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2.11 | 생명의 삶 | 정재욱목사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이 하루가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저는 부천 온누리 교회를 섬기고 있는 정재욱 목사입니다.
영화 최종 병기 영화를 보면 주인공 나이가 이렇게 말합니다.
"바람은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극복하는 것이다."
강한 바람이 불어올 때 활을 쏘는 것을 주저하는 것이 아니라 바람을 극복하며 활시위를 당겨야 함을 이야기하는 것이지요.
이 부분은 우리의 믿음에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믿음도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극복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여러 고난과 문제들이 찾아옵니다.
그러나 그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고난으로 인해, 어려움으로 인해 주저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뚫고 나아가야 하는 것이죠.
오늘 말씀을 통해 계산하는 삶이 아니라 극복하는 삶에 대해서 함께 묵상해 보기를 원합니다.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여호수아 17장 1절부터 13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약속대로 기업을 받은 여인들
여호수아 17장 1절에서 13절 말씀입니다.
| 1 므낫세 지파를 위하여 제비 뽑은 것은 이러하니라 므낫세는 요셉의 장자였고 므낫세의 장자 마길은 길르앗의 아버지라 그는 용사였기 때문에 길르앗과 바산을 받았으므로 2 므낫세의 남은 자손을 위하여 그들의 가족대로 제비를 뽑았는데 그들은 곧 아비에셀의 자손과 헬렉의 자손과 아스리엘의 자손과 세겜의 자손과 헤벨의 자손과 스미다의 자손이니 그들의 가족대로 요셉의 아들 므낫세의 남자 자손들이며 3 헤벨의 아들 길르앗의 손자 마길의 증손 므낫세의 현손 슬로브핫은 아들이 없고 딸뿐이요 그 딸들의 이름은 말라와 노아와 호글라와 밀가와 디르사라 4 그들이 제사장 엘르아살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지도자들 앞에 나아와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사 우리 형제 중에서 우리에게 기업을 주라 하셨다 하매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그들에게 그들의 아버지 형제들 중에서 기업을 주므로 5 요단 동쪽 길르앗과 바산 외에 므낫세에게 열 분깃이 돌아갔으니 6 므낫세의 여자 자손들이 그의 남자 자손들 중에서 기업을 받은 까닭이었으며 길르앗 땅은 므낫세의 남은 자손들에게 속하였더라 7 므낫세의 경계는 아셀에서부터 세겜 앞 믹므닷까지이며 그 오른쪽으로 가서 엔답부아 주민의 경계에 이르나니 8 답부아 땅은 므낫세에게 속하였으되 므낫세 경계에 있는 답부아는 에브라임 자손에게 속하였으며 9 또 그 경계가 가나 시내로 내려가서 그 시내 남쪽에 이르나니 므낫세의 성읍 중에 이 성읍들은 에브라임에게 속하였으며 므낫세의 경계는 그 시내 북쪽이요 그 끝은 바다이며 10 남쪽으로는 에브라임에 속하였고 북쪽으로는 므낫세에 속하였고 바다가 그 경계가 되었으며 그들의 땅의 북쪽은 아셀에 이르고 동쪽은 잇사갈에 이르렀으며 11 잇사갈과 아셀에도 므낫세의 소유가 있으니 곧 벧 스안과 그 마을들과 이블르암과 그 마을들과 돌의 주민과 그 마을들이요 또 엔돌 주민과 그 마을들과 다아낙 주민과 그 마을들과 므깃도 주민과 그 마을들 세 언덕 지역이라 12 그러나 므낫세 자손이 그 성읍들의 주민을 쫓아내지 못하매 가나안 족속이 결심하고 그 땅에 거주하였더니 13 이스라엘 자손이 강성한 후에야 가나안 족속에게 노역을 시켰고 다 쫓아내지 아니하였더라 |
오늘 본문에는 므낫세 지파의 기업이 분배되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다른 지파들과는 다르게 므낫세 지파의 기업의 분배에는 그 기업을 받는 사람의 이름까지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런한 부분은 아마도 슬로우 보앗의 딸들이 기업을 받게 되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기록하기 위함이라고 생각됩니다.
