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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서와 조화에 순종하는 성숙한 성도 (고린도전서 11:2~16)(20220524)

2022.05.24. | 생명의 삶 | 도육환 목사                                                                                                         

 

질서와 조화에 순종하는 성숙한 성도

 

안녕하십니까.

온누리 교회 양지 캠퍼스를 섬기는 도육한 목사입니다.

혹 여러분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져보신 적아 있습니까?

무슨 이야기냐고요?

고린도 교회는 많은 문제와 미숙함을 가진 교회였습니다.

스스로 해결할 수 없을 만큼 충분한 성경적 지식이 없었기 때문에 그들의 영적 아버지 된 사도바울에게 여러 문제들에 대한 답을 구했고, 그것이 오늘 우리에게 전달된 고린도 전서가 되었습니다.

역설적이지만 고린도 교회에 다양한 문제가 있었기에 요즘 우리가 묵상하는 보배로 말씀을 얻게 되었으니 하나님의 일하심에는 결코 헛되거나 우연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동안 우상에게 드려졌던 재물 문제에 대해 복음적 지침을 주었던 바울은 이제 고린도 교회의 공예배 가운데 일어난 세 가지 문제들에 대해 차례로 답을 주고 있습니다.

여자들의 머리에 수건을 쓰는 문제, 또 성만찬에서 발생한 문제, 영적 은사들을 활용하는 문제입니다.

오늘 본문은 '여성 성도들이 베일을 써야 하는가?'의 문제에 대해서 지침을 주고 있습니다.

말씀 속으로 들어가죠.

고린도전서 11장 2절에서 16절 말씀입니다. 

질서와 조화에 순종하는 성숙한 성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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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너희가 모든 일에 나를 기억하고 또 내가 너희에게 전하여 준 대로 그 전통을 너희가 지키므로 너희를 칭찬하노라
3 그러나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
4 무릇 남자로서 머리에 무엇을 쓰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요
5 무릇 여자로서 머리에 쓴 것을 벗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니 이는 머리를 민 것과 다름이 없음이라

6 만일 여자가 머리를 가리지 않거든 깎을 것이요 만일 깎거나 미는 것이 여자에게 부끄러움이 되거든 가릴지니라
7 남자는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이니 그 머리를 마땅히 가리지 않거니와 여자는 남자의 영광이니라
8 남자가 여자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여자가 남자에게서 났으며
9 또 남자가 여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지 아니하고 여자가 남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은 것이니
10 그러므로 여자는 천사들로 말미암아 권세 아래에 있는 표를 그 머리 위에 둘지니라

11 그러나 주 안에는 남자 없이 여자만 있지 않고 여자 없이 남자만 있지 아니하니라
12 이는 여자가 남자에게서 난 것 같이 남자도 여자로 말미암아 났음이라 그리고 모든 것은 하나님에게서 났느니라
13 너희는 스스로 판단하라 여자가 머리를 가리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마땅하냐
14 만일 남자에게 긴 머리가 있으면 자기에게 부끄러움이 되는 것을 본성이 너희에게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15 만일 여자가 긴 머리가 있으면 자기에게 영광이 되나니 긴 머리는 가리는 것을 대신하여 주셨기 때문이니라

16 논쟁하려는 생각을 가진 자가 있을지라도 우리에게나 하나님의 모든 교회에는 이런 관례가 없느니라

 

오늘 본문을 묵상할 때는 복음과 문화의 차이를 잘 분별하며 읽어야 합니다. 

바울은 공예배 시에 '여성 성도들이 너희에 수건을 써야 하는가?' 하는 문제에 대한 지침을 내려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4절 5절에 보면 남자는 머리에 무엇을 쓰고 기도하고 예언하는 것이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고,
반대로 여자는 머리에 아무것도 쓰지 않는 채 기도하고 예언하는 것이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라 하셨습니다. 

