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6.01 | 생명의 삶 | 도육환 목사
샬롬
영정원 우리 교회에 도육한 목사입니다.
세월이 참 빠릅니다.
어느새 6월의 첫날을 맞이했습니다.
이제는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는 것 같습니다.
새로운 한 달도 하나님 말씀 가까이 하며 주의 뜻에 순종하는 신실한 제자로 살아내는 복된 한 달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어제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니다 라는 말씀을 묵상했습니다.
교회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얼마든지 내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는 일들이 있지만,
공동체의 질서와 덕을 위해 스스로 절제하고 서로 존중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개인의 자유와 공동체의 질서가 어떻게 조화를 이루어 가야 하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묵상 말씀 고린도전서 11장 1절에서 16절 말씀입니다.

동등한 위치, 그러나 다른 역할
고린도전서 11장 1절에서 16절 말씀입니다.
| 1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2 너희가 모든 일에 나를 기억하고 또 내가 너희에게 전하여 준 대로 그 전통을 너희가 지키므로 너희를 칭찬하노라 3 그러나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 4 무릇 남자로서 머리에 무엇을 쓰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요 5 무릇 여자로서 머리에 쓴 것을 벗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니 이는 머리를 민 것과 다름이 없음이라 6 만일 여자가 머리를 가리지 않거든 깎을 것이요 만일 깎거나 미는 것이 여자에게 부끄러움이 되거든 가릴지니라 7 남자는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이니 그 머리를 마땅히 가리지 않거니와 여자는 남자의 영광이니라 8 남자가 여자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여자가 남자에게서 났으며 9 또 남자가 여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지 아니하고 여자가 남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은 것이니 10 그러므로 여자는 천사들로 말미암아 권세 아래에 있는 표를 그 머리 위에 둘지니라 11 그러나 주 안에는 남자 없이 여자만 있지 않고 여자 없이 남자만 있지 아니하니라 12 이는 여자가 남자에게서 난 것 같이 남자도 여자로 말미암아 났음이라 그리고 모든 것은 하나님에게서 났느니라 13 너희는 스스로 판단하라 여자가 머리를 가리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마땅하냐 14 만일 남자에게 긴 머리가 있으면 자기에게 부끄러움이 되는 것을 본성이 너희에게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15 만일 여자가 긴 머리가 있으면 자기에게 영광이 되나니 긴 머리는 가리는 것을 대신하여 주셨기 때문이니라 16 논쟁하려는 생각을 가진 자가 있을지라도 우리에게나 하나님의 모든 교회에는 이런 관례가 없느니라 |
오늘 본문 11장부터 14장까지는 고린도 교회 공 예배에서 일어난 일들, 또 그와 같은 여러 은사에 관해서 바울이 전한 말씀들입니다.
바울은 먼저 중요한 기준부터 제시합니다. 1절 말씀을 보십시오.
1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바울이 전하는 경우는 단순히 사회적 규범이나 집단 윤리가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삶으로 보여주신 본을 따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이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처럼 성도들도 자신을 본받으라고 권면합니다.
그리고 가장 먼저 다루는 문제가 공예배 때, 남자와 여자가 머리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였습니다.
4절과 5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4 무릇 남자로서 머리에 무엇을 쓰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요
5 무릇 여자로서 머리에 쓴 것을 벗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니 이는 머리를 민 것과 다름이 없음이라
간단히 말하면 남자는 예배할 때 머리에 무엇을 쓰지 말고 예배해야 하고 여자는 머리를 가리는 것이 좋다 하는 것입니다.
당시 문화 속에서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를 상징한다고 여겼기 때문에 머리를 가린 채 기도하거나 예언하는 것은 머리 대신 하나님께 영광을 가리는 행동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반대로 여자는 예배 때 머리에 너울이나 수건을 쓰는 것이 단정함과 존중의 표현이었습니다.
당시 사회에서는 머리를 가린 여성을 정숙한 여인으로 여겼고, 반대로 머리를 드러낸 여성은 좋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여기에서 여자의 머리는 남자다라는 표현을 오늘 우리 시대의 관점으로 단순하게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우열의 문제가 아니라 역할과 질서의 문제입니다.
