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1.29 | 생명의 삶 | 임채영목사
오늘도 말씀으로 여러분과 함께 할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
저는 아현동에 있는 서북교회를 섬기고 있는 임채영 목사입니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경계 안에서 살고 싶어 하죠.
익숙한 사람들, 안전한 기준, 내 편과 남의 편을 나누는 선 안에 있으면 마음이 좀 놓이거든요.
경계는 우리에게 안정감을 주지만 동시에 사람을 갈라놓기도 합니다.
누군가는 안쪽으로 들어오고 누군가는 바깥쪽으로 밀려나는 그런데 성경을 보면 우리 예수님은 자주 이 경계를 넘어오십니다.
우리가 여기까지라고 그어놓은 선을 우리 주님은 거기까지 가버리십니다.
오늘 본문도 보시면 예수님이 산에서 내려오신 직후의 이야기입니다.
당시 사회는 경계가 아주 뚜렷했죠.
깨끗한 사람과 부정한 사람, 유대인과 이방인, 자격 있는 사람과 자격 없는 사람 이 선이 분명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우리 예수님은 그 선들을 하나씩 넘어오십니다.
오늘 우리도 이 말씀을 따라 주님이 걸어가신 그 길을 함께 걸으며 내 안의 경계를 돌아보고 필요하다면 넘어서는 결단도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은 마태복음 8장 1절부터 13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감동하신 믿음의 고백
마태복음 8장 1절에서 13절 말씀입니다.
| 1 예수께서 산에서 내려 오시니 수많은 무리가 따르니라 2 한 나병환자가 나아와 절하며 이르되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하거늘 3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시니 즉시 그의 나병이 깨끗하여진지라 4 예수께서 이르시되 삼가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고 다만 가서 제사장에게 네 몸을 보이고 모세가 명한 예물을 드려 그들에게 입증하라 하시니라 5 예수께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한 백부장이 나아와 간구하여 6 이르되 주여 내 하인이 중풍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괴로워하나이다 7 이르시되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 8 백부장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사옵나이다 9 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요 내 아래에도 군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10 예수께서 들으시고 놀랍게 여겨 따르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 11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동 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 12 그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13 예수께서 백부장에게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 하시니 그 즉시 하인이 나으니라 |
오늘 본문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1 예수께서 산에서 내려오시니 수많은 무리가 따르니라
2 한 나병환자가 나아와 절하며 이르되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하거늘
여기 나병이라고 번역된 병은 오늘날 말로 하면 한샘병이기도 하고요 더 넓게는 악성 피부병을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그런데 이 병이 무서운 이유는 단지 몸만 아픈 것이 아니라 이 사람을 사회에서 고립시키는 병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병에 걸리면 공동체 예배에서도 일상에서도 참여할 수 없고요.
다른 사람들이 오지 못하도록 스스로 부정하다 부정하다 이렇게 외치고 다녀야만 했습니다.
인간이 견디기 힘든 고통은 그 아픔 자체도 있지만 혼자일 수밖에 없는 외로움 사실은 이것이 그 사람을 더 무너뜨리는 거죠.
그런데 이 사람이 예수님 앞에 나와서 이렇게 말합니다.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여러분 지금 이 사람의 고백을 보세요.
예수님의 능력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하실 수 있나? 이것이 아니라 원하십니까?입니다.
그러니까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의지의 문제예요.
다시 말해 이런 질문이죠.
주님 저를 고치실 의지가 있으십니까?
주님 저 같은 사람도 사랑하시나요?
그때 예수님이 하신 행동을 보세요. 3절입니다.
3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시니 즉시 그의 나병이 깨끗하여진지라
예수님은 말씀만 하셔도 되는데 먼저 손을 내밀어 만지십니다.
당시 규정으로는 부정한 사람을 만지면 나까지 부정해진다고 생각했잖아요.
그런데 예수님은 그 경계를 넘으시는 거예요. 그래서 손을 내미십니다.
