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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안에서 누리는 참평안과 승리(요한복음 16:25~33)(20250228)

2025.02.28. | 생명의 삶 | 정재욱 목사

 

주님 안에서 누리는 참평안과 승리

 

 

하나님의 은혜와 말씀으로 살아가는 이 하루가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저는 부천 온누리 교회를 섬기고 있는 정재욱 목사입니다.

이해(理解)라는 단어는 다스릴 이자에 풀 회 자를 써서 사리를 분별하거나 깨닫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때때로 우리는 확실하게 우리의 의사를 전달했음에도 불구하고 소통에 실패하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왜일까요? 

그 이유를 한 소통 전문가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자기 중심성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말하는 자나 듣는 자나 모두가 자기 중심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소통과 이해에 실패한다는 것이죠.

영어로 이해하다는 under·stand(언더스탠드)입니다. 

이 단어는 under라는 단어와 stand라는 두 단어의 합성어입니다.

 

즉 이혜란 예수님이 뽕나무에 올라가 있던 사게오 아래에 서셨던 것처럼

상대방보다 낮은 스탠스에 서서 바라볼 때 진정한 이혜가 나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더 낮은 마음으로 바라보고 묵상하며 온전히 이해할 수 있게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요한복음 16장 25에서 33절입니다.

 

 

 

 

주님 안에서 누리는 참평안과 승리

 

 

요한복음 16장 25절에서 33절 말씀입니다.

더보기
25 이것을 비유로 너희에게 일렀거니와 때가 이르면 다시는 비유로 너희에게 이르지 않고 아버지에 대한 것을 밝히 이르리라

26 그 날에 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할 것이요 내가 너희를 위하여 아버지께 구하겠다 하는 말이 아니니
27 이는 너희가 나를 사랑하고 또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온 줄 믿었으므로 아버지께서 친히 너희를 사랑하심이라
28 내가 아버지에게서 나와 세상에 왔고 다시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가노라 하시니
29 제자들이 말하되 지금은 밝히 말씀하시고 아무 비유로도 하지 아니하시니
30 우리가 지금에야 주께서 모든 것을 아시고 또 사람의 물음을 기다리시지 않는 줄 아나이다 이로써 하나님께로부터 나오심을 우리가 믿사옵나이다

31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제는 너희가 믿느냐
32 보라 너희가 다 각각 제 곳으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둘 때가 오나니 벌써 왔도다 그러나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
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요한복음 16장에서 예수님은 계속해서 자신의 떠남 후에 혼란스러울 제자들을 걱정하고 계시며,

이후에 있을 고난과 핍박에 대해서도 그들에게 알려주셨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보해사 성령님을 보내주시겠다고 약속도 해 주셨습니다.

문제는 제자들이 이러한 예수님의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죠.

 

그래서 오늘 본문 25절을 보면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비유가 아니라 직접적으로 말씀하시겠다고 하셨고, 

29절, 30절에 나타나는 제자들의 반응을 보면 제자들이 이제는 예수님의 말씀을 다 이해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다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먼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인간으로서는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며, 

또한 지금 제자들은 여전히 예수님께서 높임 받으실 것을 생각하며 서로 높아지기를 원하며 싸우고 있기 때문이죠.

 

예수님도 이러한 제자들의 영적인 상태를 다 아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제자들이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계속해서 설명해 주셨고, 끝까지 기다려 주셨습니다.

바로 그들을 온전히 사랑하셨기 때문이죠.

 

 

동일합니다.

우리가 믿음을 가지고 설 수 있는 것도, 우리가 똑똑하고 명석하기 때문에 더 잘 이해하고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 결코 아니죠.

예수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해 주셨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에베소서 3장 18절부터 19절을 보면 사도바울은 그리스도의 사랑의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한지를 깨달을 수 있기를 권면합니다.

에베소서 3:18 ~ 19
18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19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이것은 예수님의 그 놀라운 사랑을 알아야 그분의 가르침과 말씀을 우리가 더 온전히 이해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죠.

우리를 먼저 사랑하시고 그 사랑으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그 사랑을 더 온전히 알아서 그 가르침대로 더 온전히 살아가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예수님에 대한 내 믿음의 고백이 불완전하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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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의 사랑이 더욱 더 진하게 느껴집니다.
32절을 보면 예수님은 수난의 때에 제자들이 자신만 두고 다 흩어질 것을 아셨습니다.

32 보라 너희가 다 각각 제 곳으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둘 때가 오나니 벌써 왔도다 그러나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33절에서 제자들을 위해서 말씀하십니다.

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예수님은 환란 중에도 감대할 것을 권면하십니다.

그러나 이러한 예수님의 권면은 억지나 강요가 아니지요.

이 모든 것이 가능할 수 있도록 예수님께서 먼저 십자가를 감당하셨고 모든 죽음과 사망의 권세를 깨셨기 때문입니다.

그러하기에 우리가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바로 이러한 평강과 승리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가능하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이 어두운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우리 안에 두려움과 염려가 찾아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왜일까요? 그것은 어린 아이가 엄마의 품 안에서는 평안을 누리지만 엄마의 품을 벗어나
엄마가 보이지 않을 때는 두려움 속에 울음을 터뜨리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에게 주님이 원하시는 바로 주님을 느끼고 주님과 함께 걸어가는 것이죠.

오늘 이곳에 계신 성령님이라는 찬양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주님보다 앞서지 않고 겸손하게 주님의 말씀 기다리니 주님 손에 우리를 드립니다.

사랑으로 인도하소서. 사랑으로 인도하소서."

우리의 중심성을 내려놓고 따뜻한 주님의 품 안에서 놀라운 그 사랑을 더 깊이 알아가게 되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세상의 염려, 두려움을 이겨내고 평강과 승리로 나아가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곧 흩어질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하신 사랑의 권면은 무엇인가요?

 

 

 

사랑의 주님 
당신을 더 알기를 원합니다. 
당신을 왜곡하고 오해하는 우리의 연약함을 사하여 주시고, 당신의 사랑을 더 깊이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의 마음의 보자를 당신께 올려드립니다. 
임하셔서 우리의 마음에 참된 주인이 되어 주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힘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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