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4.12 | 생명의 삶 | 노치형 목사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새롭게 되고 또 우리의 눈이 믿음의 눈으로 새로워지는 은혜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저는 온누리 교회를 섬기는 노치형 목사입니다.
우리가 믿음의 눈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것을 의미합니까?
그것은 더 어려운 말로 표현한다면, 하나님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눈으로 바라본다는 것은 어떻게 바라보는 것을 말하는 것일까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하나님은 창조주이시고 구원자이시고 심판자이십니다.
하지만 우리는 창조의 눈으로, 구원의 눈으로 또 심판의 눈으로 바라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연약한 죄인이며, 우리는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대신에 생명을 살리는 눈으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거짓을 분별해 내고 거짓과 싸워 이겨내고 진리의 빛을 드러내기를 소망하는 눈으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
그러한 눈이 우리에게 있기를 소망합니다.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는 인생, 그 모든 인생 여정이 되길 소망합니다.
오늘 주신 하나님의 말씀은 민수기 13장 1절에서 24절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을 함께 듣겠습니다.
약속의 땅을 밟는 정탐꾼의 임무
민수기 13장 1절에서 24절 말씀입니다.
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 사람을 보내어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가나안 땅을 정탐하게 하되 그들의 조상의 가문 각 지파 중에서 지휘관 된 자 한 사람씩 보내라 3 모세가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바란 광야에서 그들을 보냈으니 그들은 다 이스라엘 자손의 수령 된 사람이라 4 그들의 이름은 이러하니라 르우벤 지파에서는 삭굴의 아들 삼무아요 5 시므온 지파에서는 호리의 아들 사밧이요 6 유다 지파에서는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요 7 잇사갈 지파에서는 요셉의 아들 이갈이요 8 에브라임 지파에서는 눈의 아들 호세아요 9 베냐민 지파에서는 라부의 아들 발디요 10 스불론 지파에서는 소디의 아들 갓디엘이요 11 요셉 지파 곧 므낫세 지파에서는 수시의 아들 갓디요 12 단 지파에서는 그말리의 아들 암미엘이요 13 아셀 지파에서는 미가엘의 아들 스둘이요 14 납달리 지파에서는 웝시의 아들 나비요 15 갓 지파에서는 마기의 아들 그우엘이니 16 이는 모세가 땅을 정탐하러 보낸 자들의 이름이라 모세가 눈의 아들 호세아를 여호수아라 불렀더라 17 모세가 가나안 땅을 정탐하러 그들을 보내며 이르되 너희는 네겝 길로 행하여 산지로 올라가서 18 그 땅이 어떠한지 정탐하라 곧 그 땅 거민이 강한지 약한지 많은지 적은지와 19 그들이 사는 땅이 좋은지 나쁜지와 사는 성읍이 진영인지 산성인지와 20 토지가 비옥한지 메마른지 나무가 있는지 없는지를 탐지하라 담대하라 또 그 땅의 실과를 가져오라 하니 그 때는 포도가 처음 익을 즈음이었더라 21 이에 그들이 올라가서 땅을 정탐하되 신 광야에서부터 하맛 어귀 르홉에 이르렀고 22 또 네겝으로 올라가서 헤브론에 이르렀으니 헤브론은 애굽 소안보다 칠 년 전에 세운 곳이라 그 곳에 아낙 자손 아히만과 세새와 달매가 있었더라 23 또 에스골 골짜기에 이르러 거기서 포도송이가 달린 가지를 베어 둘이 막대기에 꿰어 메고 또 석류와 무화과를 따니라 24 이스라엘 자손이 거기서 포도를 베었으므로 그 곳을 에스골 골짜기라 불렀더라 |
아론과 미리암의 그 아픈 상황이 마치고 나서 모세는 다시 한번 하나님의 명령을 듣게 됩니다.
그것은 진짜 가난한 땅을 살펴보라는 하나님의 명령이었습니다.
그들이 도달하게 될, 그 그 땅에 도달하기까지 여러 가지 어려움들이 있었습니다.
백성들의 원망과 울음소리, 그것으로 인한 처참한 죽음들
그리고 또 사랑했던 형제들의 비방과 그것을 통한 너무나 아픈 경험들, 이러한 굴국을 통해서 그 모세는 광야를 체험하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아론과 미리암도 그렇게 광야를 체험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이제 도착하게 가난한 땅을 살펴보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1절부터 3절의 말씀입니다.
