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3.05. | 생명의 삶 | 조호영 목사
안녕하세요.
온누리 교회를 섬기는 목사입니다.
우리는 늘 우리 가정의 평안과 안위를 위해서 기도합니다.
나의 자녀들이 이 험난한 세상에서 큰 고난이나 어려움 없이 살아가기를 바라면서 말이죠.
저도 그런 마음이 있습니다.
그 마음이 나쁘다는 말은 아닙니다.
다만 제가 지나온 시간들을 뒤돌아보면
나의 믿음의 성장, 신앙의 변화가 일어날 때는 그런 때가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어느 날 나의 삶에 예상치 못한 거친 비바람과 또 폭풍우
거절할 수 없던 세상의 유혹과 시험 속에서 어김없이 무너지는 나를 보면서
내가 정말 믿음이 없구나라는 것을 깨닫게 되고 절망하게 됩니다.
그때야 주님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닌 죄인임을 고백하며 눈물로 회개하고 나아갑니다.
그리고 그런 절망 중에서도, 주의 이름을 부를 때에 믿음 없는 나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다시 일으켜 세우시는 우리 하나님의 사랑을 새롭게 경험하면서 조금씩 조금씩 믿음이 성장하게 됩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말고'의 귀를 자르며 "죽기까지 예수님을 쫓을 것이다" 그렇게 확신했던 베드로 오늘은 재판받으시는 예수님을 아주 멀찍이 서서 바라보면서 두려움으로 세 번이나 줄을 모른다고 부인합니다.
마침내 자신의 믿음의 실체를 오늘 보게 되는 것이죠.
오늘 말씀은 요한복음 18장 15절에서 27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의인의 당당함, 배신자의 후회
요한복음 18장 15절에서 27절 말씀입니다.
15 시몬 베드로와 또 다른 제자 한 사람이 예수를 따르니 이 제자는 대제사장과 아는 사람이라 예수와 함께 대제사장의 집 뜰에 들어가고 16 베드로는 문 밖에 서 있는지라 대제사장을 아는 그 다른 제자가 나가서 문 지키는 여자에게 말하여 베드로를 데리고 들어오니 17 문 지키는 여종이 베드로에게 말하되 너도 이 사람의 제자 중 하나가 아니냐 하니 그가 말하되 나는 아니라 하고 18 그 때가 추운 고로 종과 아랫사람들이 불을 피우고 서서 쬐니 베드로도 함께 서서 쬐더라 19 대제사장이 예수에게 그의 제자들과 그의 교훈에 대하여 물으니 20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드러내 놓고 세상에 말하였노라 모든 유대인들이 모이는 회당과 성전에서 항상 가르쳤고 은밀하게는 아무 것도 말하지 아니하였거늘 21 어찌하여 내게 묻느냐 내가 무슨 말을 하였는지 들은 자들에게 물어 보라 그들이 내가 하던 말을 아느니라 22 이 말씀을 하시매 곁에 섰던 아랫사람 하나가 손으로 예수를 쳐 이르되 네가 대제사장에게 이같이 대답하느냐 하니 23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말을 잘못하였으면 그 잘못한 것을 증언하라 바른 말을 하였으면 네가 어찌하여 나를 치느냐 하시더라 24 안나스가 예수를 결박한 그대로 대제사장 가야바에게 보내니라 25 시몬 베드로가 서서 불을 쬐더니 사람들이 묻되 너도 그 제자 중 하나가 아니냐 베드로가 부인하여 이르되 나는 아니라 하니 26 대제사장의 종 하나는 베드로에게 귀를 잘린 사람의 친척이라 이르되 네가 그 사람과 함께 동산에 있는 것을 내가 보지 아니하였느냐 27 이에 베드로가 또 부인하니 곧 닭이 울더라 |
오늘 말씀 속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은 베드로입니다.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 다른 사람은 몰라도 자신만큼은 어떤 상황에서도 예수님과 죽기까지 함께하겠다 호언 장담했던 인물입니다. 분명 그때 베드로의 마음은 나름 진심이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러나 지금 대제사장 집 뜨레까지는 예수님을 따라왔건만 어찌 된 일인지 멀찌감치 떨어져서 예수님을 바라만 보고 있는 베드로를 만나게 됩니다. 15절에서 17절입니다.
15 시몬 베드로와 또 다른 제자 한 사람이 예수를 따르니 이 제자는 대제사장과 아는 사람이라 예수와 함께 대제사장의 집 뜰에 들어가고
16 베드로는 문 밖에 서 있는지라 대제사장을 아는 그 다른 제자가 나가서 문 지키는 여자에게 말하여 베드로를 데리고 들어오니
17 문 지키는 여종이 베드로에게 말하되 너도 이 사람의 제자 중 하나가 아니냐 하니 그가 말하되 나는 아니라 하고
여기 15절에서 언급하고 있는 또 다른 제자 한 사람은 많은 학자들은 요한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대 제사장과 안면이 있어서 먼저 그 집 뜰 안으로 들어갔고 밖에 나와 있는 베드로를 다시 나와 하녀에게 부탁해서 그를 안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합니다. 그 하녀는 베드로를 안으로 들이면서 이렇게 묻습니다.
