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1.13. 생명의 삶 이해영 목사
할렐루야 세해들어 두 번째 맞이하는 주일입니다
오늘 주일 예배를 통하여서 사망권세 이기시고 부활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우리도 영원한 삶에 동참하는 감격스런 주일 또한 그런 예배가 되길 원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서 죄와 사망에 머물던 우리의 삶이
주님과 함께 생명의 세계로 그렇게 들어갔다'라는 것은 감사하지 않을 수 없는 영광이지요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가는 것도 부활하신 주님과 함께 생명을 계속해서 이어가는 삶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오늘 본문은 마치 주님께서 그림처럼 그의 생애를 통해 우리 신자들이 이 땅을 신앙으로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지를 너무나 잘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서 저와 여러분들의 삶 속에도 이런 놀라운 생명의 능력이 나타나기를 축원합니다
치유와 새 생명을
선물하는 믿음
마가복음 5장 21절에서 43절 말씀입니다
오늘에 본문은 두 임무를 우리들에게 보여 주고 있고
또 그와 관계 되어진 생생한 예수님을 만난 그런 구원의 이야기들을 우리들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는 회당장 야이로 와 그의 병든 딸이요 또 하나는 12년 동안 혈루증을 앓아온 여자의 이야기 입니다
어떻게 이야기가 펼쳐지는지 함께 보겠습니다 21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21 예수께서 배를 타시고 다시 맞은편으로 건너가시니 큰 무리가 그에게로 모이거늘 이에 바닷가에 계시더니
지금 이 21절은 바로 우리가 앞 단락에 있었던 전날 우리가 묵상한
예수님께서 거라사에서 군대 귀신들린자를 고치시고 그리고 갈릴리바다 맞은편으로 건너 가신 그 모습을 우리들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맞은편이라고 하는 이 표현에 주목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거라사는 요단강을 기준으로 해서 동쪽 편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맞은편으로 건너 가셨다라고 하니까
요단강을 기준으로 서쪽에 있는 그 지역으로 건너 가셨다라는 의미가 되겠지요
자연스럽게 요단강 서편은 본래의 약속의 땅을 의미합니다
어쩌면 요단강 동편에 거라사 광인 사건은 죽음의 땅에 모습을 보여 준 것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더러운 귀신에 붙잡혀 있었지요 또 무덤가에 거하고 있었고
또 고랑과 쇠사슬에 붙잡혀 있었지만 그것도 끊어버리는 그런 괴력에 그런 사람 이였습니다
밤낮 소리를 지르고 있었고
그리고 돌로 스스로를 자해하던 그런 풍경이였습니다
군대 귀신이 들려 있어서 2,000마리나 되는 돼지때들을 몰살 시키는
그런 아주 죽음에 땅에 그런 상징을 보여주는 모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습니다
그것이 바로 요단강 이쪽편 동편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면
예수님께서는 이제 다시 그 맞은편 서쪽으로 그렇게 건너 오신 것이지요
본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약속의 땅이라고 일컷는 바로 그런곳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때 큰 무리가 모여들었다'라고 말한다면 그건 정말 진정한 약속의 땅에 모습 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바로 혈루병 여인을 고치시고 회당장 야히로에 딸을 고치시는 것이지요
전에는 우리가 죄와 사망에 있었던 동편에 머물렀지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약속의땅 서쪽으로 넘어온 것이라고 우리의 신앙을 그렇게 묘사 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그러한 예수님과 함께 약속의 땅으로 건너온 우리들의 삶이 어떠한 모습이어야 하는가
그것이 바로 이 두 이야기 속에 담겨있다'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22절과 23절 읽어봅니다
22 회당장 중의 하나인 야이로라 하는 이가 와서 예수를 보고 발 아래 엎드리어
23 간곡히 구하여 이르되 내 어린 딸이 죽게 되었사오니 오셔서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그로 구원을 받아 살게 하소서 하거늘
'손을 얹으사 그로 구원을 받아 살게 하소서'
회당장 이라고 하는 당시 유대인들에게 존경받는 이 사람이 갈릴리의 목수 출신인 이 예수님에 대하여서 이렇게 그가 무릎을 꿇고 간청하고 있는 것은 믿음의 발로라고 말해도 틀림이 없을 것입니다
손을 얹기만 하신다면 그로 구원을 받아 살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그렇게 간청합니다
예수님은 이 회당장 야이로에 요청에 응답하시고 그 딸에게로 가던 중이었지요
그때 바로 아주 급한 이 응급에 상황 속에서 뜻밖에 인물이 출현합니다
