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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보다 자신들의 실리를 앞세운 지파(여호수아 16:1~10)(20251210)

2025.12.10. | 생명의 삶  | 정재욱목사

 

 

말씀보다 자신들의 실리를 앞세운 지파

 

 

 

하나님의 은혜와 말씀으로 살아가는 이 하루가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저는 부천 온누리교회를 섬기고 있는 정재욱 목사입니다.

 

전설적인 농구 선수 마이클 조던이 나이키의 옷을 입으면

나이키가 조던을 빛나게 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조던이 나이키를 빛나게 하는 것일까요?

우리가 다 알고 있듯이 후자가 맞습니다.

 

동일하게 우리가 성령님과 함께하고 있으면 성령님께서 우리를 통해 빛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을 통해서 우리가 빛이 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너무나 명확하고 분명합니다.

 

문제는 우리가 이 명백한 사실을 때때로 헷갈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때로는 하나님의 말씀보다 우리의 생각이 먼저 될 때가 있다는 것이죠.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 안의 영적인 우선순위를 다시 한번 새겨보게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여호수아 16장 1절부터 10절까지의 말씀입니다.

 

 

 

말씀보다 자신들의 실리를 앞세운 지파
말씀보다 자신들의 실리를 앞세운 지파

 

 

 

말씀보다 자신들의 실리를 앞세운 지파

 

 

 

여호수아 16장 1절에서 10절 말씀입니다.

더보기
1 요셉 자손이 제비 뽑은 것은 여리고 샘 동쪽 곧 여리고 곁 요단으로부터 광야로 들어가 여리고로부터 벧엘 산지로 올라가고
2 벧엘에서부터 루스로 나아가 아렉 족속의 경계를 지나 아다롯에 이르고
3 서쪽으로 내려가서 야블렛 족속의 경계와 아래 벧호론과 게셀에까지 이르고 그 끝은 바다라
4 요셉의 자손 므낫세와 에브라임이 그들의 기업을 받았더라
5 에브라임 자손이 그들의 가족대로 받은 지역은 이러하니라 그들의 기업의 경계는 동쪽으로 아다롯 앗달에서 윗 벧호론에 이르고
6 또 서쪽으로 나아가 북쪽 믹므다에 이르고 동쪽으로 돌아 다아낫 실로에 이르러 야노아 동쪽을 지나고
7 야노아에서부터 아다롯과 나아라로 내려가 여리고를 만나서 요단으로 나아가고
8 또 답부아에서부터 서쪽으로 지나서 가나 시내에 이르나니 그 끝은 바다라 에브라임 자손의 지파가 그들의 가족대로 받은 기업이 이러하였고
9 그 외에 므낫세 자손의 기업 중에서 에브라임 자손을 위하여 구분한 모든 성읍과 그 마을들도 있었더라
10 그들이 게셀에 거주하는 가나안 족속을 쫓아내지 아니하였으므로 가나안 족속이 오늘까지 에브라임 가운데에 거주하며 노역하는 종이 되니라

 

 

 

오늘 본문에는 요셉 자손에게 하나님이 주신 기업이 분배되고 있습니다.

먼저 에브라함 지파에게 땅이 분배되고, 그 이후에는 므낫세 반 지파에게도 땅이 분배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에브라인과 므낫세의 반지파가 받은 땅을 살펴보면 이스라엘의 허리와 같은 중간 부분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땅들은 비옥한 땅이라고 알려져 있죠.

문제는 요셉 자손들이 그들이 받은 이 기업에 만족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여호수아 17:14
요셉 자손이 여호수아에게 말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지금까지 내게 복을 주시므로 내가 큰 민족이 되었거늘 당신이 나의 기업을 위하여 한 제비, 한 분깃으로만 내게 주심은 어찌함이니이까 하니

 

요셉 자손들은 그들이 받은 땅이 적다고 여우사에게 찾아가 불평을 토로했던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부분은 상대적인 비교 의식 속에서 요셉 자손들이 유다 자손들에 비해서 작은 땅을 받았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하는 것은 땅을 분배하고 각 지파에게 기업을 주신 분은 여호수아가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이시다라는 사실입니다.