너도 이 사람의 제자 중에 하나가 아니냐?
여기서 너도? 라고 묻는 것은 먼저 뜰에 들어갔던 요한은 자신은 예수님의 제자라 이미 밝힌 것 같습니다.
그래서 여종은 베드로를 뜰로 데리고 들어오면서도 아무 생각 없이 너도 예수의 제자인가?라고 물어본 것뿐이지 어떤 협박이나 고발을 하기 위한 그런 심각한 질문도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두려움에 떨고 있던 베드로는 정색을 하면서 말합니다.
"나는 아니요."
첫 번째 예수님을 부인하는 장면입니다.
주를 위해 죽기까지 따르겠다고 외쳤던 베드로, 또 게세만의 동산에서 예수님을 지키겠다고 대제사장의 종 '말고'의 귀를 칼로 배웠던 베드로가 아닙니까?
그런데 오늘 이렇게 별 의미 없는 작은 여종의 질문에도 정색을 하면서 "나는 예수의 제자가 아니다" 라고 부인하는 모습 속에서 나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우리도 베드로처럼 나 자신의 믿음을 착각할 때가 참 많습니다.
그래도 열심히 예배하고, 성경도 보고 또 공부도 하면서 나름 믿음이 괜찮은 줄 알았는데,
이렇게 작은 질문, 작은 유혹, 작은 사건 앞에서도 와르르 그 믿음이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베드로와 닮은 모습이 내 안에 있음을 고백합니다.
그럼 다른 10명의 제자들은 어떻습니까? 사실 그들은 제사장 뜰까지도 따라오지 않았습니다.
일찍이 동산에서 예수님을 버리고 다 도망가 버렸습니다.
그거에 비하면 비록 예수님을 부인했지만 적어도 베드로는 요한과 함께 예수님을 따라 이곳까지 왔다는 것은 조금 칭찬해 줄 만한 부분은 아닌가 라는 묵상도 해 봅니다.
베드로와 제자들 그리고 우리들은 종종 착각합니다.
나 자신의 노력과 힘으로, 경험과 애씀으로 믿음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믿음, 그 믿음의 세계는 영적 싸움의 현장입니다.
오직 성령 안에서만 나의 옛 자아, 악한 본성, 죄와 그 뒤에서 나를 조정하는 악한 영 사단과 맞서 싸워 이길 수가 있습니다.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영적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 우리는 매일 삶의 현장에서 성령의 도우심을 강구하여야 합니다.
한편 잡혀오신 예수님은 대제사장 안나스에게 심문을 받고 계십니다. 19절에서 21절입니다.
19 대제사장이 예수에게 그의 제자들과 그의 교훈에 대하여 물으니
20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드러내 놓고 세상에 말하였노라 모든 유대인들이 모이는 회당과 성전에서 항상 가르쳤고 은밀하게는 아무것도 말하지 아니하였거늘
21 어찌하여 내게 묻느냐 내가 무슨 말을 하였는지 들은 자들에게 물어 보라 그들이 내가 하던 말을 아느니라
대제사장이 예수님께 그의 교훈과 제자들에 대해 물었을 때에 예수님은 대답하기를 거부하셨습니다.
이 교훈을 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물어보라 대답하십니다.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안나스가 주님의 가르침에 관심이 있어서 물어본 것이 아님을 알고 계십니다.
어떻게든 꼬투리를 잡아 그를 이단으로 규정하고 죽일 구실을 찾는 불의한 재판임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알고 계십니다.
이 재판을 통해 자신은 십자가에서 사형당할 것을 아십니다.
그러나 베드로와 달리 예수님이 두려워하지 않고 당당할 수 있는 이유는 십자가의 죽음이 죄인들을 구원할 수 있는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그 죽음 이후에는 부활의 승리가 있음을 믿기 때문입니다.
곧 성령 하나님이 오셔서 제자들을 십자가 부활의 증인으로 변화시킬 것을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미 그 끝을 알고 있는 사람은 당당합니다.
두려움이 없습니다.
옆에 서 있던 경비병 하나가 예수님의 태도가 못마땅한 것인지, 혹은 안나스에게 충성하고자 하는 것인지 손으로 예수님의 얼굴을 때리며 "왜 그런 식으로 대답하느냐?" 라고 말합니다. 22절에서 24절입니다.
