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2.23 | 생명의 삶 | 윤광서목사
셜롬
사랑하는 생명의 삶 가족 여러분
영화 교회를 섬기는 윤광서 목사입니다.
어둠이 깊어질수록 새벽이 가까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듯이,
우리 삶의 어려운 순간들이 오히려 하나님의 빛을 더욱 간절히 사모하게 되는 은혜의 통로가 되곤 합니다.
오늘 이 시간, 절망의 한 복판에서 소망을 선포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통해 우리 마음 깊은 곳까지 비추시는 성령의 빛을 경험하는 복된 시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크고 작은 어둠의 순간도 경험합니다.
때로는 마음이 무겁고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캄캄한 밤을 지나는 것 같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면 사람은 누구나 작은 빛 하나를 간절히 바라보게 됩니다.
어둠이 짙을수록 멀리서 번져 보이는 빛이 더욱 선명하게 보이듯,
삶의 깊은 밤 속에서 우리는 오히려 하나님의 빛을 더 갈망하게 되는 겁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나눌 이사야 9장의 말씀은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암울했던 시기,
불신앙의 왕 아스가 아수르를 의지하며 민족 전체를 절망으로 밀어넣었을 하나님께서 빛이 올 것이다라고 약속하신 위대한 희망의 선포입니다.
이 말씀은 어둠에 익숙해진 우리 마음의 하늘로부터 전해지는 새로운 소망의 메시지입니다.
이제 본문의 말씀을 통해 어둠을 뚫고 우리에게 오시는 참 빚, 예수 그리스도를 함께 묵상해 보기를 원합니다.
이사야 9장 1절로 1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이사야 9장 1절에서 7절 말씀입니다.
| 1 전에 고통 받던 자들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이 멸시를 당하게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 길과 요단 저쪽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2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치도다 3 주께서 이 나라를 창성하게 하시며 그 즐거움을 더하게 하셨으므로 추수하는 즐거움과 탈취물을 나눌 때의 즐거움 같이 그들이 주 앞에서 즐거워하오니 4 이는 그들이 무겁게 멘 멍에와 그들의 어깨의 채찍과 그 압제자의 막대기를 주께서 꺾으시되 미디안의 날과 같이 하셨음이니이다 5 어지러이 싸우는 군인들의 신과 피 묻은 겉옷이 불에 섶 같이 살라지리니 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7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
오늘 본문은 히브리 원문을 보면 그러나 라는 강력한 역접 접속사로 시작을 합니다.
바로 앞에 있는 8장까지 이어지던 심판과 흑암, 고통의 예언을 단번에 뒤집는 은혜의 대전환입니다.
하나님을 거역한 이스라엘을 심판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아수르를 들어 사용하십니다.
그러나 그 모진 환란 속에서도 언제나 함께 하실 것을 약속하신 임마누엘의 주님은 큰 빛을 약속하시므로 어둠을 없이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빛이 어디서부터 시작될 것인지 구체적으로 말씀하십니다.
바로 스블론 땅과 납달리 땅, 해변 길과 요단 저쪽 이방에 갈릴리 인 것입니다.
이 지역들은 북 이스라엘의 변방으로 강대국인 아수르의 침략을 가장 먼저 받아서 무참히 짓밟혔던 곳이었습니다.
전쟁과 패배, 포로로 끌려감으로 인한 정체성의 상실, 삶의 터전이 송두리째 무너진 그들의 현실은 사망에 그늘진 땅이라는 표현이 꼭 어울릴 만큼 깊은 절망에 잠겨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바로 그 멸시와 고통의 땅. 어둠의 진원지에서부터 가장 먼저 빛이 비치기 시작할 것이라고 선언하십니다.
이것은 단순한 위로나 격려가 아닙니다.
인간적인 절망이 가장 짙은 곳에서부터 하나님의 새로운 역사가 시작될 것이라는 장엄한 선포입니다.
그리고 이 놀라운 예언은 수백 년 후 예수님께서 바로 이 이방의 갈릴리에서 공생애를 시작하시며 빛의 사역을 펼치심므로 정확하게 성취되었습니다.
2절은 흑함에 행하던 백성이 마침내 큰 빛을 보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빛은 사람이 만들어내는 희미한 불빛이 아니라, 하늘로부터 임하는 하나님의 구원과 임재 그 자체를 의미합니다.
그 빛이 비칠 때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3절을 보면, 주께서 이 나라를 창성하게 하시고, 그 즐거움을 더하게 하셨다고 노래합니다.
3 주께서 이 나라를 창성하게 하시며 그 즐거움을 더하게 하셨으므로 추수하는 즐거움과 탈취물을 나눌 때의 즐거움 같이 그들이 주 앞에서 즐거워하오니
혹독한 겨울을 이겨낸 농부가 풍성한 수확의 단을 거두며 기뻐하는 그 추수의 즐거움, 또한 목숨을 건 전투에서 승리한 군인들이 전리품을 나누며 환호하는 탈취물을 나눌 때의 즐거움처럼, 실패하고 깨어졌던 백성에게 벅찬 회복의 감격이 밀려올 것을 보여주십니다.
더 나아가 4절과 5절은 이 모든 회복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말미암는 완전한 해방임을 강조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짓누르던 무겁게 맨 멍에와 어깨의 채집과 악재자의 막대기를 꺾어버리십니다.
