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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영적 세계의 주관자(마태복음 8:23~34)(2026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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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1.31 | 생명의 삶 | 임채영목사

 

 

 

 

오늘도 말씀으로 여러분과 함께 할 수 있어서 참 행복한 하루입니다.

저는 아현동에 있는 서북교회를 섬기고 있는 임채영 목사입니다.

우리가 처음에 신앙생활 하면서 가장 많이 던지는 질문이 있다면 '무엇?'이라는 질문일 겁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나에게 무엇을 해 줄 수가 있는가? 나에게 어떤 유익이 있을까?

우리는 이런 실용주의적 차원에서 신앙에 접근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성숙한 사람의 신앙이 되려면 이 무엇?이라고 하는 질문에서 누구?

라고 하는 질문으로 바뀌어야 됩니다.

즉, 예수님은 누구신가 이에 대한 확신 없이, 예수가 누구게 누구인가에 대한 진정한 신앙의 고백 없이 참된 그리스도인은 될 수 없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을 말씀 마태복음 8장 23절부터 34절을 통해서 예수님이 누구이신지를 확인하는 은혜가 여러분들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자연과 영적 세계의 주관자
자연과 영적 세계의 주관자

 

 

 

자연과 영적 세계의 주관자

 

 

마태복음 8장 23절에서 34절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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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배에 오르시매 제자들이 따랐더니
24 바다에 큰 놀이 일어나 배가 물결에 덮이게 되었으되 예수께서는 주무시는지라
25 그 제자들이 나아와 깨우며 이르되 주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
26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하시고 곧 일어나사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시니 아주 잔잔하게 되거늘
27 그 사람들이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이가 어떠한 사람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하더라
28 또 예수께서 건너편 가다라 지방에 가시매 귀신 들린 자 둘이 무덤 사이에서 나와 예수를 만나니 그들은 몹시 사나워 아무도 그 길로 지나갈 수 없을 지경이더라
29 이에 그들이 소리 질러 이르되 하나님의 아들이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때가 이르기 전에 우리를 괴롭게 하려고 여기 오셨나이까 하더니
30 마침 멀리서 많은 돼지 떼가 먹고 있는지라
31 귀신들이 예수께 간구하여 이르되 만일 우리를 쫓아 내시려면 돼지 떼에 들여 보내 주소서 하니
32 그들에게 가라 하시니 귀신들이 나와서 돼지에게로 들어가는지라 온 떼가 비탈로 내리달아 바다에 들어가서 물에서 몰사하거늘
33 치던 자들이 달아나 시내에 들어가 이 모든 일과 귀신 들린 자의 일을 고하니
34 온 시내가 예수를 만나려고 나가서 보고 그 지방에서 떠나시기를 간구하더라

 

 

 

자 오늘 본문이 시작되는 23절을 한번 보세요.

23 배에 오르시매 제자들이 따랐더니

 

자 보세요

예수님이 먼저 배에 오르시고 제자들이 따라서 탔어요.

그러니까 제자들이 이 항해를 선택한 게 아니에요.

예수님을 따라 간 겁니다.

 

 

신앙은 언제나 이 지점에서 시작됩니다.

상황을 계산해서 안전한 선택을 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를 따라가고 있느냐? 이것이 우리 신앙의 본질인 거죠.

자 그런데 24절을 보세요.

24 바다에 큰 놀이 일어나 배가 물결에 덮이게 되었으되 예수께서는 주무시는지라

 

그런데 배에 오르자마자 큰 풍랑이 일어납니다.

여기에서 큰 놀은 단지 파도가 높은 정도가 아닙니다.

방향을 이렇게 만들고 배의 안정성까지도 무너뜨릴 수 있는 큰 사건이에요.

그런데 예수님은 주무시고 계십니다.

제자들에게는 이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을 겁니다.

예수님을 따라왔어요.

그런데 평안이 아니라 위기입니다.

예수님이 함께 계세요. 그런데 예수님이 침묵하십니다.

그래서 이제는 제자들이 예수님을 깨우면서 이렇게 재촉합니다. 25절을 한번 보세요.

25 그 제자들이 나아와 깨우며 이르되 주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풍랑 자체가 아니라 제자들의 해석입니다.

보세요

바람은 이 풍랑은 객관적인 사건이에요.

그런데 우리가 죽겠다 이 말은 제자들의 해석입니다.

인간은 언제나 사건보다 해석에 의해서 무너지죠.

문제보다 그 문제를 바라보는 해석에 의해 흔들리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일어나셔서 바람보다 제자들의 마음을 먼저 다루십니다.

자 26절 상반절을 보세요.

26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작은 자 들아 하시고 곧 일어나사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시니 아주 잔잔하게 되거늘

 

예수님은 풍랑을 먼저 꾸짖지 않으셨어요 제자들의 두려움에 대해서 예수님은 질책하십니다.

왜냐하면 신앙의 적은 상황이 아니라 상황을 해석하는 사람들의 마음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어지는 26절 하반절도 보세요.

