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3.05 | 생명의 삶 | 김상수 목사
안녕하세요. 오늘 이 교회를 섬기고 있는 김상수 목사입니다.
믿음의 여정에서 우리는 제자라고 하면서 진리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진정한 제자라면 예수의 길을 가며 예수님을 닮아가야 합니다.
제자란 나의 생각이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주님을 섬기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의 잘못된 제자들을 궤도 수정해 주고 있습니다.
그럼 오늘 나눌 말씀인 마태복음 20장 십칠절에서 이십팔절의 말씀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주님을 따르는 섬기는 종
마태복음 20장 17절에서 28절 말씀입니다.
| 17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려 하실 때에 열두 제자를 따로 데리시고 길에서 이르시되 18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지매 그들이 죽이기로 결의하고 19 이방인들에게 넘겨 주어 그를 조롱하며 채찍질하며 십자가에 못 박게 할 것이나 제삼일에 살아나리라 20 그 때에 세베대의 아들의 어머니가 그 아들들을 데리고 예수께 와서 절하며 무엇을 구하니 21 예수께서 이르시되 무엇을 원하느냐 이르되 나의 이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 22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그들이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 23 이르시되 너희가 과연 내 잔을 마시려니와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내가 주는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누구를 위하여 예비하셨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24 열 제자가 듣고 그 두 형제에 대하여 분히 여기거늘 25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26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아야 하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27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
복음서에서 예수님은 자신의 고난과 죽음을 세 번이나 언급했습니다.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은 피할 수 없는 하나님의 선택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오해했습니다.
예수님이 세 번째로 수난을 예고하실 제자들의 관심은 어디에 있었나요?
20절에서 21절의 말씀을 보십시오.
20 그 때에 세베대의 아들의 어머니가 그 아들들을 데리고 예수께 와서 절하며 무엇을 구하니
21 예수께서 이르시되 무엇을 원하느냐 이르되 나의 이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
지금 예수님은 인류 구원을 위해 십자가의 길을 가고자 이방인들에게 넘겨 고난을 당하고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 앞에서 주님을 따른다던 제자들과 그의 어머니는 고작 세상의 출세와 욕망, 성공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을 보게 됩니다.
이와 같이 제자들은 영적으로 무지했고, 하나님 나라를 세상적인 나라로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 유대인들은 잘못된 메시아 사상과 하나님 나라를 따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종말의 메시아가 오면 로마 제국처럼 힘을 가지고 이방인의 권세와 압재로부터 예수님이 자신을 해방시켜 주시리라고 믿고 있었기에, 자신도 모르게 그러한 요구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제자들만이 아니라 유대 사회의 보편적인 시대 정신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야고보와 요한뿐 아니라 나머지 제자들은 두 형제에 대해 분히 여겼다는 점에서 그들의 내면 세계가 다 탄로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공개적으로는 말을 하지 않았을 뿐 속에서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들을 경쟁자로 보았기에 분노가 일어났던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가져올 하나님의 나라는 세상 나라와 같이 정치적인 힘과 물리적인 권세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자신을 비우고 낮아지고, 죄인들을 위해 대신 죽어야 하는 희생 제물이었던 것입니다.
나는 예수님을 어떤 마음과 태도로 따르고 있습니까?
내가 생각하는 예수님은 어떤 메시아일까요?

세베데의 어머니와 제자들의 추구하는 세상적인 욕망은 하나님의 나라와 거리가 멀었습니다.
성육신하신 예수님은 공생의 기간 제자들에게 가르치시고 선포하시고, 치유하는 복음을 보여주신 것은 철저히 하나님의 나라의 원리였습니다.
그것은 겸손하게 주님을 따르고 자신의 뜻을 내려놓고 세상을 섬기는 자가 되라는 내용이었습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예수님에 대한 무지와 자신의 방식대로 주님을 따르고자 했습니다.
이러한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최고가 되려는 자에게 무엇을 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나요?
26절에서 27절 말씀을 보십시오.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아야 하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예수님은 세상의 이방인들 로마 제국이 힘으로 세상을 지배하는 원리와는 다르게 언제나 겸손하고 종의 자세를 가지는 것이 진정한 제자의 모습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세상은 인간적인 방법이나 힘의 논리에 의해 변화되지 않습니다.
오직 겸손과 사랑으로 한 영혼을 섬길 때만 이 세상은 주님께로 돌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십자가의 방법이야말로 진정한 승리자의 모습이기에 하나님은 예수님에게 고난의 잔을 마시게 한 것입니다.
이러한 사명을 위해 예수님은 성육신하시고 자기를 낮추시어 고난을 당하시고, 십자가에서 죽게 되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다시 부활하신 것입니다.
사람이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죄와 죽음에서 일으켜 지신 것입니다.
이러한 복음이 제자의 길이며 십자가의 길이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보여준 하나님의 나라였습니다.
힘과 권세는 순간적으로 잘 되는 것 같아도 시간이 흐르면 다시 소멸되고 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스승으로서 그러한 본을 보여준 것은 우리에게 그러한 고난의 잔에 동참하여 따라오라는 것입니다.
메시아가 이 땅에 오신 것은 섬김을 받는 게 아니라 다른 이들을 섬기고 자기 목숨을 내어주기 위해서 온 곳이라고 말했습니다.
내가 이해하는 하나님의 나라는 어떠한 모습인가요?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
머리와 입으로는 주님을 따른다고 하면서 여전히 마음은 세상의 욕심과 성공주의에 빠져 살아온 저의 모습을 회개합니다.
다시 십자가로 돌아가 겸손하신 예수님처럼 제자의 길을 걸어가게 해 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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