12년간 혈루증을 앓아온 여인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혈루증에 걸린 여인은 율법으로 부정한 자여서 누구든지 손을 대거나 하면 그는 범법한 자가 됩니다
그는 이 12년 동안에 이 질병으로 인해서 많은 괴로움을 얻었고 가진 재산도 다 허비했다'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더 극심해졌다'라고 그에 총체적인 어떤 삶의 붕괴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요
그런데 27절과 29절 입니다
27 예수의 소문을 듣고 무리 가운데 끼어 뒤로 와서 그의 옷에 손을 대니
28 이는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받으리라 생각함일러라
29 이에 그의 혈루 근원이 곧 마르매 병이 나은 줄을 몸에 깨달으니라
여인은 예수에 소문을 들었고
그래서 예수님께로 다가와서 '그에게 손만 대어도 옷에 손만 대어도 구원을 얻을 것이다'라는 그런 작은 믿음을 갖고 있었던 것이지요
그러나 그가 율법으로 부정한 여인이기에 들키지 않도록 뒤에서 몰래 손을 대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바로 그 즉시 그가 몸에 건강을 회복한 것을 느끼게 되었던 것이지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요단강 건너 약속의 땅으로 들어왔다'라는 것은 이렇게 생생하게 우리와 함께 하시는 주님을 손대고 함께 만나고
그럼으로 인하여서 치유와 회복과 구원을 얻는 그런 감격적인 생애 자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바로 믿음으로 그런 세계가 펼쳐지는 것입니다
오늘 성도님들의 삶 속에 그 세계가 생생하게 펼쳐질 것입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믿기만 하라"라는 말씀에서
얻는 교훈은 무엇인가요?
내가 믿음을 굳게 하고
행한 일은 무엇인가요?
30절을 보겠습니다
30 예수께서 그 능력이 자기에게서 나간 줄을 곧 스스로 아시고 무리 가운데서 돌이켜 말씀하시되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하시니
예수님은 혈루증여인의 손 대어진
그리고 즉시로 나음을 얻은 이 사건을 통하여서
자신에게서 스스로 이 능력이 나간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라고 그렇게 물으신 것이지요
누가 손 대었는지 모르셔서 물은 것은 아닐 거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 낳은자가 스스로 고백하게 하시려는 그런 물음이었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32절 과 34절입니다
32 예수께서 이 일 행한 여자를 보려고 둘러 보시니
33 여자가 자기에게 이루어진 일을 알고 두려워하여 떨며 와서 그 앞에 엎드려 모든 사실을 여쭈니
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아마도 자기 자신이 나음을 얻기 위해서 누군가에 손을 대는 율법으로 금하고 있는 이런 행동이
그에게 예수님의 말로 인하여서 자책이 되었기에 두려워 하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두려움에 떨면서 모든 일을 자초지정을 말하게 되었지요
그때 예수님은 꾸짖거나 정죄하지 않으시고 놀랍게도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그러니 평안이 가라고 건강할지라고 축복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작은 믿음을지라도 그 믿음으로 인하여서 약속의 땅 요단 동편 그 땅을 살아가는 삶의 진풍경이라고 말 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의 과오와 우리들의 실수 그러나 믿음이라면
그것이 얼마든지 다시 회복되고 치유되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강의 삶으로 강건한 삶으로 이끌려 지는 것을 우리들에게 이야기해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이 혈루증여인을 고치던 이런 사건을 지나면서 본래 가기로 하였던 회당장 야이로에 집에 남아 지체되어 어떤 그런 연휴가 되었겠지요
그래서 이런 사건이 또 벌어집니다 35절과 36절입니다
35 아직 예수께서 말씀하실 때에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 회당장에게 이르되 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 어찌하여 선생을 더 괴롭게 하나이까
36 예수께서 그 하는 말을 곁에서 들으시고 회당장에게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하시고
혈루중 여인과 말씀하실 때에 회당장 집 사람들이 와서 이렇게 비보를 전합니다
'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
매우 위급 했던 응급상황에서 혈루증 여인과 시간을 지채하는 까닥에 아마 죽음에 이르게 된 것 같습니다
이것은 믿음으로 우리가 죽음을 이기고 생명을 살아간다라는 그러한 세계에 대한 일종에 우리의 믿음을 흔드는 한 가지 장면들이라고 말할 수가 있겠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서 이것을 확신할 수 있지요
