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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 심판 기준, 행함 없는 믿음(마태복음 25:31~46)(2026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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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3.24 | 생명의 삶 | 이해영 목사

 

 

 

 

 

안녕하세요.

성민교회를 섬기는 이해영 목사입니다.

 

시편 기자는 시편 9편 9절에서 이렇게 노래합니다.

여호와는 압제를 당하는 자의 요새이시오. 환란 때의 요새이시로다.

하나님의 심판은 단지 악을 징벌하는 행위가 아니라 억눌린 자를 일으켜 세우는 구원의 사건입니다.

공의 차가운 칼날이 아니라 눈물 젖은 땅을 바로 세우는 하나님의 손길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은 영광의 보자에 앉으신 인자의 심판을 말씀하시면서 그 심판의 기준이 어디에 있는지 드러내십니다.

두려움의 장면처럼 보이지만 그 중심에는 연약한 자를 향한 하나님의 깊은 관심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연약한 자의 곁에 서 계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따라 오늘 우리의 삶을 다시 돌아보겠습니다.

오늘 말씀은 마태복음 25장 31절로부터 46절의 말씀입니다.

 

 

최후 심판 기준, 행함 없는 믿음
최후 심판 기준, 행함 없는 믿음

 

 

 

최후 심판 기준, 행함 없는 믿음

 

 

마태복음 25장 31절에서 46절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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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32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구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 같이 하여
33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34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
35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36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37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음식을 대접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38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헐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39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40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41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
42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43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보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시니
44 그들도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헐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하지 아니하더이까
45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
46 그들은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본문은 장엄한 선언으로 시작됩니다.

31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여기서 보자는 단순한 자리나 의자가 아니라 왕권과 심판권을 상징하는 통치의 자리를 말합니다.

 

 

다니엘 7장에서 인자 같은 이가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 앞에서 권세를 받는 장면과 직결됩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종말의 재판장으로 선포하고 계십니다.

모든 민족이 그 앞에 모이고 그는 목자가 양과 염소를 나누듯 구분하십니다.

여기서 구분하다 라고 하는 말은 단순한 분리가 아니라 본질을 드러내는 판별을 뜻합니다.

심판은 숨겨진 것을 폭로하는 사건입니다.

 

 

그때의 오른편에 선 자들에게 왕은 말합니다.

34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

 

'상속받다'라는 이 말은 은혜의 언어입니다.

그 나라는 공로로 획득하는 것이 아니라 상세 전부터 예비된 선물인 것입니다.

 

그 이유는 뜻밖에도 소박합니다.

35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36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이 모든 상황은 인간 존재의 가장 연약한 자리를 말합니다.

예수님은 이들을 지극히 작은 자라 그렇게 부르십니다.

40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이것은 단순히 윤리적인 권면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와의 신비한 연합을 전제하는 선언이 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자신을 연약한 자와 동일시하십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높은 자리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가장 낮은 자리, 가장 작아 보이는 이들의 얼굴 속에 그 영광이 숨겨져 있습니다.

심판은 그 숨은 영광을 알아본 자와 그렇지 못한 자를 가르는 사건입니다.

 

 

 

나는 주님이 말씀하신 작은 자들을 어떻게 대하나요?
나는 주님이 말씀하신 작은 자들을 어떻게 대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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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편의 선자들에게는 다른 말씀이 선포됩니다.

41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 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

 

여기서 강조점은 행위의 적극적인 악행보다 하지 아니함에 있는 것입니다. 그들도 묻습니다.

44 그들도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헐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하지 아니하더이까

 

그들은 모른다 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몰랐던 것이 아니라 관심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심판의 기준은 거창한 업적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마주친 작은 자에 대한 태도였습니다.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구체적인 행위이며 무관심은 가장 차가운 거절이라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46절에서 결론을 맺으십니다.

46 그들은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영생은 단지 길게 사는 시간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하나님과의 질적 깊은 교제 속으로 들어가는 삶을 말합니다.

 

 

반대로 영벌은 단순한 형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의 영원한 단절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시편 9편에서 여호와는 압재를 당하는 자의 요새라 하셨던 것처럼,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심판이 연약한 자의 구원을 위한 것임을 보여줍니다.

공의는 결코 차갑지 않습니다. 그것은 오히려 사랑이 형태를 갖춘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영광의 보좌 앞에 드러나는 것은 우리의 신학적 지식이 아니라 연약한 자를 향한 사랑의 흔적입니다.

 

 

 

내가 선을 베푸는데 소극적이라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내가 선을 베푸는데 소극적이라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영광의 보좌에 앉으신 주님
연약한 자의 얼굴에서 주님의 형상을 보게 하옵소서.
무관심의 죄에서 우리를 돌이키시고, 작은 자를 향한 사랑으로 오늘을 살게 하여 주옵소서.
주의 공의가 두려움이 아니라 구원의 기쁨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최후 심판 기준, 행함 없는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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