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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돌에서 구원의 반석으로(마가복음 12:1~12)(20250414)

2025.04.14 | 생명의 삶 | 안광복 목사

 

버려진 돌에서 구원의 반석으로

 

 


안녕하세요

청주상당교회를 섬기는 안광복 목사입니다

 

티르키에 이스탄불에는 수많은 진귀한 보물들을 볼 수 있는 톱카프 궁전이 있습니다.

그곳에는 무려 86캐럿이나 되는 엄청난 다이아몬드가 있는데, 숟가락 다이아몬드라는 별명을 갖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이 다이아몬드를 우연히 발견한 한 어부가 보석상에게 그저 숟가락 몇 개를 받고 팔았다는 데서 유래합니다.

명품의 진가를 알아보지 못한 어부의 무지함과

최소의 지출로 막대한 이득을 취했던 보석상의 욕심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깨닫게 해 줍니다

우리의 죄성이 그런 무지와 악함을 만들어내고,

더 나아가서 가장 존귀한 하나님의 영광을 무가치한 것으로 바꾸도록 우리의 눈을 가리게 되죠.

오늘 본문 비유에 등장하는 악한 농부들의 그 죄악이 결국 우리들의 죄성이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야만 했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오늘의 말씀 마가복음 12장 1절에서 12절까지의 말씀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버려진 돌에서 구원의 반석으로

 

 

버려진 돌에서 구원의 반석으로

 

 

 

마가복음 12장 1절에서 12절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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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예수께서 비유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한 사람이 포도원을 만들어 산울타리로 두르고 즙 짜는 틀을 만들고 망대를 지어서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갔더니
2 때가 이르매 농부들에게 포도원 소출 얼마를 받으려고 한 종을 보내니
3 그들이 종을 잡아 심히 때리고 거저 보내었거늘
4 다시 다른 종을 보내니 그의 머리에 상처를 내고 능욕하였거늘
5 또 다른 종을 보내니 그들이 그를 죽이고 또 그 외 많은 종들도 더러는 때리고 더러는 죽인지라

6 이제 한 사람이 남았으니 곧 그가 사랑하는 아들이라 최후로 이를 보내며 이르되 내 아들은 존대하리라 하였더니
7 그 농부들이 서로 말하되 이는 상속자니 자 죽이자 그러면 그 유산이 우리 것이 되리라 하고
8 이에 잡아 죽여 포도원 밖에 내던졌느니라
9 포도원 주인이 어떻게 하겠느냐 와서 그 농부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주리라
10 너희가 성경에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11 이것은 주로 말미암아 된 것이요 우리 눈에 놀랍도다 함을 읽어 보지도 못하였느냐 하시니라
12 그들이 예수의 이 비유가 자기들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알고 잡고자 하되 무리를 두려워하여 예수를 두고 가니라

 

 

자 오늘 본문은 비유의 말씀입니다 1절

1 예수께서 비유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한 사람이 포도원을 만들어 산울타리로 두르고 즙 짜는 틀을 만들고 망대를 지어서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갔더니

 

이것은 예수님이 비유예요.

어떤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어떤 교훈을 위해서 우리에게 만들어 주신 하나의 가상의 스토리입니다.

어떤 한 사람이 포도원을 만들었어요. 그리고 정성껏 가꿉니다.

산 울타리로 두르고 즙 자는 틀도 만들고 망대를 짓습니다.

그리고 어떤 특정한 농부들에게 새로 주고 타국에 갔죠.

일을 시키고 거기에 대한 그런 결과들을 얻을 수 있게끔 그리고 농부에게는 어떤 굉장히 좋은 기회를 준 거죠.

 

 

그런데 이 농부들과 주인과 어떤 대화 어떤 이야기들 어떤 관계에서 시작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자 시간이 지나면서 이 농부들의 마음속에 욕심이 싹트기 시작합니다. 2절 

2 때가 이르매 농부들에게 포도원 소출 얼마를 받으려고 한 종을 보내니

 

때가 이르렀다. 이것은 추수할 때입니다.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났죠

그런데 그 농부들의 마음속에 싹 떴던 그 죄성이 그 욕심이 점점 더 무르익습니다.

점점 더 성장합니다. 발화해서 싹을 트고 그리고 이제 거기에서 하나의 열매로 나타나는 거예요.

