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2.22 | 생명의 삶 | 윤광서목사
샬롬
영화교회를 섬기는 윤광서 목사입니다.
오늘도 우리 삶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여러분의 가정과 일터 위에 가득하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 공동체를 아끼는 마음이 때로는 서로에게 깊은 상처를 남기는 칼날이 될 수도 있습니다.
예컨대 뜨거운 열심히 성급한 판단과 만나면 사랑하는 지체를 적으로 오인하고 공동체에 돌이킬 수 없는 분란을 야기하기도 합니다.
오늘 말씀은 그 아슬아슬한 위기의 순간을 보여줍니다.
요단 동편 지파들이 쌓은 거대한 재단 하나가 이스라엘 전체를 내전의 위기로 몰아넣는 사건이 바로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는 어떻게 이 오해의 강을 건너서 신뢰와 연합이라는 약속의 땅에 이를 수 있을지, 그 지혜를 함께 묵상해 보고자 합니다. 오늘 말씀은 여호수아 22장 절로 20절 말씀입니다.

우상을 단호히 배격하는 세대
여호수아 22장 10절에서 20절 말씀입니다.
| 10 르우벤 자손과 므낫세 반 지파가 가나안 땅 요단 언덕 가에 이르자 거기서 요단 가에 제단을 쌓았는데 보기에 큰 제단이었더라 11 이스라엘 자손이 들은즉 이르기를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과 므낫세 반 지파가 가나안 땅의 맨 앞쪽 요단 언덕 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속한 쪽에 제단을 쌓았다 하는지라 12 이스라엘 자손이 이를 듣자 곧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실로에 모여서 그들과 싸우러 가려 하니라 13 이스라엘 자손이 제사장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를 길르앗 땅으로 보내어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과 므낫세 반 지파를 보게 하되 14 이스라엘 각 지파에서 한 지도자씩 열 지도자들을 그와 함께 하게 하니 그들은 각기 그들의 조상들의 가문의 수령으로서 이스라엘 중에서 천부장들이라 15 그들이 길르앗 땅에 이르러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과 므낫세 반 지파에게 나아가서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16 여호와의 온 회중이 말하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이스라엘 하나님께 범죄하여 오늘 여호와를 따르는 데서 돌아서서 너희를 위하여 제단을 쌓아 너희가 오늘 여호와께 거역하고자 하느냐 17 브올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회중에 재앙이 내렸으나 오늘까지 우리가 그 죄에서 정결함을 받지 못하였거늘 그 죄악이 우리에게 부족하여서 18 오늘 너희가 돌이켜 여호와를 따르지 아니하려고 하느냐 너희가 오늘 여호와를 배역하면 내일은 그가 이스라엘 온 회중에게 진노하시리라 19 그런데 너희의 소유지가 만일 깨끗하지 아니하거든 여호와의 성막이 있는 여호와의 소유지로 건너와 우리 중에서 소유지를 나누어 가질 것이니라 오직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제단 외에 다른 제단을 쌓음으로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며 우리에게도 거역하지 말라 20 세라의 아들 아간이 온전히 바친 물건에 대하여 범죄하므로 이스라엘 온 회중에 진노가 임하지 아니하였느냐 그의 죄악으로 멸망한 자가 그 한 사람만이 아니었느니라 하니라 |
가나안 정복 전쟁의 대장정을 마치고 마침내 삶의 터전으로 돌아가던 이 요단 동편지파들, 루벤, 갓, 그리고 문화의 반 지파의 발걸음은 얼마나 가볍고 기뻤을까요? 그러나 그들은 요단강을 건너기 직전에 알 수 없는 행동을 하고 맙니다.
그것은 가나한 땅 경계에 큰 재산을 쌓는 일이었습니다.
나중에 밝혀지지만, 이 재단은 요단강으로 인해 단절될지 모를 후손들에게 우리도 여호와를 섬기는 동일한 언약 백성임을 증거 하기 위한, 어쩌면 순수한 신앙의 기념비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들은 이 재단을 통해 분리가 아닌 연합을 꿈꾸었습니다.
하지만 이 소식을 들은 요단 서편의 9개, 그리고 반 지파는 전혀 다르게 해석을 했습니다.
그들에게 이 재단은 하나님께서 유일한 예배 처소로 지정하신 신로의 성막을 부정하는 또 다른 하나의 재단이요, 우상 숭배로 가는 길목에 세워진 배교의 상징과도 같았습니다.
신명기 12장은 분명히 하나님이 지정하신 한 곳에서만 제사를 드리라고 명령했었기 때문이죠.
그들의 눈에 요단강가의 거대한 재단은 이스라엘의 신앙적 순수성과 공동체의 하나됨을 깨뜨리는 심각한 도전이었습니다.
그들의 반응은 즉각적이고 격렬했습니다.
온 회중이 신로에 모여 동편 지파들과 싸우려 가려 하노라 이게 얼마나 무서운 결정입니까?
7년간 동고동락하며 함께 피 흘렸던 형제들에게 칼을 겨누려고 한 것입니다.
이들의 성급함은 분명 잘못되었지만, 그 마음 깊은 곳에는 하나님의 거룩함을 지키려는 신성한 분노와 공동체를 향한 거룩한 책임감도 분명히 있었습니다.
그들은 지난날 아간이라는 한 사람의 범죄 때문에 아이성 전투에서의 패배를 경험했고, 공동체 전체가 고통을 겪은 바 있었습니다.
