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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듭남,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필수 요건 (요한복음 3:1~8)


2020.01.08.수 생명의 삶 이해영 목사



요한복음 3장 16절은 핵심 중에 핵심이고 또 복음 중에 복음 이라고 할 만큼 그렇게 소중하고 아름다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3장 16절에 담겨져 있는 요한복음 3장은 성경전체 중에서도 가장 핵심 장 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하나님의 하나님께서 인간을 향한 참 사랑과 구원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그런 가슴 벅찬 메시지가 담겨진 그런 본문 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하여서 다시금 성경 중의 성경, 복음 중에 복음을 다시 깨닫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사랑 하셨으며, 또 어떻게 구원으로 인도

하셨는지.

다시 한번 진실한 마음으로 주님 앞에 감사하고 아멘으로 화답할 수 있는 오늘 이 하루가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거듭남,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필수 요건


요한복음 3장 1절에서 8절 말씀입니다.



요한복음 3장의 이야기를 끌고가는 주인공은 니고데모라는 사람입니다.

니고데모는 1절에서도 말하는 것처럼 매우 유력한 이스라엘의 지도자이고 유대인 중에서도 굉장히 선망받는 그런 부류 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1절을 다시 읽어봅니다. 

1 그런데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지도자라

요한복음 3장이 니고데모를 말해주고 있고 또 요한복음 4장이 사마리아 여인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결코 우연한 배치는 아니라 생각합니다.

두 사람 다 매우 극단적인 대조를 이루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지금 니고데모는 바리새인 중에서 유대인에 지도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한 6천 명이 넘지 않는 소수 엘리트 집단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세의 율법을 엄격하게 지키고사는 그런 윤리적인 모범적 행동과 삶을 지향하는 그런 부류들이 됐습니다.

정치적으로는 산헤드린에 공회 의원으로 속해 있었던 매우 높은 그런 상류층을 형성했던 사람들이 되지요.

이분은 또 많은 재산을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니고데모에 이야기는 요한복음에서 지금 3장 뿐만 아니라 7장과 또 19장에 걸쳐서 3번 등장하게 됩니다.

마지막 등장할 때 니고데모가 많은 재산을 들여서 예수님의 시신을 그렇게 존중하고 귀하게 영접하는 데에 크게 쓰임 받았다'라는 내용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한 사람이 나사렛 예수 목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찾아왔다는 이 사실 자체가 자기 자신에게 무척 사회적인 그런 치명적 약점이 될 수 있었겠지요.

그래서 아마 그는 예수님을 찾아가고는 십지만 드러내놓고 찾아갈 수 없어서 밤에 찾아간 것 같습니다. 2절의 말씀을 읽어 옵니다.

2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이르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여기서 말하는 이 밤은 단순한 저녁 깊은 밤을 의미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요한복음에서 말하는 이 밤은 율법의 밤이 되겠으며 또는 영적인 무지와 영혼의 어두운 밤 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습니다.


니고데모가 지금 그가 아무리 유대인에 지도층에 속해 있고 율법에도 아주 능통한 그런 대가라 할지라도, 

예수님을 만나기 이전에 그는 죄와 어둠과 무지를 벗어날 수 없었던 그런 깊은 밤을 사는 인생 이라고 말할 수 있고, 

그것을 대변하는 그림 언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그가 예수님을 만난 이후 지금 3장에서 또 7장에서 또 나중에 19장에 이르기까지, 

구체적인 직설법으로는 표현하지는 않지만, 그가 예수님에게 어떻게 열려진 마음으로 대하는지 우리는 충분히 그의 이야기를 통해 느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밤에 예수님을 찾아왔던 니고대모는 그의 인생이 점점 더 밝은 낮 또 빛으로 향해 가고 있었다' 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죠.

니고데모에 처음 관심은 예수님에게 있어서 특별한 표적이 보였기 때문이었는데, 그 표적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으면 아무도 할 수 없는 표적 이기 때문에 이렇게 밤에 찾아왔던 것 같습니다.


니고데모에 관심도 어쩔 수 없이 그가 유력한 지도층에 있는 사람이고 또 율법과 윤리에 있어서 능한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 할지라도 

그도 역시 보여지는 것으로 인해 하나님의 어떠하심을 판단할 수밖에 없는 연약한 인간이였고, 

보여지는 사물에 좌우될 수밖에 없었던 그러한 사람이였던것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3절처럼 그에게 이렇게 말씀 하시지요.

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여기서 아주 중요한 단어를 예수님이 사용하셨습니다. 

거듭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

특별히 여기서 거듭나다라는 단어는 위에서부터 태어나다 라는 그러한 언어적인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위에서부터 태어난다 라는 것이 무슨 말인지 니고데모는 도통 이해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율법중에 핵심이며 율법에 목적이라고 할 수 있는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있는 그 원천도 예수님 말씀 하신것 처럼 거듭남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요. 그래서 4절에 

4 니고데모가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

라고 위로부터 태어난다 라는 이 거듭남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오늘 거듭난 성도님들이시지요? 

오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거듭나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있는 그런 저와 여러분들이 되었지요? 

어떻게 이 놀라운 일들이 우리에게 일어났습니까?