우리는 누군가를 만질 때 그를 문제가 아니라 사람으로 인정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이 사람은 사실은 병이 낫기 전에 이미 중요한 것을 얻습니다.
'아 나는 버려진 사람이 아니구나'
지금 그 선언을 예수님의 손길로 받은 겁니다.

그러면서 이제 장면이 바뀌죠 5절과 6절을 보세요.
5 예수께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한 백 부장이 나아와 간구하여
6 이르되 주여 내 하인이 중풍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괴로워하나이다
이 백 부장은 로마 군대의 장교입니다. 그는 힘 있는 사람이었고 동시에 이방인입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거는요 이 사람이 예수님께 나온 이유가 자기 문제가 아니라 하인의 고통 때문이라는 겁니다.
하인 그러니까 노예죠. 그 노예를 도구로만 본 것이 아니라 한 사람으로 보는 마음이었던 거죠.
여기에서 그의 내면이 드러납니다.
예수님께서도 이것을 보셨는지 내가 가서 고쳐주겠다 이렇게 말씀하시죠.
그러니까 백 부장이 의외의 말을 합니다. 8절을 볼까요?
8 백 부장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사옵나이다
백 부장은 자기 마음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얘기해요.
'주님 제 집에 들어오시는 것은 제가 감당이 안 됩니다.'
이 말에는 두려움도 있고 부끄러움도 있고 자신을 아는 정직함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어요.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습니다.'
여러분 이 고백이 감동적인 이유는 믿음이 화려한 확신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믿음은 내가 완벽해져서 주님을 모시는 힘이 아니라 지금 이 자리에서도 주님의 말씀을 의지하는 마음입니다.
그러면서 9절을 보세요.
9 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요 내 아래에도 군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이 사람은 아는 거예요.
권위는 거리가 문제 되지 않는다는 것을요.
명령이 내려가면 움직이게 되어 있거든요.
그러니까 지금 이 사람은 예수님을 능력 있는 치료자 정도로 본 게 아니라 말씀으로 다스리시는 권위의 주님으로 본 겁니다.
자 백 부장의 믿음의 구조는요 단순하지만 분명합니다.
먼저 그는 자기의 한계를 인정합니다.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주님의 권위를 정확하게 봅니다.
말씀만으로 충분합니다.
그러고 마지막으로 그는 결과를 통제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맡깁니다.
그러면 낫겠습니다.
여러분 이 백부장의 믿음은 내가 주인으로 통제하려는 삶에서 주님께 맡기는 삶으로 방향을 바꾸는 겁니다.
그리고 나서 예수님은요 또 다른 말씀을 하십니다.
바로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선언하시는데요. 11절 12절입니다.
11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동 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
12 그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이것은 경계의 재편입니다.
즉 사람이 만들어놓은 경계 유대 이방, 정결과 부정, 안과 밖
그 선을 하나님이 다시 그으실 것이라는 선언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식탁은 혈통이나 자격 증명으로 앉는 자리가 아닙니다.
주님의 권위 앞에서 자신을 정렬하는 믿음으로 열리는 자리입니다.
예수님의 은혜는 늘 이 경계를 넘어오지요.
손대면 안 된다고 여겨지던 사람에게 손을 내미시고, 멀리 있다고 여겨지던 이방인의 집에서도 말씀으로 생명을 흘려보내십니다.
이 은혜의 길을 따라 오늘 우리도 하나님의 식탁에 참여하는 그러한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 말씀으로 우리 안의 경계를 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환자를 만지신 주님의 손길로 우리 안의 배제와 두려움을 치유하여 주옵소서.
백 부장의 고백처럼 예수님의 말씀에 권위를 믿고 맡기게 하시고, 내가 통제하려는 마음을 내려놓게 하옵소서.
우리의 관계 속에 주님의 나라가 임하게 하시고,
우리의 삶이 내가 원하노니 하시는 주님의 의지 안에서 날마다 새로워지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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