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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신하는 제자, 도망하는 제자(마태복음 26:47~56)(2026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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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3.29 | 생명의 삶 | 이정환 목사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의 이름으로 문안드립니다.

저는 대구 남산교회를 섬기는 이정환 목사입니다.

 

오늘은 거룩한 주일입니다.

영과 진리로 하나님을 예배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는 보통 배신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아주 나쁜 사람의 이야기, 나와는 거리가 먼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배신을 멀리 있는 사건이 아니라 아주 가까운 자리에서 가장 익숙한 인물을 통해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두 부류의 제자가 등장합니다.

한 사람은 예수님께 입을 맞추며 배신했고, 다른 제자들은 칼을 내려놓은 뒤 모두 도망쳤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장면 앞에서 다른 사람을 정죄하기보다 우리 자신의 모습을 정직하게 비추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마태복음 26장 47절부터 5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이제 말씀 앞으로 나아가겠습니다.

 

 

 

배신하는 제자, 도망하는 제자
배신하는 제자, 도망하는 제자

 

 

 

배신하는 제자, 도망하는 제자

 

 

 

마태복음 26장 47절에서 56절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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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말씀하실 때에 열둘 중의 하나인 유다가 왔는데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에게서 파송된 큰 무리가 칼과 몽치를 가지고 그와 함께 하였더라
48 예수를 파는 자가 그들에게 군호를 짜 이르되 내가 입맞추는 자가 그이니 그를 잡으라 한지라
49 곧 예수께 나아와 랍비여 안녕하시옵니까 하고 입을 맞추니
50 예수께서 이르시되 친구여 네가 무엇을 하려고 왔는지 행하라 하신대 이에 그들이 나아와 예수께 손을 대어 잡는지라
51 예수와 함께 있던 자 중의 하나가 손을 펴 칼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 그 귀를 떨어뜨리니
52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칼을 도로 칼집에 꽂으라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하느니라
53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두 군단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
54 내가 만일 그렇게 하면 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겠느냐 하시더라
55 그 때에 예수께서 무리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강도를 잡는 것 같이 칼과 몽치를 가지고 나를 잡으러 나왔느냐 내가 날마다 성전에 앉아 가르쳤으되 너희가 나를 잡지 아니하였도다
56 그러나 이렇게 된 것은 다 선지자들의 글을 이루려 함이니라 하시더라 이에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

 

 

 

47절의 말씀을 읽겠습니다.

47 말씀하실 때에 열둘 중의 하나인 유다가 왔는데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에게서 파송된 큰 무리가 칼과 몽치를 가지고 그와 함께 하였더라

 

예수님께서 아직 말씀하고 계실 때 12 제자 중 하나인 유다가 군중을 이끌고 나타납니다.

그는 예수님께 다가와 말합니다.

'랍비여 안녕하시옵나이까?'

그리고 예수님께 입을 맞춥니다. 입맞춤은 사랑과 존경의 표현입니다.

그러나 유다의 입맞춤은 가장 따뜻한 행동으로 가장 차가운 배신을 감춘 행위였습니다.

유다는 처음부터 예수님을 미워했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 역시 제자였고 말씀을 들었습니다. 기적을 보았습니다.

사역의 현장에 함께 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점점 예수님을 사랑의 대상으로 바라보기보다 자신의 기대를 채워줄 수단으로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기대대로 움직여주지 않자 그의 마음에는 서서히 실망이 자리 잡았습니다.

그 실망은 마음속에서 계산으로 바뀌었고 결국 배신으로 이어졌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유다의 배신은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난 사건이 아닙니다.

작은 불만을 회개하지 않았고, 작은 실망을 하나님께 맡기지 않았으며, 작은 욕심을 말씀 앞에 내려놓지 않았을 때 그 마지막이 배신이 된 겁니다.

배신은 언제나 관계의 거리감에서 시작됩니다.

주님과 함께는 있었지만 주님을 온전히 신뢰하지는 않았던 것입니다.

우리 안에도 혹시 유다의 마음이 자라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주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어느 순간 주님을 내 기대를 이루어 주는 분으로만 여기고 있지는 않습니까?

 

 

 

입술의 고백과 진심 사이에서 주님을 향한 나의 사랑은 어떠한가요?
입술의 고백과 진심 사이에서 주님을 향한 나의 사랑은 어떠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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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다른 제자들은 어떠했습니까? 그들은 유다처럼 예수님을 넘겨주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베드로는 칼을 빼들어 저항하기까지 합니다.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끝까지 지키려는 모습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칼을 돌어 집에 꽂으라.'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길은 폭력으로 지키는 길이 아니었습니다.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한 채 상황은 급격히 흘러갔고 예수님은 체포되셨습니다.

56절을 읽겠습니다.

56 그러나 이렇게 된 것은 다 선지자들의 글을 이루려 함이니라 하시더라 이에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

 

조금 전까지 칼을 들었던 제자들 죽기까지 따르겠다는 제자들이 결국 모두 예수님을 버리고 떠났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러나 자신들이 감당할 수 없는 현실 앞에서 그 사랑은 두려움에 밀려 뒤로 물러났습니다.

그들의 도망은 악의적인 배신이라기보다는 연약함 속에서 비롯된 도피였던 것이죠.

 

 

이해는 되지만 그렇다고 가볍지 않은 실패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종종 유다의 모습보다는 이 제자들의 모습에 더 가까울 때가 많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고난이 다가오면 한 발 물러섭니다.

불이익이 예상되면 조용히 거리를 둡니다.

십자가의 무게가 느껴지면 '지금은 아닌 것 같습니다'라고 말하며 뒤로 숨습니다.

도망친 제자들의 공통점은 분명합니다. 그들은 십자가 없는 제자들을 기대했던 것입니다.

영광의 메시아는 기대했지만 고난 받는 메시아는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처음부터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두 가지 사실을 함께 붙들어야 합니다.

첫째 우리는 넘어질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입니다.

유다처럼 마음이 씻어질 수도 있고 제자들처럼 두려움에 밀려 도망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둘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은혜는 멈추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나는 손해와 위기 앞에서도 주님을 향한 사랑과 충성을 끝까지 지킬 수 있나요?
나는 손해와 위기 앞에서도 주님을 향한 사랑과 충성을 끝까지 지킬 수 있나요?

 

 

 

하나님 아버지
오늘 말씀 앞에서 다른 사람을 정죄하기보다 우리 자신의 모습을 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유다처럼 계산하며 주님을 대하지 않게 하시고, 제자들처럼 두려움 앞에서 도망치지 않게 하옵소서.
연약할 때에도 주님을 붙들 수 있는 믿음을 주시고, 넘어질 때마다 다시 돌아올 수 있는 은혜를 허락하여 주옵소서.
배신과 도망 속에서도 십자가의 길을 멈추지 않으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끝까지 주님을 따르는 제자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배신하는 제자, 도망하는 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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