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2.01 | 생명의 삶 | 신동식목사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저는 평택 온누리교회를 섬기는 신동식 목사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인생에 무엇이 필요한지, 또 무엇이 진짜 중요한 것인지를 알고 계십니다.
중풍병으로 고통스러운 인생을 살아가는 한 사람에게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죄인을 취급받으며 살아가던 한 세리의 인생을 어떻게 바꾸셨는지 보여주십니다.
우리 예수님은 우리의 인생을 어떻게 인도하기를 원하실까요?
오늘 말씀은 마태복음 9장 1절에서 13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죄인을 위해 오신 하나님 아들
마태복음 9장 1절에서 13절 말씀입니다.
| 1 예수께서 배에 오르사 건너가 본 동네에 이르시니 2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데리고 오거늘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3 어떤 서기관들이 속으로 이르되 이 사람이 신성을 모독하도다 4 예수께서 그 생각을 아시고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마음에 악한 생각을 하느냐 5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 중에 어느 것이 쉽겠느냐 6 그러나 인자가 세상에서 죄를 사하는 권능이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7 그가 일어나 집으로 돌아가거늘 8 무리가 보고 두려워하며 이런 권능을 사람에게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니라 9 예수께서 그 곳을 떠나 지나가시다가 마태라 하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 10 예수께서 마태의 집에서 앉아 음식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와서 예수와 그의 제자들과 함께 앉았더니 11 바리새인들이 보고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 12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13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에 오셨을 때 한 중풍병자를 고치셨습니다.
이 사건의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죄를 용서하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지붕 위에서 내려오는 병자를 우리 예수님과 모든 사람들이 보았습니다.
그런데 특별한 것은 예수님이 친구들의 믿음을 보셨다는 것입니다.
친구들은 '누워 있는 환자가 예수님께만 가면 반드시 고침 받을 것이다'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가끔 믿음 없는 친구를 위해 먼 곳에서 함께 모여 믿음 없는 그 친구를 교회에 함께 데리고 와서 예배드리는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그분들의 표정을 보면 얼굴에 기쁨과 안도감이 넘칩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책임져 주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 예수님도 그 믿음을 보시고 중풍 병자를 고쳐주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 환자에게 이렇게 선포하십니다.
'내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중풍 평자의 인생 최대의 문제는 병이 나는 것이지만, 우리 예수님의 눈은 다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인생에서 죄의 문제가 가장 시급하다는 것을 잘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진짜 복음, 죄 사함의 축복을 선언하시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을 기도 제목으로 가지고 나오지만 우리 예수님은 영원한 생명의 문제를 가장 중요하게 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과 같이 영의 귀와 영의 눈이 열리게 하여 주옵소서 기도해야 합니다.
이 장면을 보고 있던 서기관은 깜짝 놀랐습니다.
예수님을 보고 마음속에 비판 그리고 정죄하는 마음이 일어났습니다.
'죄를 용서하는 능력은 하나님만 가능하신데, 저가 누구이기에 죄 용서를 외치는가? 불경하다. 신성 모독이다.'
마음속으로 비판하고 있을 우리 예수님 그 마음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4절에
4 예수께서 그 생각을 아시고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마음에 악한 생각을 하느냐
예수님을 보고도 하나님을 보고도 신성 모독이라고 잘못 보았기 때문입니다.
영의 눈이 가려져 있었습니다.
그들은 성경을 잘 알고 가르치는 서기관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직업이 되고 정죄의 도구가 되었던 것입니다. 6절에 보면
6 그러나 인자가 세상에서 죄를 사하는 권능이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7 그가 일어나 집으로 돌아가거늘
예수님은 죄 사하는 능력과 병 고치는 능력을 비교하시면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죄 사함의 능력에 관하여 가르쳐 주셨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요 온 인류에 넘을 수 없는 최대의 장벽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병도 물론 고치시지만, 인생의 가장 중요한 죽음의 문제 생명의 문제를 해결하여 주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이 시간 다시 한 번 믿음으로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주께서 '일어나 내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말씀하여 주실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 마테는 유대인 출신 세리입니다.
세리는 유대 사회에서 죄인 취급을 받았는데 동족의 돈을 로마에 바치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세관도 죄인의 상징적인 공간으로 여겨졌습니다.
예수님은 마테에게 말씀하십니다.
'일어나 나를 따르라'
예수님을 따르는 일에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내가 있던 자리에서 일어나야 합니다. 그리고 다른 것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모두 자기의 그물을 버리고 배를 뒤로 하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제자는 주님을 따르는 사람입니다.
주님께서 부르신다면 이 부르심에 일어나는 용기, 따르는 용기를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그래야 부르심에 응답할 수 있습니다.
마테는 예수님을 자신의 집에 초대했습니다.
이 사건은 바리세인들에게 비난거리가 되었습니다.
바리새인은 '죄인과 분리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거룩하게 된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죄인을 분리의 대상이 아니라 회복의 대상으로 보셨습니다. 그래서 12절에
12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예수님은 스스로 자기를 의롭게 여기는 자를 건강한 자로 자신의 상태를 아는 죄인을 병든 자로 표현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주님의 도움이 필요하십니까?
우리의 신앙생활이 스스로 의롭게 여긴다면 예수님 긍휼이 필요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죄인을 찾아 회복시키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을 의지하는 사람은 결국 주님과 함께 먹고 마시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의지하십시오.
주님께서 여러분의 마음 속에 오실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 13절 말씀에 나는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13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호세야 6장 6절 말씀을 인용하신 것입니다.
당시 하나님의 언약을 깨뜨리고도 아무 일이 없다는 듯 형식적인 제사만 드리는 백성들을 꼬집으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매일 겸손한 마음으로 주님을 의지하십시오.
그래서 주님과 함께 먹고 마시는 행복한 하루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하나님
우리를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눈앞에 보이는 문제만 붙들고 살아온 우리에게 죄를 용서하시는 주님의 권능을 알게 하시고
마태를 부르신 것처럼 우리를 부르실 주님의 음성에 즉시 일어나 따르는 순종을 주옵소서.
제사보다 긍휼을 원하시는 주님의 마음을 알고
우리 주님과 영적인 식탁 교재가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함께 읽는 큐티
'CGNTV > 생명의 삶'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깊은 긍휼을 소유한 일꾼이 필요합니다(마태복음 9:27~38)(20260203) (1) | 2026.02.03 |
|---|---|
| 지금은 주님의 일하심을 보며 기뻐할 때(마태복음 9:14~26)(20260202) (0) | 2026.02.02 |
| 자연과 영적 세계의 주관자(마태복음 8:23~34)(20260131) (0) | 2026.01.31 |
| 섬김과 순종으로 시작되는 제자도(마태복음 8:14~22)(20260130) (1) | 2026.01.30 |
| 예수님이 감동하신 믿음의 고백(마태복음 8:1~13)(20260129) (1) | 2026.01.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