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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생이 필요한 이타적 선택(룻기 4:1~6)(20260507)

2026.05.07 | 생명의 삶 | 조호영 목사

 

 

희생이 필요한 이타적 선택

 

 

안녕하세요.

오늘의 교회를 섬기는 조호영 목사입니다.

축구 선수 이영표 선수가 '자신은 늘 살아가면서 매일매일 세상에서 쉽게 사는 방법과 또 말씀대로 살아가는 방법 사이에서 고민하며 살고 있다. 그리고 순간순간 주님의 은혜로 선한 선택을 함으로 날마다 기뻐하며 살기를 바랄 뿐이다.'라고 고백하는 간증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이것이 믿음으로 살기 원하는 우리 모두의 고민이 아닌가 싶습니다.

육체의 소욕을 따를 것인가 성령의 소욕을 따를 것인가

하나님 말씀을 따를 것인가 세상의 가치관을 따를 것인가

하나님이냐? 돈이냐?

매일매일 내 안에서 두 마음이 싸웁니다.

오늘 말씀 속에서도 똑같은 일을 서로 다른 동기를 가지고 인생의 방향을 결정하는 두 사람이 등장합니다.

오늘 말씀은 룻기 4장 1절에서 6절 말씀입니다.

 

 

 

희생이 필요한 이타적 선택
희생이 필요한 이타적 선택

 

 

 

희생이 필요한 이타적 선택

 

 

룻기 4장 1절에서 6절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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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보아스가 성문에 올라가서 거기 앉아있더니 마침 보아스가 말하던 기업 무를 자가 지나가는지라 보아스가 그에게 이르되 아무개여 이리로 와서 앉으라 하니 그가 와서 앉으
2 보아스가 그 성읍 장로 열 사람을 청하여 이르되 당신들은 여기 앉으라 하니 그들이 앉으매
3 보아스가 그 기업 무를 자에게 이르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온 나오미가 우리 형제 엘리멜렉의 소유지을 팔려 하므로
4 내가 여기 앉은 이들과 내 백성의 장로들 앞에서 그것을 사라고 네게 말하여 알게 하려 하였노라 만일 네가 무르지 아니하려거든 내게 고하여 알게 하라 네 다음은 나요 그 외에는 무를 자가 없느니라 하니 그가 이르되 내가 무르리라 하는지라

5 보아스가 이르되 네가 나오미의 손에서 그 밭을 사는 날에 곧 죽은 자의 아내 모압 여인 룻에게서 사서 그 죽은 자의 기업을 그의 이름으로 세워야 할지니라 하니
6 그 기업 무를 자가 이르되 나는 내 기업에 손해가 있을까 하여 나를 위하여 무르지 못하노니 내가 무를 것을 네가 무르라 나는 무르지 못하겠노라 하는지라

 

 

 

오늘 말씀 속에는 보아스와 또 먼저 기업 물을 권리가 있는 한 사람, 이렇게 두 사람이 등장합니다.

두 사람은 다 엘리멜렉의 친척이오 기업 무를 자격을 가진 사람이지만 선택 앞에서 보여주는 태도는 상당히 다릅니다.

한 사람은 자기의 유익보다는 상대방의 유익을 구하며 하나님의 법대로 행하고자 애쓴다면은

또 다른 한 사람은 자기의 유익을 구하면서 스스로 헤어리다가 자기에게 손해가 되는 것을 염려하며 거절하는 모습입니다.

1절, 2절입니다.

1 보아스가 성문에 올라가서 거기 앉아있더니 마침 보아스가 말하던 기업 무를 자가 지나가는지라 보아스가 그에게 이르되 아무개여 이리로 와서 앉으라 하니 그가 와서 앉으
2 보아스가 그 성읍 장로 열 사람을 청하여 이르되 당신들은 여기 앉으라 하니 그들이 앉으매

 

보아스는 룻을 도와주고 싶지만 자신보다 더 가까운 친척이 나오미 집 안에 기업 무를 자격이 있기 때문에 정식으로 그에게 먼저 기회를 주기로 결정하고선 성문으로 올라갑니다.

