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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강을 선포하신 부활의 주님(요한복음 20:11~23)(20250312)

2025.03.12. | 생명의 삶 | 임채영 목사

 

평강을 선포하신 부활의 주님

 

 

여러분 다들 평안하셨죠?

저는 서울 아현동에 있는 서부교회를 섬기고 있는 임채영 목사입니다.

여러분 이집트를 가보시면 피라미드가 유명하죠.

이 피라밋은 고대 왕들의 무덤입니다.

피라미 안에는 왕들의 미화와 각종 보물들이 들어 있어서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과 흥미를 일으키고 있죠.

영국에 가면요. 웨스트민스터 사원도 유명한 사람들의 무덤이 있어서 유명합니다.

영국의 훌륭한 종교인, 정치인 대부분이 여기에 안장돼 있거든요.

메카에 있는 마오메트의 무덤은 마오메트의 유해와 커다란 돌관으로 유명합니다.

해마다 많은 무슬림들이 이 성지 순례를 위해 이곳을 찾죠.

그런데 이 모든 무덤들보다 더욱 유명한 곳이 있는데 예수님의 무덤이에요.

예수님은 부활하셨기에 그 무덤은 비어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그 무덤을 찾아가지 않아도 부활하신 주님은 자신을 찾는 모든 성도들과 함께 계십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할 말씀 요한복음 20장 11절부터 23절의 말씀이 바로 그 빈 무덤의 현장입니다.

 

 

평강을 선포하신 부활의 주님

 

 

 

평강을 선포하신 부활의 주님

 

 

요한복음 20장 11절에서 23절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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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더니 울면서 구부려 무덤 안을 들여다보니
12 흰 옷 입은 두 천사가 예수의 시체 뉘었던 곳에 하나는 머리 편에, 하나는 발 편에 앉았더라
13 천사들이 이르되 여자여 어찌하여 우느냐 이르되 사람들이 내 주님을 옮겨다가 어디 두었는지 내가 알지 못함이니이다
14 이 말을 하고 뒤로 돌이켜 예수께서 서 계신 것을 보았으나 예수이신 줄은 알지 못하더라
15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하시니 마리아는 그가 동산지기인 줄 알고 이르되 주여 당신이 옮겼거든 어디 두었는지 내게 이르소서 그리하면 내가 가져가리이다

16 예수께서 마리아야 하시거늘 마리아가 돌이켜 히브리 말로 랍오니 하니 (이는 선생님이라는 말이라)
17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붙들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아니하였노라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하시니
18 막달라 마리아가 가서 제자들에게 내가 주를 보았다 하고 또 주께서 자기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르니라
19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20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21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22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23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오늘 본문이 시작하는 11절을 한번 볼까요? 

11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더니 울면서 구부려 무덤 안을 들여다보니

 

여기에 보면 울면서라고 하는 이 단어 헬라어로 클라이오라는 단어인데요.

원래 뜻이 큰 소리로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여 통곡하는 울음 

그러니까 지금 무덤 밖에서 마리아가 대성통곡을 하고 있는 겁니다.

 

왜 이 마리아라고 하는 여인이 새벽 미명의 무덤가에서 울고 있을까요?

예수님께서 금요일에 돌아가셨죠. 그날 저녁에 무덤에 장사됩니다.

안식일에는 무덤에 갈 수 없었기 때문에 하루를 더 지나고 동이 트자마자 새벽 미명에 마리아와 여인들이 예수님의 무덤으로 온 겁니다.

왜 왔을까요? 

마지막으로 향유를 주님의 시신에 발라드리려고.

그런데 무덤에 와보니까 무덤 문이 열려 있고 예수님의 시신이 보이지 않아요.

깜짝 놀라서 제자들에게 그 소식을 알리고 함께 무덤을 찾아왔지만 제자들도 탄식만 늘어놓을 뿐 별다른 수가 없어요.

그래서 다 내려갑니다.

그런데 마리아는 무덤 밖에 홀로 서서 대성통곡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정말 아름다운 모습이죠. 

그런데 한번 생각해 보세요.

만약 이날 이 새벽에 예수님의 시신이 무덤 속에 그대로 있었더라면 마리아는 결코 이처럼 울부짖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냥 자기가 계획했던 대로 준비해 간 향품을 예수님 시신에 정성스럽게 발라드인 후에 내 할 도리 다 했다 만족하며 집으로 돌아왔을 겁니다.

만일에 그랬다면 그녀에게는 영원한 소망도, 영원한 생명도 주어지지 못 했을 겁니다.

그래서 신학자 랜스키는 본문을 주석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의 시신이 없어진 까닭에 울었으나 

만약 그날에 예수님의 시신이 무덤 속에 있었더라면 그녀와 우리는 영원히 울게 되었을 것이다.

 

무덤이 그대로 있어 예수님의 죽음으로 끝났다면 기독교도 없는 거죠.

