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치형 목사
2020.07.02. | 생명의 삶 | 노치형 목사
오늘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생명이 큰 은혜가 되기를 소망하고, 그 생명 속에서 누릴 수 있는 기쁨을 함께 나누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을 주실 때, 늘 기쁜 소식만을 주시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그것은 기쁜 소식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상황과 형편 속에서 우리는 슬픔을 느끼고, 괴로움을 느끼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그 순간 속에서도 우리는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갈 수 있다'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발견하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어렵고 힘든 소식이 계속해서 밀려올 때, 여러분들을 어떤 생각을 먼저 하십니까?
우리는 "하나님께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는 그 희망으로 다시 서게 되길 원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하는 그 말씀을 기억하게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중심이 오직 하나님을 향할 때 그것이 기쁨이 되며, 그것이 희망으로가는 시작이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함께 묵상할 말씀은 시편 137편 1절에서 9절입니다.
오늘 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함께 듣겠습니다.
시온의 노래를 부를 수 없는
백성의 애통한 간구
시편 137편 1절에서 9절 말씀입니다
오늘 부모는 시작부터 슬픈 분위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1절에 말씀 입니다.
1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에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영어성경에 보면
By the rivers of Babylon we sat and wept when we remembered Zion.
By the rivers of Babylon 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 rivers of Babylon 이라는 말을 생각하면 어렸을때 들었던 하나에 팝송이 생각납니다.
그것을 찾아보니 1970년에 자메이카 그룹이었던 '더 멜로디언스'라는 그룹이 부른 노래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제가 기억하기는 '보니 엠'이라는 그런 혼성그룹에서 더 불려졌고, 많이 알려지게 했던 노래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아주 그 노래를 열심히 불렀습니다.
근데 그 노래 가사를 보니 이 시편 말씀과 동일하게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죠.
처음 그 곡이 만들어졌을 때 바로 20편의 말씀을 기초로해서 만들어 졌고, 또한 불려 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의 오락용으로 그것을 사용하고 불렀습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은 오락물이 아닙니다.
그것은 슬픔의 시간이고, 억울함에 시간이며, 한이 가득한 시간인 것이죠.
그 다음 절에 말씀을 읽겠습니다.
2 그 중의 버드나무에 우리가 우리의 수금을 걸었나니
3 이는 우리를 사로잡은 자가 거기서 우리에게 노래를 청하며 우리를 황폐하게 한 자가 기쁨을 청하고 자기들을 위하여 시온의 노래 중 하나를 노래하라 함이로다
4 우리가 이방 땅에서 어찌 여호와의 노래를 부를까
그들은 지금 포로로 잡혀가서 자기를 포로로 잡고 예루살렘을 황폐케 만들었던 자들을 향해
'시온에서 불렀던 노래를 불러 보라'는 그러한 청을 듣게 되는 것이죠.
다시 말하면 일제치하에 있던 우리 백성들이,
일본 사람들 혹은 그 앞잡이 앞에서 '너의 고향 노래를 불러 봐라' 하는 것과 같은 상황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사실은 힘들고, 어려운 상황이죠.
그런 상황 속에서 이 시편 기자는 고민을 하는 겁니다.
'우리가 어떻게 이런 외국인의 땅에서, 이방인의 땅에서, 낯선 땅에서
하나님이 계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 어떻게 하나님께 노래 할까? '
라는 고민을 하고 있는 것이죠.
바벨론 강가에서 그들은 이러한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어떠신 분이십니까? 하나님은 언제나 어디서나 계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그곳에서도 그들의 찬양을 듣고 또한 기뻐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이죠.
비아 돌로로사(Via Dolorosa) 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걸어가셨던 십자가의 길을 말합니다.
그 길은 '슬픔의 길'이라고 번역되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슬픔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 길은 목적지가 기쁨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떤이는 그 비아 돌로로사를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기쁨으로 가는 슬픔의 길이다'
우리는 그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단지 인생의 슬픔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비록 우리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이 코로나 19의 상황 속에서 힘들고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할지라도,
우리가 함께 예배 하지 못하고 홀로 연약한 상황 속에서 영상으로 예배를 드리고 있다 할지라도,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놀라운 은혜가 있고,
머지않아 언제나 함께 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찬양을 듣고 계신다' 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찬양은 슬픔의 찬양이 아닙니다.
우리가 비록 포로와 같은 묶인상태에 있다 할지라도,
우리의 찬양은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찬양이 됨을 기억하길 소망합니다.
그래서 오늘 여러분과 제가 함께 하나님을 더 깊이 찬양하며 하루를 보내길 도전하고 또한 소망합니다.
나는 하나님을 기억하며 울어본 적이 있나요?
예루살렘의 멸망을 생각하면서 포로기에 슬픔을 울면서 노래하고 있는 그들은 단지 슬픔의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향한 노래이기에 그것은 찬양이 됩니다.
