하게 세워지고 덕과 사랑이 살아 있는 공동체가 될 수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속한 모든 교회와 모임마다 이런 따뜻한 배려와 화평과 은혜가 넘치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 화평의 일은 바로 오늘 말씀을 묵상하고 깨달은 저와 여러분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이제 이 일을 위해서 작은 일부터 시작해 볼까요?

 

 

내가 속한 공동체가 하나 되지 못해 놓치고 있는 본질적 사명은 무엇인가요?
내가 속한 공동체가 하나 되지 못해 놓치고 있는 본질적 사명은 무엇인가요?

 

 

 

반응형
728x90

 

 

 

이어지는 23절부터 26절 말씀은 단지 고린도 교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교훈을 넘어서

지난 2000년 동안 모든 교회가 가장 귀하게 여겨온 성찬의 말씀이기도 합니다.

조금 길긴 하지만 다시 읽어도 늘 은혜가 되는 말씀입니다.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23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24 축사하시고 떼어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25 식후에 또한 그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26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아멘.

 

바울은 마치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지금까지 성찬의 가장 중요한 의미를 놓치고 있습니다.

성찬의 본질은 바로 이것입니다

라고 오늘 말씀을 주신 것입니다.

 

바로 먼저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성찰은 사람이 만든 종교의식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친이 세우신 거룩한 예식입니다.

예수님께서는 6월절 식사 자리에서 새로운 의미를 부여해 주셨습니다.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고 하십니다.

그 식탁 위에 무교병은 죄 없이 주님께서 우리 죄를 대신하여서 십자가에서 찍기 시고 내어주신 그 몸을 의미했던 겁니다.

또한 식 후에 나누신 자는 우리를 위해서 흘리신 예수님의 보혈을 의미합니다.

히브리서 말씀처럼 피흘림이 없은 적 사이 없다 하시죠.

주님은 자신의 피로 새 언약을 세워주셨습니다.

무엇이 새 언약일까요?

구약 시대에 모든 짐승의 제사, 그것을 이제 마무리하고 예수님께서 자신의 몸을 대제사장으로서 온전히 드림으로 모든 제과를 도말시켜 주신 것입니다.

영원한 속제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누구든지 십자가의 보혈을 믿음으로 받는 사람은 죄사함을 받고 새 생명을 얻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새 언약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찬에 참여할 때마다 단지 밀 전병과 포도 접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 그리고 우리를 향한 새 언약의 은혜를 다시 기억하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오늘 우리를 살리는 현재의 은혜입니다.

 

뿐만 아니라 성찬은 미래를 바라보게 합니다.

지금 우리가 함께하는 이 성찬은 장차 하나님 나라에서 누리게 될 영원한 잔치로 이어지게 될 것이고,

오늘 우리는 그 예표를 함께 참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떡과 잔을 받을 때마다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며 복음을 전파하는 일에 힘을 써야 합니다.

 

또한 성찬은 우리를 하나 되게 합니다.

주 안에서 서로 사랑하고 배려하며 함께 살아가도록 부르시는 은혜의 자립입니다.

오늘도 그 은혜 안에서 서로를 귀히 여기고 사랑으로 섬기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공동체 모임에서 지체들의 하나 됨을 위해 나는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요?
공동체 모임에서 지체들의 하나 됨을 위해 나는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요?

 

 

 

존귀하신 하나님
십자가의 은혜로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시고, 성찬을 통해 그 은혜를 기억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우리가 속한 교회마다 서로 존중하고 사랑하며 세심하게 배려하는 건강한 믿음의 공동체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맨.

 

 

주님의 만찬, 십자가 사랑으로 하나 되는 자리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