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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을 장사 지낸 용기와 사랑(요한복음 19:31~42)(20250310)

2025.03.10. | 생명의 삶 | 임채영 목사

 

예수님을 장사 지낸 용기와 사랑

 

 

 

평안하셨죠?

저는 아현동에 있는 서부 교회를 섬기고 있는 임채영 목사입니다.

고대 로마의 장군이 전쟁에 나가서 승리하고 돌아오면요.

개선 퍼레이드가 있었습니다. 

그때 그 개선 퍼레이드에 장군 곁에 바짝 붙어서 메멘토 모리라고 계속해서 말하는 전담 노예가 있었다고 합니다.

이 메멘토 모리라는 말은 네가 죽는다는 것을 기억해라라는 라틴어입니다.

무슨 의미일까요?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기에 우리도 항상 기억해야 하는 지혜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할 요한복음 19장 31절부터 42절에도 이 지혜가 나옵니다.

 

 

 

 

예수님을 장사 지낸 용기와 사랑

 

 

 

요한복음 19장 31절에서 42절 말씀입니다.

더보기
31 이 날은 준비일이라 유대인들은 그 안식일이 큰 날이므로 그 안식일에 시체들을 십자가에 두지 아니하려 하여 빌라도에게 그들의 다리를 꺾어 시체를 치워 달라 하니
32 군인들이 가서 예수와 함께 못 박힌 첫째 사람과 또 그 다른 사람의 다리를 꺾고
33 예수께 이르러서는 이미 죽으신 것을 보고 다리를 꺾지 아니하고
34 그 중 한 군인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
35 이를 본 자가 증언하였으니 그 증언이 참이라 그가 자기의 말하는 것이 참인 줄 알고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니라

36 이 일이 일어난 것은 그 뼈가 하나도 꺾이지 아니하리라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함이라
37 또 다른 성경에 그들이 그 찌른 자를 보리라 하였느니라
38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예수의 제자이나 유대인이 두려워 그것을 숨기더니 이 일 후에 빌라도에게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기를 구하매 빌라도가 허락하는지라 이에 가서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니라
39 일찍이 예수께 밤에 찾아왔던 니고데모도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 리트라쯤 가지고 온지라
40 이에 예수의 시체를 가져다가 유대인의 장례 법대로 그 향품과 함께 세마포로 쌌더라

41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에 동산이 있고 동산 안에 아직 사람을 장사한 일이 없는 새 무덤이 있는지라
42 이 날은 유대인의 준비일이요 또 무덤이 가까운 고로 예수를 거기 두니라

 

 

오늘 본문의 첫 절이죠. 31절을 보겠습니다.

31 이 날은 준비일이라 유대인들은 그 안식일이 큰 날이므로 그 안식일에 시체들을 십자가에 두지 아니하려 하여 빌라도에게 그들의 다리를 꺾어 시체를 치워 달라 하니

 

여기 나오는 이 큰 날이라는 말은 유월절이 시작되는 날입니다.

7일 동안 무교절 즉 유월절이 이제 진행되게 되죠.

이 유월절 절기가 시작되는 안식일이기 때문에 큰 날이라고 부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다음 날이 바로 이 큰 날 안식일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특별히 유월절이 시작되는 절기이기 때문에 큰 날이라고 합니다.

 

이 날에 유대인들은 거룩한 날이었기 때문에 부정한 죄수들의 시체들이 나무에 달려 있는 것을 금기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유대의 종교 지도자들은 빌라도를 찾아가서 십자가에 달린 죄수들의 다리뼈를 꺾어서 그들이 쉽게 죽게 함으로 안식일이 시작되기 전에 시체를 처리할 수 있게 해 줄 것을 요청합니다.

이어지는 32절부터 33절을 보십시오.

32 군인들이 가서 예수와 함께 못 박힌 첫째 사람과 또 그 다른 사람의 다리를 꺾고
33 예수께 이르러서는 이미 죽으신 것을 보고 다리를 꺾지 아니하고

 

예수님 곁에서 십자가에 달려 죽은 두 죄수의 다리뼈를 꺾은 로마 병사들이 이제 예수님의 뼈를 꺾기 위해서 예수님에게 다가갑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까 이미 예수님은 돌아가셨음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다리뼈는 꺾지 않았습니다. 

 

여기에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 예수님의 뼈가 꺾이지 않았다는 사실은 굉장히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출애굽기 12장 46절을 보세요. 

출애굽기 12:46
한 집에서 먹되 그 고기를 조금도 집 밖으로 내지 말고 뼈도 꺾지 말지며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유월절 규례를 주시면서 어린양을 잡되 그 양의 뼈를 꺾지 말라고 하셨어요.

그러기에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뼈가 꺾이지 않으셨다라는 것은 진실로 그 예수가 그의 백성들을 죄와 사망으로부터 건지기 위해 죽으신 유월절 어린양 이심을 나타내고 있는 겁니다. 36절을 보세요. 

