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2.02 | 생명의 삶 | 신동식목사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저는 평택 오누리 교회를 섬기는 신동식 목사입니다.
교회마다 다른 전통이 있습니다.
옛날부터 이렇게 저렇게 해왔던 여러 가지 좋은 전통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에 하나님의 말씀보다 전통이 더 중요하고, 그것으로 다른 사람들을 비판하기 시작한다면 우리 예수님께서 오늘 주시는 말씀이 나침판이 될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마태복음 9장 14절에서 2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지금은 주님의 일하심을 보며 기뻐할 때
마태복음 9장 14절에서 26절 말씀입니다.
| 14 그 때에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우리와 바리새인들은 금식하는데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아니하나이까 15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 슬퍼할 수 있느냐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 때에는 금식할 것이니라 16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이는 기운 것이 그 옷을 당기어 해어짐이 더하게 됨이요 17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지 아니하나니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도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됨이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둘이 다 보전되느니라 18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실 때에 한 관리가 와서 절하며 이르되 내 딸이 방금 죽었사오나 오셔서 그 몸에 손을 얹어 주소서 그러면 살아나겠나이다 하니 19 예수께서 일어나 따라가시매 제자들도 가더니 20 열두 해 동안이나 혈루증으로 앓는 여자가 예수의 뒤로 와서 그 겉옷 가를 만지니 21 이는 제 마음에 그 겉옷만 만져도 구원을 받겠다 함이라 22 예수께서 돌이켜 그를 보시며 이르시되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시니 여자가 그 즉시 구원을 받으니라 23 예수께서 그 관리의 집에 가사 피리 부는 자들과 떠드는 무리를 보시고 24 이르시되 물러가라 이 소녀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 그들이 비웃더라 25 무리를 내보낸 후에 예수께서 들어가사 소녀의 손을 잡으시매 일어나는지라 26 그 소문이 그 온 땅에 퍼지더라 |
이 말씀은 금식에 대한 논쟁입니다.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들은 정기적으로 금식을 했지요.
금식은 경건의 상징이었지만 예수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요한의 제자들은 14절에 우리는 금식하는데 왜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않습니까?라고 묻습니다.
14 그때에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우리와 바리새인들은 금식하는데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아니하나이까
그들의 질문은 금식에 대한 호기심보다 왜 우리처럼 경건을 추구하지 않는가 왜 전통을 지키지 않는가?
하는 비판적인 시선이 담겨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질문에 놀라운 비유를 하십니다.
혼인집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때는 슬퍼할 수 없다 이것입니다.
신랑과 함께 있을 때는 어떻게 해야 된다? 기뻐해야 한다
예수님과 함께 있는 것은 잔치고 기쁨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고행으로 신앙생활을 하기도 합니다.
공로가 쌓이듯 신앙생활 중에 고행은 마음의 안정감을 주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신앙 생활의 본질은 고행이나 의무가 아니라 예수님과 함께 먹고 마시고 누리는 입마누엘 기쁨일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계시록 3장 20절에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같이 밥 먹자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교재하기를 원하시고 함께 식사하는 것을 기뻐하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주님과 더욱 깊은 사김이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금식을 하게 된다면 그것은 신랑을 빼앗길 때일 것입니다.
예수님은 앞으로 있을 십자가 죽음을 암시하시면서 이 말씀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17절에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둘 다 보존이 된다라고 말씀하십니다.
17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지 아니하나니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도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됨이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둘이 다 보전되느니라
당시 유대인들은 염소 가죽 부대에 포도주를 담았는데, 새 부대는 부드럽고 신축성이 있지만 낡은 부대는 포도주의 발효를 견디지 못하고 터져버리게 됩니다.
예수님은 당시 유대교회의 형식주의와 율법주의가 낡은 부대처럼 딱딱해졌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 전통이라는 것은 진리를 보존하기 위해 만들어진 그릇이죠.