26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하시고 곧 일어나사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시니 아주 잔잔하게 되거늘

 

여기서 예수님이 일어나셨다라고 나오는데 이것은 당황한 사람이 벌떡 일어나는 모습이 아니에요.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상황 모든 걸 아는 그분이 마침내 이 사건에 개입하는 모습입니다.

우리가 보기에 늦은 것 같아도 우리 주님에게는 결코 늦지 않습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끝처럼 보여도 주님에게는 때가 되는 겁니다.

이 예수님의 말 한마디에 바람은 힘을 잃고 바다는 제자리로 물러갑니다.

 

 

지금 나에게 찾아온 풍랑은 어떤 것이며, 그 풍랑 속에서 나의 마음은 어떠한가요?
지금 나에게 찾아온 풍랑은 어떤 것이며, 그 풍랑 속에서 나의 마음은 어떠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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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제 풍랑이 잔잔해졌죠.

그런데 그 뒤에 사람들이 이제 정신을 차리고 예수님께 묻습니다. 27절을 보세요.

27 그 사람들이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이가 어떠한 사람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하더라

 

이 질문은 참 건강한 질문이에요.

이이가 어떤 사람이기에 바람과 받아도 순종하는가? 두려움이 아니라 경외에서 나온 질문이죠.

이 도대체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

 

 

자 28절 보세요.

28 또 예수께서 건너편 가다라 지방에 가시매 귀신 들린 자 둘이 무덤 사이에서 나와 예수를 만나니 그들은 몹시 사나워 아무도 그 길로 지나갈 수 없을 지경이더라

 

성경은요.  이 이이가 누구이신가에 대한 대답을 하지 아니하시고 배경을 바꾸십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가다라 거라사 지방으로 가십니다.

그곳에서 예 예수님은 귀신 들린 두 사람을 만나시는데요.

이들은 공동체에서 쫓겨난 사람들 그래서 무덤 사이에 거하는 사람들입니다.

사회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죽음의 경계에 서 있는 그들, 그런데 예수님은 그 경계를 넘어오십니다.

누구도 가지 않으려는 그곳으로 들어가십니다.

이것이 복음의 이동 방향이죠.

 

 

자 그런데 29절을 보세요.

29 이에 그들이 소리 질러 이르되 하나님의 아들이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때가 이르기 전에 우리를 괴롭게 하려고 여기 오셨나이까 하더니

 

자 여기 하나님의 아들이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이 말속에는요

두게의 진실이 함께 합니다.

하나는 정확한 인식이에요.

그런데 다른 하나는 완강한 거부입니다. 그들은 분명히 예수의 정체를 알고 있어요.

그런데 그들은 자신들이 아는 그 사실이 자기의 삶을 흔들까 봐 더 거세게 밀어냅니다.

들어오지 마라 이거죠. 이 영역은 우리 것이다. 여기는 내가 손댈 일이 아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밀어냅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멀리 보이는 돼지 때로 귀신들을 들어가게 하시죠.

귀신들이 들어간 그 돼지들은 결국 물에 빠져 죽게 됩니다.

이 사건이 있은 후에 마을 사람들이 예수님께 나오죠 33절 34절입니다.

33 치던 자들이 달아나 시내에 들어가 이 모든 일과 귀신 들린 자의 일을 고하니
34 온 시내가 예수를 만나려고 나가서 보고 그 지방에서 떠나시기를 간구하더라

 

기가 막힌 장면이죠. 자 귀신 들린 사람이 회복됐어요. 한 인간의 삶이 다시 시작된 겁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기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일을 행하신 예수님에게 떠나 달라고 요청합니다.

그 이유는 그들의 경제적인 손해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오늘도 우리를 더 깊은 질문으로 초대하십니다. 

나는 너에게 어떤 존재냐? 이 질문을 안고 하루를 사는 사람은 쉽게 무너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바람이 아니라 생명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알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오늘도 주님을 배에 모시고 두려움이 아니라 질문으로 질문이 절망이 아니라 믿음으로 이어지는 복된 하루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내 삶에서 주님으로 인해 회복되고 재창조되어야 할 부분은 무엇인가요?
내 삶에서 주님으로 인해 회복되고 재창조되어야 할 부분은 무엇인가요?

 

 

하나님 아버지
풍랑 같은 하루 속에서도 우리를 떠나지 않으시는 주님을 신뢰합니다.
눈앞에 상황과 두려움이 마음을 흔들 때 문제의 크기가 아니라 주님의 인재를 먼저 보게 하옵소서.
우리가 쉽게 내리는 부정적인 결론 대신, 주님은 어떤 분이십니까?라고 묻는 믿음을 회복하게 하시고
삶의 해석과 결정의 중심이 다시 주님께로 옮겨지게 하옵소서.
회복이 우리의 익숙한 질서를 흔들 때에도
계산과 거절이 아니라 순종과 신뢰로 반응하게 하시며
오늘의 선택과 걸음 속에서 주님이 참된 주인이심을 드러내는 귀한 삶을 살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자연과 영적 세계의 주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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