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3.16 | 생명의 삶 | 권오향 목사
안녕하세요.
오늘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생명의 말씀이 우리의 심령을 새롭게 하기 원합니다.
온누리 교회를 섬기는 권오향 목사입니다.
복음서를 읽다가 참으로 놀라운 사실은 예수님께서 가장 격렬하게 진노하신 대상이 세상 사람들이 아닌 하나님께 열심인 사람들이었다는 겁니다.
왜 예수님은 이토록 강한 진노를 이들에게 쏟아부으신 것일까요?
열심은 있으나 본질을 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진노는 이들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에서 터져 나오는 애통의 눈물이었습니다.
마태복음 23장 13에서 24절 말씀 함께 살펴보시겠습니다.

본질을 망각한 눈먼 인도자
마태복음 23장 13절에서 24절 말씀입니다.
| 1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14 (없음) 15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한 사람을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 16 화 있을진저 눈 먼 인도자여 너희가 말하되 누구든지 성전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 없거니와 성전의 금으로 맹세하면 지킬지라 하는도다 17 어리석은 맹인들이여 어느 것이 크냐 그 금이냐 그 금을 거룩하게 하는 성전이냐 18 너희가 또 이르되 누구든지 제단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 없거니와 그 위에 있는 예물로 맹세하면 지킬지라 하는도다 19 맹인들이여 어느 것이 크냐 그 예물이냐 그 예물을 거룩하게 하는 제단이냐 20 그러므로 제단으로 맹세하는 자는 제단과 그 위에 있는 모든 것으로 맹세함이요 21 또 성전으로 맹세하는 자는 성전과 그 안에 계신 이로 맹세함이요 22 또 하늘로 맹세하는 자는 하나님의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이로 맹세함이니라 2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24 맹인 된 인도자여 하루살이는 걸러 내고 낙타는 삼키는도다 |
예수님은 예수님을 따르는 수많은 무리들에게는 한없이 자비로우셨지만, 유대의 종교 지도자들 그룹에 대해서는 매우 단오 하셨습니다.
이들을 향해 화 있을 진저라고 하시며 이들이 범한 죄를 구체적으로 열거하시는데요.
첫 번째는 하나님의 말씀을 잘못 가르친 죄입니다. 13절입니다.
1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예수님 당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누구보다도 하나님께 열심인 자들이었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장 잘 안다고 자부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문제는 율법을 지키라고 강요할지언정 율법의 정신은 가르치지 않았다는 데 있습니다.
여러분, 율법의 정신은 무엇인가요?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율법의 정신은 도외시한 채 율법의 규칙만을 가르침으로 사람들로 하여금 구원의 은혜를 맛보지 못하게 한 것입니다.
진리로 인한 자유함 대신 속박을 주고, 구월의 은혜 대신 영적인 짐을 지워서 생명 대신 죽음의 길로 인도한 것이죠.
두 번째는 종교적 위세를 떨치기 위한 지나친 열심입니다.
15절을 보실까요?
15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한 사람을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
당시 유대인들은 자신의 교세를 확장하기 위해서 이방인 전도에 힘을 쏟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실상은 하나님께 인도한 것이 아니라 자기들과 똑같은 종교인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죠.
지나친 열심이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독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율법주의와 종교적 열심이 이들만의 문제였을까요?
우리도 별반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됩니다.
오늘날 자녀 세대인 젊은이들이 교회를 떠나는 이유 중에 하나도 부모 세대인 어른들이 은혜 없는 율법만을 강조하였기 때문일 수도 있고, 잃어버린 영혼을 향한 사랑의 마음보다는 교단이나 교회의 확장과 성과를 위해서 열심을 내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일과 열심을 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방향입니다.
방향이 하나님을 향해서 있지 않으면 오히려 더 무서운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죠.
영적 지도자들의 타락이 성도들의 타락보다 훨씬 더 심각한 악영향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묵과하여서는 안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잘 전하고 있는지,
나의 지나친 열심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실족해하지는 않는지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지금 내가 걷고 있는 길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인지도 살펴야 합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은 늘 겸손한 마음으로 자신을 성찰하고 마음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잃어버린 영혼을 깊이 사랑하는 자입니다.
