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2.09. | 생명의 삶 | 정재욱 목사
하나님의 은혜와 말씀으로 살아가는 이 하루가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저는 부천 온누리 교회를 섬기고 있는 정재욱 목사입니다.
김은주 작가의 1cm라는 책을 보면 "단체 사진은 많은 사람을 배경으로 한 독사진이다."라고 말합니다.
이는 단체 사진에서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만 주목하고 자기 자신만 찾기 때문이죠.
이러한 표현을 통해서 우리 인간의 자기중심적인 사고를 우리는 잘 살펴볼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유다 지파가 다른 지파들보다 더 많은 성과 더 많은 마을을 기업으로 받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유다 지파는 그들에게 주어진 것에 만족했을까요? 그렇게 생각되지 않습니다.
유다지파는 많은 기업을 받았지만, 유다 지파의 개개인들은 그들의 지파가 많은 기업을 받았다는 사실보다 자기 자신과 자신의 집안에 그 어떤 땅이 주어졌는지를 더 주목했기 때문이죠.
그 땅에 얼마나 많은 가나안 사람들이 살고 있는지, 그 땅은 비옥한 땅인지 그 땅에는 충분한 물이 있는지 그들은 더 관심을 기울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자기의 것에만 관심을 기울이게 되면 우리는 하나님의 사명과 목적을 바라보지 못하게 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나의 생각, 나의 문제만을 바라보는 자기 중심성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마음과 관점으로 우리에게 이 땅을 주시는 그 하나님의 계획을 바라보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여호수아 15장 20절부터 63절 말씀입니다.

여호수아 15장 20절에서 63절 말씀입니다.
| 20 유다 자손의 지파가 그들의 가족대로 받은 기업은 이러하니라 21 유다 자손의 지파의 남쪽 끝 에돔 경계에 접근한 성읍들은 갑스엘과 에델과 야굴과 22 기나와 디모나와 아다다와 23 게데스와 하솔과 잇난과 24 십과 델렘과 브알롯과 25 하솔 하닷다와 그리욧 헤스론 곧 하솔과 26 아맘과 세마와 몰라다와 27 하살갓다와 헤스몬과 벧 벨렛과 28 하살 수알과 브엘세바와 비스요댜와 29 바알라와 이임과 에셈과 30 엘돌랏과 그실과 홀마와 31 시글락과 맛만나와 산산나와 32 르바옷과 실힘과 아인과 림몬이니 모두 스물아홉 성읍과 그 마을들이었으며 33 평지에는 에스다올과 소라와 아스나와 34 사노아와 엔간님과 답부아와 에남과 35 야르뭇과 아둘람과 소고와 아세가와 36 사아라임과 아디다임과 그데라와 그데로다임이니 열네 성읍과 그 마을들이었으며 37 스난과 하다사와 믹달갓과 38 딜르안과 미스베와 욕드엘과 39 라기스와 보스갓과 에글론과 40 갑본과 라맘과 기들리스와 41 그데롯과 벧다곤과 나아마와 막게다이니 열여섯 성읍과 그 마을들이었으며 42 립나와 에델과 아산과 43 입다와 아스나와 느십과 44 그일라와 악십과 마레사니 아홉 성읍과 그 마을들이었으며 45 에그론과 그 촌락들과 그 마을들과 46 에그론에서부터 바다까지 아스돗 곁에 있는 모든 성읍과 그 마을들이었으며 47 아스돗과 그 촌락들과 그 마을들과 가사와 그 촌락들과 그 마을들이니 애굽 시내와 대해의 경계에까지 이르렀으며 48 산지는 사밀과 얏딜과 소고와 49 단나와 기럇 산나 곧 드빌과 50 아납과 에스드모와 아님과 51 고센과 홀론과 길로이니 열한 성읍과 그 마을들이었으며 52 아랍과 두마와 에산과 53 야님과 벧 답부아와 아베가와 54 훔다와 기럇 아르바 곧 헤브론과 시올이니 아홉 성읍과 그 마을들이었으며 55 마온과 갈멜과 십과 윳다와 56 이스르엘과 욕드암과 사노아와 57 가인과 기브아와 딤나니 열 성읍과 그 마을들이었으며 58 할훌과 벧술과 그돌과 59 마아랏과 벧 아놋과 엘드곤이니 여섯 성읍과 그 마을들이었으며 60 기럇 바알 곧 기럇 여아림과 랍바이니 두 성읍과 그 마을들이었으며 61 광야에는 벧 아라바와 밋딘과 스가가와 62 닙산과 소금 성읍과 엔 게디니 여섯 성읍과 그 마을들이었더라 63 예루살렘 주민 여부스 족속을 유다 자손이 쫓아내지 못하였으므로 여부스 족속이 오늘까지 유다 자손과 함께 예루살렘에 거주하니라 |
유다 자손의 지파가 그들의 가족대로 받은 기업들을 다 나열하고 있습니다.
