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6.03 | 생명의 삶 | 도육환 목사
오늘도 말씀과 함께 하루를 살아가는 생명의 삶 가족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풍성하기를 축복합니다.
온누리 교회를 섬기는 도육환 목사입니다.
우리는 어제와 오늘 성찬의 의미와 자세에 대한 말씀을 묵상하고 있습니다.
성찬은 우리를 위해 자신을 내어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기념하는 거룩한 예식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결코 가볍게 참여할 수 없는 엄숙하고도 은혜로운 시간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도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성찬의 의미를 다시 깊이 새기는 귀한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묵상할 말씀은 고린도 전서 11장 27절에서 34절 말씀입니다.
함께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하겠습니다.

서로 배려하는 주님의 교회
고린도전서 11장 27절에서 34절 말씀입니다.
| 27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하지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에 대하여 죄를 짓는 것이니라 28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지니 29 주의 몸을 분별하지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 30 그러므로 너희 중에 약한 자와 병든 자가 많고 잠자는 자도 적지 아니하니 31 우리가 우리를 살폈으면 판단을 받지 아니하려니와 32 우리가 판단을 받는 것은 주께 징계를 받는 것이니 이는 우리로 세상과 함께 정죄함을 받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33 그런즉 내 형제들아 먹으러 모일 때에 서로 기다리라 34 만일 누구든지 시장하거든 집에서 먹을지니 이는 너희의 모임이 판단 받는 모임이 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그밖의 일들은 내가 언제든지 갈 때에 바로잡으리라 |
어제 묵상했던 것처럼 주님께서는 유월절 식사 자리에서 떡과 잔을 나누시며,
이것은 너희를 위한 내 몸이오 내 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물론 개신교는 사제가 축사할 때 떡과 포도주 자체가 실제로 예수님의 몸과 피로 변한다는 화체설을 따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성찬을 단순한 상징적인 예식 정도로만 여겨서도 안 됩니다.
성찬은 단지 과거를 기억하는 의식이 아니라, 그 순간 우리를 주님의 임재 앞으로 이끄시는 십자가의 은혜, 그 은혜를 새롭게 경험하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찬에 참여할 때는 그 의미를 깊이 생각하며 자신을 돌아보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27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27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하지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에 대하여 죄를 짓는 것이니라
성찬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내어주신 몸과 피를 기념하는 거룩한 예식입니다.
그런데 합당하지 않은 태도로 참여하는 것은 주님의 몸과 피에 죄를 짓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합당하지 않게 먹고 마신다는 말은 성찬을 재정하신 주님의 마음과 십자가의 의미를 가볍게 여기는 태도를 말합니다.
그렇다면 성찬의 합당한 자세는 무엇일까요?
떡과 잔 앞에 자신은 전적으로 탈락한 죄인이며,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도무지 구원받을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십자가 아래에서 서로 사랑하고 존중하는 관계를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고린도 교회에서 이루어지는 성찰은 본래의 의도와 반대 방향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여유 있는 사람은 먼저 와서 자기들끼리 배불리 먹고 마셨고, 늦게 도착한 가난한 성도들은 굶주린 채 예배에 참여해야 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배부르고 취해 있었는데, 어떤 사람은 지치고 상한 마음으로 앉아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자신을 내어주신 하나님의 사랑과 정반대의 모습이었습니다.
주님의 몸과 피를 기념하는 자리에서 오히려 공동체에 상처를 주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먼저 자기 자신을 살피라고 권면합니다.
성찬 앞에서는 내 마음의 태도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혹시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모습은 없는지, 공동체를 향한 사랑과 배려를 잃어버리고 있는지는 않았는지 살펴야 합니다.
그리고 겸손히 십자가 앞으로 나아가 주님의 은혜, 보혈의 은총을 구해야 합니다.
이어지는 말씀도 중요합니다. 29절입니다.
29 주의 몸을 분별하지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
여기서 말하는 주의 몸은 두가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첫째는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찍기신 예수님의 몸이지요.
우리는 성찬에 참여할 때마다 그 희생과 대속의 은혜를 기억해야 합니다.
둘째는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의미합니다.
성찬은 나 혼자 드리는 개인적인 신앙 행위가 아닙니다.
주님의 몸 된 공동체와 함께 참여하는 예식입니다.
그래서 성찬 앞에서는 공동체의 소중함과 성도들의 아픔까지 함께 돌아볼 수 있어야 합니다.
결국 성찬은 십자가와 공동체를 함께 바라보는 자리입니다.
만일 이런 깊은 의미를 생각하지 않은 채 무감각하게 참여하고 있다면 그것은 은혜를 누리는 시간이 아니라 스스로의 죄를 먹고 마시는 일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찬에 참여할 때마다 자신과 공동체를 돌아보며 거룩함과 경외함으로 주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그럴 때 성찬의 은혜와 기쁨을 더욱더 풍성하게 누릴 수 있게 됩니다.