여기서 '머리를 욕되게 한다'는 말씀은 그 자신의 수치를 뜻할 수도 있고, 또 머리 대신 그리스도의 영광을 해친다는 뜻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 가운데 여인들이 공 예배 중에 머리에 무엇을 쓰고 쓰지 않는 것이 수치가 되는 근거가 되는 말씀이 3절입니다.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3 그러나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

바울은 머리를 권위를 상징하는 단어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정리하자면 이렇습니다. 

여자의 머리는 남자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 됩니다. 

오늘 우리 시대의 관점으로 본다면 당연히 여성 차별적인 말씀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실제 그레콜로만 사회나 동양에서는 오랫동안 여성들이 차별을 받아왔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성경은 남녀의 차별을 결코 지지하지 않습니다. 

보십시오.

그리스도의 머리가 하나님이시라 말씀하시지만,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 두 분은 어느 편이 더 우월한 분이 아닙니다.

삼위일체 되시죠.

동등하신 분이십니다.

한 분 하나님이십니다. 

 

이같이 남성과 여성 어느 편이 더 우월한 것을 말씀하는 게 아닙니다. 
본문이 의미하는 것은 창조의 순서에 따른 질서를 말하고 있습니다. 

8절과 9절에서 말씀하신 것과 같이 남자의 갈비뼈를 취해서 여자를 만드셨고, 남자의 홀로 있는 것이 보기 좋지 않아서 여자를 지으셨으니 서로 동등한 존재이며 단지 기능과 역할에서 서로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여자들이 머리에 수건을 쓰고 예배를 드려야만 했을까요?

그것은 당시 사회의 관습과 상식을 존중한 것이라 하겠습니다.

로마 시대 남성들은 대부분 짧은 머리를 하였고 조신한 여성들은 대부분 머리를 길게 길렀습니다. 

머리를 짧게 자른 여성은 당시에는 매춘부나 정숙하지 못한 여인으로 간주되던 때였습니다. 

결혼한 여인들이 공식적인 모임에 나갈 때는 야시막(Yashmak)이라는 너울을 머리에 쓰거나 면사포로 얼굴을 가리는 것이 문화였고 관례였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남편에 대한 예의였고 정숙한 아내임을 드러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복음 안에서는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가 되지 않았습니까?

그러다 보니 혹 여성들 중에는 당시 관습으로부터 자유로워지려고 하는 이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자신의 외모와 복장 자신이 결정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음란한 고린도 사회에 존재하는 교회가, 반사회적 모임으로 세상에 비치는 것을 원치 않았던 것입니다.

여성들의 권리와 자유를 존중하지만 이로써 복음의 진리가 훼손당하거나 세상 앞에 덕이 되지 않는 행위 그것을 금한 것입니다.

 

또한 여자가 머리를 가리지 않는 것을 금한 것처럼 남자가 머리에 무엇을 쓰는 것을 금했습니다. 

남자는 첫 번째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이니 머리를 가리지 않아야 했다는 것입니다.

정리하자면 머리에 수건을 쓰고 혹 쓰지 않는 것은 질서를 존중하는 문화의 표식이었다는 겁니다. 

물론 여성들의 권리와 자유를 존중하지만 이로써 복음의 진리가 훼손당하고 세상 앞에 덕이 되지 않는 행위를 금한 것입니다. 

또한 여자가 머리를 가리지 않는 것을 금한 것처럼 남자가 머리에 무엇을 쓰는 것을 금했습니다. 

남자는 첫 번째 피조물로 하나님의 영광과 창조의 형상을 가졌기에 머리를 가리지 않아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정리하자면 머리에 수건을 쓰고 혹 쓰지 않는 것은 질서를 존중하는 표식이었다는 겁니다. 

 

물론 오늘 우리의 예배에 로마 가톨릭처럼 우리가 미사포를 써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교회들이 세상과 동떨어진 이질적인 집단으로 보이게 만드는 것은 없는지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복음은 언제나 문화의 옷을 입고 전파됩니다. 

세상과 구별되지만 세상과 분리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는 세상 속에서 우리의 변치 않는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할 수 있는 전략들을 고민해야 합니다.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와 문화로 복음이 전달될 수 있도록 장벽을 낮추어야 하죠. 