민수기 27장을 보면 모세가 생존해 있을 때 슬로보앗의 딸들은 아들이 없다는 이유로 기업의 상속이 허락되지 않는 것에 의의를 제기합니다.
그리고 모세는 이 부분에 대해 하나님께 물었고, 하나님께서는 아들이 없는 집의 기업을 딸에게 돌리는 것을 허락하셨습니다.
지금과 같은 남녀 평등의 사회가 아니라,
여인을 물건과 같은 남성의 소유로 여겼던 남성 중심의 고대 근동 사회에서 이러한 결정은 굉장히 파격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을 보면, 므낫세 지파가 기업을 분배받을 때, 슬로보앗의 딸들은 제사장 엘르 아살과 여호수아와 지도자들 앞으로 나아가서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해 우리 형제들 가운데서 우리에게 유산을 주라고 하셨습니다.
슬로보앗의 딸들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그들에게 주셨던 약속을 붙잡았고, 그 약속을 근거로 기업을 요구했으며, 그 기업을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에게도 필요한 태도가 바로 이것입니다.
바로 하나님이 주신 약속을 붙잡는 것이고, 그 약속을 의지하여 하나님께서 이루실 것을 기대하며 소망하는 것이죠.
기독교의 신앙은 현실을 부인하지 않고, 진정한 영성은 현실에 온전히 뿌리내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온전한 믿음은 현실의 문제만을 보는 것이 아닌 약속의 말씀을 붙잡는 것이고, 문제를 넘어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소망할 수 있는 것입니다.
슬로보앗의 딸들이 모세의 때에 받았던 약속을 의지하여 여호수아에게 나아갔듯이, 우리도 생명의 말씀을 의지하여 말씀대로 우리에게 이루어질 것을 소망하며, 모든 역경과 문제를 뚫고 나아갈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 주시는 말씀을 붙잡고, 이 모든 것을 능히 이겨내며 승리할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오늘 본문 12절을 보면, 므낫세 자손이 그 성읍의 가나안 족속들을 쫓아내지 못하자, 가나안 족속들은 그 땅에 거주하며 살기로 결심합니다.
이러한 가난한 족속들의 결심을 보면서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는다는 속담이 생각나게 됩니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다 알게 됩니다. 누군가를 건드려서 된통 당할 것 같으면 아예 건드리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간 보고 찔러 보면서 만만해 보이면 다리를 뻗게 되는 것이죠.
이렇게 가나안 족속들이 보기에 므낫세 지파들이 만만해 보였던 것이죠.
그래서 그들은 그 땅에 거주하고 살기로 결단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과연 마귀는 누구에게 나타나는 것일까요?
슬로보앗의 딸들과 같이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기업을 받기 위해 모든 역경을 극복하는 자에게 마귀는 역사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마귀는 작은 문제와 현실 속에 타협하고 주저하며 안주하는 자에게 더 강력하게 나타납니다.
히브리서 12장 4절은 말합니다.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 흘리기까지는 대항하지 아니하고.
히브리서 기자는 이 말씀을 통해 현실과 제의 문제와 싸우기 위한 격렬한 저항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과연 지금 우리는 제와 싸우면서 피흘리고 있습니까 아니면 두려움 속에 주저하고 타협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므낫세 지파와 같이 가나한 족속과 타협하는 것이 아닌 슬로보앗의 딸들과 같이 도전하며 나아감을 통해 하나님이신 기업을 쟁취할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간절히 소망합니다.

사랑의 주님
늘 계산하고 고민하는 우리의 연약함을 고백합니다.
슬로봇의 딸들과 같이 우리가 믿음으로 극복하는 하나님의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타협과 안주를 넘어서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워 하나님의 군사가 될 수 있도록 주장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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