 

 

여러분 오늘 본문은 우리 인간 안에 있는 이 죄성이 어떻게 출발을 하고 어떻게 시작을 하고 어떻게 결과로 나타나는지 과정을 우리에게 보여주거든요. 여러분 죄라는 것은 반드시 처음 시작서부터 행실, 어떤 액션으로 옮겨지기까지의 필요한 시간이 있어요.

절대적인 어떤 시간이 꼭 필요하다는 거죠.

그 시간을 통해서 무르익고 그것이 나타나는데 소출 얼마를 받으려고 한 종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3절 이하의 내용을 보면 그들이 종을 잡아 심히 때리고 걷어 보냈어요.

4절 다시 다른 종을 보냈는데 머리에 상처를 내고 능욕했어요. 5절 또 다른 종을 보냈는데 그들이 그를 죽였고요.

그 외 많은 종들도 더로는 때리고 더로는 죽인지라

3 그들이 종을 잡아 심히 때리고 거저 보내었거늘
4 다시 다른 종을 보내니 그의 머리에 상처를 내고 능욕하였거늘
5 또 다른 종을 보내니 그들이 그를 죽이고 또 그 외 많은 종들도 더러는 때리고 더러는 죽인지라

 

보십시오 이 죄가 이 욕심이 점점 더 커지지 않습니까? 그리고 점점 더 과격해집니다. 그리고요 조직적이고 멈출 줄 모릅니다.

이 죄라는 것은요. 그냥 생기지 않아요. 야고보 사도도 1장 15절에 그런 말씀을 하지 않습니까?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에 이르느니라 사망을 낳느니라.

여러분 우리의 안에 있는 이 죄성, 이 욕심은 계속해서 성장을 합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을 보세요. 점점 더 커집니다. 그리고 과격해집니다. 조직적이 됩니다. 

 

 

처음에는요 약간의 이득을 취하려고 욕심이 생겼겠죠 그것은 소출에서 시작돼요. 그 소출 얼마에 대한 욕심이 생겼겠죠.

나중에 어떻게 되는지 아십니까? 7절 

7 그 농부들이 서로 말하되 이는 상속자니 자 죽이자 그러면 그 유산이 우리 것이 되리라 하고

 

여러분 그 포도 주인의 그 막대한 유산까지도 욕심을 내는 데 있어요.

그리고 그가 상속자라는 것 외아들이라는 것까지도 그들은 벌써 조사를 하고 다 이미 서로 공론화된 상태입니다.

여러분 죄에 대한 굉장히 무서운 그리고 심각한, 그런 여러 가지 상황들 사태들을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아주 소중한 그런 교훈이기도 합니다.

 

 

여러분 이 말씀을 잘 묵상하시고, 이 사순절에 예수님이 십자가를 묵상한다는 것은 결국에 그 죄의 본질이 무엇이고 그 파급력이 무엇인지를 함께 묵상을 해야 됩니다.

계속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이 내게 바라시는 것은 무엇이며, 나는 어떻게 순종하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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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은 이 죄에 대한 인간의 무지막지한 죄에 대한 하나의 가르침과 동시에 하나님의 사랑을 거기에 대비해서 비추어 볼 수 있어요.

이 주인을 하나님의 모습으로 우리가 비유하죠. 

하나님의 어떤 사랑과 하나님의 어떤 의도와 계획으로 살펴볼 때 그들이 그런 악한 일을 하고, 떼어먹고, 거부하고, 보낸 종들을 때리고, 심지어는 죽이고, 그럼에도 주인은 하나님은 참아주십니다. 인내하시죠.

 

여러분 하나님의 사랑은 끝이 없는 그 사랑이에요.

근데 두 가지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여러분 인간의 사랑은 어떨까요?

인간의 사랑에는 유효 기간이라는 게 있습니다. 

아무리 사랑해도 시간이 지나면서 변질이 됩니다.

여러분 음식의 유효 기간이 있는 것처럼, 인간의 사랑은 그것이 순수하지 못하다 그런 의미가 아니라.

그것을 지탱해 낼 수 있는 능력이 없는 거죠.

여러 가지 조건이 바뀌고, 상황이 바뀌고, 내가 세 번이나 밥을 샀는데, 한 번이라도 밥을 사야지.

이런 계산과 여러 가지 상황적인 그런 변수들이 생깁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사랑에는 유통기한이라는 것이 없죠.

예수님께서 자기 사람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다.

