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2.17 | 생명의 삶 | 유현목 목사
할렐루야
대전 온누리 교회를 섬기는 유현목 목사입니다.
명절에 가족들과 즐거운 시간 보내고 계십니까?
2026년도 여러분들의 모든 소망이 그리스도 안에서 아름답게 열매 맺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말씀은 익숙해서 오히려 깊이 보지 못하는 본문입니다.
오병이어는 떡이 늘어난 이야기로 끝나지 않습니다.
이 사건은 두 식탁을 나란히 놓고 우리에게 묻습니다.
하나는 해롯의 식탁이오 다른 하나는 예수님의 식탁입니다.
헤롯의 식탁에는 음악과 술과 웃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끝에는 쟁반 위에 잘린 머리가 놓였습니다.
예수님의 식탁은 빈들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끝에는 배부름과 남은 은혜가 넘쳤습니다.
어디에 생명이 있고 어디에 죽음이 있는지 본문은 분명히 보여줍니다.
마태복음 14장 13절로 21절의 말씀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빈 들에서 펼쳐진 천국 식탁
마태복음 14장 13절에서 21절 말씀입니다.
| 13 예수께서 들으시고 배를 타고 떠나사 따로 빈 들에 가시니 무리가 듣고 여러 고을로부터 걸어서 따라간지라 14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그 중에 있는 병자를 고쳐 주시니라 15 저녁이 되매 제자들이 나아와 이르되 이 곳은 빈 들이요 때도 이미 저물었으니 무리를 보내어 마을에 들어가 먹을 것을 사 먹게 하소서 16 예수께서 이르시되 갈 것 없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17 제자들이 이르되 여기 우리에게 있는 것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뿐이니이다 18 이르시되 그것을 내게 가져오라 하시고 19 무리를 명하여 잔디 위에 앉히시고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매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니 20 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21 먹은 사람은 여자와 어린이 외에 오천 명이나 되었더라 |
13절을 보십시오.
13 예수께서 들으시고 배를 타고 떠나사 따로 빈 들에 가시니 무리가 듣고 여러 고을로부터 걸어서 따라간지라
주님이 들으신 것은 세례 요한의 죽음만이 아닙니다.
헤롯이 예수님을 의식하기 시작했다는 소식, 권력이 시선을 돌리기 시작했다는 신호입니다.
권력이 예수님을 주목할 때 예수님은 배를 타고 떠나 빈들로 가십니다.
예수님은 서두르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은 피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신 것입니다.
십자가는 도망치는 사건이 아니라 주님의 시간에 순종하여 맞이하는 사건입니다.
13절은 이어서 말합니다.
13 예수께서 들으시고 배를 타고 떠나사 따로 빈 들에 가시니 무리가 듣고 여러 고을로부터 걸어서 따라간지라
주님은 따라 가셨지만 우리는 걸어서 따라옵니다.
왜 걸어서 따라옵니까? 이유는 하나입니다. 살 길이 거기에 있기 때문입니다.
세례 요한의 죽음 이후 사람들의 마음에는 두려움과 분노 방향을 잃은 불안이 뒤섞여 있었을 겁니다.
그들은 폭동을 택하지 않고 체념도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로 갔습니다.
14절은 본문의 핵심입니다.
14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그 중에 있는 병자를 고쳐 주시니라
여기서 불쌍히 여긴다는 말은 가벼운 동정이 아닙니다. 속이 뒤집히는 마음 내면 깊은 곳에서 솟구치는 긍휼입니다.
주님은 군중을 문제로 보지 않으셨습니다. 부담으로 여기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그들을 아픈 사람, 길 잃은 사람, 도움이 필요한 사람으로 보셨습니다.
교회가 가장 먼저 잃는 것은 능력이 아닙니다. 사람입니다.
사람을 부담으로 보기 시작할 때 교회는 이미 빈들보다 메말라버립니다.
우리 주님은 빈들에서도 먼저 긍휼로 시작하십니다.
기적은 능력에서 시작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언제나 긍휼에서 출발합니다.

15절을 보십시오.
15 저녁이 되매 제자들이 나아와 이르되 이곳은 빈 들이요 때도 이미 저물었으니 무리를 보내어 마을에 들어가 먹을 것을 사 먹게 하소서
제자들의 말은 틀리지 않습니다. 현실적입니다.
빈 들이고, 날은 저물었고, 사람은 많습니다. 보내는 것은 합리적인 선택입니다.
누구도 이의가 없습니다. 다만 한 가지가 빠져 있습니다.
주님을 따르는 제자요. 양 때의 지도자로서의 책임감입니다.
16절에서 예수님은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16 예수께서 이르시되 갈 것 없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제자들은 각자 해결하게 하소서 라고 말했지만, 예수님은 너희가 해결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은 해답을 다른 곳에서 찾지 않으십니다. 제자들을 통해 길을 찾고 계십니다.
17절은 제자들의 고백입니다.
17 제자들이 이르되 여기 우리에게 있는 것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뿐이니이다
여기서 중요한 단어는 있다가 아니라 뿐입니다. 우리는 흔히 이렇게 말합니다.
시간이 이것 뿐입니다. 돈이 이것뿐입니다. 여력이 이것뿐입니다.
18절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8 이르시되 그것을 내게 가져오라 하시고
주님은 더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있는 걸 부정하지 않으십니다. 다만 주님의 손에 올려놓으라고 하십니다.
기적은 제자들의 손에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주님의 손에서 시작됩니다.
19절을 보십시오. 주님은 무리를 앉히시고 하늘을 우러러 감사하시고 떡을 떼어 나누게 하십니다.
19 무리를 명하여 잔디 위에 앉히시고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매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니
기적 앞에는 항상 질서와 감사가 있습니다. 감사는 부족을 무시하는 태도가 아닙니다.
감사는 부족 위에 전능하신 하나님의 가능성을 올려놓는 믿음입니다.
20절과 21절을 보니 모두 배불리 먹고 12 바구니가 남았습니다.
20 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21 먹은 사람은 여자와 어린이 외에 오천 명이나 되었더라
주님은 무리를 먹이셨을 뿐만 아니라 제자들의 믿음을 다시 세우셨습니다.
빈들은 광야 하였지만, 동시에 하나님 나라 식탁이 되었습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3가지를 남깁니다.
첫째 주님은 혼란의 시대에 가장 먼저 긍휼로 응답하십니다.
둘째 주님은 문제를 외면하지 않고 제자들을 통해 길을 여십니다.
셋째 주님의 손에 올려진 작은 순종은 공동체를 살리는 식탁이 됩니다.
오늘 우리의 삶도 빈들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계신 곳에서는 빈들이 끝이 아닙니다.
그 자리는 생명이 나누어지는 식탁이 됩니다.
주님께 가져오시면 비록 보잘것없어도 주님의 손에 올려질 때 모두가 배불리 먹고 남는 축복이 임할 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자비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빈들 같은 우리의 삶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찾아오심을 감사합니다.
사람을 부담으로 보던 우리의 눈을 고쳐주시고 주님처럼 긍휼의 마음을 부어 주옵소서.
우리가 가진 것이 적다고 말하며 뒤로 물러서지 않게 하시고, 작은 떡과 물고기라도 주님의 손에 올려놓는 믿음을 주옵소서.
우리의 삶이 기적의 주체가 아니라 은혜의 통로가 되게 하시고, 받은 생명을 이웃에게 나누는 교회로 서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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