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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이 가르는 두 길, 영생과 멸망 (요한복음 3:9~21)


2020.01.09.목 생명의 삶 이해영 목사



그리스도인에 신앙은 

기독교 교리를 몇 개를 잘 알고 있는 것이나, 

또는 성경 구절 몇 가지를 잘 암송하고 있는 그런 지성적인 생각이나 사고를 의미하지만은 않습니다.

그것보다도 더 포괄적이고 더 초월적인 하나님의 세계에 대한 이해를 우리들에게 요구한다' 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단순히 우리가 무엇인가를 이해하고 알고있는 그런 정보에 대한 유무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지요.

그래서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거듭나라' 라는 설명을 하셨던 것 같습니다.


성도님들과 또한 제가, 공부를 많이 해서 예수님에 대해서 많이 아는 것과는 무관한 것입니다.

교회를 오래 다녀서 교회 생활에 익숙한 것과도 무척 다른 개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어쩌면 시청하고 있는 이 순간에도 그 거듭남에 대해서 우리는 오늘 반응할 수 있고, 또 그것에 대해서 참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진실로 오늘 새하루가 시작되어지는 이 날에 주의말씀과 또 성령으로 말미암아 거듭남에 참여하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하나님의 나라를 우리 모두 발견하는 복된 이 하루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믿음이 가르는 두 길, 

영생과 멸망


요한복음 3장 9절에서 21절 말씀 입니다



거듭남에 대해서 그리고 물과 성령으로 태어난다' 라는 그러한 개념에 대해서 어리둥절해하는 니고데모에게 예수님은 이렇게 응답하십니다.

니고데모의 응답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이시죠. 9절과 10절입니다.

9 니고데모가 대답하여 이르되 어찌 그러한 일이 있을 수 있나이까

10 예수께서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것들을 알지 못하느냐

니고데모가 단순한 이스라엘 사람이 아닌, 이스라엘의 지도자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알고 있어야 할, 이미 알고 있어야 할, 그러한 내용들을 모르고 있다는 일종의 책망이 주어지고 있습니다.

가장 경건하다고 그렇게 자부하던 바리새인이 이렇게 거듭남 혹은 중생이라는 개념을 모르고 있고, 

당연히 모르고 있으니 그런 삶에 대한 진정한 전인격적 이해도 아마 부재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렇게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세계에 대해서 알지 못하는 채로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될 수 있다? 네 

니고데모가 그렇게 살아왔던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 모두도 그러한 과오를 다시 되풀이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교회 생활도 오래 했는데, 그리고 직분자로서 오랜 그런 삶을 살아왔는데, 여전히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세계에 대해 우리는 전혀 무감각한 그러한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니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겸손히 주의 말씀에 경청하기 원하고, 또 주님께서 인도하시는 바 그 길을 쫒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정말 우리들의 신앙이 거듭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1절에 말씀도 읽어봅니다. 

11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우리는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언하노라 그러나 너희가 우리의 증언을 받지 아니하는도다

예수님은 갑자기 주어를 복수형으로 바꾸고 계십니다. 

'우리는' 그리고 '너희는' 이라고 말해서 '단순한 니고데모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라고 확장하고 있는 것이죠.

그리고 니고데모에 이러한 실패는 니고데모에 어떤 개인적인 어떤 사람의 지성적인 실패가 아닙니다.

몰라서 틀린 것이 아니라,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우리의 증언을 받지 아니하는도다' 라고 것은 받지 않는 어떤 인격적인 자신의 동의의 문제의 곧 믿음의 실패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몰라서 뭘 못하는 것도 아니고, 무지해서 우리가 예수님의 세계에 대해 몰랐던 것은 사실 아닙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믿음의 문제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죠.


12절에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2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

라고 계속 믿음에 일로써 예수님은 대화를 이끌어 가시지요.

땅의 일을 말해도 곳 '거듭나다' 라는 육체적 출신을 포함해서, 위로부터 태어나는 거듭남 까지도 모두가 다 땅에 일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땅의 일을 말한다 할지라도 이렇게 알아듣지 못하는데, 어떻게 하늘의 일을 말한다면 알아들을 수 있겠는가?' 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새 하늘과 새 땅과 새 하늘에 그런 도래와 보좌에 계신이와 또 수정같은 유리바다와 

이런 엄청난 하늘에 일들을 말한다면, 니고데모는 정말 정신을 못차릴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13절로부터 그 하늘의 일들이 어떠한지 말씀하고 계십니다. 13절입니다.

13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예수님은 예수님 자신에 대해서 '하늘에서 내려 온 자' 라고 말하기도 하며 또한 '하늘에 올라간 자' 라고 도 말하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본래의 그의 본향이 하늘이였기 때문에 하늘로부터 오셨고, 그래서 '하늘의 일들을 아신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 하늘의 일들을 계시에서 알려주는 분이시다' 라고 말씀하시는 것이지요.


우리는 여기서 예수님의 정체를 분명하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참으로 하늘로부터 내려오신 분이시요.

또 하늘로 올리시는 분이시오. 또 하늘에 대해서 알려 주시는 분이시다' 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이 정체성은 신자와 동일한 것입니다.

여기있는 저와 여러분 우리 모든 성도님들도 하늘로부터 보냄을 받은 자들이며 그래서 하늘이 어떠한지를 알아야 되는 사람들이요.

