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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이 ‘충만한 기쁨’으로 반전될 그날 (요한복음 16:16~24)


2020.03.02.월 생명의 삶 조호영 목사



제가 좋아하는 말씀 중에 고린도전서 13장 12절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3:12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지금은 우리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히미하게 보나, 

그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맞대는 것 처럼 그렇게 볼 것이고, 

또 지금은 히미하게 보는 것 같지만 그때에는 온전하게 볼 수 있다' 

라는 저에게 소망과 희망을 주는 말씀이죠.


오늘 성령님이 제자들에게 임하면 그런 일이 일어날 것이다' 라고 말씀 하시는 예수님을 보면서 그 생각이 났습니다.

오늘 그 현장으로 가보겠습니다.


슬픔이 ‘충만한 기쁨’으로 

반전될 그날


요한복음 16장 16절에서 24절 말씀입니다



제자들과 성만찬을 잘 하신 후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집중적으로 여러가지 장래에 일어날 일들을 이야기 하십니다.

'내가 가고 성령을 보내겠다' '내가 갔다가 너희들이 보지 못하지만 또다시 너희들이 보게 될 것이다'

지금 제자들은 혼동스럽습니다. 

이것이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17절, 18절 함께 보겠습니다.

17 제자 중에서 서로 말하되 우리에게 말씀하신 바 조금 있으면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하시며 또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하신 것이 무슨 말씀이냐 하고

18 또 말하되 조금 있으면이라 하신 말씀이 무슨 말씀이냐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알지 못하노라 하거늘

지금 제자들은 절대로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곧 예수님께서 고난을 받으시며 십자가에 돌아가신다는 것을 상상할 수도 없고, 

또 돌아가신 그 분이 3일만에 다시 부활 하신다는 것 

더 상상할 수가 없는 제자들입니다. 


요한복음 2:1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공생애 동안 그동안 그렇게 예수님께서 '내가 이 성전을 허물면 삼일만에 다시 지으리라' 라는 그런 말씀,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지고 비유 하시며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이야기 하셨것만은 예수님의 말씀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던 제자들입니다.

주님께서는 그것을 이미 알고 계십니다.


저도 처음 예수님을 믿을 믿기 전에 성경을 읽으면서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던 말씀들이 많이 있습니다.

물론 동정녀마리야, 뭐... 물위를 걷는 모든 것들도 잘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은 한 가지 제가 기억이 나는 것은 그 누가복음 18장 29절에 

누가복음 18장

29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집이나 아내나 형제나 부모나 자녀를 버린 자는

30 현세에 여러 배를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하시니라

이 말씀을 제가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이 기억에 납니다.

이건 완전 이단이구나, 어떻게 이런 말을 하나? 다 버리라고 하나? 라고 의아해 하면서 성경 책을 덮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하지만 요즘 제가 많이 생각하고 또 많이 하나님 앞에 고백하며, 나의 죄성을 주님 앞에 드러내는 부분이 바로 이것입니다.

내 안에 주님 보다 더 사랑하는 그 많은 것들이 있다는 것을 고백하면서, 

이 말씀이 절절이, 절절이 경험되고 느껴지고 그것이 살아 움직이는 것은 

바로 예수님께서 그 제자들에게 약속하신 동일한 성령님께서 나의 마음에 계셔서 

이것을 깨닫게 하시고, 내 안에 이것을 개시하여 주시기 때문이라는 것을 믿습니다.


또한 그 때까지 깨닫지 못하고 이해되지 못한 것들 예수님께서는 이미 그들의 마음을 아십니다. 19절 보겠읍니다. 

19 예수께서 그 묻고자 함을 아시고 이르시되 내 말이 조금 있으면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하므로 서로 문의하느냐

주님이 우리의 또 그 제자들에 모든 마음과 생각을 아신다는 것이 두렵기도 하지만 또한 위로도 됩니다. 

내 마음 아시죠? 나를 지으신 주님 

내 안에 계셔 나의 모든 생각과 나의 이름 뿐 아니라, 나의 머리카락까지 다 세신 그 주님, 나를 아시지요.

주님 정말로 주님 앞에 숨길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고백하는 것이 은혜라고 믿습니다.


지금 예수님 앞에 우리는 그래서 솔직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죠.

저도 목사이지만 모르는 것 투성입니다.

제가 목사라서 뭔가 아는 체를 한다면 그것은 거짓입니다.

저도 성령님께서 알려주시지 아니하시면 하나도 알 수가 없고, 하나님의 그 비밀을 깨달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설교를 준비할 때나, 또 말씀을 준비할 때나, 묵상 할 때나, 또 말씀을 깨닫고자 할 때에 하나님 앞에 그렇게 기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성령 하나님 저를 도와 주시지 아니하시면 제가 이것을 깨달을 수가 없습니다'

'제 머리로는 이것을 믿을 수도 없습니다'

'성령 하나님 오셔서 저로 하여금 이것을 깨달을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저는 어떨때 설교를 준비하면서 제가 거지가 된 것 같습니다.

그릇하나 놓고 '하나님 하나님 알려주세요. 이것이 무슨 뜻입니까?'

'마치 한푼 줍쇼' 하는것처럼, 

'하나님. 성령 하나님 오셔서 이 말씀의 의미를 깨닫게 도와주십시오.'