36 이 일이 일어난 것은 그 뼈가 하나도 꺾이지 아니하리라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함이라

 

마지막 순간까지 예수님의 관심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거였어요.

 

 

오늘 우리의 관심은 어디에 있을까요?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우리가 주기도문은 곧 잘 외우지만,

진정으로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묻기보다는 내 뜻과 계획이 이루어지기를 원하고, 그렇지 못할 때 우리는 쉽게 낙심합니다. 이 땅을 향한 하나님의 뜻에는 별로 관심이 없고, 나와 내 가족의 번영과 평화만을 위해서 기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오늘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게 됩니다.

 

 

나를 위한 예수님의 희생을 생각할 때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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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절부터는 예수님의 장례가 이루어지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여기에 두 사람이 등장해요. 첫 번째 인물이 아리마데 사람 요셉입니다. 38절이에요. 

38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예수의 제자이나 유대인이 두려워 그것을 숨기더니 이 일 후에 빌라도에게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기를 구하매 빌라도가 허락하는지라 이에 가서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니라

 

복음서에 나타난 그의 모습을 보면 그는 상당히 거부였고, 그리고 산헤드린 공회원이었습니다.

고위 관직의 부자인 그는 주님의 제자였지만 유대인들에게 이 사실을 숨깁니다.

왜냐하면 예수의 제자라고 하면 유대 사회에서 축출될 우려가 있었기 때문에 자신을 철저하게 숨기고 있었는데, 그가 예수님의 죽음 앞에서 돌변합니다.

그는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의 시체 가져가기를 구하고 예수의 시체를 장사 지내겠다고 하며 예수님의 시신을 가져갑니다.

그리고 자기를 위해 예루살렘 근처에 마련했던 동굴의 새 무덤에 예수님을 장사합니다.

 

 

두 번째 인물이 나오는데요. 니고데모입니다.

니고데모는 바리새인이요, 유대인의 관원이오, 산헤드린 공회원이오 유대인의 선생이었죠. 39절을 보세요. 

39 일찍이 예수께 밤에 찾아왔던 니고데모도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 리트라쯤 가지고 온지라

 

니고데모는 일찍이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서 밤에 몰래 예수님을 찾아와서 거듭남에 대해 질문했습니다.

그랬던 그가 이제는 예수님을 장사하기 위해 물약과 침량 섞은 것을 100리트라를 가지고 나옵니다.

그 자신이 예수의 제자임을 밝힌 거죠.

 

여러분 보세요.

3년간 동고동락했던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은 예수님의 죽음 앞에서 그 두려움 때문에 모두 흩어졌어요.

다시 말하면 그들은 예수님의 육체가 존재하는 현실에만 관심이 있었던 겁니다.

그런데 반면에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알려질까 두려워했던 이 두 사람 아리마데 사람 요셉과 니고데모는 예수님의 죽음 앞에서 오히려 담대해집니다.

왜 그랬을까요?

아마도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 예수님의 말씀이 성취되어지는 것을 보았고, 

그리고 바로 그것이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는 자리라는 것을 깨달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바로 깨닫고, 그리고 그렇게 깨닫는 사람만이 주님 안에서 담대해질 수 있죠.

죽음의 종착역은 무덤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라는 믿음 때문입니다.

 

그리고 41절입니다. 

41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에 동산이 있고 동산 안에 아직 사람을 장사한 일이 없는 새 무덤이 있는지라

 

아리마데 사람 요셉은 자신의 권력과 재물을 가지고요.

무덤을 준비하는 삶을 지금까지 살아왔죠. 

그런데 그가 예수님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통해 구원과 영생의 비밀을 알게 되죠.

영원한 생명을 알게 된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신 후에 그는 기꺼이 자신의 새 무덤을, 자신이 준비했던 그 무덤을 예수님께 드립니다.

이 대목이 중요합니다.

주님께 드리는 그 순간, 그 무덤은 더 이상 죽음의 장소가 아니라 예수님이 부활하신 생명의 자리, 기적의 자리로 바뀌게 됩니다.

이 무덤은 시체가 썩는 무덤, 사람들이 가까이하기 꺼리는 곳이 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부활하심으로 빈 무덤이 되었고, 수많은 순례자들이 찾아오는 유명한 곳이 되었죠.

이것이 바로 오늘 우리가 살아야 할 삶의 모습입니다.

무덤이 아니라 영원한 부활을 위하여 살아가는 우리 모두들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내 앞날에 손해가 되더라도 믿음에 용기를 더할 일은 무엇인가요?

 

 

사랑의 하나님 
하늘 영광의 보좌를 떠나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무덤에 장사되는 자리까지 내려가심으로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모든 것이 끝난 것 같은 절망의 자리에서부터,
다시 시작되는 부활과 승천과 하늘 영광의 입성을 소망 중에 바라보며
저희도 요셉과 니고데모처럼 쓰임 받을 수 있는 주님의 좋은 제자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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