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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사랑’의 모본, 우리를 향한 예수님 사랑 (요한복음 15:9~17)


2020.02.28.금 생명의 삶 노치형 목사



오늘날의 이 시대는 정보로 인해서 세상이 하나 되고 또한 그것이 정보가 연결되므로 세상은 더욱 더 가까워지는 것 처럼 보입니다.

한 지역에서 일어났던 소식이 순식간에 온 세계로 퍼져나가는 현실을 우리는 보게 됩니다.

이처럼 세상이 하나 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죠.


하지만 그 안에 들어가보면 사정이 좀 다릅니다. 그 안에는 많은 불통이 있습니다.

세대 간의 소통이 어려워지고, 또한 교회간에 또한 가정간에 그 소통에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세상은 지금 정보로 하나 되는 것 같지만 진적 진정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의심이 더 많아지고 불안과 근심과 염려에 소식들이 더욱더 충만해 지고 있는 것이죠.


이러한 시대 우리는 무엇을 소망하며 기도해야 할까요?

우리는 어떤 것을 위해 우리의 힘을 사용해야 할까요?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제는 너희가 종이 아니라 나의 친구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시는 그 친구의 사랑을 이 시대가 회복하게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서로 사랑’의 모본, 

우리를 향한 예수님 사랑


요한복음 15장 9절에서 17절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다시 한번 예수님 말씀 하셨던 새 계명인 '서로 사랑'에 대해서 설명해주고 계십니다.

서로 사랑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그리고 서로 사랑은 어떤 모습으로 드러나야 하는가?

그것을 9절의 12절에 말씀을 통해 나누기 원합니다.

9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10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11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12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아멘 

계명은 바로 사랑의 계명 이라고 우리는 나누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 이시고 하나님이 주는 말씀도 그 안에 사랑이 있으며, 

하나님이 주신 계명 자체가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서로 사랑의 본에 대해서 오늘 본문 12절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이 사랑한 것 같이 사랑 해야 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인류를 사랑하시는 것 같이 그렇게 '서로 사랑' 해야 된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그 사랑의 모습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드러내야 합니까?

물론 우리는 성령 하나님께 간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지식으로는 그것을 다 이룰 수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의 결심으로는 그 사랑을 다 이룰 수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새 계명이 서로 사랑 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함께 다니는 교회 성도들은 그 사실을 또한 믿고 실천하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구체적인 그 사랑의 실천에 자리에 가보면 우리는 어렵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됩니다.

세대라는 벽이 가로 서 있습니다.

나이든 세대와 젊은 세대 라는 간격이 있습니다.

계층이 라는 또한 차이가 벽이 되어 있습니다.

그 계층 때문에 또한 그 직업 때문에 그 계급 때문에 우리는 모든 것에서 막혀있는 것을 체험한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그것을 우리는 넘어설 수 있을까요?

예수를 믿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그것을 넘어서야 할 것인데 어떤 방법으로 그것을 넘어설 수 있을까요?

예수님이 사랑하셨던 그것 그 방법대로 우리는 그 삶을 살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어떻게 사랑 하셨습니까? 

이 앞서 본문에서 말씀 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은 그 첫 번째 성만찬 입니다. 

성만찬은 예수님의 그 살과 피를 나누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것들을 나눌 수 있는 것, 우리의 가장 중요한 예수 그리스도 뿐만 아니라 

우리의 가진 물질과 우리의 시간과 우리의 능력 우리의 재능을 나눌 수 있는 것, 

그 나누는 것이 그 서로 사랑에 또 시작이 되는 것이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또한 세족식을 통해 제자들의 더러운 발을 씻기며, '서로의 발을 씻겨 주라' 말씀하시며 서로 사랑의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그것은 서로가 더 낮아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상대방이 나보다 높아지도록, 내가 더 낮아질 수 있는 훈련을 우리는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낮아지고 더 낮아질 때 물이 아래로 흐르는 것처럼 그렇게 우리의 사랑이 흘러 가기 시작할 때 우리는 놀라운 서로 사랑의 역사를 체험하게 됩니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무엇이든지 낮아 지겠다는 결심을 가지고 나아갈 때, 우리 안에서는 참된 사랑의 기쁨이 넘칠 것이라는 겁니다.


또한 우리는 아직 그 본문을 대하지 않았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랑에 본으로 보여주신 친구를 위해 자기의 목숨을 버리는 십자가의 사랑으로 우리는 그것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헌신과 희생 입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서 나의 것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서 내가 집어야 할 것을 먼저 짚지 않고 내려놓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해야할 서로 사랑 입니다. 

우리가 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서 그 사랑을 배웠습니다.

그 사랑을 실천하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 사랑의 실천은 놀라운 결과를 가져올 것입니다.