 

성문을 재판과 결정의 장소로 정한 것은 이 이슈를 은밀하게 행하지 않고 모든 과정을 정직하게 공개하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10명의 증인까지 세우는 보아스의 결정은 매우 침착하고 지혜로워 보입니다.

기업무를자를 결정하는 모든 과정이 사람들 앞에서 정직하고 질서 있게 행해지는 그것을 보면서 그 보아스가 그동안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왜 사람들이 그를 존경하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여기 또 나오는 단어가 있습니다.

마침 그 기업 물을 자격이 있는 그 사람이 마침 성문 앞을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룻기를 보면 계속 중간중간에 우연히, 그때, 마침 이런 단어가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건 무슨 의미일까? 생각해 봅니다.

바로 우연인 것 같지만 이 모든 상황을 주관하시는 분이 뒤에 계신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마치 하나님이 룻에게 축복의 선물을 주시려고 미리 다 준비하셨다가 때가 되면 서프라이즈 선물처럼 하나씩 하나씩 이루어지게 하시는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보는 것 같습니다.

 

 

그 기업무를 자를 만난 보아스는 자세히 상황을 설명하죠. 3절, 4절입니다.

3 보아스가 그 기업 무를 자에게 이르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온 나오미가 우리 형제 엘리멜렉의 소유지을 팔려하므로
4 내가 여기 앉은 이들과 내 백성의 장로들 앞에서 그것을 사라고 네게 말하여 알게 하려 하였노라 만일 네가 무르지 아니하려거든 내게 고하여 알게 하라 네 다음은 나요 그 외에는 무를 자가 없느니라 하니 그가 이르되 내가 무르리라 하는지라

 

보아스는 참 정직한 사람입니다. 자기의 원함은 있었지만 그것을 위하여 꾀를 부리지 않습니다.

내가 원하지 않으면 내가 엘리멜렉의 기업을 물을 것이다 내가 먼저 결정하라. 당당하게 말합니다.

놀랍게도 그 기업무를 자는 자신이 엘리멜렉의 땅을 사겠다고 말합니다.

이때 부아스의 마음이 조금은 철렁하지 않았을까?

왜냐하면 그의 마음에는 룻이 자리를 잡고 있었고 그녀와 했던 약속도 기억이 났을 것입니다.

 

그러나 보아스가 놀랐더라 당황했더라 그런 말은 없습니다.

보아스는 믿음의 사람입니다.

이 모든 상황은 자신이 애쓴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미 결정하셨고 친히 나오미 가족들을 향한 그 계획을 이루시고 계시다는 믿음이 있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어떤 상황에도 잠잠하고 지혜롭게 대처하는 보아스와 나의 뜻과 생각대로 잘 안 될 때 당황하고 감정이 요동치는 우리들의 모습을 대비하며 묵상해 봅니다.

보아스처럼 우리도 모든 상황 속에서 하나님을 인정하고 말씀에 순종하며 하나님의 때를 기다릴 때

어려운 상황 같아도 마침내 가장 선하게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경험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이 기업 물을 자는 깨닫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기업을 물은다는 의미는 친척의 땅을 사서 자신의 것으로 소유하는 개념을 넘어서 엘리멜렉의 가문을 소생시켜 준다는 희생과 구속의 의미도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늙은 나오미가 죽으면 그 땅은 완전 내 소유가 될 것이야 이렇게 쉽게 생각하고 결정한 것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지극히 욕심에서 나오는 인간적인 결정인 것이죠.

놀랍게도 오늘 말씀 1절에 이 기업 물을 자의 이름은 그냥 아무개로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아무개요 이리로 와서 앉으라 하니 그가 와서 앉으매 이 말은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 순종하지 않으면 그의 이름은 그저 잊힌 이름 아무개로 기억된다는 것입니다.

이 사람에게 기회는 왔지만 그 기회를 욕심으로 거부했던 그는 잊혀진 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과 부르심에 순종했던 보아스는 다윗의 계보, 예수님의 계보에 그 이름이 기록되는 복을 받으며 오늘 우리에게까지 그 이름이 기억되고 있습니다.

 

 

 

내가 공동체에서절차와 원칙을 지키며 진행할 일은 무엇인가요?
내가 공동체에서절차와 원칙을 지키며 진행할 일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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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물을 자는 자신이 아비멜레에게 땅을 사겠다고 쉽게 대답합니다.

