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3.03. | 생명의 삶 | 조호영 목사
안녕하세요.
온누리 교회 조영 목사입니다.
인생에서 가장 솔직해지는 때는 언제일까요?
내 마음속에 있는 것들을 거짓 없이 진심을 담아 말할 때는 언제일까?
바로 죽음을 앞두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유언을 남길 때가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듭니다.
여러분 그날이 오면 사랑하는 배우자나 자녀들, 가족들에게 꼭 남겨주고 싶은 말들이나 당부하고 싶은 부탁들이 있나요?
예수님은 있었습니다. 죽음을 앞두고 하나님 아버지께 유언처럼 당부하며 부탁합니다.
세상에 남겨질 사랑하는 제자들을 위해서 그리고 앞으로 예수님을 믿게 될 하나님 나라의 자녀들, 저와 여러분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십니다.
오늘 말씀은 요한복음 17장 20절에서 26절까지 말씀입니다.
사랑으로 하나 되어 온전하게 하소서
요한복음 17장 20절에서 26절 말씀입니다.
20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그들의 말로 말미암아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 21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22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23 곧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그들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24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그들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 25 의로우신 아버지여 세상이 아버지를 알지 못하여도 나는 아버지를 알았사옵고 그들도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 알았사옵나이다 26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그들에게 알게 하였고 또 알게 하리니 이는 나를 사랑하신 사랑이 그들 안에 있고 나도 그들 안에 있게 하려 함이니이다 |
어제 말씀 속에서 예수님은 자신이 떠난 후 남겨질 제자들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제자들을 보호하시고 악에서 지키소서(요한복음 17:9~19)(20250302)]
아버지와 아들이 하나 되듯이 그들도 예수님과 하나 되기를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제자들도 모두 성령 안에서 하나 되길 간구하시며 세상에 속한 사람이 아니라 세상에 보냄 받은 자로 거룩한 삶을 살아가기를 중보 하셨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제자들을 통해 앞으로 예수님을 믿게 될 사람들, 더 나아가 후대의 하나님 나라의 자녀들을 위해서도 기도를 이어가십니다. 20에서 21절입니다.
20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그들의 말로 말미암아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
21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정말 놀라운 것은 예수님은 제자들을 넘어서 그들을 통해 예수님을 믿게 되는 모든 영혼들, 더 나아가 후대의 그리스도인들 모두를 위해서 중보 하십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7장의 기도를 예수님의 대제사장적인 기도문이다 이렇게 말하지 않나 싶습니다.
20절에 보면 '그들의 말로 말미암아 나를 믿는 사람들'이라는 문구가 나옵니다.
지금 그들은 바로 제자들을 의미합니다.
며칠 후 예수님이 잡혀 가실 때 세 번이나 예수님을 부인할 제자 베드로
또 십자가에 못 받길 때 다 두려워 도망가 각자 옛 일터로 돌아가 버린 그런 제자들
눈으로 보고 만져봐야 믿겠다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의심할 제자 도마
제가 봐도 별로 쓸 만한 제자가 없는 것 같은데, 예수님은 이들을 통해서 전 세계로 복음이 흘러갈 것을 암시하는 말씀이 정말로 놀랍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사도행전을 통해서 그들의 말을 통해 전도되는 수많은 영혼들을 만납니다.
또 성령 안에서 믿음의 공동체를 이루며 교회가 탄생하고 열방으로 흩어지는 것도 보았습니다.
우리도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다가 자꾸 실망하고 낙심할 때가 있습니다.
전혀 변할 것 같지 않은 자녀들의 모습을 보고 절망하며 기도를 멈출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예수님처럼 아직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그들 안에 계신 하나님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며 인내로 그들을 위해 멈추지 않고 증보하는 우리가 되기를 간구합니다.
또 21절에 보면 예수님 안에 거하는 믿음의 자녀들이 성령 안에서 그들도 하나가 되어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그들이 믿게 하소서라고 간하십니다.
21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이 말씀을 보면서 생각난 것은 바로 요한복음의 핵심 메시지 요한복음 3장 16절입니다.
요한복음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라는 그 말씀
하나님께서는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독생자 예수를 속죄 재물로 이 세상에 보내셨고 십자가에서 죽게 하심으로 그것을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예수의 이름을 믿는 자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시는 것도 하나님의 뜻입니다.