생명을 살려 낼 것이고, 화평케 되게 할 것이며, 거짓과 싸워 의견에서 진리의 빛을 드러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묵상하는 자에 기쁨. 

바로 서로 사랑의 기쁨의 열매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오늘 그 열매를 이뤄나가는 하루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제자들이 서로 사랑하기 위해

먼저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요?

공동체 지체들과

나의 관게를 돌아볼 때

무엇에 더욱 힘써야 할까요?



예수님께서는 이제 사랑의 절정의 대한 이야기를 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그 사랑의 절정을 이루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은 사도 바울이 로마서 13장에서 말한 것처럼 율법의 완성이 될 것입니다.

그 사랑은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입니까?

그 본문이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13절에서 14절의 말씀입니다.

13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14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친구를 위해 목숨을 버리는 사랑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친구사이는 사실은 너무나 가까운 사이이죠.

어떻게 보면 아무것도 관계가 없는 그런 사이 일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그는 가족도 아니고 어떠한 것에도 연결되지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친구라는 존재에 평안함을 알고 있습니다.

부담스럽기 보다는 언제나 쉽게 찾아갈 수 있고, 말할 수 있는 존재. 

그 친구를 통해서 우리는 많은 이득을 얻게 됩니다.

물론 친구는 이용해야 할 대상은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는 친구를 통해 많은 것을 얻게 됩니다.

가족과도 나눌 수 없는 이야기들을 우리는 친구와 함께 나누게 되기도 합니다.

그 친구를 통해서 인생의 도전을 받고 낙심했을 때 새 힘을 얻기도 합니다.


그러한 친구 

그런데 그 친구가 나 자신을 위해서 대신해서 목숨을 버렸다는 것 그것은 너무나 큰 감동의 스토리가 됩니다.

세상에 스토리 안에서도 그러한 이야기는 많은 사람의 심금을 올리고 그리고 감동을 얻게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바로 그러한 사건을 십자가를 통해 이루실 것이라고 말씀해 주고 계시는 것이죠.

사복음서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말하고 있고 예수 십자가에 죽으심을 말하고 있지만, 유독 사도 요한만 이 친구의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말씀을 지금 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를 친구라 불러 주신 예수님

그렇다면 예수를 믿고있는 모든 사람들은 예수님의 친구들이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가 예수님의 친구이기에 우리 서로도 믿음의 친구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친구 끼리는 서로 닮아 간다고 합니다.

그 친구 끼리 닮아가는 것이 잘못된 삶이 되지 않길 바랍니다.

친구를 닮아 간다는 것이 예수님을 닮아 더 사랑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서로 더 사랑하기 위해 헌신하는 친구들, 그 사랑을 온전히 이루기 위해 서로를 위해 희생하는 친구들, 

그것이 바로 교회 공동체가 되어야 하며, 믿음의가정, 믿음의 가문의 공동체가 되어야 함을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말씀해 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어떤 계층과 계급과 어떤 형편과 어떤 차별로 나뉘어 지는 것이 아니라 

그 모든 것을 뛰어넘는 친구로 우리는 이 시대를 다시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시대의 소통은 문제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의 소통의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사실 없습니다.

그냥 알아서 해야 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날, 그 밤에 제자들을 향해 

'내가 나의 친구이고 우리가 친구임을 기억해야 한다' 말씀하십니다.

그럴 때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친구와의 관계 속에 온전한 사랑을 누리게 되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게 되고, 그 말씀을 따라 순종하여서 

많은 열매를 맺게 될 것이라고 얘기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이런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15절 말씀 16절 말씀입니다.

15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

16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

'열매를 맺는 것 뿐 아니라 열매가 계속 있게 한다' 는 것입니다. 

이것은 시편 1편 3절에 나오는 

시편 1:3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는다는 이야기와 연결됩니다.


요한계시록 22장 2절에 

요한계시록 22:2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

생명수의 강 좌우에 생명 나무가 있어서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는다는 이야기 로 연결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친구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그 아름다운 자리로 인도하십니다.

그 열매가 풍성한 자리, 모두가 그 친구 안에 들어와서 예수님의 그 열매를 받아먹는 은혜가 있고, 

또 서로 사랑함으로 그 열매를 더 풍성히 나누는 기쁨을 누리길 소망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귀하신 하나님 

오늘도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친구라 불러 주시니 감사합니다.

우리가 서로 예수의 친구 되어서 더욱 사랑하는 믿음의 열매, 사랑의 열매 맺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를 친구라 불러 주신 사랑의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사람이 예수님의 친구가

되는 길은 무엇인가요?

예수님의 사랑을 깊이 묵상할 때

내 안에 어떤 간구와

소망이 생기나요?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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