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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랑을 맞이하는 지혜로운 기다림(마태복음 25:1~13)(2026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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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3.22 | 생명의 삶 | 이해영 목사

 

 

 

 

 

 

안녕하세요.

성민교회를 섬기는 이해영 목사입니다.

오늘 복된 주일 주님의 부활의 능력과 권세로 충만한 예배가 되시길 바랍니다.

 

 

성경의 마지막 고백은 아맨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라는 그런 웅장한 선포로 끝납니다.

초대 교회는 이 한 마디 마라나타라는 고백으로 어두운 시대를 견뎠습니다.

주님의 오심은 두려움의 소식이 아니라 신랑을 기다리는 신부의 소망이었습니다.

 

 

오늘 예수님은 열 처녀의 비유를 통해 그 마라나타의 고백이 과연 준비된 기다림인가를 물으십니다.

입술의 외침이 아니라 삶의 등불로 응답하라는 초청 앞에서 오늘 우리의 자리를 세워 보기 원합니다.

오늘의 말씀은 마태복음 25장 1절에서 13절의 말씀입니다.

 

 

신랑을 맞이하는 지혜로운 기다림
신랑을 맞이하는 지혜로운 기다림

 

 

 

신랑을 맞이하는 지혜로운 기다림

 

 

 

마태복음 25장 1절에서 13절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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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 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
2 그 중의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 있는 자라
3 미련한 자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고
4 슬기 있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더니
5 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잘새
6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
7 이에 그 처녀들이 다 일어나 등을 준비할새
8 미련한 자들이 슬기 있는 자들에게 이르되 우리 등불이 꺼져가니 너희 기름을 좀 나눠 달라 하거늘
9 슬기 있는 자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와 너희가 쓰기에 다 부족할까 하노니 차라리 파는 자들에게 가서 너희 쓸 것을 사라 하니
10 그들이 사러 간 사이에 신랑이 오므로 준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
11 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와서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
12 대답하여 이르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였느니라
13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때를 알지 못하느니라

 

 

 

예수님은 천국을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에 비유하셨습니다.

혼인 잔치는 유대 문화에서 가장 기쁜 언약의 축제였습니다.

신랑이 밤중에 도착하면 들러리들은 등을 들고 행렬에 참여했습니다.

이 장면은 단순한 풍속 묘사가 아니라 메시아를 신랑으로 고백해 온 이스라엘의 언약 신앙을 배경으로 하는 것이지요.

오늘 본문에서 다섯 처녀는 슬기롭고 다섯 처녀는 미련하다고 말하며 구분합니다.

여기서 성경이 말하는 슬기롭다라는 이 말은 상황을 읽고 미래를 대비하는 영적 분별을 뜻합니다.

참된 지혜는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다가올 현실을 기준으로 오늘을 준비하는 태도를 말하는 것이지요.

미련한 처녀들은 등을 가지고는 있었지만 기름을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차이는 기름에 있었습니다.

기름은 구약에서 왕과 제사장에게 부어지는 표증이요, 성령의 지속적인 인재를 상징합니다.

외적 형식은 있었지만 내적 지속성은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5절은 의미심장합니다.

5 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잘새

 

라고 기록하고 있지요.

미련한 처녀들만이 아니라 슬기로운 처녀들도 같이 졸았던 것입니다.

차이는 졸지 않았는가에 있지 않고, 깨어났을 때 준비되어 있었는가에 있던 것입니다.

기다림은 감정의 열기를 유지하는 일이 아니라, 더딘 시간 속에서도 꺼지지 않을 준비를 갖추는 것에 있습니다.

밤은 길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더딘 시간은 신랑의 부재가 아니라 신부의 준비를 드러내는 시간이 되는 것입니다.

마라나타를 외치는 교회는 어둠 속에서도 기름을 준비하는 공동체입니다. 

 

 

 

미련한 인생이 되지 않도록 내가 날마다 점검할 것은 무엇인가요?
미련한 인생이 되지 않도록 내가 날마다 점검할 것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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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중에 외침이 들립니다.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종말은 예고 없이 임하는 사건이 됩니다.

준비는 그 순간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날을 향한 전 인격적 관계의 결과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지요.

미련한 처녀들은 기름을 나눠 달라라고 요청합니다.

그러나 슬기로운 처녀들은 우리와 너희가 쓰기에 다 부족할까 하노니 차라리 파는 자들에게 가서 너희 쓸 것을 사라고 말하며 거절합니다. 이는 냉정함이 아니라 구원이 대리될 수 없다는 진리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믿음은 공동체 안에서 격려 받을 수 있지만 타인의 준비를 빌릴 수는 없는 것입니다.

결정적인 장면은 10절이지요.

10 그들이 사러 간 사이에 신랑이 오므로 준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

 

성경에서 닫힌 문은 하나님의 최종적 결과와 언약의 완결을 의미합니다.

노아 시대에 방주의 문이 닫혔을 때 그것은 심판이면서 동시에 구원의 경계를 나누는 것이었습니다.

 

12절의 선언은 더욱 엄중합니다.

12 대답하여 이르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였느니라

 

여기서 이 알다라는 말은 단순한 지식이 아니지요.

인격적인 인정과 관계적인 친밀함을 뜻하는 그런 말입니다.

주님을 안다라고 말하는 것과 주님께 인정받는 것은 다른 것입니다.

외적 종교 행위는 있었지만 언약적 주님과의 관계는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런 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날과 그때를 알지 못하느니라.

이 명령은 두려움이 아니라 소망의 부르심입니다.

요한 계시록의 마지막 고백처럼 아맨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라고 외치는 교회는 그 오심을 준비하는 삶으로 응답해야 합니다.

마라나타는 감정적 외침이 아니라 준비된 기다림입니다.

등불이 꺼지지 않도록 오늘을 사는 것이 이 고백의 진정함입니다.

 

 

 

주님의 혼인 잔치에 들어가는 자가 되기 위해 나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요?
주님의 혼인 잔치에 들어가는 자가 되기 위해 나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요?

 

 

 

다시 오실 재림의 주님을 기다리게 하신 하나님
어둠이 길어질수록 더 밝게 타오르는 믿음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마라나타를 외치는 입술과 기름을 준비하는 삶이 하나 되게 하시고 닫힌 문 앞에 서지 않고 혼인 잔치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아맨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라는 고백으로 오늘을 살아가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신랑을 맞이하는 지혜로운 기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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