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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발적으로 기꺼이 걸어가는 십자가의 길 (요한복음 18:1~14)


2020.03.07.토 생명의 삶 조호영 목사 |



그리스도인의 자녀들은 다 십자가의 길을 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두 종류의 사람이 있는거 같습니다. 

기쁨으로 자원함으로 또 기꺼이 그 좁은길 고난에 길, 십자의 가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 길을 가더라도 정말 투덜투덜 불평하며, 걱정하며, '어쩌다가 저 사람이 내 삶에 들어와 이렇게 십자가냐' 하면서 

그렇게 아픔을 고백하며 가는 그런 두 사람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 예수님이 이 고난의 길 비아 돌로로사(Via Dolorosa) 십자가의 길을 가시는 예수님은 기꺼이 기쁨으로 자의적으로 그 길을 가십니다.

그 현장으로 가보겠습니다.


자발적으로 기꺼이 걸어가는 

십자가의 길


요한복음 18장 1절에서 14절 말씀입니다



성만찬 후에 제자들에게 긴 고별 설교를 마치시고, 그리고 요한복음 17장에 들어오면서 

정말 제사장적인 대제사장적인 기도를 아버지께 드린 후에 이제 제자들과 함께 움직이시는 예수님 

예수님의 수난에 시작이 오늘부터 시작됩니다.


오늘 1절 한번 보겠습니다. 

1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제자들과 함께 기드론 시내 건너편으로 나가시니 그 곳에 동산이 있는데 제자들과 함께 들어가시니라

여기에 '기드론 시내에 건너편' 이라고 말한 이 기드론 시내는 사실 요한복음에만 나오는 그런 지명의 이름입니다.

구약에 보면은 다윗이 압살롬을 피해서 도망 할 때 건넜던 곳이 바로 이 기드론 시내입니다.

신약에서는 예수님께서 제자들 몇 사람만 데리고 기도하러 올라갔던 그겟세마네 동산을 의미합니다.

그곳에서 기도를 종종 하셨기에 제자들이 다 그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2절에 보니까. 

2 그 곳은 가끔 예수께서 제자들과 모이시는 곳이므로 예수를 파는 유다도 그 곳을 알더라

지금 함께 있지 않았지만, 예수님께서 거기서 기도 하고 계실 것이다 라는 것을 유다는 알고 있었다는 것이죠.

그런데 여기서 보니까 제목이 저는 오늘 참 마음에 와 닿는 데 '자발적으로 기꺼이 걸어가는 십자가의 길' 이다 라는 이 제목처럼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피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자의적으로 자발적으로 그 길을 걸어 오셨죠.


그러나 예수님이 인간으로서의 마음에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요한복음에는 나오고 있지 않지만 공간복음에 보면 

예수님께서 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정말 땀이 핏방울이 되도록 그렇게 기도합니다.

마태복음 26:39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아버지여 하실 수 있으면 이 잔을 내게서 피하게 달라고,'

예수님은 아버지와 자신이 분리되는 

그 온 세상의 죄를 지고 십자가를 지는 것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그 무엇보다도 예수님께서 아버지 안에, 아버지 안에 예수께서 함께 되는 그것이 분리되는 순간이 

십자가 위에서 이루어지는 그 순간 

예수님은 두려운 것이죠. 

그것이 힘드셨던 그것을 고백하며 이것을 피하길 원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를 소원합니다.' 라고 기도했던 것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우리는 예수님께 하나님께 기도할 때에 

기도리스트를 다 놓고 '이거 해주세요. 저거 해주세요.' 막 그렇게 기도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가만히 그 기도를 들여다보면은 나의 원이 한 8~90% 는 되는 것 같습니다.


내가 원하는대로 기도 응답해 주십시오.

그런데 요거는 아버지 뜻대로 하지 말고 내가 원하는대로 꼭 해주셔야 됩니다. 

우리 아이 요거 요거 붙는거 요거 

우리 남편 요번에 승진하는 요거는 꼭 해 주셔서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게 해 주십시오.


