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2.30. | 생명의 삶 | 문영재 목사
안녕하세요.
홍콩 온누리 교회를 섬기는 문영재 목사입니다.
고난이 힘든 이유는 그 끝을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때로 고통 속에 사람을 의지합니다.
사람을 의지하면 잠시 견딜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공허함을 느끼게 됩니다.
오직 예수님과 함께 할 때 어떤 고난도 이길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고통의 의미를 깨닫게 하시고 또 고통을 이겨낼 지혜를 주시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나와 함께 계시며 나의 손을 붙잡고 계신 예수님께서 새 힘을 주십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허락하신 새 예루살렘을 바라보며 새로운 꿈과 소망을 향해 나아가는 저와 여러분의 삶이길 소망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신 말씀, 요한계시록 22장 1절에서 5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옛 에덴을 넘어서는 완전한 새 에덴
요한계시록 22장 1절에서 5절 말씀입니다.
1 또 그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2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 3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에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4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그들의 이마에 있으리라 5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 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그들에게 비치심이라 그들이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다 |
새 예루살렘 성에서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흘러나오는 생수의 강을 봅니다.
그 장면이 요한계시록 22장 1절 말씀입니다.
1 또 그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새 예루살렘에 대한 모습에서 이 에덴 동산이 생각이 납니다.
창세기 2장 10절은 말씀하십니다.
창세기 2:10
10 강이 에덴에서 흘러 나와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으니
'거기서부터 갈라져 내 근원이 되었으니'
인간이 에덴 동산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며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집니다.
이 사건으로 인간은 끊임없는 결핍의 문제를 안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새 예루살렘 성에는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나오는 생수의 강물이 흐릅니다.
할렐루야
새 예루살렘에 거하는 하나님의 백성에게 하나님과 어린양 예수님께서 이 공급하시는 생명수를 누리게 하십니다.
요한계시록 22장 2절 말씀입니다.
2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
새 예루살렘에는 생명나무가 있습니다.
에덴 동산에 생명나무가 있었듯이 새 예루살렘에도 생명나무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에덴 동산에서 말씀하십니다.
"생명나무를 먹지 말라."
그러나 아담과 하와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음으로 쫓겨나게 됩니다.
새 예루살렘에 거하는 종들은 이와 같은 걱정을 하지 않습니다.
새 예루살렘은 죄와 악의 모든 세력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이 죄를 지을 가능성조차 없는 완벽한 성입니다.
생명나무는 달마다 12가지 열매를 맺습니다.
이것은 새 예루살렘의 풍성한 삶을 나타냅니다.
생명나무의 잎사귀는 불완전하고 또 부족한 것들을 온전하게 소생시키시고 만국을 치유하십니다.
새 예루살렘은 아무런 부족함 없는 풍성한 상태를 경험하게 하십니다.
새 예루살렘은 사망이 없습니다. 아픔이 없습니다. 사망과 아픔이 사라진 곳입니다.
이 당시 1세기 성도들은 로마의 식민 통치 아래 상상 못 할 핍박을 받았습니다.
로마의 황제는 자신을 숭배하게 합니다. 이를 행하지 않는 성도는 잔인하게 괴롭혔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신앙을 지키다 잡히면 이 원형 경기장에 맹수의 밥이 되었고, 또 감옥에 가두어 죽임을 당했습니다.
사도들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요한계시록을 기록한 사도 요한도 이 복음을 전하다 반모섬으로 유배를 갑니다.
함께 사역한 사도들은 순교하였고, 요한은 홀로 유배지에 남겨졌습니다.
요한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절망하며 고통의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는 그 순간, 하나님은 사도 요한에게 새 예루살렘을 보이시며 하늘을 꿈꾸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절망 속에서 새 일을 행하십니다.
요한이 보았던 이 새 예루살렘의 소망이 오늘 저와 여러분의 소망이 되길 축복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음으로 이 에덴 동산에서의 죄와 저주가 시작되었습니다.
에덴동산은 아름다운 땅이었습니다. 그러나 죄로 인해 황폐하게 되었습니다.
새 예루살렘에는 모든 저주가 사라집니다. 요한계시록 22장 3절에서 4절 말씀입니다.
3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에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4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그들의 이마에 있으리라
다시 저주가 없다.
새 예루살렘에는 하나님과 이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 있습니다.
하나님의 종들은 서로 얼굴을 보며 하나님을 섬깁니다.
이 땅의 성도들은 하나님의 임재를 제한적으로 경험하지만 이 새 예루살렘에서는 그 어린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 계시며 하나님의 임재를 직접 누립니다.
짐승을 따르는 자들이 오른손이나 이마에 받은 표는 그들이 짐승에게 속함을 상징합니다.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는 하나님의 이름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소유임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성도로 삶을 살아가며 이 세상에 포기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소유하고 싶지만 주님을 따르기 위해 내려놓아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주님을 선택하는 것, 이것이 더 가치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편히 쉬고 싶지만 이 봉사로 시간을 사용하신 분들이 계십니다.
집에 가고 싶지만 교회로 발길을 돌린 분도 계십니다.
한국에 머물고 싶지만 오지로 떠난 선교사님들이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사랑하고 용서하라 하심으로 사랑을 실천하시는 분이 계십니다.
주님을 선택하는 것은 많은 것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선택을 통해 나의 삶이 하나님의 소유임을 증명합니다.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거하시는 복된 삶이 저와 여러분의 삶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요한계시록 22장 5절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5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 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그들에게 비치심이라 그들이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다
하나님의 빛으로 인해 새 예루살렘에는 밤이 없습니다.
따라서 등불이나 햇빛도 필요 없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빛이고 또 어린 양이 등불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영원히 밝은 곳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은 세세토록 왕노릇 할 것입니다.
짐승 따를 것을 거부한 순교자들은 이 그리스도와 함께 천년 동안 왕 노릇하며, 하나님의 백성은 새 예루살렘에서 영원토록 왕노릇 할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 요한계시록은 예수님께서 주신 계시입니다.
모든 역사의 중심에 예수님이 계십니다.
우리의 시간을 BC와 AD로 나눈 것은 예수님의 탄생의 시점입니다.
예수님을 만난 첫 시간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삶이 변화됩니다.
예수님은 어떻게 생각하실까? 예수님은 어떻게 말씀하실까? 우리는 삶의 순간마다 생각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어떻게 행하셨는가? 나는 예수님을 어떻게 기쁘시게 할까?
이렇게 묻고 돌아보면 예수님을 따라 살게 됩니다.
이 성도의 신앙의 목표는 예수님을 닮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도 요한에게 옛 에덴을 넘어서게 하시며 새 예루살렘을 보여주십니다.
요한이 보았던 새 예루살렘을 우리 모두가 함께 바라보길 소망합니다.
우리는 어제의 고백이 아닌 오늘의 고백으로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나와 함께 계시며 다시 오실 예수님을 나는 믿습니다.
새 예루살렘으로 인도하실 하나님 찬양합니다.
옛 에덴을 넘어서게 하시며 온전한 새 에덴을 허락하실 하나님 앞에 마나나타 주 예수여 어서 오십시오. 고백하며 말씀으로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의 삶이 되길 축원합니다.
하나님
모든 저주가 사라지고
하나님과 얼굴을 마주하며 영원히 왕 노릇하게 될 나라를 약속하시니 감사합니다.
하늘 보좌로부터 흘러나온 생명의 말씀이 제 삶을 적셔 성령의 열매를 맺게 하옵소서
주인 되신 하나님을 제 중심에 모시고 신실하게 섬기는 종이 되게 하옵소서
다시 오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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