우리 모두도 니고데모와 같은 사람이었는데 벌써 우리는 거듭남 이라는 이해를 가지고 있고 믿음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우리 성도님들의 주변에 수많은 니고데모들이 이렇게 주님께로 나아와 거듭남을 체험하는 저와 여러분 우리 모두가 되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은 어떤 사람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다고 하셨나요?

예수님에 대해

지식으로 이해하는 것과

거듭난다는 것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사회적으로 성공한 상류층의 사람인 니고데모도 예수님의 말씀에 대해서 육신적인 차원에 이해 밖에 할 수 없었던, 

그런 연약한 사람이었고 또 영적무지를 가지고 있었던 사람임에 틀림없습니다.

직적인 상황이 높다 하여서 영적 상황까지 높다 라고 말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위치가 되겠습니다.


예수님은 이제 니고데모에게 이렇게 거듭남에 대해서 다시 설명해 주십니다. 5절의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5절 말씀에서 아까 3절에서 말한 거듭나다 라고 하는 이 표현을 다시 표현해줍니다. 

물과 성령으로 나는 것이다'라는 설명을 해주고 있습니다.

거듭나다'라는 것은 위로부터 태어나는 것이요.

위로부터 태어난다 라는 것은 물과 성령으로 태어난다 라는 의미를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틀림 없이 이라고 한다 라는 것은 물로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받았다'라는 그런 표지가 되겠지요.

또 성령 이라고 하는 것은 죄 사함을 받은 자에게 부어지는 하나님의 영의 임재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것은 물 세례와 성령 세례를 두가지로 구분하는 두 가지 단계의 사건이 아니라, 

사실상 하나님의 진정한 영적 구원을 얻는 전인격적 구원을 얻는 하나의 사건에 두 가지 측면 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가 우리 주에서 그리스도를 믿으며 죄사함 받아 구원을 얻었다는 사실은 하나님의 성령께서 행하시는 일이며, 

하나님의 성령이 임하였다라는 사실은 비로서 그리스도 예수를 믿음으로 죄 사함을 얻었다라는 말과 동일한 위치라고도 할 수 있겠지요.

오늘 성령의 충만한 역사가 우리 성도님들에게 다시금 불굴의 구원의 확신과 그리고 새롭게 변화되어지는 삶의 거룩한 결단으로 나타나기를 원합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삶이라고 할 수 있겠죠.

오늘 성도님들의 삶 속에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놀라운 하늘의 사건이 오늘 이 시청하는 이 생명의 삶 말씀을 묵상을 통하여서 지금이라도 우리 가운데 일어나기를 축원합니다.


특별히 3절에서는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 라고 말했고, 또 5절에서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왜? 볼 수 있다라는 것과 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이렇게 혼용해서 쓰고 있을까요?

그것은 분명히 지금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려는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이해를 

장차 우리가 이 세상을 마치고 죽은 이후에 들어가는 천국으로서의 하나님의 나라 

곧 미래형으로 의미하지 않기 위해서 예수님은 지금 볼 수 있는 것이다'라고 설명 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거듭나야 할 이유는 

이 세상에서 우리가 생명을 다하다가 죽고 난 이후 천국을 가기 위해서 거듭나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거듭났다라는 것은 우리들의 인간, 인생의 진정한 의미를 다시 새롭게 해 주는 것이요.

살아가는 목적을 다시 새롭게 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거듭나야 하는 것은 지금도 하나님의 나라를 우리가 볼 수 있기 위함이요.

지금도 얼마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왕래할 수 있기 위함입니다.


특별히 요한복음에서 하나님의 나라 라는 단어가 여기 지금 니고데모 에게 사용되어 졌고, 

또 이후 요한복음 후반부에서 빌라도와 대화 속에서 등장할 때만 나타난다'라는 사실에서 너무나 중요한 표현이 되겠지요.

하나님을 왕으로 삼는 자와 또 하나님을 왕으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하는 빌라도, 

두 사람을 대조 시켜서 영생과 멸망을 대조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이마만큼 하나님의 나라를 우리가 영생을 얻어 들어가는 것과 또 멸망을 얻어 들어가지 못하게 되어지는 대표로서 니고데모와 빌라도를 이야기하듯 우리들에게 거듭남이라는 이렇게 소중하고 중요하고 절박한 오늘의 문제가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들이여, 오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다시금 위로부터 태어나고 물과 성령으로서 다시 새롭게 태어나 

하나님의 나라에 참여할 뿐만 아니라 지금도 우러러 하나님의 나라를 목격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오늘을 살아가며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나라를 지금 목도하고

또한 하나님의 나라를 왕래하는 주의 백성들이 되길 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성령의 임재를 체험한 우리 모든 성도님들이 비로서 거듭났으니

하나님의 백성 되어 하나님의 나라를 오늘도 두루 참여하며 

그 나라를 이 땅에 나타나고 선포하고 알리고 전하는 주님의 증인들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니고데모가 거듭남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을

놀랍게 여긴 이유는

무엇일까요?

거듭남이 필요한 지체에게

거듭남의 과정을

어떻게 설명해 줄 수 있을까요?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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