자기가 원하는 것을 정말 많은 사람들에게 칭찬 받고,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난다고 생각하는 그것을 놓지 못하고, 

기도하는 우리의 모습이 우리 안에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 뭐라고 하십니까?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기도하는 그 기도에 그 동산 겟세마네 그곳에 이제 예수님을 잡으러 사람들이 오기시작합니다.

아버지의 뜻은 십자가였습니다.

그러기에 거부할 수 없습니다.

나의 원이 아니었고 아버지의 뜻이였기 때문이죠.


3절 한번 볼까요? 

3 유다가 군대와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에게서 얻은 아랫사람들을 데리고 등과 횃불과 무기를 가지고 그리로 오는지라

지금 드디어 예수님을 잡으러 오고 있습니다.

거기에 제자 유다가 있습니다.


사실 가장 친한 사람 

내가 사랑했던 사람 

그리고 나의 친구고 생각했던 사람이 나를 배신하는 것이 가장 마음이 아프다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남편에 그 외도나, 친구의 배신이나, 사업 파트너가 나를 속이거나 할 때에 우리는 분노하고 정말로 마음으로 힘들어 합니다.

지금 가롯 유다가 예수님의 사랑하는 제자가 예수님을 배신하고, 지금 예수님을 잡으러 지금 오는 현장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동원한 것을 보십시오.

군대가 왔습니다. 그리고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에게서 얻은 아랫사람들을 데리고 왔습니다.

또 등과 횃불과 무기를 가지고 왔습니다.

세상에서 사용하는 싸움에 무기입니다.

나의 빽이 될 것 같은 그런 것들을 가지고 예수님께 나옵니다.

그것은 세상에 속한 방법입니다.

하나님의 방법은 그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방법은 아버지의 뜻을 따라 순종하며 나아가는 것 

오늘도 내가 죽고,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사는 것 그것이 아버지의 뜻이요 방법입니다.


그래서 4절 말씀 하죠. 

4 예수께서 그 당할 일을 다 아시고 나아가 이르시되 너희가 누구를 찾느냐

라고 물으십니다.

다 아시면서도 지금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이 현장 가운데에서 묵묵히 자발적으로 순종하시는 예수님의 그 모습이 

오늘도 내 안에 믿음으로 살아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체포되시는 과정에서

예수님은 어떠한 모습이셨나요?

십자가의 길을 따르기 위해

내가 기꺼이 감당하는 편을

선택할 일은 무엇인가요?



가롯 유다는 군대와 그리고 등과 횃불과 무기를 가지고 예수님을 잡으러 그 동산으로 올라옵니다.

사실 저라면 

'유다가 이리로 올지 모르니 내가 오늘은 딴 곳으로 가야 되겠다. 좀 숨어야 되겠다.'

아시고계셨거든요.

그렇게 결정하실 것 같은데, 예수님은 전혀 물러서지 않습니다.


그리고서는 5절 뭐라고 이야기 합니까?

5 대답하되 나사렛 예수라 하거늘 이르시되 내가 그니라 하시니라 그를 파는 유다도 그들과 함께 섰더라

6 예수께서 그들에게 내가 그니라 하실 때에 그들이 물러가서 땅에 엎드러지는지라

지금 기적이 또 일어나고 있는 현장입니다. 

'내가 그 다' 라고 말씀 할 때에 그를 잡으러 온 사람들이 다 물러가서 땅에 엎드러지는 그런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그 기적의 현장에서도 사람들은 메시아를 알아보지 못합니다.

그 하나님 아버지의 구속의 그 역사에 이루심에 동참하는 지금 이 세상에 속한 사람들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지금 또 뭐라고 합니까? 

8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너희에게 내가 그니라 하였으니 나를 찾거든 이 사람들이 가는 것은 용납하라 하시니

'지금 내가 그니라 했으니까 나만 데리고 가라'

'내가 내 제자들은 가만 나두도록 하라 '

끝까지 제자들을 보호하시고 그리고 이런 상황 가운데에서도 그들을 챙기시는 예수님 

선한목자 십니다. 