마치 과거의 기드온이 300명의 용사로 미디안의 대군을 물리쳤던 사사기 7장의 말씀처럼
이 구원은 인간의 숫자나 전략이 아닌, 하나님의 주권적인 능력으로 이루어지는 초자연적인 승리였습니다.
심지어 전쟁의 상징인 군인들의 신과 피 묻은 겉옷마저 땔감처럼 불에 살려질, 다시는 전쟁이 없는 완전하고도 영원한 평화가 임할 것을 선언하십니다.
이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한 원리를 가르쳐 주십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가장 어둡고 소망 없는 자리에서 새로운 시작을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내 삶이 깊은 그늘 속을 지날 때, 하나님의 일하심이 더디게만 보이고 변화가 불가능해 보일 때,
바로 그것이 하나님의 큰 빛이 임할 자리임을 믿음으로 바라보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그렇다면 이 놀라운 빛과 기쁨 그리고 완전한 평화는 과연 어떻게 그리고 누구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일까요?
6절은 그 모든 회복의 근원이자 중심을 제시합니다.
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낳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하나님은 세상을 구원하고 역사를 바꾸시기 위해 강한 군대나 거대한 제국의 권력을 사용하시지 않으셨습니다.
가장 연약하고 오히려 평범해 보이는 한 아기의 탄생을 통해 인류 역사를 새롭게 시작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아기는 평범한 아기가 아니었죠. 그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아들이었습니다.
이 아기의 어깨에는 온 세상의 통치권, 즉 정사가 메워져 있습니다.
그리고 이어진 네 가지 이름은 곧 메시아가 어떤 분이신지를 영광스럽게 드러냅니다.
첫 번째로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이렇게 소개합니다.
기묘라는 말은 인간의 이해를 초월하는 하나님의 신비롭고 놀라운 행적을 나타내는 단어입니다.
그분은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 놀라운 지혜와 계획으로 우리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시고 가장 선한 길로 인도하시는 완전한 상담자이십니다.
둘째로 그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는 단지 위대한 인간 지도자가 아니라 죄와 죽음, 사탄의 모든 권세를 깨뜨리시는 창조주 하나님 자신이십니다.
세 번째로 그는 영존하시는 아버지라고 표현되었습니다.
이것은 성부 하나님과 동일하다는 의미만이 아니라 그의 사랑과 돌보심이 영원하며 자기 백성을 끝까지 책임지시고 보호하시는 아버지의 마음을 가지신 분이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분은 평강의 왕이라 했습니다.
세상이 주는 조건적인 평화가 아니라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가로막던 죄의 담을 허무시고 근원적인 화평 샤롬을 이루시는 분이시라는 뜻입니다.
전쟁이 그치고 우리 마음에 참된 안식이 깃드는 것은 바로 이 평강의 왕께서 다스리시기 때문입니다.
7절은 이 왕의 통치가 결코 쇠하지 않고 그의 평광이 끝없이 더해질 것이라고 하는 놀라운 선포를 담고 있습니다.
7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그의 나라는 다윗의 왕자를 이어서 영원히 지속되며, 정의와 공의로 굳게 세워질 것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위대한 약속의 마침표를 찍는 선원이 마지막 구절에 나옵니다.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이 위대한 구원의 역사는 우리의 노력이나 자격으로 시작된 것이 아닙니다.
자기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포기하지 않으시는 사랑, 그 뜨거운 열심이 만들어낸 작품입니다.
오늘 우리의 구원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연약함 때문에 하나님 나라가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열심 때문에 우리가 붙들려 있고, 하나님의 신실하심으로 우리의 믿음이 지켜지는 것입니다.
이 아기가 바로 우리를 위해 오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이 우리 삶의 왕으로 오셔서 다스리실 때,
우리의 어둠 속에서도 빛은 다시 길을 열고, 메마른 마음에 소망이 자라나며,
흔들리던 삶에 하늘의 평강이 강물처럼 흐르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사야 선지자는 칠흙 같은 어둠 속에서 한 아기의 탄생을 통해 임할 큰 빛을 바라보았습니다.
그 빛은 멸시에 받던 갈릴리에서 시작되어 온 세상을 비추었고,
그 아기는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우리에게 영원한 평강의 왕이 되어 주셨습니다.
혹시 지금 삶의 어두운 터널을 지나고 계십니까?
관계의 문제나 건강, 혹은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여러분 마음에 그늘이 드리워져 있으십니까?
오늘 말씀이 선포하는 빛의 약속을 붙드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를 위해 아들을 내어 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의 열심이 오늘 저와 여러분의 삶을 결코 포기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삶의 왕으로 모실 때 우리의 가장 깊은 절망은 오히려 가장 큰 기쁨으로 변할 것이고, 아픈 상처는 큰 영광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이 대림절에
우리에게 빛으로 오시는 주님을 기뻐하며 맞이하는 가운데
참된 소망과 평강을 누리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하나님 아버지
절망의 어둠 가운데에서 비추시는 소망의 빛을 다시 바라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가장 깊은 고통의 자리에서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를 신뢰하며 나아가게 하옵소서.
주님의 통치 아래 우리의 모든 어둠이 물러가고 주님 주시는 참된 기쁨과 평강을 날마다 누리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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