22 이 말씀을 하시매 곁에 섰던 아랫사람 하나가 손으로 예수를 쳐 이르되 네가 대제사장에게 이같이 대답하느냐 하니
23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말을 잘못하였으면 그 잘못한 것을 증언하라 바른말을 하였으면 네가 어찌하여 나를 치느냐 하시더라
24 안나스가 예수를 결박한 그대로 대제사장 가야바에게 보내니라
저는 이 모습을 상상하면서 마음이 너무 아팠습니다.
아무런 잘못도 없이 아랫사람에게 뺨을 맞으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너무 안타깝고 또 속상했습니다.
아마 멀리서 이런 광경을 지켜보던 베드로도 요한도 마음이 찢어지며 동시에 큰 공포감도 느끼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예수님은 아실 것입니다.
앞으로 당할 수취와 모욕은 이것과 비교도 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그런 중에도 예수님은 경비병에게 되물으십니다.
"내가 잘못 말했다는 것을 증명하라 아니면 어떤 폭력도 부당하다" 말씀하십니다.
아무것도 신문을 통해 얻지 못한 '안나스'는 그를 결박한 상태로 자신의 사위이자 제사장인 '가야바'에게로 보냅니다.
모든 상황이 점점 꼬이고 악화가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잊지 마십시오.
모든 것을 이끌어가는 분은 안나스도 가야바도 빌라도도 아닌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그리고 지금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며 한 발 한 발 골고다 언덕을 향하여 나아가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 골고다 언덕 위에 세워진 십자가 위에서 우리의 죄가 사해질 것입니다.
한편 베드로는 뜰 안에서 아직도 서서 불을 쬐고 있습니다. 함께 불을 쬐던 사람들이 묻습니다. 25절, 27절입니다.
25 시몬 베드로가 서서 불을 쬐더니 사람들이 묻되 너도 그 제자 중 하나가 아니냐 베드로가 부인하여 이르되 나는 아니라 하니
26 대제사장의 종 하나는 베드로에게 귀를 잘린 사람의 친척이라 이르되 네가 그 사람과 함께 동산에 있는 것을 내가 보지 아니하였느냐
27 이에 베드로가 또 부인하니 곧 닭이 울더라
두 번째는 여러 사람들이 물어보죠.
"너도 그 제자 중에 하나가 아니냐?"
한번 부인은 어렵지 두 번째는 망설임 없이 나는 아니다 그렇게 부인하는 베드로입니다.
이젠 더 이상 묻지 않겠지 라고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곧 다시 세 번째 질문이 들어옵니다.
이번에는 공교롭게도 베드로가 게세만의 동산에서 귀를 잘랐던 그 대제사장의 종 '말고'의 친척입니다.
내가 동산에서 너를 보지 않았는가? 라고 물으면서 베드로를 궁지로 몰아붙입니다.
내가 증인이다라고 밝히면서 묻지만 베드로는 끝까지 '나는 아니다'라고 잡아 댑니다.
그리고 그때 멀리서 닭이 옵니다.
정말 이것을 영화로 찍는다면 가장 슬픈 음악이 흘러나와야만 하는 그런 장면입니다.
닭울음소리를 들은 베드로의 마음과 그 일그러진 얼굴 표정은 어떠했을까?
누가복음은 이 장면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누가복음 22장에 보면 주께서 돌이켜 베드로를 보시니 베드로가 주의 말씀 곧 '오늘 닭울기 전에 내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
그 닭 울음은 베드로만 들은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도 들으셔서 뒤를 돌아보십니다.
어쩌면 그때 서로의 눈이 마주쳤을지도 모르지요.
다른 사람은 몰라도 자신은 목숨을 바쳐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그렇게 호언 장담했던 그때 예수님께서 하셨던 다 울기 전에 내가 나를 세 번 부인하리라 그 말씀을 기억하며 밖으로 뛰어나가 심히 통곡합니다.
어떤 마음으로 울었을까?
자신이 예수님을 배반했다는 죄책감, 사람들의 눈을 두려워했던 자신의 연약함에 슬퍼하며 통곡했을 것입니다.
또한 자신의 믿음의 실체가 현주소가 정말 이것밖에 안 되는구나 그것을 발견하고 부끄러움에 또 울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족한 자신에게 닭울음의 경고를 가르쳐 주시며 다시 믿음으로 설 수 있도록 기다려주시는 그 주님의 사랑과 인내에 감격하며 울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얼마나 많은 순간순간 예수님을 부인하는지 모릅니다.
그때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다시 돌아오라고 말씀으로, 기도로, 예배로, 또 다양한 상황 속에서 닭구름 소리를 들려주십니다.
그때마다 베드로처럼 우리도 눈물로 우리 죄를 시인하고 회계하며 다시 주님께 돌이키는 은혜가 저와 여러분에게 있기를 강구합니다.
하나님
제 안에도 이 베드로의 연약함이 있음을 고백합니다.
주님께서 나의 상황 속에 들려주시는 다양한 닭 울음소리를 들으며 죽게 돌이키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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