또 예수를 통하지 않고는 아무도 아버지께,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는 것도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오직 구원으로 인도하는 문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 외에는 다른 길은 없다 하는 것을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높은 보좌 버리고 이 땅으로 보냄 받은 그 보냄 받으신 예수님처럼 우리도 잃어버린 영혼들에게 구원의 좋은 소식을 전하기 위해 이 세상으로 보냄 받은 자임을 다시 한번 깨닫는 시간이 되기를 간구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렇게 살아가도록 지금 우리를 위해 중보 하시는 대제사장 예수님이 우리 안에 계시고, 또 우리는 그분 안에 있음을 믿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을 위하여 계속되는 예수님의 중보 기도는 제자들을 향한 기도와 다르지 않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하나가 되어서 창세 전부터 하나님 아버지가 주신 그 영광을 그들도 다 함께 누리기를 바라십니다.
24절 보겠습니다.
24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그들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
예수님은 제자들도 그리고 후세대의 그리스도인들도 다 예수님의 영광을 경험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십니다.
이 영광은 우리가 그리스도와 하나 될 때 경험할 수 있는 영광입니다. 보기만 할 뿐 아니라 그 영광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훗날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믿고 세상에 보냄 받은 자로 변화되었지요.
동일한 성령 안에서 그는 에베소 성도들을 위해서 이렇게 기도합니다. 에베소 1장 17절에서 19절입니다.
에베소서 1:17~19
1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18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19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그의 기도문을 보면서 요한복음 17장 이 예수님의 중보 기도와 참 닮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사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직접 만난 적도 없는 사람입니다.
아니 오히려 예수 믿는 자들을 핍박했던 사람이죠.
그러던 그가 빚 가운데 임한 예수님을 만난 후에 세상에 예수님을 전하는 자로 변화되었습니다.
이런 중보 기도는 자신의 힘이나 노력이 아니라 오직 성령 안에서 예수님과 하나 됨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그 구원의 영광에 참여한 자만이 할 수 있는 기도입니다.
그는 정말 요한복음 17장에 나오는 예수님의 기도를 구체적으로 성도들에게 적용하며 에베소 성도들을 위해 중부하고 있습니다.
저는 종종 이 바울의 기도에 저의 이름이나 자녀들의 이름을 넣고 기도하고는 합니다. 예를 들어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우리 자녀들에게 혹은 나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우리 자녀들의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 자녀들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우리 자녀들이 알기를 강구합니다."
말씀을 붙잡고 기도하는 중복이도 힘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아버지의 이름을 알리셨고 또 계속 알게 하십니다.
아버지께서는 아들을 사랑하시는 그 사랑이 우리 안에 있고 주님도 우리 안에 거하십니다.
26절입니다.
26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그들에게 알게 하였고 또 알게 하리니 이는 나를 사랑하신 사랑이 그들 안에 있고 나도 그들 안에 있게 하려 함이니이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믿은 후 그 십자가의 사랑을 경험하였고 그 사랑 안에 뿌리를 박고 그 놀라운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함이 무엇인지를 경험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세상에서는 절대로 이해할 수도 없고 알 수도 없는 지식을 초월하는 사랑입니다.
다만 성경은 세상 사람들은 우리가 서로 사랑함으로 하나님의 자녀임을 알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점점 깨닫는 것은 내 안에 사랑이 없다는 것입니다.
내가 노력한다고 사랑이 생기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습니다.
그 사랑은 오직 내가 주 안에, 주님이 내 안에 계실 때만 가능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주님이 바로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근원이시기 때문입니다.
나의 힘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나를 채울 때, 그 주님의 사랑으로 우리는 이웃도 사랑할 수 있습니다.
나를 사랑하시는 주님의 놀라운 사랑만이 나 자신도 다시 사랑하게 만들고 또 그 사랑으로 나의 이웃도, 우리 가족들도, 남편도 사랑하게 하십니다.
우리 모두 그 사랑 안에서만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오늘도 참 사랑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우리가 되길 바랍니다.
사랑이신 우리 하나님이 제 안에 계심을 믿습니다.
주님의 사랑으로 나를 사랑하고 내 이웃을 사랑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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