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섬김과 순종으로 시작되는 제자도(마태복음 8:14~22)(20260130)

반응형

2026.01.30 | 생명의 삶 | 임채영 목사

 

 

 

 

 

오늘도 말씀으로 여러분과 함께 할 수 있어서 너무 행복한 하루입니다.

저는 아현동에 있는 서북교회를 섬기는 임채영 목사입니다.

 

우리는 보통 문제가 해결되면 끝 그렇게 생각하죠.

아프면 낳는 게 끝이고, 막히면 뚫리는 게 끝이고, 불안하면 평안해지면 된다고요.

그래서 우리는 기도할 때도 이렇게 기도하죠.

주님, 이 문제만 해결해 주세요.

그런데 인생을 조금 더 살다 보면 이것이 끝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오히려 문제 해결 이후에 이런 질문이 시작됩니다.

자 그럼 이제 나는 어떻게 살아야 되는가?

그 예수님의 치유는 늘 우리를 여기까지 데려갑니다.

예수님의 목적은 우리를 편하게 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다시 살게 하시는 겁니다.

다시 길 위에 우리를 세우십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병이 낫는 장면에서 시작하지만 곧바로 제자도의 질문으로 넘어갑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단지 문제가 풀리는 은혜가 아니라 삶의 방향이 바뀌는 더 깊은 은혜를 경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말씀은 마태복음 8장 14절부터 22절입니다.

 

 

 

섬김과 순종으로 시작되는 제자도
섬김과 순종으로 시작되는 제자도

 

 

 

 

섬김과 순종으로 시작되는 제자도

 

 

 

마태복음 8장 14절에서 22절 말씀입니다.

더보기
14 예수께서 베드로의 집에 들어가사 그의 장모가 열병으로 앓아 누운 것을 보시고
15 그의 손을 만지시니 열병이 떠나가고 여인이 일어나서 예수께 수종들더라
16 저물매 사람들이 귀신 들린 자를 많이 데리고 예수께 오거늘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 내시고 병든 자들을 다 고치시니
17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에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
18 예수께서 무리가 자기를 에워싸는 것을 보시고 건너편으로 가기를 명하시니라
19 한 서기관이 나아와 예수께 아뢰되 선생님이여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따르리이다
20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시더라
21 제자 중에 또 한 사람이 이르되 주여 내가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22 예수께서 이르시되 죽은 자들이 그들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니라

 

 

오늘 본문이 시작되는 14절을 한번 보십시오.

14 예수께서 베드로의 집에 들어가사 그의 장모가 열병으로 앓아 누운 것을 보시고

 

오늘 말씀은요. '예수께서 베드로의 집에 들어가사' 이렇게 시작하죠.

여러분 예수님은 회당에만 계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사람의 집 안으로 들어오시는 분입니다.

 

집 이 집이란 사적인 공간이죠. 밖에서는 우리가 어떤 역할들을 하죠?

웃기도 하고 괜찮은 척 하기도 하고 참기도 하고 그런데 집에 들어가면 이 연기가 내려갑니다.

아픔이 숨겨지지 않습니다. 지친 얼굴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그러니까 여기에서 집이라고 하면 우리 삶에서 가장 솔직한 자리일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바로 그 자리로 들어오시는 겁니다.

 

그런데 들어와 보니 그 집에 베드로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워 있습니다.

고대 사회에서 열병은 치명적일 수 있습니다.

정확한 원인도 치료법도 알 수 없었기에 이 열병은 언제든지 죽음의 전조로 받아들일 정도로 위중한 병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열병은 단순한 통증이 아니라 가족 전체의 불안이었고 집안의 공기를 바꿀 수 있는 사건입니다.

이것을 예수님이 보시는 겁니다.

'앓는 것을 보시고'

이 치유는 예수님이 보시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예수님이 보실 때 여기에서 은혜가 시작되는 거죠.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15절을 보세요.

15 그의 손을 만지시니 열병이 떠나가고 여인이 일어나서 예수께 수종들더라

 

예수님은 말씀만으로도 고치실 수 있죠. 그런데 여기서는 손을 대십니다.

이 손을 대신다는 것은 단지 치료 기술이 아니라 관계의 회복입니다.

아픈 사람은 고립되기 쉽거든요.

병은 사람을 침대에 눕히고, 침대는 사람을 생활에서 분리합니다.

그 예수님의 손길은 너는 혼자가 아니라는 선언 아니었을까요?

그리고 놀라운 결말이 나옵니다. 여자가 일어나 예수께 수종 들더라.

치유의 목적이 편안해짐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치유는 사람을 다시 삶으로 세웁니다.

다시 섬김의 자리로 불러내는 거예요.

여기에서 섬김은 회복된 존재가 자신이 받은 생명을 흘려보내는 방식입니다.

그러기에 치유는 편안함의 종착지가 아니라 사명으로 향하는 출발입니다.

 

 

나는 치유받은 사명자로서 누구의 손을 잡아 일으켜 주어야 할까요?
나는 치유받은 사명자로서 누구의 손을 잡아 일으켜 주어야 할까요?