우리를 통하여서 그리스도의 온전한 복음이 전해지기를 원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와 사랑이 흘러가기를 소망합니다.

17절부터 21절까지는 예수님의 세 번째 화로 하나님보다 물질에 더 관심이 있는 자들을 향한 저주 선언입니다.
이들은 성전보다 성전을 휘감고 있는 금을 더 소중히 여겼으며, 재단보다 재물에 더 마음을 두었고, 하나님보다 자신이 느린 행위에 더 집중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재물의 눈이 어두워 탐욕으로 얼룩진 자들을 향하여서 화 있을 진저 눈먼 인도자여라고 지적하시며, 이들의 죄악을 낱낱이 파헤치십니다.
여러분, 성전이 거룩한 이유는 하나님이 거기에 계시기 때문이고,
재단이 중요한 이유는 하나님께 드려지는 모든 것이 거룩하기 때문일지인데,
하나님보다 하나님과 관련된 물질이나 행위를 더 중히 여긴다면, 그것은 본질을 잃어버린 형식적인 신앙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더욱 심각한 것은 자신들의 문제가 무엇인지 모른다는 데 있습니다.
늘 빠짐없이 제사를 드리고 있으니 스스로는 꽤나 믿음이 깊은 신앙인이라고 착각을 하지만,
예수님은 이들을 향해서 어리석은 맹인이라고 지적하십니다.
요한계시록 3장에서도 라오디아 교회를 향해서 너희는 안약을 사서 네 눈에 바르라고 경고하신 말씀을 기억하여야 합니다.
만약 예배 형식이나 프로그램에 갇혀서 예배의 감격을 잃어버리고 있으면서도 이만하면 됐지라고 스스로 자부하고 있다면,
어리석은 영적 소경임을 빨리 알아차리고 하나님의 말씀 앞에 자신을 비추어 보아야 합니다.
말씀이 주는 영적 유익 중의 하나는 자기기만을 줄일 수 있다는 데 있습니다.
예수님의 네 번째 화는 23절
2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이들의 결정적인 문제는 신앙의 본질을 잃었다는 데 있습니다.
아주 작은 식물의 십일조까지 계산할 정도로 철저하였지만, 하나님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시는 것은 정의와 긍휼과 믿음을 저버린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의 본질은 무엇을 하느냐의 행위보다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차리고, 하나님이 귀히 여기시는 것을 우리도 귀히 여기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우리도 원하며 사는 것이죠.
그러나 유대의 지도자들은 겉으로 드러나는 일에는 생색을 냈지만, 정말 중요한 것들은 모른 척하면서 책임을 회피하는 위선적인 신앙인 이들이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이들의 눈먼 것을 보시며 하루살이는 걸러내고 낙타는 삼키는 도다 개탄하십니다.
작은 것에는 걸려낼 만큼 민감하면서도 큰 죄에 대해서는 무감각한 자들을 향한 풍자적 비유였죠.
그러므로 우리는 늘 신앙의 본질로 돌아가야 합니다.
본질을 잃으면 형식적인 신앙에 머무를 수밖에 없으며, 예수님이 가신 길이 아닌 다른 길로 갈 수도 있으며,
나 하나로 그치지 아니하고 다른 사람의 신앙마저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합니다. 나는 주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고 있는가?
유대 종교 지도자들을 향한 예수님의 말씀은 그들을 정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회복해하기 위함임을 깨달으면서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 앞에 정직하고 겸손하게 서기를 원합니다.
형식보다는 관계, 열심보다는 은혜, 규칙보다는 사랑을 나타내는 주님의 참 제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어느덧 우리의 신앙이 본질이 아닌 형식으로 돌아가고 있음을 회개합니다.
우리의 눈먼 것을 용서하여 주시고 다시금 눈을 떠서 하나님을 보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이 진정으로 원하시는 것들을 기쁨으로 행하며 하나님의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함께 읽는 큐티
- 본질을 상실하면 진노가 따릅니다 (마태복음 21장)
- 위선을 버리고 진실하게, 교만을 버리고 겸손하게 (마태복음 2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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