그렇게 기도할 수밖에 없는 것이 저 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우리는 성령님의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이 그분의 죽음과

부활에 대해 제자들에게

왜 미리 말씀하셨을까요?

말씀을 통해

'근심하지 말라' 하시는

주님 음성에

나는 어떻게 반응하나요?



예수님께서는 당황하고 지금 두려워하는 제자들을 향하여서 미래에 소망의 말씀을 주십니다. 20절입니다. 

20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는 곡하고 애통하겠으나 세상은 기뻐하리라 너희는 근심하겠으나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

너희들이 기쁨을 얻기전에 고통하고, 애통하고, 눈물을 흘리는 시간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라 곧 그 슬픔이 그 눈물이 기쁨이 될 것.이다.

춤이 될 것이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사야서 61장 3절에 보면 

이사야 61:3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기쁨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이 의의 나무 곧 여호와께서 심으신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정말 희락과 기쁨, 정말 우리에게 즐거움을 그 구원의 영광을 회복시켜 주실 주님, 그 소망이 있을 것이다 말하고 있다는 것이죠.

그리고 비유하면서, 21절에 여자가 해산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21 여자가 해산하게 되면 그 때가 이르렀으므로 근심하나 아기를 낳으면 세상에 사람 난 기쁨으로 말미암아 그 고통을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느니라

해산할 때 고통 하고, 슬프고, 아프고, 괴롭지만은, 두렵지만은 

애기를 낳았을 때의 그 기쁨에 그 생명을 태어나게한 그 기쁨으로 모든 것이 다 기억되지 않는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저도 애를 나은 엄마이기 때문에 이 말씀이 너무나 마음에 쏙 들어옵니다.


애를 낳기 전에 정말 두렵습니다. 

너무 아프다는 이야기도 많이 들어서 두렵고 또 정말 이런 아픔이 있을까? 할 정도로 고통스럽고 아픕니다.

하지만 그것이 지나가 그 한 생명이 태어날 때에 그 기쁨과 비교할 수가 없죠.

그리고 그 기쁨이 너무 크고 그 생명이 너무 귀하고해서 둘째도 낳고, 셋째도 낳고 하게 되는 것은 그 열매가 그 생명의 기쁨이 너무 크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너무 이해가 잘되고 있습니다.


또 22절 한 번 읽어 보겠습니다.

22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으리라

지금 그 기쁨의 끝은 그 십자가를 통과할 때 부활이 기다리고 있듯이 

우리가 지금 고통과 힘듬과 또 여러가지 상황이 어려움 가운데 있는 우리들에게도 

'걱정하지 마라 너희의 그 끝은 해피엔딩이다. 소망이다. 구원이다. 영생이다.'

라고 우리에게 말씀을 주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이 기쁨은 세상이 주는 기쁨과 다릅니다.

그러기에 어떤 환경도 어떤 상황도 이 기쁨을 빼앗아 갈 수가 없습니다.

소망 가운데 기뻐하는 기쁨. 


그래서 사람들은 이 소망의 기쁨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고 이야기합니다. 옆집 여자가 

'너는 어떻게 그렇게 지금 상황이 어려운데 너무나 울고 정말 걱정 해도 모자를 네가 

어떻게 이렇게 평강 한마음으로 다니고 있느냐?

어떻게 웃음을 지을 수가 있느냐? 

어떻게 남을 위로 할 수가 있느냐? 

어떻게 남을 도와줄 수가 있는가?'

라고 의문을 갖습니다.

그것이 바로 주님에 하늘의 평강이 입니다. 세상이 줄 수 없는 평강입니다. 

믿음은 우리가 말씀에서 소망을 두는 것이 믿음입니다.

눈에 상황을 보고 가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이 말씀을 붙잡고 '구하라 그러면 주실 것이다' 

이 말씀을 붙잡고 주님 안에서 살아가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래서 23절 

23 그 날에는 너희가 아무 것도 내게 묻지 아니하리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그날에는 주시리라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럼 여러분 이것을 붙들고 앞에 거는 다 잊어버리고,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면 주실 것이야' 라고 

내가 원하는 것을 다 그렇게 구하라는 말씀이 아니죠. 요한복음 15장 7절에 

요한복음 15: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중요한 것은 먼저 

'네가 내 안에 있느냐 내가 네 안에 있느냐?' 

'그리스도께서 내안에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가?'

그것이 먼저 중요하다는 것이예요. 

그것이 이루어질 때 우리는 담대하게 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구하는 것은 나의 원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되길 원합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이루어지길 원합니다' 라고 기도했던 것처럼 

그렇게 구하는 우리의 온전한 모습이 온전한 기도가 이루어질줄로 믿습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오늘도 말씀 속에서 이 제자들을 향하여서 위로하시고 또 격려하시고 소망을 주시는 그 예수님의 음성을 

나의 삶 가운데서도 받고 그리고 감사를 드립니다.

늘 소망 가운데 말씀에 의지해 살아가는 저희가 될 수 있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그날'이 되면 왜 제자들이

에수님께 죽음과 부활에 대해

질문할 필요가 없나요?

나는 기도를 통해

예수님의 충만한 임재와 기쁨을

얼마나 누리나요?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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