또한 민수기 25장에 보면, 브올에서의 우상숭배가 수많은 생명을 앗아가는 끔찍한 재앙을 불러왔다는 사실 또한 뼈저리게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한 지체의 죄가 온몸을 병들게 한다는 영적 원리를 알았기 때문에, 그들은 죄의 확산을 막기 위해서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하려고 했던 것이지요.
그러나 거룩한 열심히 대화와 확인의 과정을 생략한다면, 그것은 사랑하는 형제를 향한 폭력으로 변질될 수도 있습니다.
진실을 확인해 보기 전에 정죄의 칼날을 빼어 드는 것은 믿음의 공동체를 무너뜨리는 길이 되고야 맙니다.
이 아찔한 위기의 순간은 오늘 우리에게도 질문합니다.
당신의 열심은 곁에 함께 동역하는 형제와 자매를 살리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까?
아니면 판단하고 정죄하는 칼이 되고 있지는 않습니까?
오늘 우리도 이 질문을 되새겨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분노로 들끓던 이스라엘은 다행히 감정적인 전쟁을 선택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들은 지도자들의 지혜로운 판단에 따라 진실을 확인하기 위한 사절단을 파견하게 됩니다.
이 결정이 이스라엘을 파국에서 구한 결정적인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그 사절단의 대표는 제사장 엘르 아살의 아들인 비누하스였습니다.
그는 과거에 브올의 음행 사건 때에 하나님의 진노가 온 이스라엘에 임하는 상황에서 죄를 범한 자를 창으로 꿰뚫어 심판함으로써 연병을 그치게 했던 인물이었죠.
그의 이름 자체가 하나님의 거룩함, 그리고 죄에 대한 단호함을 상징한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서편에 있었던 지파들이 이 사태를 얼마나 심각한 문제로 여기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그러한 인선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각 지하에서 1명씩 10명의 지도자를 함께 보내서, 이 일이 어느 한두 사람의 의견이 아니라 이스라엘 공동체 전체의 공식적인 문제 제기라는 사실을 분명히 하고자 했습니다.
길르앗 땅에 도착한 비누하스와 사절단은 동편 지파들을 향해서 단호하게 책망을 합니다.
그들은 이제 이 재단 건축을 하나님께 대한 범죄요, 거역이라고 규정을 하죠.
여기서 범죄로 번역된 히브리어 מַעַל (ma‘al, 마알) 이라는 말은 아간이 하나님의 것을 훔쳤을 때 사용됐던 단어로서, 신성한 언약을 깨뜨린 배신 행위를 의미합니다.
또한 우리 말 거역으로 번역된 원어 מָרַד (mārad, 마라드) 라는 말은 권위에 대한 의도적이고 공개적인 반역을 뜻하는 단어입니다.
사절단은 그들의 행위가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를 정면으로 파괴하는 배역 행위라고 본 것입니다.
비나스는 이전에 그들에게 있었던 두 가지 비극, 브올의 죄악과 아간의 범죄를 상기시킵니다.
브올의 죄악으로 인한 재앙의 상처가 아직도 우리에게 남아 있는데, 어찌하여 또 다시 죄를 더하려 하느냐?
아간 한 사람이 범죄했을 때 온 회중에게 진노가 임하지 않았느냐?
이런 질문들은 한 사람 또는 한 지파의 죄가 결코 개인의 문제로 끝나지 않고 공동체 전체의 운명과 직결된다는 무서운 사실을 분명히 일깨워 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비느아스의 말 속에는 책망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19절에 보면 놀라운 제안이 함께 담겨 있습니다.
19 그런데 너희의 소유지가 만일 깨끗하지 아니하거든 여호와의 성막이 있는 여호와의 소유지로 건너와 우리 중에서 소유지를 나누어 가질 것이니라 오직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제단 외에 다른 제단을 쌓음으로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며 우리에게도 거역하지 말라
이것은 진정한 공동체 의식의 발현이었습니다.
그들은 사실 땅 때문에 싸우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만약 동편 땅이 영적으로 성결하지 못했다면, 그래서 그들이 죄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면,
기꺼이 자신들의 땅을 내어주어서라도 함께 하나님의 거룩함을 지키자 하는 제안입니다.
이처럼 진리를 향한 단호함과 형제를 향한 사랑이 함께 있을 공동체는 위기를 극복하고 더욱 견고하게 서게 될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신앙 공동체 안에서 갈등이 생겼을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를 보여주는 말씀이죠.
먼저는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예배의 성결함을 지키려는 뜨거운 열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나 그 열심이 형제를 향한 성급한 정죄의 칼이 되지 않도록 먼저 대화하고 확인하는 지혜와 인내도 필요하다고 일러줍니다.
그리고 죄의 파급력을 기억하며 공동체 전체의 거룩함을 위해 함께 책임져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진리를 타협하지 않으면서도 형제를 끌어안는 사랑의 제안을 기꺼이 할 수 있어야 하겠죠 이 균형 잡힌 신앙의 모습이 오늘 우리의 교회와 공동체 안에서 풍성히 회복되기를 소망해 봅니다.

평화의 하나님,
오늘 말씀을 통해 오해와 성급한 판단이 공동체에 얼마나 큰 위기를 가져올 수 있는지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저희가 다른 지체의 행동을 보고 섣불리 분노하거나 정죄하기보다는 먼저 겸손히 대화하며 진실을 분별하는 지혜를 얻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도 저희를 지켜주시고, 특별히 병중에 있는 분들과 연약한 성도들, 해외 한인들에게 은혜를 더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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