또 하늘에 대해서 말 해 주어야 하는 사람들이 바로 저와 여러분들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이렇게 살아가는 자들의 삶이 우리가 예수를 구주로 믿는 신앙생활입니다.

우리도 예수님께서 하늘로부터 오셨듯, 우리도 본향을 경험한 자가 되어서, 본향에 대해서 알고, 그 본향을 말해주는 사람이 되기에, 

하늘로부터 보냄을 받았고, 하늘로 올리워지는 영광에 참여하는 그러한 성도들이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들이여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오늘 이 하루 

정말 하늘을 경험하고 그 하늘을 선포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니고데모는 왜 '우리'가 아닌

'너희'의 일원이었을까요?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우리'와 '너희' 중에

나는 어느 편에 속하나요?



예수님께서 성육신으로 하늘로부터 이 땅에 오신 성탄의 그리스도 라고 말한다면, 

또 13절에서 말한 하늘에 올리웠다' 라고 하는 그 올려짐은 무엇으로 인한것일까요?

14절이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인자가 들린다' 라는 표현으로서 하늘에 올리워지는 그리스도를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연상하고 생각하고 또 그것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다른 공간 복음서에서는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예수님과 또 이후 예수님께서 높아 지셔서 영광에 참여한 것을 구분해서 생각하지만, 

요한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창세전의 영광으로 돌아가는 것이 십자가 위에 들려지는 것과 동시에 이루어지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요한복음에 눈은 무척 특별하지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올리워지는 그 장면, 그 고통스러운 장면, 그 수치스러운 장면을 보면서 

벌써 창세전에 주셨던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는 것으로 보고 있는 것입니다.

부활과 높여지심에 대해서 연결하는 것이 어렵지는 않지만, 

요한복음에서는 '십자가에 못 박힘이다' 라는 그것 자체를 부활과 높여지심이라는 것과 동일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수난에 대해서 요한복음은 정말 영광으로 그렇게 발견하고 있는 것이지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생명을 얻기 위해서 들려진 놋뱀을 보아야 살 수 있었던 것처럼, 

지금 소망이 없는 니고데모도 새로운 출생 곧 거듭남을 위해서는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라는 사실입니다.


여기있는 저와 여러분들도 진정한 거듭남은, 진정한 신앙은 

교회를 다니는것에 있지않고, 오랜 직분 생활에 있지 않습니다.

진정한 신앙의 핵심과 성취는 예수를 그리스도로 정말 모든 마음을 다해 바라보아야 하는 것이지요.

이유가 무엇입니까? 15 절입니다.

15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것은 영생과 직결되어진 그런 소망이며 목적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영생은 요한복음에서 지금 처음 등장하는 표현이 되겠습니다.


이후 16절 정말 중요한 구절이죠?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17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18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여기서 우리는 복음서 전체의 핵심적인 주제선언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니고데모에 새로운 출생과 그리고 성도 여러분들의 믿는자에 영생을 얻는 것은 

전적으로 어떤 기계적인 교리론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에 근거한 것이라고 말할 수가 있겠습니다. 

아니 전 우주가 살아가는 우리 모든 인생의 처음과 마지막이 전부 다 하나님의 사람에 근거하고 있다 라고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사랑하다 라고 하는 단어가 이처럼 이라고 하는 것을 동반해서 더욱 더 강조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지요.


왜 그렇습니까? 이유를 분명하게 제시하지요. 멸망치 않게 하려는 것이다.

그리고 '영생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라고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교양생활로서 교회를 다니지 않습니다.

우리는 단지 마음의 안정과 평안을 위해서 성경을 읽지 않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대하고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주님의 성전인 교회를 출입하는 것은 영생과 멸망의 문제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거듭난 성도들이여 영생에 이르렀으니 지금 멸망에 치닫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이제 우리가 어떻게 해야 될지 너무나도 분명한 결론이 됩니다.


21절을 읽어 봅니다.

21 진리를 따르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

이렇게 거듭난 자는 진리를 따르는 자들인데, 진리를 따르는 자들은 단순히 종교성을 아주 짇게 갖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 

빛으로 오면서 그 행위가 반드시 하나님 앞에서 행한 것으로 나타내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거듭난 성도들이여. 그러니 우리는 예배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거듭난 성도들이여. 그러니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과 주에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르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에 거듭남을 체험한 진리를 따르는 성도님들은 그래서 복음을 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 행위가 하나님안에서 행한 것임을 분명하게 나타내는 것이지요.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성도들이여. 

저와 여러분들은 이미 물과 성령으로 거듭났습니다.

거듭난 성도이기에 우리는 진리를 따르는 자들이며, 우리들의 삶에 행위는 분명히 하나님을 드러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런 복되고 영광스러운 들리워진 인생으로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어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에 나무위에 높이 들려진 그 장엄한 고난을 

오히려 영광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하나님) 성경에 초대를 우리는 오늘 만났습니다.

우리가 보낸을 받고 그리스도 예수를 위하여서 힘겨운 그런 순종의 삶을 살아가는 것을 결코 두려워 말게 하시고, 

오히려 기뻐하며 담대함으로 진리를 따르는 자 되어, 우리들의 모든 행하는 일들이 하나님 임을 드러내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그러한 생애로 살아가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모든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적은

구원인가요,

심판인가요?

이 땅에서부터 영생을

누리는 비결은 무엇인가요?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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