예수님은 회당장에게 말합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라고 말합니다
물론 우리는 상식적이어야 하고 그리고 이 세상에서 이성적인 그런 틀을 존중하고 또 그 틀을 따라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반면에 우리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이지요
믿음으로 주님과 함께 우리에 보이지 않는 죽음과 사망을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로 생명을 얻었다'라는 확신을 가진이가 바로 우리들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시간에 문제가 되었던 장소에 문제가 되었던 물질의 문제가 되었던 그 어떤 것도 믿음의 세계를 훼방 할 수 없다는 것이지요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고 말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요단 동편 곧 약속의 땅을 살아가는
예수님의 부활과 함께 새로운 삶과 생명을 얻은 저와 여러분들이
이 땅에 그 어떤 것으로도 두려워 할 이유가 없다' 라고 주님 말씀하십니다
오로지 믿음으로 살 것을 요청 하고 계신 것이지요
38절과 39절을 이어봅니다
38 회당장의 집에 함께 가사 떠드는 것과 사람들이 울며 심히 통곡함을 보시고
39 들어가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떠들며 우느냐 이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
예수님은 울며 심히 통곡하는 사람들에게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고 그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어쩌면 이와 같은 초월적인
아니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는 너무나 허무 맹랑한 그런 초월에 이야기가 믿음으로 살아가는 요단 동편에 삶이요 생애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라는 주의 말씀은 정말로 확실한 진리 일것입니다
보십시오 41절과 42절 때문에 그렇습니다
41 그 아이의 손을 잡고 이르시되 달리다굼 하시니 번역하면 곧 내가 네게 말하노니 소녀야 일어나라 하심이라
42 소녀가 곧 일어나서 걸으니 나이가 열두 살이라 사람들이 곧 크게 놀라고 놀라거늘
예수님은 아이의 손을 잡고 '달리다굼'이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달리다굼'은 '소녀야 일어나라'라는 뜻이 됩니다
공교롭게 혈루증을 앓던 여인이 12년 동안 앓았는데
오늘 여기 이 야이로의 딸도 역시 12살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12이라고 하는 완전한
우리들의 생애를 요약해 주고 상징 해 주는 그런 사건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요
처음 회당장 야히로가 예수님께로 왔을 때는 손만 얹어주신다면 구원을 얻겠습니다 라고 말했지만
예수님은 소녀의 손을 잡고 일으키면서 '달리다굽'이라고 큰 선포를 하셨던 것이지요
이것이 바로 우리의 신앙의 삶
요단 동편에서 이루어지는 우리들의 인생의 진면목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는 잠시 손 얹기만 바랬는데
때로는 우리의 연약함으로 인하여서 몰래 손만 대기를 바라였는데
우리와 함께하시는 예수님은 생생하게 우리의 손을 오히려 붙잡으시고 일으켜 세우시고
'달리다굼'이라고 말씀 하시는 분이십니다
지금 그 예수님이 신앙으로 믿음으로 우리와 함께 하심을 믿으십니까?
보십시요 요한일서 1장 1절에
요한일서 1:1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생명의 말씀을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고 확신하는 것이 바로 신자의 삶이요 성도님들의 생애입니다
성도님들의 삶을 굳건히 손으로 오히려 붙잡으시고 일으키시면서 '달리다굽'명 하시는
우리 주님의 생생한 말씀이 저와 여러분들을 승리하게 하시고 일으키실 것입니다
그러한 놀라운 하나님의 나라가 성도님의 삶에 이루어지기를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서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약속의 땅 하나님의 생명의 땅에 우리 모두를 불러 주셔서 감사를 드립니다
작은 믿음으로 우리는 시작하여 손만 얹기를 바라였지만
어느덧 주님은 우리에게로 다가와 내 손을 잡고 일으키시고 '달리다굼'이라고 명하시니
우리가 벌떡 일어나 우리에게 주어진 생애을 힘차게 달음질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오늘 성도님들의 삶 속에 이 놀라운 믿음에 생애가 하나님 아름답게 능력있게 '달리다굼'으로 펼쳐지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내 믿음을 약하게 하는
사람들의 말이나 상황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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