그 찬양안에는 언제나 감격과 감동이 있는 것입니다.
그 찬송이 바로 여러분과 저에게도 큰 능력이 되고 힘이 되는 것을 우리가 보게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우리가 오늘 하루를 보내면서 하나님 주신 말씀 나에게 주신 말씀을 듣는것이 Quite Time 바로 QT이니,
하나님 말씀을 따라, 우리가 상황이 어렵고 힘들더라도,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을 체험하고 또한 그 기쁨과 감동을 함께 나누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러한 모습 속에서 우리는 또 한가지 기억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는 예루살렘의 모든 것을 잊어버렸을 지라도, 하나님은 기억하고 계신다 라는 것이죠.
만약에 하나님이 그것을 기억하지 못하신다면 우리에게는 정말 노래하고 찬양할 수 있는 그런 이유가 남아 있을까요?
오늘 부문 5절과 6절입니다.
5 예루살렘아 내가 너를 잊을진대 내 오른손이 그의 재주를 잊을지로다
6 내가 예루살렘을 기억하지 아니하거나 내가 가장 즐거워하는 것보다 더 즐거워하지 아니할진대 내 혀가 내 입천장에 붙을지로다
하나님이 기억하시지 않으면 모든 것은 허사가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기억하십니다. 그 비통한 날 그 순간까지 기억하고 계시는 것이죠.
7절의 말씀입니다.
7 여호와여 예루살렘이 멸망하던 날을 기억하시고 에돔 자손을 치소서 그들의 말이 헐어 버리라 헐어 버리라 그 기초까지 헐어 버리라 하였나이다
포로전에 예루살렘의 살았던, 포로로 잡혀간 사람들은 그 예루살렘 성전의 영광을 기억하고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영광이 사라지고 예루살렘성이 멸망하는 것을 또한 기억할 때, 그들은 너무나도 슬프고 안타까운 탄식이 터져 나왔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 어떤 사람보다도 더 생생하게 기억하고 계시죠.
하나님의 임재를 위해 만들어졌던 그 예루살렘 성전을 하나님은 더 확실하게 기억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시편 기자는 그것을 기억하면서 하나님께 간구하고 있죠.
에돔 자손을 치소서
그들은 무슨 말을 했습니까?
예루살렘 성을 '헐어 버리라, 헐어 버리라, 기초까지 헐어 버리라' 말했다는 거예요.
한번도 반항하지 못하고 이런 상황을 경험했다는 것은, 너무나 나라적으로 민족적으로 수치스러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대한제국 시대 1910년 그들은 수치를 당하게 됩니다.
일제에 치하 속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죠.
이것이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도 그러한 경험을 가지고 있기에 우리는 그 날을 잊을 수 없는 것이죠.
그것은 단순한 분노로 남아서는 안됩니다.
하지만 우리 속에 분노를 우리도 함부로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아마 우리 속에 분노도 그들의 기도처럼 이렇게 이어질지 모르겠습니다.
8절과 9절입니다.
8 멸망할 딸 바벨론아 네가 우리에게 행한 대로 네게 갚는 자가 복이 있으리로다
9 네 어린 것들을 바위에 메어치는 자는 복이 있으리로다
사실은 굉장히 무서운 이야기죠.
예루살렘 성이 멸망하게 될 때, 유대의 어린아이들이 잔혹하게 학살 당했다는 사실을 그들은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대로 하나님이 갚아 주시기를 기도하고 있는 것이죠.
어떻게 보면 매우 무서운 저주의 기도입니다.
하지만 선하신 하나님은 역사 속에서 그렇게 하지 않으셨음을 보여주십니다.
페르시아에게 바벨론이 넘어갈 때 그들은 무혈, 피를 흘림없이 점령 되게 되죠.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 속에서는 분노해서 그러한 외침을 외칠 수 있습니다.
그러한 간구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다 들어주시고 이해하시지만, 한 영혼을 사랑하신다'라는 것이죠.
그것이 또 원수의 순환이 되고, 악의 순환이 되길 원치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우리의 억울한 순간에도 바라볼 수 있어야 하고,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기쁨이 그 하나님께로에 돌이킴이 오늘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소망합니다.
나는 억울한 순간에도 하나님을 기억하나요?
하나님의 백성을 끝까지 사랑하시는 하나님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기억해주시고 불쌍히 여기시며 지켜주시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힘들고 어렵고 억울하고 답답한 상황들이 끊임없이 찾아와
어두운 영과 마음으로 지쳐 울고 있을 때도
'너는 내 것이라 내가 너를 기억한다'고 하시며,
'어느 곳에서든지 하나님을 기억하고 즐거워하며 노래하라'고 말씀 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하나님께 순종함으로 하늘과 땅으로부터 오는 모든 복을 다 받아 누리며 나누게 하심을 찬양하며
구원자 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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