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1.28.월 생명의 삶 최원준 목사
최근 우리나라에서는 가정에 문제가 매우 심각합니다
먼저 이혼율이 굉장히 높습니다
2016년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이혼율은 OECD 국가 가운데서 9위를 차지했고 또 아시아 국가 가운데서는 1위를 차지했습니다
이혼율 뿐만 아니라 아동학대의 문제도 매우 심각하죠
뉴스를 통해서 최근 아이들이 어른들로부터 부모로부터 어떻게 학대를 당하는지 종종 그 뉴스를 접할 수가 있습니다
채벌의 수준을 넘어선 구타, 방치, 심지어 성폭력 까지도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붕괴되는 과정 가운데 오늘의 말씀은 우리가 어떻게 가정을 지켜 가야 될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의 가정, 믿음의 가정 어떻게 이루어 갈 수 있을까요?
이러한 문제의식을 갖고 우리가 함께 오늘 말씀을 묵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창조주의 의도를 따라,
어린아이 같은 믿음으로
마가복음 10장 1절에서 16절 말씀입니다
오늘 말씀에 시작은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나와서 한 가지 질문을 던집니다. 오늘 말씀 2절에 보니깐
2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나아와 그를 시험하여 묻되 사람이 아내를 버리는 것이 옳으니이까
여기서 사람은 남편. 남자를 가르킵니다
남편이 아내를 버리는 것 즉 이혼하는 것이 합당한가를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자 그런데 오늘 말씀은
이 바리새인들의 이러한 질문이 어떤 이혼의 문제, 가정에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하면서
그런 가정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열망 가운데서 질문하는 것이 아니라
시험하여 물어봤다 그랬습니다
'시험하다'라고 하는 이 말은
질문을 하되 더 자세히 알고, 더 이해하고자 하는 열린마음, 선한마음이 아니라
상대방을 곤경에 빠뜨리려고 하는 불순한 의도에서 시작된 질문이라는 것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사실 복음서를 보면 바리새인들은 시험 하는 자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예를들어서 마가복음 8장을 보면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 이렇게 얘기합니다
마가복음 8:11
바리새인들이 나와서 예수를 힐난하며 그를 시험하여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구하거늘
예수님을 이미 비난합니다 예수님을 믿지 못합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에게 네가 메시야여거든 하늘로부터 오는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이적을 보여 보라고 얘기를 합니다
성경을 보면 시험하는 자는 사실 사단입니다
예수님께서도 광야에서 40일 동안 금식하실 때에 사단으로부터 시험을 받지 않으셨습니까?
그때 예수님이 사단의 질문에 대해서 이렇게 대답하신 것을 아마 여러분들은 기억하실 것입니다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 하지 말라"
성도 여러분
때때로 우리가 이해되지 않는 삶의 문제가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기도, 우리의 질문, 그 모든 것들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해 되지 않는다 할지라도
더욱더 주님을 순종하기 위해서
더욱더 예수 잘 믿기 위해서 갖는 의문 또 그리고 그런 질문에 대해서는 얼마든지 환영 하십니다
그러나 우리 마음 가운데 바리새인들처럼 시험하는 마음이 있다면 그것은 사단에게서 온 것입니다
내가 만나는 사람에게 대해서 말하고 질문하고 그 모든 대화가 시험 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그 사람을 더욱더 이해하기 위한 것입니까?
오늘 이 질문을 함께 돌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또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질문에 대해서 이렇게 얘기를 하여 주셨습니다 오늘 말씀 6절 입니다
6 창조 때로부터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셨으니
7 이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8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이러한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9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더라
여러분 바리새인들의 질문을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바리새인들은 '남자가 사람이 아내를 버리는 것이 옳으니이까?' '버린다'에 초점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대답은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를 짝지어 주셨다'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바리세인들의 이 질문은 당시 남성중심적 가정
얼마든지 자기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아내를 버릴 수 있었던 그 당시 남성위주의 사회 질서를 대변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창조 질서는 남자와 여자가 동등하게 서로 돕는 배필로 살아가도록 말씀하셨습니다
내 편의에 따라 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얼마든지 버릴 수 있다는 생각은 사단의 생각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마음은 짝지어진 것이고 나누지 못할지니라'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품어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마음에 우리가 마음에 들기 때문에 지금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눈에 보면 우리는 결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없는 존재이지만 우리를 품어 주셨습니다
사랑이 무엇입니까?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것이고 버리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사야 말씀을 보면 이사야 41장 9절에 이렇게 말씀하시죠
이사야 41:9
내가 땅 끝에서부터 너를 붙들며 땅 모퉁이에서부터 너를 부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나의 종이라 내가 너를 택하고 싫어하여 버리지 아니하였다 하였노라
하나님의 마음은 싫어하여 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싫증 내지 아니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품어주십니다
끝까지 품어주시는 그 마음
그것이 이 시대에 한국 가정을 회복 시킬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해결책일 것입니다
이 마음이 여러분 모두에게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예수님은 모세 율법에서
이혼 증서를 허락한 이유가
무엇 때문이라고 하시나요?