그러나 곧 그의 마음은 변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보아스가 기업을 물은다는 것의 의미를 자세히 설명하면서,

그가 땅을 산다는 것은 엘리멜렉 가정을 회생시키기 위해서 룻은 아내로 삼아 죽은 자의 이름을 세우는 책임도 감당해야 함을 말해주었기 때문입니다. 5절, 6절입니다.

5 보아스가 이르되 네가 나오미의 손에서 그 밭을 사는 날에 곧 죽은 자의 아내 모압 여인 룻에게서 사서 그 죽은 자의 기업을 그의 이름으로 세워야 할지니라 하니
6 그 기업 무를 자가 이르되 나는 내 기업에 손해가 있을까 하여 나를 위하여 무르지 못하노니 내가 무를 것을 네가 무르라 나는 무르지 못하겠노라 하는지라

 

그가 룻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변한 이유가 '내 재산에 손해가 되기 때문이다'라고 말합니다.

어쩌면 사람들의 눈을 의식하면서 이방 요인을 아내로 만든 것도 두려워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찌 되었건 친척의 기업을 물은다는 것은, 상대방을 품을 수 있고 자신의 것을 희생하고 포기해야만 감당할 수 있는 대속의 위치임을 그는 간과했다는 것이죠.

오로지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고 자기 유익을 구하니 이 손해 볼 수 있는 상황에서 빠지고 싶은 마음이 든 것입니다.

이 두 사람의 차이점은 무엇일까요?

보아스는 헌신을 한다면 다른 남자는 계산을 하고 있습니다.

보아스는 하나님 중심의 생각을 했다면 다른 사람은 자기중심적인 생각을 했습니다.

보아스는 믿음을 선택했다면 다른 사람은 눈에 보이는 상황을 선택했습니다.

보아스의 삶의 모습과 선택은 믿음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믿음은 손해를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임을 알기에

만약 이 기업무를 자가 포기하여도 자신이 하면 된다는 확고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그는 인내하며 기다릴 수 있었고,

다른 남자에게는 이 선택이 부담이었지만,

보아스에게는 이 선택은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를 이루어가는 데 쓰임 받을 수 있는 기회였던 것이죠.

 

 

우리는 보아스가 훌륭하고 이 사람은 어리석다 생각할지 모르지만

우리가 많이 닮아 있는 사람은 보아스보다는 다른 남자(아무개)의 모습이라는 것을 솔직히 고백합니다.

우리도 역시 조금이라도 손해가 되는 일은 거절할 뿐 아니라 앞으로도 그렇게 손해 보고 살 마음도 없습니다.

결혼을 해도 맏아들도 싫고, 홀어머니도 싫고, 결혼은 하고 싶지만 부모에게 재산은 원하지만 부모를 모시고 싶지도 않고

다 자기중심적인 이기적인 계산에서 나오는 반응입니다.

오히려 이 시대의 눈으로 보면 보아스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이 사람이 거절하면 자신이 그 손해를 보겠다고 나서는 것이지요.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은 우리에게 질문하십니다.

너는 손해가 될지라도 믿음으로 살겠는가?

너는 하나님에게 받는 것은 좋아하지만 그분이 맡기는 것은 피하고 살고 있지는 않은가?

우리는 매일 선택하며 살고 있습니다.

 

어떤 상황이 닥쳐올 때, 계산을 하며 이익을 따지는 사람은 기회를 놓치고,

어떤 상황이 닥쳐올지라도 하나님을 바라보고 나아가는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의 역사를 만든다는 것을 기억하는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책임을 완수하기 위해 내가 감수해야 할 손해나 희생은 무엇인가요?
책임을 완수하기 위해 내가 감수해야 할 손해나 희생은 무엇인가요?

 

 

 

하나님
이 세상 살아가면서 매일매일 육신의 소욕과 성령의 소욕이 싸울 때에 성령의 소욕을 따르는 삶을 살게 도와주시옵소서.
하나님을 선택하며 믿음의 주에 온전케 하시는 주님을 바라보는 인생 되게 하여 주십시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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