양 한 마리도 잃지 않고자 하시는 그 주님의 사랑의 마음 

제자들을 보호하시는 그 주님의 사랑 

그 보호하심히 오늘 이 아침에 들어오는 그런 장면입니다. 


9절 보겠습니다. 

9 이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 중에서 하나도 잃지 아니하였사옵나이다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

예수님은 자의적으로 하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저 하나하나 자의적으로 하나님의 그 말씀을 이루는 것이 그것이 주님의 일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응하게 하기 위해서 하나하나 순종하며 나가시는 주님의 모습 이라는 것이죠.


옆에서 보던 베드로가, 다혈질 베드로가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어떡합니까? 10절에 

10 이에 시몬 베드로가 칼을 가졌는데 그것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서 오른편 귀를 베어버리니 그 종의 이름은 말고라

11 예수께서 베드로더러 이르시되 칼을 칼집에 꽂으라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

시몬 베드로가 칼을 뽑아 그 종을, 귀를 쳐버립니다.

아마 화가 났던 것 같구요, 두려웠던 것 같습니다. 

또 예수님이 옆에 아직 잡히지 않은 상황에 예수님이 이렇게 기적을 이루시는 분인데 무엇인가 하실 거야' 라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꽁꽁 묶여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런 비참한 모습으로 구속될 때는 도망갔던 베드로 아닙니까? 

그런데 이렇게 기적을 일으키시고 그들이 물러가 땅에 엎드려지는 이런 역사가 일어나는 그 예수님 옆에서는 

지금 신이 나서 혹은 두려워서 자신의 식대로 이것을 반응합니다.

'칼을 도로 집어 넣으라'

그들이 가지온것이 칼과 횃불과 몽둥이 아닙니까?

세상의 방법으로 다가올 때에 베드로는 세상의 방법으로 대응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것은 나의 방법이 아니다' 말씀하십니다.


저는 여기에 큰 어 마음의 움직임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에 살아가면서 억울한 일도 많고, 정말 힘든 일도 많고, 나를 변명해야 할 일도 많고, 속상한 일도 많이 있습니다.

그때마다 세상의 방법으로 그렇게 나를 힘들게 했던 동일한 방법으로 눈은 눈에게, 이는 이에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방법으로 대응하라는 것을 오늘 말씀을 통해서 목상하게 됩니다.

하나님 나라의 방법은 다르다는 것이죠.

오리를 가자면 십리를 가고, 겉옷을 달라면 속옷까지 내어주는 하나님의 방법, 

정말 어떨 때는 이해할 수 없고, 아니 어떻게 저 사람을 내가 일곱 번이나 용서했는데 더 용서하라 하시는가?

하지만 이른 일곱 번, 일곱 번까지 용서하시라'는 주님의 말씀을 우리가 붙들 때에 

세상에 방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방법, 하나님의 뜻, 그 십자가가 경험 될 때, 십자가를 결정할 때, 십자가를 선택할 때에 

부활의 승리가 역사가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지금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도 그렇게 말씀하세요.

아버지께서 허락하신 상황이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막 화가나다가도 어떻게 이런 일이 하다가도 

'하나님 우연은 없다. 하나도 없다는데, 하나님 하나님께서 이것을 저에게 허락하시면, 허락하셨다면 

제가 이것을 깨닫고 순종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사람을 원망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으로 믿음을 잡을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라는 기도가 우리에게 필요한 아침입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자의적으로 기꺼이 십자가를 지셨던 그 예수님의 그 십자가의 길을 저희도 가기를 소원합니다.

나의 원대로가 아니라 아버지의 뜻대로 행했던 그 기도가 오늘도 저희의 입술에 있게 하시고,

하나님의 방법으로 살아가는 은혜가, 결단이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세상의 방법이 아닌

에수님의 방법으로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요?

나의 작은 희생으로 사람들에게

큰 유익을 줄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요?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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