그것이 맞춤 전도이든 열린 예배이든 세상 속에 들어가 빛이 되고 소금이 되는 길을 찾고 개발해야 합니다. 

여러분과 제가 안으로는 신앙 공동체의 덕을 세우고 유익을 구하며 밖으로는 세상과 잘 소통하는 복음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바울이 고린도 교회 여성들에게 머리에 무엇을 쓰라고 했던 이유는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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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진보와 보수 세대 간의 갈등뿐만 아니라 남녀 간의 갈등도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 사회가 어느 편도 희생당하거나 억울하지 않도록 조정하고 배려하는 것이 중요한 시대가 되었죠. 

오늘 본문에는 이러한 갈등을 풀 수 있을 것 같은 단초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11절 12절 말씀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11 그러나 주 안에는 남자 없이 여자만 있지 않고 여자 없이 남자만 있지 아니하니라
12 이는 여자가 남자에게서 난 것 같이 남자도 여자로 말미암아 났음이라 그리고 모든 것은 하나님에게서 났느니라

앞서 여자의 머리가 남자라고 말씀하셨지만 남자와 여자는 동등한 존재임을 밝힙니다.

남자 없는 여자, 여자 없는 남자가 어찌 존재할 수 있겠습니까?

남녀는 서로에게 절대적으로 의존되어 있죠.

여자로부터 남자가 나왔고 또 남자로부터 여자가 나왔습니다.

 

무엇보다 남자도 여자도 한 분 하나님에게서 났습니다.

한 분 하나님의 형상과 성품을 공유했다는 점에서 하나님 앞에서는 사회적으로 남녀는 그 어떤 차별도 없는 동등한 존재로 대해야 합니다. 

단지 창조의 질서 안에서 기능과 역할이 다르기에 공예배 시에 여자는 머리에 수건을 써야 하고 남자는 수건을 쓰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편 바울은 사람의 자연적인 본성에도 이렇게 하는 것이 옳다는 사회적 관점을 강조합니다. 14절 15절 말씀입니다. 

14 만일 남자에게 긴 머리가 있으면 자기에게 부끄러움이 되는 것을 본성이 너희에게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15 만일 여자가 긴 머리가 있으면 자기에게 영광이 되나니 긴 머리는 가리는 것을 대신하여 주셨기 때문이니라

물론 요즘처럼 다원화된 세상에서 이 말씀이 직접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당시 사회적 관습에 따르면 남자는 긴 머리를 부끄럽게 여기고, 여자는 긴 머리를 아름다움과 영광으로 여겼다는 겁니다.

지금 여러분이 긴 머리를 유지하고 있는가 짧게 겉에 있는가 하는 것은 오늘 우리의 묵상의 주제도 논쟁의 주제도 아닙니다.

긴 머리와 수건을 쓰는 것은 바울의 시대의 문화가 반영된 것이지 문자적으로 받아 지금 우리가 지켜야 할 계명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특히 오늘 우리 시대의 보편적 문화는 각 개인의 외모와 개성이 존중되는 사회이고 전혀 문제 삼지 않는 때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나의 옷차림과 외모가 우리의 신앙 공동체의 질서를 존중하고 덕을 세우고 있는지는 물어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숨기지 못하는 산 위의 동네로 살고, 등경위의 등잔처럼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그리스도의 제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다른 아무것에도 예속되지 않는 자유를 가졌습니다. 

동시에 우리는 모든 것에 종속되어 사람으로 종노릇 돼야 하는 만인의 종들이기도 합니다. 

늘 공동체의 덕을 세우고 화평을 이루며 하나님 나라의 대사로 살아가는 일에 기쁘게 즐거움으로 헌신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공동체에서 하나님의 창조 질서와 일반적 남녀 본성을 인정하며 조화를 이룰 일은 무엇인가요?

 

존귀하신 주님
우리의 몸과 마음을 주장해 주셔서
창조의 질서를 지키며 공동체의 덕을 세우는 신실한 제자로 살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존귀하신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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