 

 

반응형
728x90

 

 

자 이제 이어지는 16절을 보세요.

16 저물매 사람들이 귀신 들린 자를 많이 데리고 예수께 오거늘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 내시고 병든 자들을 다 고치시니

 

베드로의 장모의 치유 소식을 들은 사람들이 계속해서 예수님께 나오는 거예요.

그 예수님은요 계속 고치시는 겁니다.

그런데 이 마테는 이 장면을 단순한 기적 모험으로 기록하고 있지 않습니다.

17절을 붙여서 이렇게 해석해요.

17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에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

 

여기에 핵심 단어가 하나 나오죠 담당 (짊어짐)이라는 겁니다.

공감은 감정이 아닙니다. 짐을 나누는 겁니다. 사랑은 말로 끝나서는 안 됩니다. 실제로 무게를 옮기는 겁니다.

타인의 고통을 내 삶 안으로 일부러 들여놓는 순간 물론 내 삶은 가벼울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고치시되 동시에 짊어지십니다.

그러니까 결국 십자가가 그 짊어짐의 절정 아니었나요?

그러니까 오늘 본문은 치유의 능력만 보여주는 게 아니라 예수님의 방식 즉 짐을 지는 방식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이 짐을 지시기에 사람들이 놓임을 받습니다.

그런데 그다음 장면이 중요합니다. 18절입니다.

18 예수께서 무리가 자기를 에워싸는 것을 보시고 건너편으로 가기를 명하시니라

 

무리가 예수님을 에워쌌어요. 겉으로는 사랑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의 기대는 때때로 여기에 머물러 주세요 라는 요구가 됩니다.

박수는 달콤하지만, 그 박수가 예수님을 그냥 기적을 일으키는 사람으로만 묶어 둘 수도 있거든요.

예수님이 그걸 아시는 겁니다.

그래서 그곳을 떠나 건너편으로 가자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머무시는 분이 아닙니다. 길을 여시는 분입니다. 그 길을 가는데 거기에서 첫 번째 사람을 보게 됩니다.

19절을 보겠습니다.

19 한 서기관이 나아와 예수께 아뢰되 선생님이여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따르리이다

 

정말 말은 멋있죠. 어디로 가든지 따르겠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그래 참 잘했다 이렇게 칭찬하지 않으세요

오히려 현실을 말씀하십니다. 20절이에요.

20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시더라

 

지금 예수님은 그의 열정을 꺾으려는 게 아닙니다.

따라오는 길이 예수를 따르는 길이 낭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시는 겁니다.

제자도는 박수받는 길이 아니라 때로는 안정과 편안함을 내려놓는 길입니다.

예수님의 곁은 따뜻했지만, 늘 편한 자리는 아닙니다.

그래서 지금 예수님은 먼저 물으시는 거예요. 너 정말 준비됐느냐? 너 정말 준비됐느냐?

그리고 이제 두 번째 사람이 나와서 말합니다. 21절을 보세요.

21 제자 중에 또 한 사람이 이르되 주여 내가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여러분 이 말이 맞는 말이에요. 장례는 중요한 책임입니다. 효도는 귀한 일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단호하게 말씀하세요.

22절 보세요.

22 예수께서 이르시되 죽은 자들이 그들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니라

 

여러분 이 말씀을 오해하지 마세요.

예수님이 인간의 정을 인간의 도리를 부정하시는 게 아닙니다.

예수님은 중심의 자리를 분명히 하자는 겁니다.

 

여러분 우리는 늘 이 문제로 갈등해요.

지금 당장 해야 할 일과 끝까지 붙들어야 되는 영원한 가치 이 사이에서 장례는 과거를 정리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주님을 따르는 것은 미래를 여는 일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묻는 질문이 바로 이것 아닐까요?

이제 치유를 받았으니 부름을 받았으니 이제 어떻게 살 것인가?

예수님은 우리를 눕혀두지 않으십니다. 일으키십니다.

그리고 일으키신 다음에는 반드시 사명의 길 위에 세우십니다.

그래서 치유는 끝이 아니라 시작입니다.

편안함으로 끝나지 않고 삶의 방향으로 이어집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주님 앞에서 이렇게 기도해야 됩니다.

주님, 저를 고치실 뿐 아니라 저를 주님을 따르게 하옵소서.

문제만 해결 받는 신앙이 아니라 주님을 따라가는 제자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신앙이 되게 하옵소서.

그 길을 걷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주님의 부르심 앞에 나를 주저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요?
주님의 부르심 앞에 나를 주저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요?

 

 

 

하나님 아버지
베드로의 장모를 모시고 손을 대어 고치신 주님
오늘 우리도 보와 주옵소서.
우리의 연약함을 만져주시고 지친 몸과 마음을 회복시켜 주옵소서.
그러나 치유에서 멈추지 않게 하시고
일어나 주님을 섬기며 따르는 삶으로 나아가게 하옵소서.
안정의 욕망에 묶이지 않게 하시고
주님의 부르심 앞에서 우선순위를 새롭게 하옵소서.
오늘도 나를 따라오라 하시는 주님의 음성에 순종하기를 원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섬김과 순종으로 시작되는 제자도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