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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하신 왕, 예언의 성취자(마태복음 21:1~11)(2026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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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3.07 | 생명의 삶 | 김상수 목사

 

 

 

 

 

안녕하세요.

온누리 교회를 섬기고 있는 김상수 목사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통치자와 다른 겸손한 왕이십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님은 사랑과 섬김으로 제자들을 가르치셨던 분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따르는 교회와 성도들이 예수님과 다른 모습으로 살아갈 때가 있습니다.

겸손과 섬김의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 세상으로부터 대사회적인 신뢰를 잃어버리게 되며 전도의 문이 막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오늘날 예수님을 따르는 참된 제자의 모습은 어떠해야 할까요?

그럼 오늘 나눌 말씀인 마태복음 21장 1절에서 11절의 말씀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겸손하신 왕, 예언의 성취자
겸손하신 왕, 예언의 성취자

 

 

 

겸손하신 왕, 예언의 성취자

 

 

 

마태복음 21장 1절에서 11절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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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들이 예루살렘에 가까이 가서 감람 산 벳바게에 이르렀을 때에 예수께서 두 제자를 보내시며
2 이르시되 너희는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하면 곧 매인 나귀와 나귀 새끼가 함께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내게로 끌고 오라
3 만일 누가 무슨 말을 하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보내리라 하시니
4 이는 선지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5 시온 딸에게 이르기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겸손하여 나귀, 곧 멍에 메는 짐승의 새끼를 탔도다 하라 하였느니라
6 제자들이 가서 예수께서 명하신 대로 하여
7 나귀와 나귀 새끼를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으매 예수께서 그 위에 타시니
8 무리의 대다수는 그들의 겉옷을 길에 펴고 다른 이들은 나뭇가지를 베어 길에 펴고
9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무리가 소리 높여 이르되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10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시니 온 성이 소동하여 이르되 이는 누구냐 하거늘
11 무리가 이르되 갈릴리 나사렛에서 나온 선지자 예수라 하니라

 

 

 

예수님은 인류를 구원할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향했습니다.

예루살렘에 입성하기 전, 제자들과 감남산 근처 '벳바게'라는 장소에 머무르셨습니다.

'벳바게'는 가난한 지역으로서 덜 익은 무화과 나무라는 뜻입니다.

유대 사회에서 배박에는 가난한 사람들이 주로 모여 사는 곳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곳에서 두 제자를 보내시며 건너편 마을에 가서 나귀 새끼를 가져오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누가 묻거든 주가 쓰시겠다고 말하라라고 명령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남의 물건을 뺏으려는 것이 아니라 창조조이시며 만유의 주제이신 하나님의 아들이 쓰시고 다시 돌려주겠다는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나귀 새끼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입성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4절에서부터 5절 말씀을 보십시오.

4 이는 선지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5 시온 딸에게 이르기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겸손하여 나귀, 곧 멍에 메는 짐승의 새끼를 탔도다 하라 하였느니라

 

 

예수님은 구속사적으로 새 언약을 완성하기 위해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셔야만 했습니다.

이것은 무력으로 세계를 정복했던 로마 제국의 황제와 하나님의 나라의 왕인 예수님을 서로 대조하기 위함입니다.

로마 황제는 화려한 궁궐에서 군대와 함께 멋진 말을 타고 왕으로 통치하지만, 예수님은 겸손의 왕으로서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의 왕이 되셔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로 세워질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말입니다.

스가랴서 9장 9절은 이러한 모습을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성경은 예수님을 제사장, 선지자, 왕으로 묘사하는데, 예루살렘의 왕이 되시기 위하여 이 시간, 이 시점에 나귀 새끼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오신 예수님이 이렇게 겸손하게 오셨다면, 그분을 따르고 믿는 우리는 얼마나 더 그분 앞에 겸손해져야만 될까요?

 

 

나는 세상의 화려함과 하나님 뜻 중 무엇을 이루길 원하나요?
나는 세상의 화려함과 하나님 뜻 중 무엇을 이루길 원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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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것은 세상의 왕과 전혀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러한 모습에 열광하고 환호를 했습니다.

무리들과 환호했던 제자들은 예수님이 나귀 새끼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어떻게 안장을 준비했을까요?

8절을 보십시오.

8 무리의 대다수는 그들의 겉옷을 길에 펴고 다른 이들은 나뭇가지를 베어 길에 펴고

 

많은 사람들은 성인 남자가 새끼 나귀를 타고 오는 광경에도 자신의 가진 것으로 겸손의 왕 앞에 꿇어 엎드리고 경배하며 그의 등극식에 참여했습니다.

그들은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찬송해야만 했습니다.

'다윗의 자손께 호산나'라고 외치며 그분을 불렀습니다.

성경은 큰 무리가 옷을 깔고 나뭇가지로 그분께 영광을 돌려드렸다. 라고 증언합니다.

 

 

인류를 죄와 죽음으로부터 구원하시고, 메시아로서 영광 중에 오실 하나님의 아들이 나귀 새끼를 타고 종려나무 가지를 든 사람의 환호를 받으며, 제자들의 겉옷의 위를 걷는 모습은 하나님은 모든 것으로 영광 받을 수 있는 겸손한 왕이심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낮과 밤의 추운 일교차로 인해 겉옷은 매우 중요한 의복이었습니다.

인생의 더위와 추위를 상징하는 이 겉옷을 벗어 레드카펫처럼 펼친 것은 예수를 믿을 때 어떤 계급과 계층, 성별이나 민족이나 문화의 차이가 있을 수 없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 사람들은 늘 계급을 나누고, 계층을 나누고, 특별하게 대접받기를 좋아합니다.

그러나 겸손하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섬김을 받으려거든 섬기는 자가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은 누구나 섬김을 받기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이에 사람들이 나귀 탄 자에 대해서 묻자 그분은 갈릴리 나사렛에서 오신 예수라고 대답했습니다.

왜 예수님은 베들레에서 태어나시고 갈릴리에서 사역을 시작해야만 했을까요?

그리고 왜 마지막 생일은 예루살렘에서 보내셔야만 됐을까요?

 

그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을 성취하시고 또 하나님의 나라는 이 세상과 다른 구별된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심령이 가난한 자들이 소유할 수 있고, 하나님 나라의 백성은 세상과 다른 겸손과 섬김으로 살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이 세상에서 자유와 기쁨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가르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예수님처럼 더 겸손하게 이 세상을 섬길 수 있는 것일까요?

 

 

 

비록 보잘것없지만 내가 주님께 기꺼이 내어 드리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요?
비록 보잘것없지만 내가 주님께 기꺼이 내어 드리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요?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구원하시려 죄인의 모습으로 낮아져 오신 예수님을 찬양합니다.
우리도 예수님의 성육신처럼 낮은 곳으로 세상을 겸손히 섬기는 자들이 되게 해 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겸손하신 왕, 예언의 성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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