이것은 어떠한 변수 어떠한 여러 가지 조건과 상황과 상관이 없는 영향을 받지 않는 바로 그런 절대적인 사랑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그가 사랑하시는 그의 자녀들 그의 백성들은 그렇게 사랑하시지만, 악인들은 죄인들은 그렇지 않아요.

그 사랑이 그 기회가 어느 정도 시간을 지나고 나면 끝이 납니다.

그리고 무서운 하나님의 심판으로 이어지게 되죠. 9절 말씀 

9 포도원 주인이 어떻게 하겠느냐 와서 그 농부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주리라

 

바로 이런 겁니다.

그 하나님의 사랑은 하나님의 사람들 자녀들에게는 끝이 없는 그런 사랑이지만 그렇지 않은 죄인들에게는 기회를 주시지만 어느 순간에는 매듭을 지으시고 심판을 하실 때가 있더라라는 거예요.

 

 

여러분 마지막 12절을 한번 보죠. 

12 그들이 예수의 이 비유가 자기들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알고 잡고자 하되 무리를 두려워하여 예수를 두고 가니라

 

여러분 굉장히 흥미로운 얘기가 나와요.

자기들을 비유로 뭔가 비난 아니면 마음에 약간 부정적 느낌이 있으니까 화가 나겠죠. 속이 상하겠죠. 그래서 어떻게 합니까?

예수님을 붙잡고자 합니다. 이건 욕심이에요. 그 종교 지도자들의 본능이죠. 죄성이죠. 

그런데 그 잡고자 했던 그 욕심이 그 죄성이 실행이 되지 않는 이유를 뭐라고 얘기하냐면 무리를 두려워했기 때문이다라는 겁니다.

아 여기서 우리는 뭘 알 수 있는가? 

우리의 죄가 멈춰 설 수 있는 하나의 계기가 있는데, 그 단서가 있는데 두려움이라는 거예요.

어떤 종류의 두려움이든 괜찮습니다. 그 두려움이 크면 클수록 내가 지었던 그 죄가 중단이 됩니다. 더 진행하지를 못해요. 

그 두려움 때문에 그렇죠

 

 

여러분 두려움이라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우리의 죄를 멈춰 서게 만들 수 있는 하나의 또 다른 기능이 돼요.

물론 그 두려움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죠. 하나님은 우리에게 두려움을 주시는 분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의 어떤 상황 속에서 뭔가를 두려워하면서 그 죄를 스탑 시킬 수 있는 그런 두려움이 없으면요. 그 죄는 파국에 가서야 만 끝납니다. 멈춰 설 수 없는 그냥 무면허, 아니면 알코올 중독, 술을 음주를 하고 나서 정말 무섭게 운전을 한 어떤 그런 케이스와 마찬가지죠. 그러나 그 죄가 두려움으로 인해서 멈춰 서게 돼요.

 

 

여러분 어떤 측면에서 그런 부정적 두려움으로 인해서 내 죄가 멈춰 선다면, 그나마 그것으로도 참 다행이지만

가장 중요한 두려움은요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fear of god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 하나님을 경의 하는 것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되면 모든 것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 모든 죄로부터 자유할 수 있게 되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고난 주간 예수님이 십자가와 함께 우리 안에 있는 이 죄성, 이 본질을 한번 묵상해 보십시오.

그리고 움찔움찔 꿈틀꿈틀 생성되고 자라나는 그 모든 죄의 싹들을 잘라주시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시고 예수님을 깊이 묵상함으로 죄로부터 참된 자유함을 얻어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의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나는 구원의 반석이신 예수님 안에서 삶의 기초를 세우고 있나요?

 

 

사랑하는 주님 
우리의 욕심과 교만함이 얼마나 지독한지 다시 한번 깨닫게 됩니다.
고난 주간을 통하여 주님의 십자가를 깊이 묵상하게 하시고,
우리 안에 뿌리 박혀 있는 죄의 실체를 깊이 들여다보고 통해 하는 한 주간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주인의 뜻을 거역한 포도 농부들처럼 교만하지 않기를 원합니다.
그들의 커져가는 악독함이 우리 안에 자리 잡지 않기를 소망합니다.
주님의 사랑을 외면하지 않게 하시고, 오직 신실한 믿음과 거짓 없는 사랑으로 주님께 나아가게 하옵소서.
우리의 영원한 머릿돌 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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