그런데 종교 지도자들은 본질을 잊고 금식의 횟수, 손을 씻는 횟수 같은 형식에만 집중했던 것이죠.
전통은 좋은 것입니다.
전통이 본질을 담지 못할 때 낡은 가죽 부대와 같아서 새 부대가 필요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혹시 말씀보다 더 중요하게 여겼던 전통 그리고 신앙 습관이 있으셨나요?
그래서 비판하는 눈이 오늘 은혜의 말씀보다 앞섰던 적이 있으셨나요?
이제 예수님께서 주시는 새 부대로 우리의 마음이 바뀌어지기를 바랍니다.
우리 예수님은 우리의 마음을 부드럽게 하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지금 야이로의 부탁을 받고 그의 딸을 고치러 가던 중이셨습니다. 가던 중에 딸은 목숨을 잃습니다.
이러한 과정 속에 한 절망에 빠진 여인이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믿음으로 다가가서 예수님의 옷자락에 살짝 손을 댔습니다.
여러분 레위기 15장은 유출병에 관한 내용을 다루지요.
율법에 의하면 피가 멈춰지지 않는 혈류증을 가진 여인은 부정하다 했습니다.
성막에 가까이 갈 수 없고 다른 사람들과 접촉도 제한되었습니다.
몸이 아픈 것을 넘어서 심각한 고립과 소외를 겪게 되죠.
이 여인은 여러 의사에게도 치료를 받았고 재산도 다 잃었고 병은 악화된 상태입니다.
더 이상 인생의 소망을 가질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믿음으로 예수님을 터치했다는 것입니다. 21절에 보면
21 이는 제 마음에 그 겉옷만 만져도 구원을 받겠다 함이라
예수님은 나를 고치실 수 있다 믿은 것입니다.
사람은 방법이 없어도 세상은 불가능해도 우리 예수님은 가능하십니다.
예수님은 문제 해결의 열쇠를 가지고 계시는 분이시니까요.
여인은 예수님을 터치하는 순간 혈류의 근원이 멈추는 것을 알았습니다.
믿음으로 그의 병이 낳은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여인에게 네 믿음이 너를 구원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22 예수께서 돌이켜 그를 보시며 이르시되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시니 여자가 그 즉시 구원을 받으니라
예수님은 여인의 인생 최대의 문제, 그녀의 병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믿고 의지하는 믿음으로 진짜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여인의 용기는 겉옷만 만져도 구원을 받겠다는 믿음이었습니다.
오늘 여러분의 삶이 예수님의 옷자락을 터치하는 용기가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치유와 회복을 반드시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야이로의 집에 도착하셔서 피리 부는 자와 떠드는 자들을 보십니다.
죽음이 공식적으로 선포되었고 애도하는 중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들을 물리치시고 선포하십니다.
이 소년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사람들은 비웃었습니다.
24 이르시되 물러가라 이 소녀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 그들이 비웃더라
예수님은 죽음을 뛰어넘는 분이십니다. 우리 예수님은 생명이십니다. 우리 예수님은 빛이십니다.
소녀에게 말씀하십니다.
달리다 굼 내가 내게 말한다. 일어나라. 소녀는 살아났습니다.
사람들은 죽음이 끝이라고 말하죠. 그러나 예수님은 죽음을 이기신 분이십니다.
사람들이 모두 아니라고 하기 때문에 혹시 절망 가운데 계신 분이 계십니까?
달리다 굼
우리 주님께 부탁하십시오.
주님은 우리의 연약함 뿐만 아니라 우리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신 줄로 믿습니다.
아멘

사랑하는 하나님
형식과 전통에 머무는 낡은 부대를 내려놓고
예수님과 함께하는 기쁨을 우리에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절망 속에서 예수님의 옷자락을 붙들었던 여인처럼
우리의 한계를 뛰어넘는 예수님을 의지하게 하시고
치유와 회복을 경험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죽어가는 우리의 인생에 달리다굼을 선포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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