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 사람을 보내어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가나안 땅을 정탐하게 하되 그들의 조상의 가문 각 지파 중에서 지휘관 된 자 한 사람씩 보내라
3 모세가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바란 광야에서 그들을 보냈으니 그들은 다 이스라엘 자손의 수령된 사람이라
각 지파의 대표들을 한 명씩 뽑아서 가난한 땅을 정탐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12명의 정탐꾼이 되었고 그들은 이스라엘의 대표성을 띄고 그 땅을 북으로부터 남까지, 동으로부터 서까지 살펴보게 된 것입니다.
그들의 이름에 대해서 이렇게 얘기하고 있습니다. 4절부터의 말씀을 읽습니다.
4 그들의 이름은 이러하니라 르우벤 지파에서는 삭굴의 아들 삼무아요
5 시므온 지파에서는 호리의 아들 사밧이요
6 유다 지파에서는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요
7 잇사갈 지파에서는 요셉의 아들 이갈이요
8 에브라임 지파에서는 눈의 아들 호세아요
9 베냐민 지파에서는 라부의 아들 발디요
10 스불론 지파에서는 소디의 아들 갓디엘이요
11 요셉 지파 곧 므낫세 지파에서는 수시의 아들 갓디요
12 단 지파에서는 그말리의 아들 암미엘이요
13 아셀 지파에서는 미가엘의 아들 스둘이요
14 납달리 지파에서는 웝시의 아들 나비요
15 갓 지파에서는 마기의 아들 그우엘이니
16 이는 모세가 땅을 정탐하러 보낸 자들의 이름이라 모세가 눈의 아들 호세아를 여호수아라 불렀더라
아멘.
여러 가지 이름이 등장하나 우리 눈에 들어오는 이름은 아마 두 개일 것입니다.
그것은 갈랩과 호세아, 여수아라 불리는 호세아였습니다.
한 사람은 유다 지파였고, 한 사람은 애브라함 지파였습니다.
하지만 요셉의 아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에브라함 지파를 표시할 때는 요셉의 아들 에브라함 지파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에브라함이라고 얘기했고, 그것은 요셉의 아들이지만 므낫세가 장자였고, 에브라함이 차자였지만
야곱이 축복을 할 때 손을 어긋맞껴 축복함을 통해서 진정한 장자의 자리를 빼앗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셉 지파라는 그러한 명칭이 그렇게 므낫세에게 가게 된 것이고, 에브라함은 독립된 한 지파로서의 이름이 불려지게 된 것이죠.
이런 상황 속에서 유다 지파와 에브라함 지파의 대표들만이 기억에 남게 됩니다.
그들의 여정은 우리가 잘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그들의 여정 가운데 꼭 필요한 것이 있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눈으로 바라보는 시각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왜 우리에게는 갈랩과 여호수아라는 이름만이 기억나게 됐을까요?
그것은 갈랩과 여호수아만이 하나님의 시각으로 정탐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삶 속에 하나님의 눈으로 바라봐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깊이 생각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모든 상황, 모든 환경 속에서 하나님의 눈으로 그 자리를, 그 시간을 바라보는 삶을 누리시길 소망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서 12명의 정탐꾼들에게 이렇게 정탐하라고 상세하게 지침을 주고 계심을 알게 됩니다.
17절부터의 말씀입니다.
17 모세가 가나안 땅을 정탐하러 그들을 보내며 이르되 너희는 네겝 길로 행하여 산지로 올라가서
18 그 땅이 어떠한지 정탐하라 곧 그 땅 거민이 강한지 약한지 많은지 적은지와
19 그들이 사는 땅이 좋은지 나쁜지와 사는 성읍이 진영인지 산성인지와
20 토지가 비옥한지 메마른지 나무가 있는지 없는지를 탐지하라 담대하라 또 그 땅의 실과를 가져오라 하니 그 때는 포도가 처음 익을 즈음이었더라
아맨
모세는 하나님에게로부터 아주 세밀하게 조사하라는 명령을 받게 됩니다.
그것을 하나하나 차근차근 잘 지시하게 됩니다.