어떤 가문에게 몇 개의 성과 그 주변의 마을이 주어졌는지를 일일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주석가들에 의하면, 유다 자손들은 120여 개의 섬과 그 주변의 마을을 분배받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혹자는 영적 장자지파인 유다 지파에게 많은 기업이 주어진 것에 주목하면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축복하셨다고 말합니다.
당연히 그렇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유다 지파에게 많은 땅을 주신 것은 단순히 그들을 축복하기 위한 것만이 아니지요.
바로 가장 큰 사명도 맡기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오늘 본문에 기록된 많은 섬과 많은 마을 가운데는 여전히 가난한 족속들이 차지하고 있는 땅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게에 유다 지파에게 남겨진 그 사명은 가나안 사람들을 멸절시키라는 하나님의 뜻대로 그들을 쫓아내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유다 자손을 축복하셔서 많은 땅을 주셨지요.
그러나 이 축복을 온전히 누리기 위해 유다 지파는 큰 사명을 온전히 감당해 가난한 족속들을 쫓아내야만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탄은 노력과 수고 없는 축복으로 우리를 유혹합니다.
더 쉽고 더 편하게 많은 축복을 누릴 수 있는 거짓과 속임수로 달콤하게 우리 가운데 찾아오지요.
그러나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은 결코 이와 같지 않습니다.
본질적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은 노력 없는 열매, 수고 없는 결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사명을 온전히 감당함을 통해서 하나님이 예비하신 축복을 누리도록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사탄이 말하는 달콤한 축복이 아니라 사명을 통해서 주어지는 축복을 사모하는 이 하루가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유다 자손이 얼마나 많은 섬과 마을을 받았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 63절은 "여부스 족속을 유다 자손이 쫓아내지 못하였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한 구절은 유다 자손이 자신이 받은 사명을 온전히 완수하지 못했음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어찌 보면 이 땅의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 기업을 받았는가에 대해서 주목합니다.
그러나 얼마나 많은 기업을 받았는가 보다 더 중요한 것이 받은 기업을 온전히 세워가고 있는가 이 부분이 더 중요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마태복음 25장에 나타나는 달란트 비유에서 사람들은 종들이 받은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에 주목합니다.
그러나 그 달란트를 주는 주인이 주목했던 것은 종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달란트를 어떻게 충성스럽게 감당했는가 하는 것이죠.
그래서 그 사명을 감당하며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하였는가 그 부분을 주인은 주목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얼마나 많은 기업을 받고 얼마나 많은 성과 마을과 땅을 차지하느냐 그것이 아니지요.
주신 기업을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의 뜻대로 아름답게 세워가는가? 그것이 더 중요한 부분입니다.
혹시 지금 여러분에게 주어진 기업이 작아 보이고 초라해 보이지는 않으십니까?
그래서 하나님께 '제게 주신 기업은 왜 산지입니까? 제게 주신 땅은 왜 흙무지입니까? 제게 주신 곳에는 왜 우물이 없습니까?'
이런 불평을 늘어놓고 계시지는 않으십니까?
그러나 사랑하는 여러분 한 번 더 생각해 보십시오.
이 달란트 비유에서 5 달란트 받은 종이 처음부터 5 달란트 받은 종이 었을까요?
그렇게 생각되지 않습니다.
비록 지금은 다섯 달란트 받은 종이 되었지만 처음에 그 종은 한 달란트 받은 종, 두 달란트 받은 종은 아니었을까요?
그러나 그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을 때 주인이 그에게 더 많은 것을 맡기게 된 것은 아니겠습니까?
우리에게 주어진 기업, 그 땅의 초라함을 가지고 불평하기 이전에
우리에게 주신 작은 기업을 충성스럽게 감당하여 나아가기를 원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작은 일에 충성하는 자에게 더 많은 것을 맡겨 주실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것에 대한 불평이 아니라 감사와 충성으로 온전히 하나님의 뜻을 살아내는 이 하루가 되시기를 간절히 간절히 축원합니다.

사랑의 주님
오늘도 우리의 삶을 인도하시고 우리 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기대합니다.
비록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작고 초라해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작은 일의 충성함을 통해 더 많은 것을 맡겨주시는 주님의 뜻대로 지어져 갈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어제보다 더 성장하는 오늘을, 오늘보다 더 성장하는 내일을 살아낼 수 있도록 우리 가운데 동행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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