여러분이 성찬을 대할 때마다, 다른 성도와 함께 애찬을 나눌 때마다 주님의 은혜와 사랑을 기억하며 덕을 세우고 화평을 이루는 공동체로 세워가기를 축원합니다.

저와 여러분 우리는 성찬에 참여할 때마다 자신과 공동체를 돌아보며 거룩함과 경외함으로 주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그럴 때 성찬의 은혜와 기쁨을 더 풍성히 누릴 수 있게 됩니다.
성찬은 분명 놀라운 축복입니다.
우리를 위한 대속의 사랑을 새롭게 하고 주님의 몸 된 교회 안에서 하나 되게 하는 은혜의 자립입니다.
그래서 성찬은 1년에 몇 번만이 아니라 더 자주 참여해도 좋을 만큼 귀하고 복된 예식입니다.
그러나 그 거룩한 의미를 놓친 채 참여하게 된다면 문제가 됩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 안에 약한 사람과 병든 사람, 심지어 잠자는 사람까지 생겼다고 말합니다.
이어지는 31절과 32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31 우리가 우리를 살폈으면 판단을 받지 아니하려니와
32 우리가 판단을 받는 것은 주께 징계를 받는 것이니 이는 우리로 세상과 함께 정죄함을 받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바울은 그 이유를 우리가 우리 자신을 살피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물론 이것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 성찬을 잘못 참여하고 받으면 반드시 병들고 심판받을 수 있다고 단정하는 것은 조심해야 합니다.
그것은 복음의 본래 정신하고도 맞지 않습니다.
하지만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십자가의 은혜를 가볍게 여기고 하나님의 사랑을 무시한 채 살아간다면 결국 우리의 영혼은 병들 수 밖에 없고 하나님이 미워하는 삶을 살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성찬을 가볍게 여기는 것은 결국 구원의 은혜를 가볍게 여기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어찌하든 성찬의 본래 의미를 회복하기를 바랐습니다.
이는 우리로 세상과 함께 정죄함을 받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말씀하십니다.
바울은 권도 성도들이 성찬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 대속의 사랑을 풍성하게 누리기를 원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아주 실제적인 해결책 하나를 제시합니다. 33절과 34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33 그런즉 내 형제들아 먹으러 모일 때에 서로 기다리라
34 만일 누구든지 시장하거든 집에서 먹을지니 이는 너희의 모임이 판단 받는 모임이 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그 밖의 일들은 내가 언제든지 갈 때에 바로잡으리라
서로 기다려주라는 것입니다.
먼저 온 사람들이 늦게 오는 사람들을 배려하고 함께 식사를 시작하라는 것입니다.
혹 기다리는 것이 힘들고 배가 고프다면 집에서 먼저 먹고 라고까지 말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배와 성찬의 자리가 상처와 차별의 자리가 아니라 사랑과 하나 됨의 자리가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찬은 하나님과의 관계만 돌아보는 시간이 아닙니다.
사람들과의 관계까지 함께 돌아보는 시간입니다.
우리는 떡과 잔을 받을 때마다 십자가의 은혜를 기억하고 동시에 공동체 안에서 사랑과 배려로 살아가고 있는지도 점검해야 합니다.
어찌 성찬식만을 위해 주신 말씀이겠습니까?
오늘도 주님의 은혜 앞에서 우리 자신을 돌아보며 십자가를 더욱 더 사랑하고 공동체를 귀히 여기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존귀하신 하나님
성찬을 통해 십자가의 사랑과 은혜를 기억하게 하시고 주님의 몸된 공동체를 돌아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성찬의 자리뿐만 아니라 삶의 모든 예배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누리며 십자가를 더욱 사랑하는 성도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함께 읽는 큐티
- 주님의 죽으심의 의미를 바르게 실현하는 성만찬 (고린도전서 11장)
- 주님의 만찬, 십자가 사랑으로 하나 되는 자리 (고린도전서 11장)
- 성도의 행동 기준, 남의 유익과 주님의 영광 (고린도전서 10장)
'CGNTV > 생명의 삶'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조화를 이루며 연합하는, 그리스도의 몸(고린도전서 12:12~20)(20260605) (0) | 2026.06.05 |
|---|---|
| 같은 성령, 다양한 은사(고린도전서 12:1~11)(20260604) (0) | 2026.06.04 |
| 주님의 만찬, 십자가 사랑으로 하나 되는 자리(고린도전서 11:17~26)(20260602) (1) | 2026.06.02 |
| 동등한 위치, 그러나 다른 역할(고린도전서 11:1~16)(20260601) (1) | 2026.06.01 |
| 성도의 행동 기준, 남의 유익과 주님의 영광(고린도전서 10:23~33)(20260531) (0) | 2026.05.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