함께하지는 못하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실 것임을 믿기에 그들에게는 담대하라는 명령도 더해 줍니다.
그들이 탐지할 그 땅은 어떤 땅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아가게 될 땅입니다.
그 땅은 그저 단순히 점령하고 폐허로 만들어 버릴 땅이 아닙니다.
그저 그 땅에 깃발을 꽂기 위해서 가는 것도 아닙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이 주신 그 귀한 것을 누리고 은혜를 나누며 살려고 그곳을 향해 가고 있는 것이죠.
집을 보러 가는 사람들이 자기가 살 집을 볼 때 어떻게 볼까요? 그저 대충 보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하나 꼼꼼히 살펴보게 되죠.
하나님께서 정탐하라고 말씀하신 것이 너무나 전쟁에만 집중되어 있지 않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그 땅을 이스라엘 백성이 가장 살기 좋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말하는 것이죠.
젖과 꿀이 흐른다는 것은 풍요롭다는 말이 될 것이며, 쉼을 누릴 수 있는 곳이 될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곳을 쉼을 누릴 수 있는 곳으로, 내가 생활하며 내 자손만대까지 이어 함께 살아갈 터전이라고 생각하고 정탐했다면 어땠을까요?
하지만 그들의 눈에는 무엇이 보였습니까?
담대하라는 그러한 모세의 명령을 듣고서도 그들의 눈에 보인 것은 다른 것이었던 것이죠.
21절부터 24절의 말씀입니다.
21 이에 그들이 올라가서 땅을 정탐하되 신 광야에서부터 하맛 어귀 르홉에 이르렀고
22 또 네겝으로 올라가서 헤브론에 이르렀으니 헤브론은 애굽 소안보다 칠 년 전에 세운 곳이라 그 곳에 아낙 자손 아히만과 세새와 달매가 있었더라
23 또 에스골 골짜기에 이르러 거기서 포도송이가 달린 가지를 베어 둘이 막대기에 꿰어 메고 또 석류와 무화과를 따니라
24 이스라엘 자손이 거기서 포도를 베었으므로 그 곳을 에스골 골짜기라 불렀더라
그들이 본 것은 아주 풍요로운 땅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아낙 자손을 본 것이죠.
이 아낙 자손은 거인에 해당하는 족속이라고 알려져 있었습니다.
그들과 싸울 생각을 하니 자기들이 거할 집이라 생각하지 못하게 된 것이죠.
어떤 집에 가서 집을 보는 사람이 그 주인의 모습을 보고 그 집을 선택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 집의 형편과 그 집주인이 잘 얘기되고 계약이 된다면 그것을 기쁘게 선택하게 되겠죠.
하나님께서는 아악 자손에게 그 집을 내놔라 말씀하실 수 있는 분입니다.
그 땅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어라 말씀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기억한다면, 그리고 그 하나님의 눈으로 아학 자손을 보았다면 아마 그들의 눈에는 집을 아주 편안하게 내어줄 양도할 수 있는 존재로 보였을 것입니다.
우리의 눈에 그런 눈이 열리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의 시선을 통해 하나님이 이루어가시는 그 일을 확신하는 그러한 믿음의 눈으로 승리하는 하루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모든 것의 주인이신 하나님
믿음의 삶을 살아갈 때 어떤 형편과 상황을 만난다 할지라도
삼위일체 하나님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 믿음과 담대함과 지혜를 허락하여 주소서.
하나님께서 이끄시는 곳에서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현장을 믿음의 눈으로 세밀하게 확인하고 찬양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CGNTV > 생명의 삶' 카테고리의 다른 글
버려진 돌에서 구원의 반석으로(마가복음 12:1~12)(20250414) (0) | 2025.04.14 |
---|---|
동일한 장소, 상반된 시각(민수기 13:25~33)(20250413) (0) | 2025.04.13 |
영적 질서를 세우는 징계와 회복(민수기 12:9~16)(20250411) (0) | 2025.04.11 |
하나님은 지도자 비방을 간과하지 않으십니다(민수기 12:1~8)(20250410) (0) | 2025.04.10 |
영으로, 심판으로 임하시는 하나님(민수기 11:24~35)(20250409) (0) | 2025.04.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