창조의 질서 속에서 남자와 여자는 서로 다른 역할로 지음받았습니다.
여자는 남자를 돕는 배필로 창조되었고, 남자와 여자는 서로 다른 모습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도록 부름받았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가치의 차이가 있다는 것은 아닙니다.
머리와 심장이 서로 역할은 다르지만 모두 몸에 꼭 필요한 것처럼,
남자와 여자도 서로 다른 역할 안에서 하나를 이루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머리가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아버지께 순종하셨지만 성부와 성자와 성령 세 분 하나님은 본질적으로 동등하시죠.
이처럼 남자의 머리 됨도 지배나 차별이 아니라 질서와 조화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이 말씀을 문자 그대로 적용해서 여성들이 예배 때 머리에 미사포를 쓰는 교회들이 없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먼저 당시의 문화적 배경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당시 고린도 사회에서 결혼한 여성은 머리를 가림으로 자신이 남편을 존중하고 정숙한 삶을 살아간다는 것을 나타냈습니다.
반대로 머리를 가리지 않은 여성은 미혼이거나 부도덕한 여인으로 오해 받기가 쉬웠습니다.
고린도교회 성도들도 복음 안에서는 자유로운 사람들이었지만 공동체의 덕을 세워야 하고, 세상 앞에서 복음의 아름다움을 드러내기 위해서 스스로 자유를 절제해야 했던 것입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로운 사람들이지만 교회와 세상 속에서 덕을 세우기 위해 때로는 우리 자신의 자유를 내려놓을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편지요, 세상 속의 향기를 드러내야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머리에 수건을 쓰느냐 쓰지 않아야 하느냐 하는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의 삶이 복음의 빛을 가리고 있지는 않는가를 물어야 합니다.
교회 안에 질서를 소중히 여기고 세상 속에서는 소금과 빛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빛의 자녀들입니다.
그러므로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서로 사랑하므로 그리스도의 제자 됨을 드러내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말씀은 남자와 여자 사이에 차별이나 우열이 있는 것처럼 오해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어지는 11절과 12절에서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읽어보지요.
11 그러나 주 안에는 남자 없이 여자만 있지 않고 여자 없이 남자만 있지 아니하니라
12 이는 여자가 남자에게서 난 것 같이 남자도 여자로 말미암아 났음이라 그리고 모든 것은 하나님에게서 났느니라
아맨
주 안에는 남자 없이 여자만 있지는 않죠. 여자 없이 남자가 있는 경우도 없습니다.
당시 사회는 남녀의 신분 차이가 분명했던 시대였지만 주 안에서는 적어도 그리스도 안에서는 우열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여자는 남자에게서 나왔지만 이제는 모든 남자가 여자를 통해서 태어납니다.
서로 없어서는 안 될 존재라는 뜻입니다.
결국 모든 존재의 근원은 하나님이십니다.
남자도 여자도 하나님께서 지으셨고 하나님께로부터 비롯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도 다른 사람 위에 굴림할 수 없고 세상의 기준으로 사람의 가치를 판단해서도 안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를 존중해야 합니다.
모두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원받은 존재이며 하나님의 뜻과 계획 가운데 이 땅에 보내심을 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이어지는 13절 이하에서 바울은 당시의 자연스러운 문화와 인식을 이야기합니다.
그 시대 사람들의 관점에서는 남자의 짧은 머리는 단정함과 권위를 나타냈고, 여자의 긴 머리는 여성다움과 아름다움을 상징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남자와 여자를 각각 다르게 지으셨고 서로 다른 아름다움과 은사와 특징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남성과 여성의 문제를 두고 서로 극단적으로 대립하는 모습들도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16절에서 하나님의 교회 안에서는 그런 다툼과 논쟁으로 나아가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서로를 존중하고 인정하며 각자 받은 은사와 달란트로 하나님을 섬기고 세상의 덕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서로 다르게 지으셨지만 그 다름 속에서 함께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게 하셨습니다.
오늘도 서로 존중하고 사랑하며 건강한 질서를 지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공동체로 세워 나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존귀하신 하나님
우리를 남자와 여자로 지으시고 서로를 존중하며 함께 살아가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사랑하며 하나 되어 주의 뜻을 이루는 건강한 교회 공동체를 세워 나가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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