아담 이후 무덤은 인생의 종착지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무덤은 없습니다.

성지에 가보면 빈 무덤을 보게 되는데, 이것이 우리에게 부활의 소망을 줍니다.

 

 

부활의 주님을 만난 이후, 나는 증인의 사명을 어떻게 감당하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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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제 울고 있던 마리아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다시 무덤 안을 들여다봅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아무도 없는 줄 알았는데 누군가 있어요.

두 사람이 보입니다. 

오늘 성경은 흰옷 입은 두 천사 이렇게 얘기하는데, 그냥 마리아의 눈에는 사람으로만 보입니다.

심지어는 예수님이 뒤에 계셨는데 부활하신 예수님이 서 계시는데도 알아보지 못합니다.

마리아는 왜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을까요? 

마리아의 생각 속에 있는 예수님, 죽은 시신입니다.

시신으로 있어야 할 예수님이 살아있다는 것을 상상조차 못했을 겁니다.

 

 

오늘 우리는 어떨까요? 

우리는 진정으로 하나님을 살아계신 하나님으로 믿고 있느냐?라는 겁니다.

우리가 살아계신 하나님이라고 고백하면서도 실제로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으로 믿고 살고 있나? 한번 생각해 봐야 됩니다.

 

여러분

기독교는요. 예수님의 가르침을 보존하고 기억하는 종교가 아닙니다.

예수님이 지금 살아계신다는 것을 믿고 그와 함께 사는 겁니다.

살아계신 그리스도를 역사적 기억 속에서 찾는 것은 그래서 신앙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의 모습은 어떨까요? 

이렇게 울고 있는 마리아에게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이어지는 16절을 보세요. 

16 예수께서 마리아야 하시거늘 마리아가 돌이켜 히브리 말로 랍오니 하니 (이는 선생님이라는 말이라)

 

13절에서 천사들은 여자여 이렇게 불렀어요.

그런데 예수님은 여자여가 아니라 마리아라고 부릅니다.

마리아라고 부르니까 마리아가 즉각적으로 '랍오니'라고 대답합니다.

여러분 이 대목을 주목해 보세요. 

예수께서 여자여라고 부르실 때는 마리아가 알아보지 못해요. 왜 그럴까요? 

여러분 이 세상에서 마리아를 마리아야 이렇게 다정하게 부를 수 있는 분은 단 한 분 예수님뿐이십니다.

이 예수님의 부름에 마리아도 자동적으로 라보니어라고 화답합니다. 17절을 보세요. 

17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붙들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아니하였노라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하시니

 

예수님께서 '나를 붙들지 말라'라고 말씀하셨어요.

왜 그랬을까요? 

여러분 

부활 이전에 예수님 마리아와 늘 함께 계실 수 있지만 부활 후에는 그럴 수 없습니다.

보세요. 

내가 아버지께로 올라간다라는 말씀의 뜻은 이제부터 너희와 함께하는 방법이 달라진다는 의미입니다.

곧 예수님이 만왕의 왕이요 만유의 주가 되셔서 세상 역사를 그 뜻대로 주관해 가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이 사실은요. 

제자들에게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을 줍니다.

끝이 아닙니다. 

이제 시작입니다.  

더 이상 과거에 매이지 말고 미래를 향해 뛰어가는 마리아의 모습을 보십시오. 18절입니다. 

18 막달라 마리아가 가서 제자들에게 내가 주를 보았다 하고 또 주께서 자기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르니라

 

그렇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절망과 좌절에 빠져 있지 말고 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보라는 겁니다.

예수께서 더 이상 무덤 안에 갇혀 있지 않고 하나님과 함께 계시니 너희가 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보며 희망과 용기를 갖고 살라는 겁니다.

무덤이 끝이 아니고 하나님과 함께 계신 예수를 바라보며 살라고 하는 우리 주님의 간곡한 부탁이죠.

부활 신앙은 예수님의 부활 사건을 믿는 데서 더 나아가 부활하신 예수님의 임재 속에 살아가는 겁니다.

매일 매 순간 부활의 주님과 동행하며 살아가는 것.

이것이 진짜 부활 신앙 아닐까요? 

부활이 단지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오늘 우리가 살아가야 할 힘이오 또 미래를 여는 소망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요 매 주일이 부활절이어야 하고 매일이 부활절이어야 합니다.

 

 

내 마음에 평강이 깨졌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사랑의 하나님 
예수님께서 부활을 하셨음에도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했던 제자들의 모습에서 저희의 모습을 봅니다.
여전히 어두울 것 같은 오늘을 시작하며 
예수님께서 친히 마리아를 만나주신 사실을 기억하며 용기를 내게 하옵소서 
주님께서 우리와 동행하시고 
때와 기회를 놓치지 않고 회복의 은혜를 얻음으로 나아가서 
부활을 증거 하는 증인으로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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