그러하기에 지금 이들이 불평을 터뜨리고 있는 것은 사람에 대한 것이 아닌 전능하신 하나님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과연 이러한 문제가 요셉 자손들에게만 있는 것일까요?

우리도 때때로 하나님께 불평을 터트립니다. 왜일까요?

우리의 생각이 하나님의 뜻보다 옳다고 착각하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으로 저도 때때로 하나님의 뜻을 다 이해하지 못할 때가 있고, 때로는 불평을 터뜨릴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깨닫게 되는 것은 하나님은 항상 언제나 오르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시야는 너무나 한계를 가지고 있지만, 우리 하나님은 모든 만물과 세계를 주관하시는 분이시며,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계시는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역사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해되지 않고 불평이 올라올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하나님은 항상 옳으시다는 이 고백을 놓치지 마십시오.

그리고 우리의 생각과 판단을 내려놓고 가장 선한 길로 우리를 인도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뜻에 순복할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아름다운 기업에 대해 나는 어떻게 감사를 표현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이 내게 주신 아름다운 기업에 대해 나는 어떻게 감사를 표현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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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에서 에브라인 지파가 게셀에 사는 가난한 사람들을 쫓아내지 못했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앞서 살펴본 유다 지파가 여부스 사람들을 쫓아내지 못한 것과는 그 이유와 모습이 달라 보입니다.

바로 가나한 사람들이 에브라인 사람들 가운데 살면서 노예가 되어 힘든 일을 감당하며 살아갔기 때문이죠.

이 부분에서 우리는 에브라함 지파가 가나안 사람들을 쫓아내지 못한 것이 아니라 안 한 것이라는 판단을 내리게 됩니다.

가나안 사람들을 노예로 만들었다는 이 부분을 보았을 때, 에브라함 지파에게 가난한 사람들을 굴복시킬 수 있는 충분한 힘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왜 에브라함 지파는 이러한 결정을 내렸던 것일까요?

바로 그들을 내쫓는 것보다 그들을 노예로 삼고 힘든 일을 시키는 것이 그들에게 보기에 더 합리적인 판단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내리신 명령은 무엇이었습니까?

가나안 모든 민족을 모두 멸절시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민족 모두를 멸절시키라고 말씀하셨던 것일까요?

그것은 그들의 죄가 땅에 창궐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런 제약된 가나한 민족들이 사라져야지만, 그들이 죄된 영향력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흘러갈 수 없었기 때문이죠.

그런데 에브라임 지파는 이러한 하나님의 명령보다 자신의 실리를 위해 가난한 사람들을 노예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이 가졌던 죄된 영향력들이 그들 가운데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남겨진 가나한 사람들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며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결과가 나타나게 되었기 때문이죠.

 

어찌 보면 지금 우리 가운데도 에브라함 지파와 같은 실리주의적인 태도, 합리주의적인 생각들이 들어와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우리의 모든 생각보다 하나님의 명령,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는 더 존귀하게 여길 수 있어야 됩니다.

바로 하나님의 명령 가운데서 우리는 바른 길로, 온전한 길로 인도받을 수 있기 때문이죠.

 

언제나 우리를 가장 안전한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말씀에 대한 온전한 우선순위를 가지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이 하루를 온전하게 살아가게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내 삶에서 말씀 순종보다 실리를 앞세우는 때는 언제인가요?
내 삶에서 말씀 순종보다 실리를 앞세우는 때는 언제인가요?

 

 

사랑의 하나님
우리의 생각, 우리의 판단으로 불편과 불만을 쏟아 놓으며
때로는 인간적인 실리주의에 빠져가는 우리의 연약함을 바라봅니다.
다시 한 하나님의 명령에 숨겨진 사랑과 능력을 놓치지 않게 하여 주시사
당신만이 우리의 최고의 우선순위 되심을 고백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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