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2.12 | 생명의 삶 | 정재욱목사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이 하루가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저는 부천 오늘 교회를 섬기고 있는 정재욱 목사입니다.
수학에서 상수는 변하지 않는 값이며, 변수는 어떤 범위 안의 임의의 값으로 변할 수 있는 수입니다.
이러한 수학적인 용어를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에 적용해 보면 하나님은 상수이시고 우리 인간은 변수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경우 우리가 상수가 되어서 하나님이 변수가 되기를 원할 때가 있습니다.
바로 우리의 계획, 우리의 생각, 우리의 주장이 상수처럼 굳어져서 하나님을 변수로 만들고 싶은 우리의 욕망이 나타나기 때문이죠.
다시 한번 우리의 삶을 돌아보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상수입니까 하나님께서 상수이십니까?
우리에 계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우리가 변수가 되고 하나님이 상수가 되는 이 하루를 살아가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여호수아 17장 14절부터 18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여호수아 17장 14절에서 18절 말씀입니다.
| 14 요셉 자손이 여호수아에게 말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지금까지 내게 복을 주시므로 내가 큰 민족이 되었거늘 당신이 나의 기업을 위하여 한 제비, 한 분깃으로만 내게 주심은 어찌함이니이까 하니 15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이르되 네가 큰 민족이 되므로 에브라임 산지가 네게 너무 좁을진대 브리스 족속과 르바임 족속의 땅 삼림에 올라가서 스스로 개척하라 하니라 16 요셉 자손이 이르되 그 산지는 우리에게 넉넉하지도 못하고 골짜기 땅에 거주하는 모든 가나안 족속에게는 벧 스안과 그 마을들에 거주하는 자이든지 이스르엘 골짜기에 거주하는 자이든지 다 철 병거가 있나이다 하니 17 여호수아가 다시 요셉의 족속 곧 에브라임과 므낫세에게 말하여 이르되 너는 큰 민족이요 큰 권능이 있은즉 한 분깃만 가질 것이 아니라 18 그 산지도 네 것이 되리니 비록 삼림이라도 네가 개척하라 그 끝까지 네 것이 되리라 가나안 족속이 비록 철 병거를 가졌고 강할지라도 네가 능히 그를 쫓아내리라 하였더라 |
오늘 본문을 보면 요셉 자손은 여호수아를 찾아와서 여호와께서 복을 주셔서 큰 민족이 되었는데 한 분기만 주었다고 불평을 토로합니다.
그렇다면 과연 이들이 진짜 한 분기만을 받았던 것일까요?
아닙니다. 므낫세 반지파가 요단 동쪽 땅을 기업으로 받았고, 에브라임과 므낫세 반지파는 가나안 땅에서 기업을 따로 또한 받았습니다.
또한 요셉 자손들이 큰 민족이 된 것은 사실이지만, 다른 지파들과 인구 비례를 살펴보아도 이들이 받은 기업이 결코 작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 학자들의 의견입니다.
그렇다면 왜 이들은 자신의 분깃이 부족하다고 말하고 있는 것일까요?
16절을 보면 골짜기에 거주하는 모든 가난한 족속들이 다 철병 거를 가지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부분을 가지고 정리해 보면, 그들이 받은 분기이 적은 것이 아니라 철병 거를 가진 강력한 가나안 민족들과 싸우기 싫었기 때문에 그들은 더 편하게 차지할 수 있는 땅을 더 달라는 요구를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오늘 본문에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되는 것은 요셉 자손의 기업을 결정하신 분이 여호수아가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입니다.
그러하기에 지금 요셉 지파가 찾아가야 되는 사람은 여호수아가 아니라 하나님이었고,
이러한 불만은 여호수아를 향한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것이었다는 사실을 주목해 보아야 합니다.
사실 우리가 감사가 아니라 우리의 삶 속에 불만이 생긴다는 것은 단순히 상황적인 부분이 아닙니다.
이러한 부분은 영적인 연약함입니다. 바로 불만과 감사는 다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25장의 달란트 비율을 보면 한 달란트 받은 종은 받은 달란트를 다 땅에 묻어 버립니다.
그리고 주인에 대하여 주인이 굳은 사람이다 심지 않은 데서 거두려고 한다.라고 고백합니다.
왜 이렇게 주인을 생각했던 것일까요?
그것은 주인이 자신에게 맡겨준 한 달란트가 아니라, 다른 종들에게 준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를 보고 비교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 가운데서 주인에 대한 왜곡된 시선을 가지게 되었기 때문이죠.
오늘 본문에는 정확히 나타나 있지는 않지만, 요셉 자손들은 유다 자손들이 받았던 더 큰 땅 때문에 이러한 불만을 제기했을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불만 속에서 여호수아를 찾아가 더 많은 분 깃을 요구했을지도 모르는 것이죠.
그러나 요셉 자손들이 해야 되는 것은 유다 자손이 받은 기업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기업에 집중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 땅의 가난한 족속들을 쫓아내는 일에 그들은 최선을 다해 순종해야만 했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도 이와 같습니다.
비교와 불만이 아니라, 우리를 가장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 가장 좋은 것을 주시고, 가장 선한 길로 인도하신다는 신뢰를 통해 감사함으로 나아갈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신 이 말씀을 붙잡고 다시 한번 불평이 아닌 감사로 나아가는 이 하루를 살아가게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자신들은 큰 민족이기에 분깃이 작다고 말하는 요셉 자손들에게 여호수아는 브리스 족속, 르바임 족속의 땅으로 올라가서 스스로 개척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여우수아의 대답은 우문현답처럼 느껴집니다.
오늘 본문을 잘 들여다보면, 요셉 자손들은 그들이 큰 민족이 되었으므로 그들이 받은 분 깃이 작다고 말하고 있지만, 여호수아는 반대로 그들이 큰 민족이 되었으므로 큰 힘과 권능이 있으니 개척하라고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주목해야 되는 관점입니다.
요셉 자손이나 여호수아나 그들이 큰 민족을 이루게 되었다는 사실을 똑같이 인정하고 있지요.
그러나 요셉 자손은 이것으로 인해 그들의 분깃이 작다고 불평했지만, 여호수아는 그들이 큰 민족을 이룸을 통해 그들이 가지게 된 힘과 권능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모습을 보면 요셉 자신들과 같이 하나님께 간구하기만 합니다.
하나님, 이것 좀 도와주십시오. 하나님, 더 큰 땅과 분깃을 주십시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미 요셉 지파를 큰 민족이 되게 하신 것처럼 우리를 많이 성장시켜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가 스스로 개척해 나아가야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사도바울은 고린도전서 13장 11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하나님의 은혜로 성장하여 큰 민족을 이루었다면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려야 합니다.
부족함만을 보면서 더 많은 분 깃을 달라고 매달리는 어린아이와 같은 신앙을 넘어서서,
하나님이 이미 우리에게 주신 권능과 힘과 능력으로 스스로 개척함을 통해 믿음의 지경을 확장할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간절히 축원합니다.

사랑의 하나님
우리를 이렇게 성장시켜 주셨는데도
우리는 여전히 어린아이와 같이 때를 쓰며 부족한 부분만을 간구하며 기도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다시 한번 우리의 영을 새롭게 하여 주시고
성장시켜 주신 그 은혜를 기억하며
장성한 불량을 감당할 수 있는 성숙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힘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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