부부 관계에 위기가 찾아올 때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오늘 말씀의 두 번째 이야기는 어린아이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자식을 둔 부모들이 예수님께 자녀를 대리고 나왔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제지하고 나섰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노하셨습니다 그러시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말씀 14절
14 예수께서 보시고 노하시어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사실 예수님의 화내는 모습을 제자들이 이해하지 못 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에 이스라엘의 문화는 어린아이들을 온전한 인격체로 취급하지 않았습니다
어린아이들을 보호하고 사랑하기 보다는
어린아이들은 어른들과 함께 어울리지 못할 미숙한 존재로 여겼습니다
사실 우리나라에도 그런문화가 있지 않습니까?
'아이들은 나가 놀아라'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어른들이 있는 곳에 가까이 하지 못하게 합니다
그 당시에 이스라엘 문화도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제자들이 다름 아닌 자신들과 선생님에게 아이들이 접근하는 것을 막았다는 것은 오히려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것을 보고 매우 화를 내셨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좀처럼 화를 내시지 않지 않습니까?
화를 내셨다는 것은 지금 제자들이 아주 심각한 잘못을 했다는 것이죠
그도 그럴것이 예수님에게 있어서는 하나님의 나라가 바로 어린아이가 주인공인 나라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왜 어린아이가 하나님나라의 주인공일까요 ? 왜 어린아이가 하나님 나라의 것일가요?
우리가 어린아이처럼 되어야만 천국을 경험하는 이유가 뭘까요?
첫 번째 이유는 우리 아이들이 연약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보통 아이들을 생각하면 순수성을 이야기 합니다. 물론 아이들은 순수 합니다
그러나 아이들이 순수한것만은 아닙니다
그 당시에 어린아이라고 하는 것은 연약한 존재입니다
여러분 한번 성경에 나오는 아이들 한번 가만히 보십시오. 죄다 아픈 아이입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다시 살리셨던 야히로의 딸도 열두 살짜리 였습니다
또한 변화산에서 내려오셨을 때에 귀신들려 간질병걸린 아이도 바로 어린아이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가 만났던 대부분의 아이들은 다 아픈아이였습니다
연약합니다
병든자입니다
그런 자들이 하나님의 나라에 주인공이 되는 이유는
연약하고 아플수록 하나님을 의지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누구의 것입니까? 연약하고, 아프고, 병들고, 힘이 없기 때문에 주님만을 의지하는 자입니다
누군가가 그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할수록 영광을 받으신다
이 고백이 우리 모두의 고백에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이 아이들이 자기에게 다가오는 것을 보시고 안아 주셨습니다
오늘 말씀 16절
16 그 어린 아이들을 안고 그들 위에 안수하시고 축복하시니라
예수님은 안아 주셨습니다
근데 이 안아주심은 바로 성경 전체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포근하고 다정한 모습이 기도합니다
신명기 1장을 보면 우리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한 이후에 광야에서에 인도하신 것을
마치 아비가 아이를 안듯 이스라엘 백성들을 안아서 품어서 인도하셨다'라고 얘기합니다
사랑은 여러분
외롭고 힘드십니까? 연약하십니까?
우리를 안아 주시는 하나님
그분 품에 안겨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함을 느끼시고 또 그분에 인도하심에 따라 살아갈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미국에서는 매일 한번 이런 광고가 나온다고 합니다
"오늘 당신의 자녀를 안아 주셨습니까?"
하나님의 안아주심에 사랑을 받은 우리는
내 주변에 있는 연약한 자를 안아 주고
내 사랑하는 자녀들을 안아 주는 사랑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의 자녀를 꼭 안아 주시고
여러분의 사랑하는 자들을 꼭 안아 주시면서
"네가(당신이) 하나님 나라에 주인공이다"
이렇게 한번 칭찬해 보시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마지막으로 예수님은 안아주실 뿐만 아니라
안수하고 축복 해 주셨습니다
축복은 바로 하나님께서 이 아이들을 복 주시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그 축복에 기도에 따라 우리의 자녀들을 축복기도 해야 됩니다
축복 기도를 받고 자란 아이들은 결코 삐뚤어 나가지 않습니다
한국 가정의 회복, 무너져가는 한국 교회의 회복, 그 가정의 회복은
바로 예수님께서 보여 주신 것처럼
어린아이처럼 약한 자들을 품어주고, 축복하는데서 비롯됩니다
바로 이 주님의 삶의 모습이 우리의 모습이 되어
우리의 가정이 회복 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기도드리겠습니다
하나님 우리에 무너진 가정을 긍휼히 여기시고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짝지어 주시는 주님, 버리지 아니하시는 주님
품어주시고 축복하시는 주님을 따라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사람들이 어린아이들을
데려오는 것을
제자들이 꾸짖자,
예수님은 어떻게 반응하시나요?
하나님만 전적으로
의지하는 마음에
어떤 은혜가 임할까요?
END
이 글은 청각을 잃은 제 친구를 위해 작성되었습니다
전체 또는 일부가 잘못 듣고 잘못 옮겨 적은 내용이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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